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43
할머니 뒷조사를 듣고 놀랄 법도 하건만, 우병준 상무는 변함없는 모습이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뜸 부정적인 반응부터 보인 건 그가 나를 위해 일한 뒤로 처음이다.
그만큼 힘든 일인가? 아니면 할머니라서 부담되는 건가?
“어려운 건 일입니까? 대상입니까?”
“대상을 생각하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미술품 거래 파악이 어려운 일입니다.”
우병준도 사람이구나 싶어 이 와중에 슬쩍 웃음이 났다.
“엄살 아닙니다.”
내 웃음을 오해했는지 표정이 더 굳어졌다.
“고가의 예술품 거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료를 찾아내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은밀한 거래도 많고 오로지 캐시만 주고받는 거래도 부지기수입니다.”
“혹시 사람을 조사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네. 거래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입을 통해 거래 내용을 파악해야 하니까 어렵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입을 열게 하는 건 돈과 폭력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죠.”
우병준이 조금 놀란 표정이다. 내 입에서 정답이 나올 줄 몰랐을 것이다.
난 정반대의 경우였다.
돈과 폭력으로 사람의 입을 닫게 만드는 것이 내 업무였다.
임신한 여자, 폭행당한 남자, 교통사고 뺑소니, 마약 등등.
당사자의 입에 자물쇠를 채웠고 담당 수사관의 입에 돈을 물렸다. 눈치를 챈 기자의 집으로 고가의 선물을 보내 소리가 멀리 퍼지는 스피커를 껐다.
입을 열게 하는 것과 닫게 하는 것은 똑같은 일이다.
“잘 아시는군요. 맞습니다.”
“폭력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네. 대신 폭력을 사용하는 인간을 고용하죠. 그것도 쉽게 꼬리를 자를 수 있는 놈을 써야 합니다.”
“그것 역시 돈으로 가능한 일인데…. 힘들다고 하신 건 폭력을 적절히 잘 쓰는 인간이면서 꼬리 쳐내기도 용이한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는 뜻이군요.”
“머리도 잘 돌아가야 하니까요. 머리 나쁜 놈이면 엉뚱한 질문에 엉뚱한 답만 듣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저쪽에도 힘쓰는 애들 많습니다. 서로 각목질 오갈 테고 충돌 일어나면 무마하는 것까지….”
이상하리만치 사족이 많다.
평상시의 우병준이라면 어렵다 할지라도 ‘알겠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좀 걸릴 겁니다.’라는 짧은 대답으로 끝낼 사람 아닌가?
혹시?
“이미 뭔가를 아시는군요. 맞습니까?”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우병준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이 사람은 당황하면 눈을 자주 깜빡거린다.
“눈치 빠른 분이라는 걸 잠시 잊었습니다.”
당황한 그를 더 난처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세한 건 묻지 않겠습니다만 힘들어도 해야 합니다. 꼭 필요한 일입니다.”
우 상무의 깜박거리던 눈이 멈췄다.
“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필요 자금은 충분히 지원하겠습니다. 일단 10억을 오늘 중으로 제 오피스텔에 놔두겠습니다. 가져가십시오.”
“알겠습니다. 실장님.”
우 상무가 떠나고 나도 빈소가 차려진 할아버지 집으로 출발했다.
* * *
진 회장의 세 아들이 이제 주인 없는 서재로 들어갔을 때 그들은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의 체취가 사라지기도 전에 그들의 어머니가 떡하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 하고 싶었으나 초상집에서는 큰 소리 내는 법이 아니니 모두 마음을 다잡았다.
“연락도 없이 언제 들어오셨습니까?”
“일주일쯤 됐다.”
“전화라도 받으시지….”
진상기가 불만스럽게 말하자 그녀는 아들의 입을 막았다.
“지난 얘기는 그만하고…. 넌 도대체 그동안 뭘 한 게야?”
그녀의 시선이 장남에게 꽂혔다.
“무슨 말씀입니까?”
진영기는 어머니의 질책이 짜증 나는지 얼굴을 찌푸렸다.
“왜 그 맹랑한 놈이 아직 회사에 어른거리냐는 말이다.”
모두 그 맹랑한 놈이 바로 진도준이라는 걸 안다.
“그룹에서 그놈 하나 들어내는 게 그리 힘들더냐?
“어머니. 그룹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괜한 데 신경 쓰며 기력 잃으실 필요 없어요.”
팔순 넘은 노인치고는 기력이 넘치는 어머니지만, 환갑이 다 돼가는 자식들은 어머니의 간섭과 잔소리가 곱게 여겨질 리가 없다.
“한심한 인사들 같으니라고…!”
자식들의 얼굴에 훤히 드러나는 불만과 짜증을 읽은 이필옥 여사는 눈꼬리를 치켜들었다.
“그놈이 네 아비의 순양을 야금야금 갉아먹는데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한단 말이냐?”
“어머니. 우리도 이미 대책을 세웠고 아버지 장례가 끝나는 대로 추진할 겁니다. 그럼 도준이는 그룹에 발도 못 디뎌요. 그러니 우리에게 맡겨두세요.”
진동기는 일 초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밖에서는 빈소를 차리느라 정신없는데 아버지 장례는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어머니가 못마땅할 뿐이었다.
“형님. 그건 또 무슨 말이요? 대책이라니?”
조용하던 진상기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긁어 부스럼이라더니….
어머니 때문에 괜한 말을 꺼내 아무것도 모르는 셋째까지 나서게 됐다.
“너도 곧 알게 될 거다. 따돌릴 생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어. 아버지는 널 그룹에서 빼버렸지만 우린 다르다. 아무튼…. 큰일 치르고 자세히 알려줄 테니까 조금만 참아.”
진영기가 타이르듯 셋째를 향해 말했을 때 이필옥 여사는 분통을 참지 못하고 책상을 탕 내리쳤다.
“이런 한심한 놈들! 이렇게 천지 분간도 못 하는 놈들이니 저 영감이 그 어린 도준이 놈을 끼고 살았지!”
“어머니. 진정하시고 언성 낮추세요. 밖에 아랫것들이 다 듣습니다.”
장남이 달래듯 말했으나 소용없었다.
“상기 너! 말해봐. 네 애비가 개인 재산 전부를 네게 줬다지? 그게 얼마나 되든? 일조 원이 넘든? 부동산은? 빌딩 수십 채와 수백만 평의 땅이라도 받았어?”
느닷없는 어머니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도 못 하고 눈을 피하는 진상기를 보자 두 형들이 재촉했다.
“뭐야? 너 왜 그래?”
“말해봐. 얼마야? 설마… 깡통인 거냐?”
이필옥은 이런 모습의 아들들을 보며 혀를 찼다.
“밖에 누워 있는 저 인간이 돈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긁어모았어. 설마 네놈들이 받은 주식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거냐? 멍청한 놈들.”
“그럼 개인 재산 전부를 도준이에게 줬다는 말입니까?”
진상기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그럼? 누가 가져갔겠어? 두 형들이? 아니면 내가? 서윤이가? 꼭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알아채는 거냐?”
이필옥 여사는 놀라서 서로 눈만 끔뻑거리는 아들들을 한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천하에 근본도 모르는, 얼굴에 분칠이나 하며 살던 천한 년이 내 귀한 막내를 홀려서 낳은 자식 놈이다. 그런데 하필 그놈이 너희들 애비의 성정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어. 음흉하고, 욕심 많고 독하고….”
이필옥은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켰다.
“그러니 저기 누워 있는 인간이 그놈을 금이야 옥이야 챙겼던 게야. 자기랑 똑같은 놈이니까 말이다.”
세 아들은 어머니의 따끔한 질책에 아무 말 못 하고 머리만 숙였다.
“천한 년이 내 아들을 가져가더니, 이젠 그 천한 년 피가 섞인 천한 놈이 우리 순양그룹까지 가져가게 생겼는데… 너희는 마음 풀고 앉아서 서로 회장 되겠다고 싸움질이나 하고 있어? 제정신이냐!”
이필옥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가슴을 탕탕 쳤다.
“두말할 필요 없다. 장례 치르고 나면 영기 네가 회장 자리에 앉아. 동기는 군소리 말고 네 형을 따라. 너희 둘의 지분이면 아무 문제 없지 않으냐? 그다음, 도준이 놈이 차지한 금융 계열사를 장악해. 대표이사부터 임원들 전부 너희 사람들로 앉히면 끝나는 일이다. 이렇게 쉬운 일을 네놈들은 서로 견제하느라 놓친 것이야!”
진영기는 갑자기 어머니가 좋아졌고 고마웠다. 이렇게 든든한 아군이 생길 줄이야!
하지만 진동기는 더욱 표정이 굳어졌다.
일시적인 회장 직책을 오래도록 내놓지 않을 것이다. 이젠 어머니까지 등에 업었으니 말이다.
“왜 대답이 없어?”
진동기는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새롭게 지분 조정을 끝낼 때까지 형님이 회장 자리에 앉도록 협의했습니다. 이미 끝난 이야기입니다. 어머니.”
“그래? 그거 잘했구나.”
“아무튼, 그룹 일은 형님과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관심 끊으시고 장례 치를 동안만이라도 슬픈 표정 좀 지으세요. 보는 눈이 많습니다.”
진동기는 짧게 한숨 쉬고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이 그를 붙잡았다.
“내가 지분이 좀 있다. 그리고 이리저리 모은 돈도 꽤 많아. 너희가 하는 거 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놈에게 몰아서 줄 생각이다. 동기 네가 그걸 다 쥐면 네 형도 널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다.”
지분?
“어, 어머니….”
당황한 진영기가 더듬거렸을 때 이필옥은 자식들의 입을 막았다.
“내가 팔십 넘게 네 아버지와 살면서 빈털터리라고 생각했어? 돈을 어떻게 빼돌리고, 확보한 지분 어떻게 숨기는지 훤히 다 봤다.”
“지, 지분이 얼마나 됩니까?”
진영기가 다급하게 묻자 이필옥은 웃음만 보였다.
“부모도 가진 재산이 있어야 대접받는 세상이라지? 이제야 너희들도 이 에미의 말을 귀담아듣겠구나.”
이필옥 여사는 진 회장의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가진 지분이 그리 많지는 않아도 지분과 돈을 합치면 저울을 움직일 수 있는 추 하나는 될 게다. 집안 곳곳에 묻은 천한 것들 흔적을 말끔히 지워. 그럼 내가 가진 전부를 줄 테니까. 알아들었으리라 믿는다.”
이필옥은 아들들의 간절한 눈빛을 못 본 체하며 서재를 나갔다.
* * *
빈소에는 일하는 사람 몇 명이 화환을 정리할 뿐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방금 영빈관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봤는데, 나머지 상주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새로운 향 하나를 올리고 조용히 물러나 텅 빈 빈소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 혼자 빈소를 지키는 모습을 할머니가 보기라도 하는 날엔 경건해야 할 이 자리가 다시 소란스러워진다. 장례 끝날 때까지는 부딪히지 않도록 노력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서재 문이 열리며 할머니가 나왔다. 그녀는 빈소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바로 이 층으로 올라가 버린다.
왜?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서재에 왜 들어갔을까?
저곳은 이미 말끔히 치웠다.
자료 대부분은 태워버렸고, 꼭 필요한 서류는 각 계열사로 옮겼다. 남은 건 서가를 장식하는 책과 할아버지가 받았던 상패와 트로피가 전부다.
서재를 보며 추억에 잠길 분은 아니다.
혹시나 해서 서재로 가까이 가자 아니나 다를까 세 분의 큰아버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또 무슨 모의를 꾸미는지 알아듣기 어려울 만큼 낮은 목소리였다.
할머니가 자식들을 앉혀놓고 잔소리를 퍼부었던 걸까?
이 의문은 곧 풀렸다.
서재를 나오는 큰아버지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잔소리를 들었다면 짜증 난 얼굴일 텐데…. 뭔가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다.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했지만, 생각을 떨쳐버려야 했다.
하나둘 조문객이 몰려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 *
한국을 이끄는 힘 있는 자들이 빈소를 찾아올수록 진동기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
그들은 아예 진영기가 회장 후계자라고 확신하는 듯 자신보다 진영기를 찾기 바빴다.
심지어 건설업계를 관장하는 건설교통부 장관이 자신은 뒷전이고 진영기와 한참 동안 밀담을 나눌 때는 피가 거꾸로 쏟았다.
자신이 순양건설과 중공업의 책임자라는 건 이미 안중에도 없다는 뜻 아닌가? 모두가 자신을 이인자로 취급하자 조급해졌다.
어머니가 가진 지분과 돈, 이것이 더욱 절실히 필요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꼭 가져야 한다고 아버지에게 배우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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