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14
냉정한 오세현의 말에 공무원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경제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건 금융권만이 아니다. 흥청망청 카드를 긁어 댄 일반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오 대표님. 그럼 카드 연체자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정부가 부채 탕감해줄 겁니까?”
“아뇨. 아직 계획 없습니다. 생활 부채라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이건 카드라서요. 도덕성 해이 등의 여론 질타가 무섭습니다.”
“정부가 관여하지 않겠다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만약 오세현이 무리한 회수를 시도한다면 이 역시 부담이다.
“혹시 악성 채권을 팔아버릴 생각이십니까? 그런 쪽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말입니다.”
그런 쪽 전문은 소위 ‘신용정보’라는 이름의 회사들이다.
이들은 카드사, 시중은행, 상호저축은행, 할부금융사들이 회수를 포기한 악성 채권을 평균 30%에서 10%의 금액으로 사들인다.
그런 다음 채권추심을 전문적으로 하는 직원들을 동원해서 사채업자 버금가는 수준으로 채무자들을 압박해 돈을 받아낸다.
지금은 이런 신용정보 회사들의 전성기다.
신용불량자가 300만 명에 육박하고 이미 카드사들이 손실로 처리한 대손상각 규모만 해도 4조 원에 달하며, 앞으로도 2조 원을 웃도는 규모의 금액이 손실 처리될 것이다.
1억 원 미만인 개인 신용불량자의 연체 금액은 모두 44조7천억 원에 달하며 저축은행과 할부금융사의 연체 금액만 4조 원이 넘었다.
2003년의 대한민국은 연체공화국이다.
“당연하죠. 순양카드 채권추심 직원들만으로는 해결 못 합니다. 전 이번 딜에서 단돈 만 원도 손해 볼 생각 없어요. 지금 밖에서 수군대는 저들의 대답에 맞춰 악성 채권을 팔아버릴 생각입니다.”
단기채를 쥐고 있는 금융권이 회수율 30%로 결정하면 연체금액 전부를 30%에 팔아버릴 것이라는 뜻이다.
“괜한 승리감에 빠지지 말아요. 순양카드는 시작일 뿐입니다. 8개의 카드사 전부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신용불량자들과 목숨 걸고 싸우는 중이라고요. 현 정부가 과감한 결단을 했다면 끝까지 그 결의를 보여줘야 합니다.”
오세현은 공무원들의 당황한 표정을 보며 말했다.
“다음 선거 생각해서 연체자들 구제 정책이라도 폈다가는 수십조의 연체금을 책임지라고 승냥이 떼처럼 달려들 겁니다. 저를 포함한 카드사와 금융기관도 그 승냥이로 돌변합니다.”
공무원들이 입을 열지 못할 때 금융권 관계자들이 회의실로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그들의 굳은 표정을 보며 오세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결과를 말씀하시기 전에 이것 하나는 알아두세요.”
회의실 모두의 시선이 오세현을 향했다.
“순양카드 인수가 결정되는 순간, 전 악성 연체 금액 전부를 신용정보회사에 넘길 겁니다. 그리고 그 신용정보회사는 여러분들께서 소개해 주시기를 바라고요.”
순간 금융권 임원들의 눈빛이 변했다. 탐욕이 스며든 것이다.
알게 모르게, 은행들은 신용정보회사를 가지고 있다. 전직 임원들이 만들고 은행에서 잘린 직원들을 추심원으로 고용한다.
이런 회사에 현직 임원들도 투자해서 아주 짭짤한 돈벌이를 하는 것이다. 회수만 잘한다면, 은행의 손실은 곧 신용정보회사의 이익이다.
그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오 대표님. 우리 결정은 바로 이렇습니다.”
그들은 반으로 접은 메모지 한 장을 오세현에게 건넸다.
“만약 추심 관련해서 저희와 협상하신다면 조금 더 신경 쓰겠습니다.”
오세현은 메모지를 확인하고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계약서 준비하십시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죠? 그 안에 전부 해치우겠습니다.”
오세현이 벌떡 일어나자 정책 1국장이 말했다.
“뭡니까? 회수율은 어떻게 정한 건지 말씀해 주셔야죠.”
“국장님. 이건 기업 간의 기밀입니다. 말씀드릴 필요도 없고 아실 필요도 없어요. 그리고 정부 측은 하나만 다짐받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오세현이 쏘아붙이자 1국장은 머쓱한 모습이었다.
“48시간 이내에 순양카드의 모든 서비스를 정상화하겠습니다. 이거면 된 거 아닐까요?”
회의실을 빠져나가려던 오세현은 머리를 툭 치며 돌아섰다.
“아차차, 깜박한 게 있습니다.”
그는 청와대 경제수석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속삭였다.
“제가 이번 순양카드를 어떻게 정리하는지 잘 보시고 흡족하다 싶으면 대현카드도 한번 맡겨주십시오.”
경제수석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오세현의 행동을 보며 그가 아군인지 적군인지 가늠하느라 인사도 건네지 못했다.
* * *
진동기 부회장은 눈앞에 놓인 서류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는 망연자실, 아무 말 못 했다.
“굳이 주주총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사실 변하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 부회장님과 순양카드는 아무런 연결 고리가 없다는 것뿐이니까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은 오세현의 목소리였다.
승자의 거만함도, 회사를 뺏어 가는 미안함도 들어 있지 않은, 마치 서류의 숫자처럼 무미건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왜 내게 이걸 들고 온 거요? 내게 말할 필요도 없잖소. 대주주 변동 신고만 하면 될 일인데….”
“몇 가지 협의하려고 합니다.”
“협의? 순양카드와 연결 고리가 없다고 방금 말하지 않았소?”
“딱 하나 남은 게 있죠. 바로 순양이라는 이름입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곧 순양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싶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
“바로 갑시다. 원하는 게 뭐요?”
“저랑 손잡는 게 어떻습니까?”
“뭐요?”
의자에 기대고 있던 진동기 부회장의 상체가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이건 또 무슨 의미인가?
“아시다시피 미라클은 그룹의 지배지분 16%를 쥐고 있습니다. 아…. 물론 다시 확인해봐야겠죠. 그간 두 분 부회장님께서 지분 구조를 어떻게 수정했는지 전 모르니까요. 하지만 최소 15% 이상은 될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래서요?”
“순양카드는 완전히 계열분리 된 상태입니다. 만약 그룹 사옥에서 나가라고 한다면 이삿짐을 싸야 하죠. 이름도 쓰지 말라고 하면 바꿔야 하고요.”
“이름도 바꾸고 싶지 않고 이사도 하기 싫다?”
“네. 그냥 여기 눌러앉고 싶습니다. 회사 직원들도 변화는 두려워하니까요. 순양이라는 이름도 그대로고 출근하는 직장의 위치도 변하지 않으면 안심할 겁니다. 사실 백성들이야 왕이 누가 되든 무슨 상관입니까? 먹고사는 게 변함없다면 대주주가 누구든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진동기 부회장의 눈이 반짝였다.
“그 말씀은 경영진의 변화도 없다는 뜻입니까?”
“대대적인 물갈이는 없도록 하려고요. 이번 카드 사태를 안일하게 바라본 멍청한 몇몇은 칼질할 생각입니다만….”
대주주만 바뀐다.
만약 진동기 부회장이 순양카드를 쥐고 있었다 하더라도 어차피 이번 사태를 책임질 경영진 몇몇은 날려버렸을 것이다.
“그럼 나와 손잡자는 뜻은 뭡니까?”
“이번 일로 부회장님 지분 7%가 형님이신 진영기 부회장 손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그룹 내 지지 기반이 많이 흔들리실 텐데 제가 흔들리지 않도록 받쳐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미라클이 쥐고 있는 16%로 날 지켜주시겠다?”
“16%가 아니죠. 이제 23%가 됩니다. 담보로 맡겨 놓은 지분은 찾아올 테니까요.”
진동기 부회장은 눈을 질근 감았다.
회사도 지분도 함께 날렸고, 눈앞의 저놈이 둘 다 주워 먹는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자신은 26%, 미라클은 23%….
이제 자신과 대등한 위치까지 올라왔다.
진동기는 한참 동안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이건 단순히 이름 유지하고 이사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다.
미라클이 자신을 밀어준다면 단번에 49%의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반수 이상까지는 단 2%.
그 정도는 임원 몇몇만 끌어들이면 된다. 단숨에 전세 역전이다. 그리고 조카도 있지 않은가?
진도준의 10%가 자신의 편에 선다면 당장에라도 형님을 쫓아내 버릴 수 있다.
“이봐요, 오 대표. 그 지분의 의결권 나한테 넘겨요. 지분 달라는 소리 아닙니다. 의결권만 내게….”
진동기는 웃으며 손을 드는 오세현 때문에 입을 닫아야 했다. 명백한 거절의 의미다.
“제가 손을 잡자고 한 것은 다른 뜻입니다. 부회장님의 지금 위치를 지켜드리는 것만 도와주겠다는 의미예요. 우리가 손을 잡으면 진영기 부회장이 그룹 전체를 손안에 쥐고 흔드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습니까?”
초조해진 진동기가 간곡한 부탁처럼 말했다.
“오 대표. 솔직히 경영자로서 우리 형님은 자격 미달 아닙니까? 그간 말아먹은 회사가 몇 개인지나 아시오? 쉬쉬해서 그렇지 열 개를 훌쩍 넘겨요.”
진영기 부회장은 한때 손만 대면 망한다고 해서 ‘망한다스의 손’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나마 나이 들고 나서는 새로운 회사를 만들지도 않았고 늘리지도 않았다.
건실한 회사를 잘 지키는 것만 생각하라는 진 회장의 엄명 때문이었다.
“부회장님. 제게 그런 말은 소용없습니다. 전 과거의 진영기 부회장이 얼마나 멍청했는지 또는 무모했는지는 관심 없어요. 현재만 봅니다.”
오세현 매달리는 진동기를 냉정히 뿌리쳤다.
“현재의 경영지표를 잘 보세요. 어디 하나 흠잡을 때 없어요. 순양전자는 막대한 돈을 벌어들입니다.”
“그거야 시황이 좋아서 그런 거 아니요? 그 자리에 허수아비를 앉혀 놔도 그 실적은 나와요!”
진동기는 위기가 기회라는 진 회장의 말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이 기회를 잡기만 하면 전세 역전이기에 필사적이었다.
“전 허수아비 같은 진영기 부회장이 더 좋습니다.”
“뭐요?”
“부회장님이라면 순양전자의 막대한 영업이익을 기반으로 분명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했을 겁니다. 그게 바로 능력 있는 경영자가 할 일이니까요. 끝없는 팽창과 확장, 이것이 재벌 대기업의 궁극적인 목적 아닙니까?”
“그런데 왜?”
“전 주주입니다. 모험보다는 안정이 우선이죠. 불확실한 성장보다는 안정된 배당금이 더 좋습니다.”
“오 대표….”
“그만하시죠. 제 생각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보다 제가 말씀드린 걸 받아들이실지 아닌지만 대답해 주십시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세현은 힘없이 머리만 끄덕이는 진동기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럼 순양카드 경영진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십시오. 전 이만….”
진동기 부회장은 일어서려는 오세현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오 대표. 손을 잡았으니 묻는 겁니다. 미라클에서 우리 도준이의 위치는 어떻게 됩니까? 혹시…?”
차마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혹시 1대 주주냐는 질문을 하기에는 결과가 두려웠다.
“도준이요? 음…. 꽤 많은 자금을 투자했고 지분도 만만치 않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아, 아니요.”
오세현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혹시 조카를 경계하시는 것이라면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도준이는 추구하는 바가 달라요. 목표도 다르고.”
“그놈 목표가 뭡니까?”
“글쎄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순양그룹 회장보다는 더 원대한 목표를 가졌을 겁니다. 하하.”
종잡을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오세현은 나가버렸다.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진동기는 몸을 일으켰다.
형님에게 쫓겨날지도 모르는 위기는 넘겼다. 이제 기회를 잡아야 한다.
기회가 없다면 절망하겠지만, 구체적인 기회가 존재한다. 방금 밖으로 나간 저놈이 기회다. 저놈만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순양그룹을 통째로 뒤흔들어버릴 수 있다.
진동기는 기회가 지시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순양카드 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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