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21
“비업무용 부동산 매입만을 위해 말씀드린 건 아닙니다. 이런 방법도 있지 않겠나 하는 걸 말씀드리는 겁니다. 적어도 우리 HW 그룹은 이런 국가적인 재난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게 아니라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이미지를 주도록 합시다. 정부와 국민 모두에게 말입니다.”
내 의견을 듣던 건설 사장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룹의 주인인 미라클에게 확답을 받고 싶은 것이다.
“오 대표님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정말 이익을 포기하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오세현은 머리를 끄덕였다.
“단,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것이 있죠. 우리가 포기하는 이익 이상 HW 그룹의 위상을 높여야 하는 겁니다. 수백, 수천억이 될지도 모르는 이익과 맞먹는 효과. 그게 핵심입니다.”
건설 사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익을 사회 환원으로 돌린다면 입찰에서도 매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게다가 기자를 모아놓고 생색내는 건 바로 대표이사인 자신 아닌가?
“손해 보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내시기 바랍니다. 그게 당장의 이익보다 더 많을 것을 가져다줄 겁니다.”
오세현이 내게 눈짓하며 일어섰다.
“결과 나오는 대로 알려주십시오.”
우리가 일어나자 건설을 제외한 다른 계열사 임원들도 일어섰다. 계획을 원점에서 다시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난 회의실을 나와 자동차의 조대호 사장을 기다렸다.
“사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나도 네 아이디어 좀 빌려야겠다. 내 방으로 가자. 오 대표, 시간 좀 있지?”
조대호 사장이 오세현을 바라보자 그는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저놈이랑 말씀하십시오. 저야 있으나 마나입니다. 흐흐.”
오세현은 행여나 붙잡힐까 발걸음을 재촉했다.
“뭐야? 저 친구 왜 저래?”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조대호 사장의 팔을 잡고 그의 방으로 향했다.
차 한잔을 마시며 태풍의 피해를 보도하는 뉴스를 확인했다. 언론의 속보 경쟁 탓인지 이미 3조 원이니 4조 원이니 하는 피해 금액이 간간이 흘러나왔다.
“오늘 회의에서 네가 말한 걸 생각해보면 우리 자동차도 가만있을 수는 없겠지?”
“네. 대현자동차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어떻게?”
“일단 우리 구매한 경남과 강원 지역 고객 모두에게 전화를 돌리십시오.”
“그다음은?”
“무상으로 점검과 수리를 실시하는 겁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고객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잘 챙겨준다는 생각에 우리를 고맙게 여길 겁니다.”
“점검 정도야 부담 없으니 괜찮아. 하지만 무상 수리는 비용이 많아 든다. 아무리 무상 A/S 기간이라지만 천재지변은 해당 없잖아.”
조대호 사장도 비용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 짚고 넘어갈 생각인가 보다. 내게 확답을 듣고 싶어 한다.
“전 더한 것도 생각합니다.”
“더한 거?”
“네. 폐차 지경에 이른 침수 차량은 전부 수거하고 새 차를 나눠 주십시오.”
“야!”
펄쩍 뛰는 조 사장을 웃으며 진정시켰다.
“별것 아닙니다. 이스퀼로야 베스트셀링이 아니니 판매차량 대수가 얼마 안 됩니다. 게다가 경남, 강원 지역입니다. 아시다시피 판매는 대부분 수도권에서 일어났어요. 몇 대 안 될 겁니다.”
잠깐 머리를 굴리던 조 사장은 인터폰을 눌렀다.
“지역별 판매 현황 가져와.”
비서가 관련 서류를 가져오고 확인하는 동안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조 사장은 꼼꼼하게 확인한 뒤 안도의 숨을 쉬었다.
“좋아. 해보자. 그 전에 보도자료 좀 뿌리고. 이거 뉴스에 나가면 난리 날 거다. 흐흐.”
“아뇨. 우리가 먼저 언론에 자료를 돌리면 안 됩니다.”
“뭐? 이런 걸 몰래 한다고?”
“네. 몰래 해야죠. 은밀하게.”
“말도 안 돼! 무상 교환까지 해주는 일이다. 몇십억은 족히 깨져. 최소한 그 금액 정도의 홍보 효과는 봐야지. 오 대표도 말하지 않았냐? 손해 보는 비용은 그룹 이미지 제고로 돌려받는다고.”
“사장님. 그게….”
몇십억의 돈이 날려버린다고 생각하니 말할 틈을 안 준다.
“안 돼. 이건 떠들어야 하는 거다. 우리가 종교인이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게?”
“그럴 리가요. 선행은 모두가 알도록 해야죠.”
“그런데 왜 보도자료를 돌리지 말라는 게냐?”
“사장님. 선행은 알리는 게 아니라 들켜야 하는 겁니다.”
“뭐?”
정확한 뜻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듯 눈을 깜박였다.
“요즘은 비밀이 없어요. 인터넷이 모든 걸 다 까발리는 시대 아닙니까? 새 정권의 대통령도 인터넷 때문에 선거에서 이겼다고 공공연히 말합니다.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무상 교체 대상자들이 흥분해서 홍보해 줄 겁니다.”
“아…….”
“우린 오로지 친절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럼 우리의 선행은 들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도 분명 더 크게 보도해 줄 것이고요. 보도자료 돌리고 떠들어 달라고 부탁할 때 맨입으로 되겠습니까? 보도자료보다 인터넷의 화제를 더 크게 보도하는 게 요즘 언론입니다.”
조 사장은 허탈한 웃음까지 보이며 말했다.
“이거, 이거…. 나이 먹으니 세상 돌아가는 걸 못 따라가겠어.”
“건설이야 우리 의도를 알려야 입찰에서 좋은 결과를 얻겠지만, 자동차는 다르죠. 알리는 것보다 들키는 게 훨씬 더 진정성이 있어 보이고 더 부풀려 퍼져 나갈 겁니다.”
“그래. 알리지 않고 들킨다, 내가 이걸 기준으로 준비하마.”
만족스러운 표정의 조 사장은 갑자기 기억난 듯 말했다.
“참, 오 대표는 왜 저래? 무슨 일 있냐?”
“그게 사실은….”
난 오세현과 나눴던 이야기를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의 은퇴 결심을 들은 조대호 사장은 어처구니없는 심정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남자 오십이면 이제 일 좀 하는 나이 아냐? 환갑 넘은 나도 은퇴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 친구 제정신이야? 그 좋은 머리를 왜 썩히려고 해?”
“어쩌겠습니까? 항상 꿈꿔왔던 일이라고 하니 붙잡는다고 될 일이 아니죠.”
조 사장은 조금 전보다 더 난처한 표정으로 변했다.
“이거 큰일이야. 송현창 회장님도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신다고 사장단에게 공언했는데…. 난 오세현 대표를 우리 그룹의 차기 회장으로 생각했다고. 자격은 충분하잖아?”
“사장님 혼자만의 생각이십니까? 아니면 사장단 전체의…?”
“사장단 전부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오히려 우린 송 회장님과 오 대표가 말을 맞췄다고 생각했다고.”
“그럼 어떡하면 좋을까요?”
“뭐? 송 회장 후임?”
“네. 혹시 사장님께서 생각 있으시면….”
슬쩍 떠보니…. 아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부터 내저었다.
“난 안 돼.”
“부족함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아냐. 넌 네 할아버지인 진 회장님의 안목을 믿지?”
“네.”
갑자기 왜 할아버지를 거론할까?
“그분이 진단하셨어. 난 한 우물만 팔 놈이지 강물을 다스릴 놈은 못 된다고. 그래서 자동차에 던져 놓고 크게 간섭하지 않으셨어. 회장 자리는 언감생심이다. 딴 사람 구해.”
딴 사람이 없으니 문제다.
우리 두 사람은 입을 꾹 다문 채 태풍 피해 소식을 전하는 TV만 쳐다보기 시작했다.
* * *
순양 본관으로 달려오니 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회의 중이었다.
지불해야 할 보험금을 생각하면 머리가 지근거리는 건 당연하다.
특히 순양화재 사장의 표정이 가장 심각했다.
태풍, 호우, 홍수, 강풍, 지진 등으로 입은 손해를 보상하는 보험 상품인 풍수해보험을 책임지기 때문이다.
뒤늦게 회의에 참석한 나를 보며 그들은 더욱 긴장했지만 별다른 의견은 내지 않았다.
다만 한 푼이라도 보험금 지급을 아끼라는 말은 삼갔다. 대신 피해당한 사람들의 빈정 상하는 일 없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그들의 압박을 덜어주고 회의실을 먼저 빠져나왔다.
장도형 부사장은 내 눈길을 받고 조용히 나를 뒤따랐다.
내 방에서 마주한 장도형 부사장에게 말했다.
“회의실에서 했던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괜한 억측 하지 말라고 전하세요.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보험금 안 주려는 짓은 하면 안 됩니다.”
“네. 단단히 못 박아두겠습니다.”
“그리고 순양금융 그룹 이름으로 성금 좀 내세요.”
“그렇지 않아도 준비할 생각이었습니다. 벌써부터 방송 3사와 신문사들의 전화가 빗발칩니다.”
이것도 경쟁이다.
재해 성금 모금이 언론사들의 사세를 과시하는 경쟁으로 흘러가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골고루 나눠 줘야 뒷말이 없다. 하지만 나누는 순간 금액이 분산되니 기업 입장에서는 좋은 선택은 아니다.
“그런데 실장님. 우리 단독으로 내실 겁니까? 순양그룹 이름으로도 성금을 내야 할 텐데요?”
“금융그룹 이름으로 먼저 내 버리세요. 그럼 각자 알아서 하겠죠. 그룹 전체로 내면 우린 묻힙니다. 순양전자만 돋보일 게 뻔한데 그런 바보짓은 피해야죠.”
“진영기 부회장님이 노발대발하실 텐데…….”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걱정 말고 질러버려요.”
“네. 그럼 언론사별로 어떻게….”
“언론사는 빼버리세요. 우린 재해대책본부에 내도록 합시다. 큰 거 한 방이 작은 거 몇 개보다 더 돋보이니까요.”
“알겠습니다. 얼마 정도 할까요?”
“50억이면 충분하겠죠?”
조금 놀라는 눈치였지만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대현그룹 전체가 낸 성금이 30억이니 기업 규모로 따지면 엄청난 금액이다.
“넘치도록 충분한 금액이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시 사항은 없으십니까?”
“혹시 믿을 만한 기자 있습니까?”
“기자요?”
“네. 섣불리 펜대 놀리지 않고 글빨도 좀 괜찮은 그런 기자 말입니다.”
“홍보팀에 알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
“제가 개인으로 성금을 내려고 하는데 익명으로 처리해 주세요.”
눈치 빠른 장도형 부사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미담 하나 만드실 생각이군요.”
“네.”
“익명으로 내고 며칠 뒤, 그 믿을 만한 기자가 터트리고. 맞습니까?”
“정확합니다. 하하.”
“그런데 실장님. 미담이 기사가 되려면 금액이 좀 커야 하는데… 얼마나 내시려고요?”
“5백억이면 기삿거리가 되지 않겠습니까?”
“오… 오백억요?”
눈이 휘둥그레진 그를 보며 한마디 더 보탰다.
“부족합니까? 천억으로 올릴까요?”
“아, 아닙니다. 너무 많아서 그러죠.”
“지금 부사장님의 모습처럼 누구나 입이 떡 벌어져야 효과 봅니다. 어설픈 금액은 되려 생색만 낸다고 욕먹어요. 지를 때는 예상치 금액에 0을 하나 더 붙여야 효과가 폭발합니다.”
“효과 정도가 아닌데요? 이 기사가 나가면 태풍 기사를 뒤덮을 정도입니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죠. 이십 대가 할아버지 잘 만나서 재벌 회장 놀이 한다는 말이 안 나오도록 만들어야죠. 소위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존경할 만한 기업인. 이 이미지로 싹 바꿔 놓아야 합니다.”
후일 치열하게 벌어질 후계 싸움에서 보이지 않는 국민의 지지.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다.
정부기관과 은행도 순양그룹의 대주주다.
그들도 언젠가는 셋 중 누구 한 명의 편에 서야 할 때가 온다. 그때 그들은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존재들 아닌가?
“이미지 바뀌는 정도가 아니겠는데요? 칭송이 자자할 것 같습니다.”
“그럼 더 좋고요.”
“이 성금도 재해대책본부에 내는 거죠?”
“그렇습니다. 언론사 한 곳을 밀어줬다가는 다른 곳에서 기사를 받아쓰겠습니까?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도리어 씹어댈지도 모르는데….”
“알겠습니다. 제대로 미담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장도형 부사장은 마치 비밀스러운 임무라도 맡은 듯 흥미를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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