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13
“그래서? 네놈 지분을 누가 가져갔다고?”
“형님입니다.”
“다행이네.”
진동기 부회장은 마치 구경꾼처럼 말하는 진 회장에게 얼떨결에 소리 질렀다.
“아버지!”
“이놈아!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히 생각해라. 엉뚱한 놈이 순양 지분을 가져갔으면 어쩔 뻔했어?”
아버지에게는 왼쪽 오른쪽 주머니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진동기는 아버지의 생각을 바꿔야 했다.
“아직 되찾을 시간은 충분합니다.”
“시간은 충분한데 돈이 부족하다?”
“네.”
“그래서? 너, 설마 그 부족한 돈을 내게 달라는 건 아니겠지?”
“죄송합니다, 아버지. 딱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나 돈 없다.”
아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진 회장은 발걸음을 옮겼다. 정원을 산책하는 아버지의 꽁무니를 쫓는 진동기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마지막 동아줄이 끊어지려 한다.
“내가 그룹지분 정리할 때 뭐라고 했니? 모두 말아먹어도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지?”
진동기는 입이 달싹거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지분 말고 돈!
돈은 아직 물려주지 않았다. 바다 건너 저 멀리 어딘가에 수조 원의 돈이 잠자고 있다는 건 걸음마 뗀 어린애도 다 아는 사실, 그중 일부만 꺼내 주면 해결된다.
하지만 해외 비자금까지 입에 올리는 것은 금기 사항이다. 돈 달라고 칭얼대는 철부지 같은 모습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 아버지.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돈 달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 제발 은행에 전화라도 좀 해주십시오.”
“은행? 탈탈 털어봐라. 내 돈….”
“그게 아니고요. 대출이라도 알선해 주십시오.”
발걸음을 옮기던 진 회장이 휙 돌아서며 소리 질렀다.
“어림도 없다. 지금 대한민국 은행장들 모가지가 간당간당해. 정권이 눈을 부릅뜨고 그놈들을 조사하는데 부당 대출이 가당키나 해? 네놈은 담보도 없지 않으냐?”
거절의 변명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어떡하다 지분을 뺏겼는지 물어보지도 않으셨다. 이미 내막을 다 아신다는 뜻.
진동기는 현기증을 느꼈다.
진 회장은 참혹히 일그러진 아들을 불렀다.
“동기야.”
“…네.”
“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어려웠던 적이 없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30년 가까이 회사에서 일했다. 젊을 때야 회사 왔다 갔다 하며 갖은 똥폼을 다 잡았지만 철들고부터 일재미를 알았다.
그 뒤로 어찌 어려운 적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어려움이 아니라 위기다. 그것도 순양그룹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위기.
“아버지. 제가 아무리 아버지께서 깔아 놓은 꽃길만 걸었다 해도 어떻게 힘든 일 한 번 없었겠습니까?”
“목숨이 간당간당하는 위험 말이다.”
바로 지금이 그렇습니다. 알면서 물어보십니까?
이것 역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목숨 같은 그룹지분을 뺏겼다. 형님이 과반수의 지분을 확보하면 자신은 순양그룹 사옥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시체처럼 숨죽이고 살아야 한다.
진 회장은 입을 다물고 있는 아들을 보자 한숨이 나왔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지금 이 고비를 네 힘으로 넘겨. 그럼 네 형인 영기가 흔들릴 거다.”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위기를 넘길 방법이 없다.
진동기는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가진 것 전부 던지는 일이다.
“이 위기를 넘기려면 제가 가진 나머지 그룹지분 전부를 담보로 돈을 빌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든지. 지금 네가 가진 것 중에 쓸 만한 건 그것뿐이지?”
진 회장이 단 일 초도 생각하지 않고 말하자 진동기는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버림받았다.
아버지는 자신을 버렸다.
계열사 지분을 담보로 하겠다는 게 아니다. 그룹 지배 지분을 담보로 맡긴다는 말이지만 아버지는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순양의 지배력이 은행 담보로 들어가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자신의 지분이 은행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버지는 그 지분을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 물려줄 것이다.
그 누군가는 형님 아니면 조카.
이제 마지막 남은 수단도 막혀버렸다.
진동기는 아무 말 없이 머리만 꾸벅 숙이고 발걸음을 돌렸다.
진 회장은 힘없이 축 늘어진 차남의 뒷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칼을 들고 찌르는 놈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아비에게 공갈이나 치다니. 쯧쯧.”
* * *
작년 12월에 준공한 정부중앙청사 별관 회의실은 몇몇 관계자 외에는 출입을 엄중히 제한했다.
바로 오늘 새로 출범한 정부의 결단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만약 오늘 회의 결과가 좋지 않다면 앞으로 5년, 아니 영원히 실패한 정책 사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회라고 생각하는 재계는 정부의 미숙한 대응으로 건실한 기업을 무너뜨렸다고 떠들며 반격할 것이다.
앞으로 그 어떤 견제나 제재조치는 불가능해진다.
이 사실을 잘 아는 정부 측 회의 참석자, 즉 재정경제부 차관, 청와대 경제수석, 금융감독원 1국장은 비장한 표정이었다.
이들 못지않게 긴장한 중년 사내들도 있었다.
그들은 순양카드의 채권자들이다. 순양카드의 단기 유동자금을 책임졌던 금융사와 투자사의 임원들은 빨리 발을 빼지 못한 한 박자 늦은 행동을 후회하며 이 자리에 불려 나왔다.
정부의 강압적 제재가 이어지면 그들의 채권은 휴지 조각이 된다. 하지만 그들은 한 가닥 희망을 담은 눈빛을 회의 참석자 한 명에게 보냈다.
이 회의실에서 유일하게 긴장하지 않은 사람, 마치 담소나 나누려는 듯한 표정의 사내. 바로 미라클의 오세현 대표였다.
부실기업을 인수하여 정상 궤도에 올리는 재계의 구세주 아닌가? 그가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은 바로 정부의 밑그림이 뭔지 알 수 있는 힌트였다.
“먼저 어려운 걸음 해주신 여러분께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아무쪼록 오늘 회의가 유의미하게 끝나기를 바랍니다.”
“이제 순양카드의 영업정지 시각이 18시간 남았습니다. 가장 좋은 결과는 영업정지 처분을 취소하는 것이며 차선은 영업정지 기간의 최소화입니다. 그리고…. 최악은 폐업입니다.”
정부 측 인사들의 말이 끝나자마자 순양카드 채권자들이 불만을 늘어놓았다.
“우리의 묶인 자금에 대한 해결책은 마련되어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실 이런 긴급 조치는 발표 전에 최소한 우리에게 먼저 알려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너무 황당해서, 원.”
이들의 불만을 잠자코 듣던 금융위 정책 1국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채업자도 돈 빌려줄 때 확실한 회수 방안을 준비합니다. 그런 여기 계신 분들…. 한국을 대표하는 은행이면서 순양이라는 이름만 믿고 단기채를 사들인 거 아닙니까?”
정책 1국장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자 금융권 임원들의 얼굴이 딱딱해졌다. 어쩌면 오늘의 대책 속에 채권 회수 방안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일반인에게 돈 천만 원 빌려줄 때는 담보니, 보증인이니 하며 확실한 회수 방안을 세우면서, 수백억은 신용만으로 빌려준 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정부가 돈 받으러 다니는 해결사 양아치 역할까지 해야 합니까?”
정부의 확실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말이었다. 여차하면 순양카드 사태로 빚어지는 손해는 금융권이 고스란히 떠안고 가야 한다.
갑자기 모두 입을 다물고 공손히 눈을 내리깔았다. 금융사 임원들은 처분만 기다리는 모습으로 태도가 변했다. 정부는 금융권의 인사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자자, 험악한 말은 앞으로도 할 시간이 많습니다. 일단 시작은 희망적인 것부터 거론하죠.”
청와대 경제수석은 오세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이 18시간 안에 정해야 하는 건 정확히 두 가지입니다. 첫째가 카드 사용금액의 결제가 불가능한, 악성 소비자들을 어떻게 하느냐, 두 번째가 여기 계신 금융권 관계자분들은 회수율 몇 퍼센트 정도면 만족하느냐? 이거 아니겠습니까?”
오세현은 금융권 임원들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단기채 전부를 책임져 달라고 하신다면 전 일어서겠습니다. 조금 전 정책국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순양의 이름만 믿고 돈을 던진 여러분들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책임이 바로 회수율이죠.”
오세현은 뜸을 잠깐 들인 뒤 싱긋 웃었다.
“잘 생각해서 말씀하세요. 밀고 당기는 협상은 없습니다.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는 걸 다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순양카드 인수를 거절하면 현재 여러분이 가지고 계신 순양카드의 단기채권은 휴지가 됩니다. 이런 참사를 막으시려면 제 마음을 움직이세요.”
예전 같으면 콧방귀 뀌고 개무시해도 되는 발언이다.
하지만 모두 침을 꿀꺽 삼키며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5년 전 IMF가 명확한 사례를 남겼다. 바로 철옹성이라 여겼던 은행도 외부 입김에 따라 넘어지고 쓰러질 수 있다는 것.
물론 지금의 순양카드 단기채 정도로 은행이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첩첩산중이다. 부실 카드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은행이 아닌 투자사 역시 마찬가지다. 부실 카드사가 번호표를 들고 그들을 기다린다. 투자자들이 이미 자금을 빼고 있다. 그들을 안심시켜야 하는 것이 이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의 의무다.
모두 다 알고 있다. 휴지 조각을 들고 있느니 얼마라도 건져야 한다는 것을.
침묵하던 그들이 입을 열었다.
“오 대표님. 그 전에 하나 확인하겠습니다.”
“네. 뭐든지 말씀하세요.”
“그런 말씀을 한다는 건 순양카드의 경영권을 확보하셨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됩니까?”
“오늘 회의의 결과를 보고 결정할 겁니다. 제가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온다면 내일 주식시장에 쏟아져 나온 순양카드 매도물량을 전부 사들입니다. 그럼 40% 지분 확보로 제1대 주주가 되죠. 그리고 금융권이 쥐고 있는 지분을 합치면 곧바로 경영권을 확보합니다.”
오세현은 회의 참석자 모두를 바라보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 가지 더, 만약 성과가 좋다면 흔들리는 대현카드도 인수할 용의가 있습니다. 이 사실이 여러분의 결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채권 회수율을 정하는 기준이 변했다. 만약 미라클이 대현카드까지 인수한다면 휴지가 될지도 모르는 채권 일부를 더 건진다.
“그 결정을 위해 잠시 자리 좀 비우는 실례를 양해 바랍니다.”
금융권 임원들은 가볍게 머리를 숙인 다음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나가자마자 경제수석은 비록 낮은 음성이었지만 참았던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오 대표님. 사실입니까?”
“뭐 말입니까?”
“아직 순양카드의 주식을 매입하지 않으셨습니까? 이건 약속과 다른데요?”
그의 안색은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졌다.
청와대는 순양카드의 영업정지를 원하지 않는다.
오늘 채권 문제를 정리하면 18시간 뒤 영업정지 대신 순양카드 사태를 해결했다고 발표할 생각이었다. 위기를 아주 원만하게 해결한 정부라는 평가가 절실한 집권 초기 아닌가?
오늘 회의의 전제는 바로 미라클이 순양카드를 인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경영권은 쥐지도 못한 미라클이라면 이 회의에 참석할 자격도 없다.
“이미 42% 확보했습니다.”
“아…!”
“미라클이 이미 순양카드를 인수했다면 저 사람들은 배 째라고 나올 겁니다.”
오세현이 회의실 밖을 가리켰다.
“전 인수한 카드사의 정상화에 최선을 다할 테지만, 저 혼자 손해를 다 안을 수는 없어요. 흥청망청 돈을 쏟아부은 저들도 책임져야죠. 그리고 책임은 말입니다, 수석님.”
경제수석을 바라보는 오세현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책임은 도덕적으로 지는 게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지는 거죠. 돈이 깨져야 반성하고 책임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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