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03
“그래, 그놈이 바로 그놈이다. 순양그룹에서 제일 잘난 놈. 너 같은 놈들 한 트럭을 줘도 진 회장이 바꾸지 않을 똘똘한 3세. 그놈 작품이라는데 그래도 데려올 수 있어?”
“혹시 진도준 그놈이 이 광고를 기획했다는 뜻입니까?”
“그 집안에 똘똘한 3세가 또 있어? 다들 너처럼 개폼만 잡는 등신만 득실거리잖아?”
주태식 회장이 비아냥거리자 그의 아들은 시선을 돌려버렸다.
모처럼 괜찮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는데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느니만 못하게 됐다.
“그놈들 신차는 어때? 의견 말해봐. 솔직하게.”
주태식 회장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임원을 돌아보며 말했다. 지나간 일도 중요하지만 당장 닥쳐올 일도 걱정이었다.
그가 보기에도 HW의 새로운 경차는 꽤 잘빠졌기 때문이다.
“아직 출고가가 나오지 않아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만, 2인승이라는 게 발목을 잡을 겁니다. 한국 사정상 4인승을 선호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껏 경차의 주 소비층은 ‘애 엄마’입니다. 어린 자녀를 조수석에 태운다? 타깃층을 잘못 해석한 겁니다.”
“해외 시장을 메인 타깃으로 삼았다면 그야말로 실수한 겁니다. 일본 소형차 메이커와의 경쟁에서 버티기 힘듭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임원들의 의견은 한결같이 부정적이었다.
가격, 효율 등을 생각하면 그리 잘못된 생각도 아니다.
하지만 생산 설비를 늘리고 대량 생산과 코스트 다운에 치중했던 전대 회장의 측근들은 세상이 변해간다는 걸 체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난 그 깜찍하게 생긴 차를 사고 싶을까?”
주태식 회장은 그들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손가락 하나 겨우 들어가는 구멍이 거대한 댐을 무너뜨려요. 균열이 시작되면 이미 늦어. 그런데 내가 보기엔 저놈들의 작은 쿠페는 손가락 정도가 아니라 주먹만 한 구멍을 뚫을 것 같단 말이지.”
단지 임원들을 깨기 위해 한번 해보는 말이 아니다. 처음 그 모습을 지면을 통해 봤을 때 가슴이 철렁했다.
가격, 성능, A/S 같은 외부 요인은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거… 먹히겠는걸. 이런 느낌이 먼저였다.
“참, 안일하구먼. 우리 대현의 중심 댐인 자동차가 구멍 난 채 달린다는 걸 나만 걱정하는 겐가?”
주 회장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임원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 회장님.”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말부터 던진 후 눈치를 살폈다. 이 정도로 끝날 것 같지 않다.
“HW 신차는 10월 초순 출시 계획입니다. 우리의 신차 출시가 11월이지만 한 달 앞당기겠습니다.”
“우리 신차? 그거 경차 아냐?”
“맞습니다. 프로젝트명 ‘클릭’입니다. 5인승이니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오호라, 그거 딱이구먼. 젊은 애들이 좋아할 만한 2인승 쿠페와 ‘애 엄마’가 좋아하는 4도어. 좋아 제대로 한판 붙여보자고.”
순간 주태식 회장의 얼굴이 밝아졌다.
임원들이 그의 표정을 보고 한시름 놓았을 때 주 회장의 입에서는 폭탄 같은 경고가 터져 나왔다.
“3개월. 출시 후 딱 3개월 뒤의 결과로 인사조치 합니다. 시기도 아주 적당하네. 내년 1월이니까 말이야. 그때 우리가 HW보다 뒤쳐졌다면 이 자리 임원님들 전부 옷 벗을 각오하세요. 분명히 말했습니다.”
결국 주 회장이 원하는 것은 물갈이다.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고, 불만을 가질 수 없는 인사.
실적으로 평가하겠다는 말에 반대할 임원은 없다. 어차피 계약직이니까.
게다가 경쟁사와의 한판 승부에서 이기면 되는 일이다. 자동차 전체 실적을 따지겠다는 것도 아니다.
지면 물러난다.
간단한 규칙, 마치 월드컵 토너먼트 같다.
회의실에는 적막이 흘렀다.
“자, 대책을 강구하면 내게 가져와 봐요. 어떤 전략인지 한번 보자고.”
주태식 회장은 회의를 끝냈다.
오늘 취임식을 끝낸 새로운 서울시장과 차 한잔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이다.
* * *
정말 어색하다.
도대체 나를 이 자리에 부른 큰아버지의 속셈을 모르겠다.
순양호텔 레스토랑에 모인 네 남자.
두 분의 큰아버지, 나 그리고 이학재 실장.
이 조합으로 뭘 하자는 건지….
“이번에 네가 순양자동차에 큰 도움을 줬다고 들었어. 잘했다.”
“아닙니다. 광고문구 짤 때 의견 낸 게 전분데요, 뭐.”
진동기 부회장은 아직 순양자동차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걸까? 화제가 된 HW 자동차를 너무나 당연한 듯 뿌듯하게 생각한다. 저 태도는 할아버지 정도가 보일 수 있는 반응이다.
“그 덕분에 순양전자 핸드폰 프로모션은 기사 한 줄 안 나왔다. 너무 튀지 말어. 이런 국가적인 큰 행사는 계열사가 골고루 올라타서 함께 가야 하는 거야. 허허.”
진영기 부회장은 아예 계열사 전체를 관장하는 회장님 같은 풍모를 보여준다.
이 양반들이 지금 뭐 하자는 걸까?
이학재 실장 앞이라고 속 넓은 척하는 건가??
“울타리를 벗어난 순양자동차지만 잘됐으니 좋은 거죠. 순양자동차가 남의 집 식구가 됐어도 도준이는 몇 다리 걸친 주주 아닙니까? 실낱같은 인연은 아직 남아 있다고 봐야죠.”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웃고 있지. 만약 딴 놈이 날 물 먹였다면 내가 이렇게 웃고 있겠어? 작살냈지.”
진영기 부회장은 날 바라보며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언제든 날 작살낼 수 있다는 엄포인가?
“자자, 식사 다 끝났으면 어떻게 할 건지 결론 내자고.”
“돈 많은 형님께서 책임져주시면 되겠네요.”
“그럼 날 회장으로 추대하던가? 그럼 내가 이번 대선 책임지지.”
대선? 혹시 이번 대선의 대비책을 세우는 자린가?
“회장 하세요. 아버지께서도 별말 없으실걸요? 호칭 바꾸고 명패 바꾸고 명함 바꾸면 끝 아닙니까? 쉽잖아요?”
“그래, 싹 바꾸지. 대신 회장에 어울리는 지분은 가져야겠지? 우리 동생이 15%, 똘똘한 조카가 5%. 이렇게 나한테 넘기면 내 지분이 56%. 좋네. 회장 해도 되겠구먼.”
두 사람의 날 선 대화를 듣던 이학재 실장은 슬쩍 웃으며 서류 파일을 꺼냈다.
“지금 현황입니다. 두 분의 판단대로 집행하시랍니다.”
“아버지가?”
“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그 사람 임기보다 당신의 목숨이 더 짧을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청와대 주인은 두 분께서 잘 모셔야 할 거라고….”
농담 같은 이학재의 말에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할아버지 건강에 무슨 일 있는 건 아닐까?
“도준이 너도 파일 봐. 넌 촉이 좋잖아. 한번 예측해보라고.”
이미 두 분 큰아버지는 서류를 읽어 내려가는 중이었다.
난 파일을 펼치고 읽는 시늉만 하다 다시 덮었다. 누가 되든 재벌은 영원한 것 아닌가?
“응? 왜 덮어? 벌써 촉이 온 거야?”
이학재의 날카로운 눈빛이 거북했지만, 어깨만 으쓱했다.
“제가 뭐 봐도 아나요? 여야 후보가 팽팽한데….”
“그럼 결과는 어떻게 될 것 같아?”
“아직 5개월 넘게 남았습니다. 정치 평론가들이 말하지 않습니까? 선거 3개월이면 조선왕조 오백 년이라고요.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요동칠지 아무도 모를 겁니다.”
두 분 큰아버지들도 파일을 덮었다. 서류는 아무런 답을 끌어낼 수 없다는 결론을 주장하는 셈이다.
“도준이 말이 맞다. 이런 건 무의미하지.”
진영기 부회장은 서류 파일을 한쪽으로 쓱 밀어버렸다.
“관행대로 가자. 7:3 이렇게 전달하자고.”
7:3? 내가 머리를 갸웃하자 이학재가 말했다.
“차기 정권에 보험 드는 거다. 너도 모르지는 않겠지?”
“그럼 7은 여당입니까?”
“아니. 이번엔 야당이다. 처음 있는 일이야.”
아, 보수당이 야당이 된 게 이번이 처음이구나.
“그런데 이런 이야기까지 도준이가 들을 필요 있나? 이 실장이 실수한 거 같어.”
진영기 부회장이 슬쩍 이 실장에게 핀잔을 줬지만, 그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회장님 지시니까요. 도준이도 어엿한 금융그룹 대표입니다. 순양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은 마땅히 책임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대선에서 순양의 이름으로 돈을 건네는 사람, 정계에서는 그 사람이 바로 순양의 선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진동기 부회장이 돈 없다고 엄살을 떨었지만, 그 역시 거금을 건네고 싶을 것이다. 단, 자신의 이름으로.
난 내 이름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창의적인 방법인 ‘차떼기’의 오명에 내 이름을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진영기 부회장이 운은 뗐다. 말없이 앉아 있다가 때가 되면 슬쩍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다.
“형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도준이도 아버지가 지목한 순양의 한 축이 맞아요. 하지만 이런 은밀한 일에 깊숙이 개입하는 건 아직 멀었습니다.”
진동기 부회장까지 거들어준다.
물론 이들이 나를 생각해서 멀찍이 떨어지라는 건 아니다. 어차피 이 나라 권력의 핵심에 다가서는 일이다.
내가 벌써부터 그런 권력자와 연을 맺는 게 껄끄러울 뿐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자. 도준아.”
“네.”
진영기 부회장이 은근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아버지가 널 이 자리에 참석시키라고 한 뜻은 알겠지?”
“네. 그룹 이름으로 하는 일이니 저도 일부분은 책임져야 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맞다. 너도 알다시피 올해 대선에 우리 순양이 보험금을 내는 거야. 넌 보험금 일부를 책임지면 돼.”
“그런데 큰아버지. 문제는 제가 돈을 마련하는 방법을 아직….”
“그건 내가 정리해주마.”
진동기 부회장이 기다렸다는 듯 나섰다.
“대략 2, 30억 정도 준비하면 될 게다. 안 그렇습니까?”
진동기 부회장이 동의를 구하는 듯 형님을 바라보자 진영기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처리해줄 테니 넌 내게 맡기면 돼.”
“네. 감사합니다. 큰아버지.”
머리를 꾸벅 숙인 다음 슬며시 의자를 뒤로 밀었다.
“그럼 연락 주십시오.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래. 그만 가봐.”
호텔을 나와 차에 올랐다.
“할아버지 댁으로 갑시다.”
* * *
“뭐? 내가 죽으면 매일 아침 내 무덤에 찾아와 문안 인사를 하겠다고? 살아 있을 때나 잘해, 이눔아.”
“죄송합니다. 지난달에는 너무 정신없어서요. 앞으로 자주 오겠습니다.”
“일없다. 바쁠 때 짬을 내는 게 정성이지, 한가할 때 짬 내는 게 뭐 어렵다고?”
내 얼굴을 보자마자 버럭 소리를 지르셨지만, 얼굴은 웃고 계셨다.
마음이 아프다. 못 뵌 지 고작 한 달인데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시는 게 눈에 보인다.
“거참, 뭘 드시길래 목청만 더 좋아지십니까? 팔다리는 자꾸 가늘어지고… 뭡니까? 식단 좀 바꾸세요. 단백질 위주로 드시라니까요.”
“딴소리는…!”
할아버지는 내 등짝을 한 대 쳤다.
“어쨌든 지난달에 재미 좀 봤더구나. 잘했다.”
“조대호 사장님이 잘하신 겁니다. 저야 뭐 어시스트 정도죠.”
“어울리지 않게 겸손은. 조대호가 몇 번이나 전화 왔다. 네 덕분에 수천억 광고 효과를 봤다고 칭찬이 자자하더라. 외국 딜러들 반응도 폭발적이라고 입이 찢어졌어. 돈으로는 절대 얻지 못할 결과를 네가 해낸 거다.”
눈치가 빠른 것인지, 솔직 담백한 건지, 아직 조 사장의 캐릭터를 잡기 힘들다.
“대선 자금 때문에 온 거냐?”
“아뇨. 얼굴 뵈려고 왔습니다.”
“시간 보니까 너 먼저 빠져나왔구나. 왜? 그놈들이 너는 빠지라고 하디?”
“제가 부담스러워서요. 대선 자금은 큰아버지들께서 결정하시고 전 일부만 책임지기로 하고 나왔어요.”
“왜? 권력이 없어도 돈 벌 자신이 있어서?”
“아, 아닙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어색해서….”
“도준아.”
“네.”
“돈을 힘으로 바꾸는 일이다. 한낱 숫자에 불과한 돈이 금력(金力)이라는 이름으로 변하는 게야. 네게 꼭 필요한 것 아니냐?”
할아버지는 어느새 웃음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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