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04
“꼭 필요하지만, 이번은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뭐가 멀었어?”
“정치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 말입니다. 고모부까지 시장 자리에서 내려왔으니 이제 현역 정치인은 아무도 모릅니다. 돈이 아니라 금력이 필요할 때 그들과 만나겠습니다.”
“쯧쯧, 아직도 어린애라고 생각하는 게냐?”
할아버지는 혀를 끌끌 차며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네가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넌 이미 3세라는 딱지를 뗐어. 순양의 금융 부분을 맡은 어엿한 후계자라고. 몇 번이나 언론을 탄 네놈을 어린애로 여길 사람은 없다.”
이런, 오해하셨다. 그 이유가 아닌데…….
“재계 순위 바닥을 기는 기업도 알게 모르게 선거 캠프와 줄을 닿으려 여기저기 찔러본다. 너만 빠진다는 건…… 득 보려고 하는 게 아니야. 손해 보는 건 피해야 하지 않겠느냐?”
자세히 말할 수도 없으니 머리를 끄덕였다.
“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양쪽 캠프 인사를 만나보겠습니다.”
“똥통에 발을 담그는 게 빨리 온 것뿐이다. 적당히 예의 차려 주고 안면 익혀 두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런 이야기 하려고 온 거 아닙니다. 어떻게 지내시나 인사드리러 온 건데…….”
“욕심도 많다. 허허.”
“네?”
“우리가 평범한 조손 간의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더냐? 손자가 할아버지 건강을 걱정하고 할아버지는 손자가 잘 지내고 있는지 마음 졸이는……. 그런 건 일찌감치 포기해야지. 우린 그저 만날 때마다 회사 걱정이나 하는 거다. 허허.”
농담이 아니란 것을 할아버지의 표정을 보며 알았다.
할아버지께 효도하는 방법은 안부를 묻고 건강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일 이야기를 하며 아직 경영자의 면모가 펄펄 뛰고 있음을 느끼시도록 하는 것이 제일이다.
“그럼 다른 이야기 해 볼까요?”
“응? 무슨……?”
“대현자동차가 단단히 벼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신차가 나올 때 그쪽에서도 준비한 신차로 맞불을 놓으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어요. 된통 붙을 것 같습니다.”
“네가 질 거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단정 지으셨다.
“그런가요?”
“너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을 텐데? 대중성 없는 스포츠 타입으로 무난한 4인승을 어떻게 이겨?”
“그래도 누르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드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나 심심하지 않게 해주려고 마음 쓰는 거냐?”
이 영감님, 눈치 하나는…….
“아닙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이러겠습니까?”
“됐다. 네 녀석이 했던 말을 내가 잊었을 성 싶어? 건망증이 심해지긴 했지만, 회사 일은 잊어먹지 않아. 잘 팔리는 차가 아니라 제대로 된 차, 보는 순간 갖고 싶은 차. 그게 목적이라고 하지 않았어? 멀리 보고 한 걸음씩 간다면서?”
나도 잊어버린 걸 이 정도까지 기억하시는 걸 보니 건강 걱정은 괜히 했나 싶었다.
“어차피 판매량 싸움에서는 못 이겨. 하지만…….”
“화제성에서는 밀리면 안 되겠죠?”
“그래. 대현이든 우리 순양이든 두 회사 모두 경차로는 돈 못 벌잖아.”
순양이 아니라 HW라고 정정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선물로 주신 회사니 할아버지께는 영원한 순양의 계열사여야 한다.
“대현에서 경차의 위치는 구색 갖추기일 뿐이야. 넌 그 이상으로 보지?”
“네. 순양자동차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첫 출발이라고 봅니다.”
“그래. 그럼 그 경차가 주전은 아니지만, 조연…… 아니 이번 월드컵에서 붉은 악만가 뭔가 하는 그놈들 있지? 외신에서 보도까지 했잖아.”
“네.”
“그런 놈으로 만들어 보라고. 월드컵은 끝났어도 그 붉은 티셔츠는 여전히 팔리잖아.”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다.
팔순이 훌쩍 넘은 할아버지지만 감각 하나는 젊은 마케터 못지않다. 괜한 걱정이었나?
* * *
“20억이면 부담이냐?”
“부담이지만 어떡하겠습니까? 할당은 채워야죠.”
“그래. 1차로 150억 건네기로 했다. 네가 20억은 해줘야 대충 구색이 맞는 것 같아서 그렇게 정했다.”
대충 20억이라는 할당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것 같다.
내가 가진 10%의 순양그룹 지분, 그만큼 나눈 것이다.
“그런데 큰아버지. 지난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전 회사에서 비자금을 만드는 방법을…….”
“있는 놈이 더 한다더니, 네가 딱 그 짝이구나. 하하.”
진동기 부회장은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보였다.
“인도네시아에서 찾은 돈이 천억일 텐데? 20억이면 겨우 2%야. 그것도 못 빼?”
“아, 그 돈은 한 바퀴 더 돌려야 한다고 해서요. 지금쯤 남미 어디쯤 있을 겁니다.”
“오세현이가 그래?”
“네.”
“이런, 저쪽에 전해야 할 돈은 급한데…….”
내 돈이 전달된 흔적이 있으면 안 된다. 이 불법 선거자금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분명 큰아버지 두 분은 임원 중 누군가를 골라 그 책임을 뒤집어씌울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
계열사를 맡은 지 이제 겨우 2년 남짓, 충성보다는 어린놈 밑에서 일해야 하는 불만이 더 크다. 날 대신해서 검찰청에 출두할 만큼 충성심을 쌓을 시간이 부족했다.
아직은 스스로 나를 지켜야 한다. 조금이라도 흠집이 생기면 안 된다.
“순양증권에서 이삼일 작업하면 20억쯤은 쉽게 모을 텐데, 한번 해볼래?”
장 마감 직전 몇 퍼센트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사겠다는 주문을 잔뜩 내어 종가를 끌어 올린다. 이유는 모르지만, 주가가 오르니 개미 투자자가 덤벼들고, 그렇게 주가가 오르면 차익을 꿀꺽한다.
이 작업을 한 달만 하면 수백억 정도는 쉽게 챙기고 손해는 개미 투자자가 다 뒤집어쓴다.
이삼일의 작업이라는 것은 이걸 말한다.
이상하리만치 반짝이는 진동기 부회장의 눈을 보자 섬뜩하기까지 했다.
“아, 그렇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면 되겠군요.”
선거 자금도 불법이지만 그 자금의 출처가 더 문제다. 있는 놈이 더하다고, 개인 재산이 수천억이지만 절대 자기 주머니를 뒤지는 법이 없다. 꼭 회사 돈을 빼내 전달한다.
정치 자금이 수사의 대상이 되면 검찰은 정치라던가, 대선이라는 단어는 슬며시 감추고 배임, 횡령으로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재벌 대기업의 적당한 머슴 한 명이 자진 출두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진동기 부회장은 하루라도 빨리 내 손톱 밑에 지울 수 없는 때가 잔뜩 꼈으면 하는 걸까?
“자금 준비하면 전달은 어떻게 할까요?”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하나 적어 쓱 내밀었다.
“이 친구에게 전하면 돼. 뒤는 내가 처리하마.”
자리에서 일어서니 그가 슬며시 웃었다.
“도준아.”
“네.”
“이 세계에 들어온 걸 환영한다. 아니, 안쓰럽다고 해야 하나? 하하.”
아직은 아니다. 똥물 뒤집어쓰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 한다.
* * *
“완전히 차단해야 합니다. 절대 나를 추적하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장을 받아든 우병준 상무는 만 원짜리 다발이 가득한 스포츠 백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저게 다 돈입니까?”
“네. 20억입니다.”
“만약 검찰에서 수사를 시작한다면 전달자를 추적하지는 않아요. 돈의 흐름을 추적합니다. 회사 계좌와 실장님 개인 계좌를 싹 뒤져서 20억이라는 숫자를 맞춰 볼 겁니다. 심부름꾼이야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그쪽으로는 못 찾아낼 돈입니다. 미국 계좌에서 몇 쿠션 먹은 돈이거든요. 제 흔적은 나오지 않습니다.”
“아…….”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잘 모르는 것처럼, 우병준 상무 역시 나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할아버지가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으셨나 보다.
“개인 돈인가 봅니다?”
“네. 회사 돈은 건드리면 안 되죠. 급한 일도 아니고 큰돈도 아니니까요.”
“20억이 큰돈이 아니다……? 이거, 제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돈이 많으신 것 같군요.”
“궁금하십니까?”
웃으며 묻자 그도 슬며시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단지 제 월급 못 받을 일은 없겠다 싶어 안심입니다.”
이런 농담까지 하는 걸 보니 내가 좀 편해졌나?
“사람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배달꾼은 전혀 다른 곳에서 나온 돈으로 생각할 겁니다. 그리고…….”
우병준은 내 눈치를 슬쩍 살폈다.
“말씀하세요. 혹시 무슨 일 있습니까?”
“이 돈, 오피스텔까지 누가 배달한 겁니까?”
꼼꼼하긴 하다. 그것까지 체크하다니.
“믿을만한 분이 보내신 겁니다. 괜찮아요.”
“그 믿을만한 분이 직접 들고 오신 건 아니죠?”
“네.”
“앞으로 이런 일은 우리 애들에게 시키십시오. 믿을만한 분과 그분의 직원은 다릅니다. 언제든 입을 열 수 있으니까요.”
“명심하죠.”
이런 조심성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 사람만 특출한 걸까? 큰아버지들 곁에서 일하는 순양시큐리티 직원들도 이정도 신중함은 기본인 걸까?
궁금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우 상무는 직원들을 불러 가방을 옮겼다.
“끝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우병준 상무가 나가자 긴장이 탁 풀렸다.
저 사람은 믿음직하지만, 왠지 좀 불편하다.
하루 날 잡고 술이라도 진탕 먹여야겠다. 가로막고 있는 벽을 그대로 남겨둔 채 내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 * *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 대선은 정말 뜨겁다.
엎치락뒤치락은 물론이고 온갖 이슈가 터져 나오며 양 진영을 흔들었다.
자식의 군 면제, 월드컵 4강 신화를 등에 업은 다크호스의 등장, 여전히 판을 치는 색깔론, 자당 후보를 흔들기 시작하는 여당의원들 등등.
신차의 정식 출시를 앞두고 조대호 사장마저 흔들릴 정도였다.
“뉴스가 정치뿐이야. 우리 차를 광고해도 누가 관심이나 둘까 싶다.”
“우리 타깃이 정치에 관심 없는 젊은 층이라는 게 다행이죠.”
“정치도 문제지만 대현도 문제야. 아예 우리 밟아 죽이려고 작정하고 덤빈다는 소식이야.”
“그쪽에서도 경차 나온다면서요?”
“그래. 이름이 이란다. 우리보다 300만 원 이상 싸게 나온다는데…….”
“삼백?”
출시가격이 6백만 원 후반대라는 뜻이다. 경차 한 대 팔아서 남는 게 뭐 있다고 저 가격에 판다는 걸까? 손해 볼 각오하고 출시하는 거다.
우리를 밟아 죽이려고 한다는 조대호 사장의 말이 엄살은 아니다.
잠깐 흔들렸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사장님. 우리 경쟁심을 버리죠.”
“응? 무슨 말이냐?”
“많이 팔려고 만든 차도 아니고, 돈 남기려고 개발한 차도 아니지 않습니까? 처음 계획한 대로 내년까지 7천 대 판매라는 목표만 생각하시죠.”
“현장에서는 그것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징징대니까 하는 말이야. 경쟁차종이 저렇게 후려치면 아무래도 밀리기 마련이거든. 그리고…….”
표정이 굳은 걸로 봐서는 약점이 또 있다.
“생각보다 퍼포먼스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라.”
“문제가 될 만큼?”
“아니. 소비자의 기대치만큼 안 나오는 거지.”
조 사장은 한숨을 쉬었다.
“생긴 건 미친 듯한 출력으로 쌩쌩 달릴 것 같지만, 어차피 경차 아니냐? ‘스포츠 룩’이라는 걸 소비자들은 자꾸 망각하거든.”
“그만큼 디자인이 잘 빠졌다는 뜻이기도 하죠.”
“그래. 디자인을 못 따라가는 퍼포먼스. 우리나라에서는 용서가 될지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곤란해. 쟁쟁한 차종이 한둘이 아니라서 말이야.”
뭐니뭐니해도 기술력의 문제다.
역사가 짧은 회사가 전통의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넓은 외국 소비자들은 우리 역사가 짧은 것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걱정 가득한 조대호 사장의 표정을 보며 한 가지 결심했다. 역사가 짧으면 특별 과외라도 받아 그 격차를 줄이면 되지 않을까?
“사장님. 회사 하나 사버릴까요?”
“응? 회사를 사다니?”
“유럽이나 일본 회사요. 슈퍼카 잘 만드는 회사를 사서 그 기술을 우리 것으로 만들죠.”
“슈퍼카 제조사가 장난감 회사냐? 마음 내키면 사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말라는 듯 손을 내저으려던 조 사장이 내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입을 떡 벌렸다.
“농담이 아니구나! 정말 사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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