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3
“글쎄. 지금 당장 결정하기 어려워. 이 정도 금액이면 당연히 분산 투자해야 하고 리스크 테이킹, 평균 수익률, 엑시트 전략 등등 많은 변수를….”
이 아저씨는 지금 날 어린애로 보는 게 아니라 140억의 자산가로 보고 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오세현은 피식 웃으며 이마를 탁 쳤다.
“아, 이거… 내가 너무 나갔지? 나도 모르게 흥분했네.”
“괜찮아요.”
“그래.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네 아버지와 상의 좀….”
나는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제 돈이니 아버지와 상의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아버지도 아저씨를 믿으시지 않나요? 그러니까 저를 맡기셨겠죠. 아닌가요?”
“말도 똑 부러지게 하네. 생각해보니 그렇구나.”
오세현은 잠깐 생각한 뒤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하자꾸나. 일단 내가 부모님 동의서를 받는 게 먼저일 것 같다. 이 동의서는 투자 문제를 상의하는 게 아니고 네가 미성년자라서 필요한 거야. 네 돈을 우리 회사가 맡아도 된다는 허락이지.”
“네.”
“그리고 회사에서 운용 계획을 짜보마. 그걸 보며 다시 이야기하자. 좋지?”
“하나만 더요.”
“뭐, 필요한 게 있니?”
“앞으로 아저씨와 저 사이의 일은 모두 비밀로 해 주세요.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돼요.”
“그건 말하지 않았니? 난 철저히 비밀을 지킨다고.”
“제 부모님을 포함해서요.”
오세현은 의혹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왜 부모님께 말하면 안 되는지 이유를 물어도 안 되겠지? 비밀이니까?”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후- 이거 원, 친구 아들내미 설득하려다 무시무시한 고객님만 하나 건졌구만.”
오세현은 짧은 한숨을 내쉬며 일어섰다.
“오늘은 이만 가보마. 앞으로 자주 볼 테니까 그냥 삼촌이라 불러라. 아저씨라는 호칭은 좀 멀어 보이잖니. 우린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가 될 텐데 말이다.”
“알겠어요. 삼촌.”
“사실 내가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많아. 큰아버지뻘인데 삼촌이 더 정감 가서 양보한 거야. 하하.”
오세현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리며 내 방을 나갔다.
또 한 번 느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 아니라 운구기일(運九技一)이다.
지금의 나 진도준에게는 운이 따른다.
아버지가 투자 회사의 친구를 선택한 것은 은연중 내 돈을 염두에 둔 것이 분명한데, 운 좋게도 세계적인 투자 회사를 골랐다.
만약 국내 투자사나 증권사였다면 일을 훨씬 더 복잡하게 풀어야 했을 게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펼치고 연필을 잡았다.
그리고 투자 계획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노트북과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가 간절할 정도로 아주 긴 계획서를 써 내려 갔다.
* * *
“윤기야. 나 좀 보자.”
“그래, 이야기는 잘 해줬어?”
오세현은 부인과 함께 거실에 앉아 있던 진윤기를 따로 불러냈다.
정원으로 나가 오세현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뭐야? 왜 이리 심각해?”
“너 왜 말 안 했냐? 140억….”
“아, 그거? 괜한 돈 이야기로 네가 선입견을 가질까 봐.”
“뭐, 됐고. 어떻게 된 거야?”
진윤기가 아들의 목장, 신도시 그리고 보상금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들려주자 오세현은 이마를 탁 쳤다.
“천운이 따라다니는 놈이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이야기 잘했어? 너무 서둘지 말라고?”
“윤기 너 현정화 알지?”
“뭐야? 뜬금없이? 누구?”
“거 있잖아. 86아시안게임 때 육상 금메달 딴 여자애. 라면만 먹었다는 노력파.”
“이 병신아. 그건 임춘애야! 현정화는 탁구선수고.”
진윤기가 한심한 듯 바라봤지만, 오세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무튼, 그리고 작년 올림픽 때 천재 복서라고 소문났던 선수 있지? 로리존슨.”
“로이존스 주니어.”
“그래. 그 선수.”
계속 딴소리를 하는 오세현을 바라보던 진윤기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이런 덜떨어진 놈에게 아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한 자신이 한심할 지경이다.
“야! 당최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어쩌면 도준이는 로이존스일지도 몰라.”
“뭐?”
“천재라고. 인마!”
아들이 어른스럽다고 생각한 것이 전부인 진윤기에게는 친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표현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지만 절대 평범한 애가 아냐.”
스포츠 선수의 이름을 시작으로 천재라고 했다가 비범한 아이로 결론 내린다. 횡설수설로 들릴 뿐이다.
“야! 너 혹시 엉뚱한 소리만 한 거 아냐?”
진윤기가 소리쳤지만, 오세현은 자신의 말을 계속할 뿐이었다.
“현정…. 아니, 임춘애는 노력형이지만 로이존스는 타고난 거야. 솔직히 도준이가 정확히 뭘 타도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두 손에 쥐고 태어났어.”
그제야 진윤기의 찌푸렸던 얼굴이 펴졌다.
도준이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그 재능의 정체는 아직 모른다. 이것이 오세현이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넌 도준이 방에 가서 정체 모를 재능만 확인한 게 전부라는 거지?”
“네가 원하는 건 좀 더 지켜본 후 생각해보기로 하자. 난 이만 가볼게.”
“야!”
오세현은 진윤기가 부르는 소리를 들은 채 만 채, 급히 사라졌다. 정원에 혼자 남은 진윤기는 어처구니없었지만 하나의 단어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재능.
과연 그 재능의 정체는 뭘까?
***
“이거 보고 도장 찍어라.”
“이건 또 뭐냐?”
일주일 만에 다시 나타난 오세현은 진윤기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도준이 돈을 우리 회사가 운용하는 걸 부모인 네가 동의한다는 내용이야.”
“뭐?
“뭘 그리 놀라? 왜? 내가 도준이 돈 빼먹을까 봐?”
“그게 아니고. 그냥 예금이나 들어 두면 되지 않나 싶어서.”
“염려 마라. 연 10% 금리보다 수익성 좋은 곳에만 투자할 거니까. 원금 손실 없도록 하이 리스크 상품은 피할 거야.”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의 진윤기는 동의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윤기야. 네 심정 안다.”
오세현은 타이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준이 같은 애도 꽤 많아.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을 쓰지 않고 차곡차곡 저금하는 애들. 저금통이 빵빵해지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애들.”
돈 모으는 재미를 아는 애들이다. 이런 애들 전부 부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배곯는 일 없이 넉넉하게 산다.
쓰기보다 모으는 걸 좋아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드러난다.
“물론 도준이는 좀 더 특별하지. 그러니까 내가 맡는 게 더 나아. 괜히 그 돈만 보며 점점 더 돈독 오를지도 모르니까.”
“그래. 네가 잘 알아서 돈 관리하고 애도 좀 관찰해 줘.”
“야! 내가 도준이 아버지냐? 뭔 관찰?”
“이 자식아. 네가 말했잖아. 독특한 재능. 그거 관찰해보라고.”
진윤기는 웃으며 소리친 뒤 동의서에 도장을 꾹 찍었다.
***
“이건 부모님 동의서. 그리고 이건 비밀유지 조항 합의서.”
난 동의서보다 합의서를 먼저 들었다.
비밀을 지킨다는 약속 정도면 충분했는데 서류까지 만들어 왔다. 꼼꼼하고 빈틈없다.
내 돈을 맡을 이 사람은 물론이고 나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
파워세어즈의 한국 대표다. 내 돈을 투자하려면 파워세어즈가 분석한 향후 돈 되는 투자처를 보여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내용을 어디 가서 떠벌이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일개 국민학생이라면 내용을 파악할 수도 없는데 비밀을 지키라고 하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그만큼 철저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도준아. 너 그 내용이 뭔지나 알고 보는 거니?”
아차차. 너무 집중했나?
서류에 눈을 떼자 오세현의 미소 띤 얼굴이 보였다. 아주 신기하고 귀여운 애완견을 쳐다보는 듯한 눈이었다.
“그냥 보는 거죠. 헤헤.”
머리를 슬쩍 긁으며 서류를 내려놓자 오세현은 한 뭉치의 서류를 더 꺼냈다.
“이게 자산운용서라는 건데, 넌 봐도 모를 테니 어쩐다?”
“그냥 제가 알기 쉽게 설명만 해 주세요.”
“그러니까 60%는 은행예금이다. 10% 이상의 금리를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맡길 거야. 금액이 크니 은행도 혜택을 더 줄 거야. 나머지는 주식, 채권 그리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인데….”
부동산 건설 붐이니 수익률은 은행 이자와 비교할 수 없다. 괜찮은 선택이다.
하지만 그는 좀 곤란한 표정으로 변했다. PF를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한 것이다.
도와줘야겠다.
“괜찮아요. 설명 안 하셔도 돼요.”
“그래. 내가 잘 알아서 할게.”
“그것보다도 이거 좀 봐 주세요.”
“이게 뭐야?”
내가 일주일간 정성 들여 작성한 노트를 건네자 그는 허겁지겁 살피기 시작했다.
조금 긴장되기도 하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노트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의 얼굴이 점점 더 굳어졌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노트를 덮은 그가 말했다.
“넌…… 비밀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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