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50
“대화 내용은 못 들었는데 가끔씩 고성이 오갔다고 합니다.”
“진영기 부회장은 그 자리에 없었고요?”
“네. 진동기 회장과 독대했습니다.”
드디어 누가 노리는지 이학재 실장도 알아버렸다.
그가 어떻게 대처할지가 궁금했지만, 마냥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혹시라도 그가 돌이킬 수 없는 곳까지 밀려나는 건 막아야 한다.
다시 김윤석 대리에게 물었다.
“예전 기획실 직원들 근황은 어떻습니까?”
“두 부회장님이 적절한 자리에 앉혔습니다. 홀대한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아니, 자리 말고요. 사람들 말입니다. 만족합니까?”
“만족하지는 못하겠죠. 돌아가신 회장님의 친위대나 다름없었는데 지금은 2진이니까요. 두 부회장님을 처음부터 모셨던 측근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봉급쟁이에게 중요한 두 가지는 월급과 직책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숫자나 명함에는 나오지 않지만, 당사자도 알고 주변 동료도 안다.
그것은 바로 하는 일의 중요도와 주변의 인정이다. 능력과 자존심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이학재 실장 밑에서 눈에 보이는 두 가지와 눈에 보이지 않는 두 가지 모두 만족하며 지내던 그들이 쉽게 적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그들에게 먼저 동아줄을 내려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이학재 실장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건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그를 서포트하는 뛰어난 스텝진과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다.
“김 대리.”
“네.”
“믿을 만한 전략실 직원들에게 지시해서 이학재 실장의 사람들과 시간을 조율해서 한자리에 모아주세요.”
“전부 다요?”
“네. 하지만 지금 큰아버지 밑에서 만족하는 놈들을 빼야 합니다.”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김윤석 대리는 머리를 끄덕였다.
“네. 말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시키겠습니다.”
은퇴한 노정객이라도 측근들의 살림살이가 궁핍하면 외면하기 힘들다. 세간의 욕을 얻어먹더라도 다시 등장해서 자신을 따르던 가신들이 기를 피게 하는 것이 우두머리의 의무다.
이학재 실장도 우두머리의 의무를 잊지 않았으리라 믿는다.
* * *
“몇 명이나 왔습니까? 아니, 부르지 않은 사람은 몇이나 됩니까?”
“네 명입니다. 그들이 저쪽 편에 완전히 적응했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힘든 사람만 뺐습니다.”
“그럼 여기 참석한 자들은 다 부적응자라는 말이죠?”
“표면적으로야 그렇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회장님 살아계실 때가 좋았다고 구시렁대던 사람들입니다.”
어차피 부딪혀보기 전에는 회색분자를 알기 어렵다. 눈으로 확인하고 색깔을 바꾸는 게 지금 해야 할 일이다.
“들어갑시다. 참, 이 사람들에게 줄 선물은 준비해 뒀죠?”
“네. 직급에 맞게 챙겨 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십여 명의 사내들이 벌떡 일어나 머리를 숙였다.
“그냥 앉으세요. 제가 여러분께 인사받을 위치는 아닙니다.”
어정쩡하게 다시 앉는 그들의 얼굴에 불편함이 보였다.
왜 불러냈는지 궁금하겠지만 대놓고 물어보기도 힘든 창업주의 핏줄, 그다지 직접적인 관계도 없는 애매한 위치.
속 시원한 것 하나 없으니 저들의 저런 표정은 당연했다.
“자리가 많이 불편하신 듯하니 밥 먹기 전에 용건부터 말하겠습니다. 제 이야기 다 들으시고 편히 식사하십시오.”
이들의 표정이 조금 펴지고 눈이 초롱초롱 빛나기 시작했다.
“전 부탁을 받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제게 어려운 부탁을 했고 전 여러분께 어려운 말을 해야 합니다.”
십여 명을 모아놓으면 성질 급한 놈도 있기 마련이다. 그놈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누구 부탁인지 먼저 말씀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두 분입니다. 아마 잘 아실 텐데…. 조대호 사장님과 오세현 대표님입니다.”
실내가 잠깐 술렁였다.
순양자동차 대표였던 조대호와 순양자동차를 가져간 오세현.
이 두 사람은 공통분모가 있다. 바로 HW 그룹.
“아시겠지만 HW 그룹의 수장이셨던 송현창 회장님이 물러나시고 그 자리는 공석입니다. 그룹의 주력 기업 대표와 대주주의 대표는 회장 그릇이 안 된다며 한사코 마다하셨고 대신 한마음으로 한 명을 원하시더군요.”
십여 명을 모아 놓으면 성질도 급하고 눈치도 빠른 놈도 있다.
“그 한 명이 혹시 이학재 실장님입니까?”
“네. 하지만 이미 의사를 여쭈어봤는데 단칼에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또다시 술렁이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학재 실장의 격에 맞지 않는 자리라는 생각도 있을 테고 이인자에서 일인자로 승격하는 셈이니 최적의 제안이라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얘기를 우리에게 하시는 건지…?”
“여러분들은 이학재 실장님과 한 몸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까? 그룹 회장으로 일하시려면 오랜 시간 동안 손발 맞춰온 여러분들과 함께인 것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이들은 눈치 또한 빠르다.
이학재 실장이 HW 그룹의 회장이 되면 자신들 전부 패키지처럼 HW 그룹으로 옮길 수 있다는 걸 안다.
부지런히 머리를 굴리며 계산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금 이들은 단 한 명도 주류 라인에 올라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때 계열사 임원들마저 아래로 보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부회장 비서실의 끗발 없는 일개 직원일 뿐이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눈치를 보며 아부성 발언을 늘어놓았지만, 지금은 비서실 내부에서도 굴러온 돌 취급 받을 뿐, 아부는커녕 먼저 접근하는 사람도 없다.
규모가 좀 작으면 어떤가? 다시 메인 스트림에 올라타는 일인데.
또한, HW 그룹의 규모가 작다고 해도 순양에 비교하면 그렇지 국내 기업 규모로 보면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대기업이다.
이 제안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지만, 자신들은 패키지의 핵심이 아니다. 메인 상품은 바로 이학재 실장인데 그가 이미 거절해버렸다고 하니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저기…. 이 실장님께서 거절하셨다면 무의미한 이야기 같은데요.”
“환경은 변하고 상황은 바뀌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께서 이 실장님의 생각을 바꿔주시는 건 어떨까요?”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 피식 웃음까지 보였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이 실장님은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은 있지만, 최종 결정을 번복하시는 일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설득해서 마음을 돌리실 분이 아닙니다.”
모두 머리를 저으며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다들 만족하시나 봅니다.”
가라앉은 내 목소리 때문인지 모두 입을 닫았다.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라도 하는 겁니까? 여러분은 구조조정에 앞서 대기발령 중인 퇴출 대상입니다. 두 부회장님이 여러분에게 중책을 맡길 거라고 생각하세요? 뛰어난 인재들이라고 들었는데 실망입니다.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 하는 듯싶군요.”
내 말이 심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들도 안다. 믿고 싶지 않을 뿐 불투명한 미래가 지금보다 더 좋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뭐, 전 HW 그룹을 대신해서 뜻을 전달하는 것뿐이니까 선택은 여러분이 하세요. 모두 이학재 실장님께 몰려가 함께 보금자리를 옮기자고 매달리든지 아니면 순양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퇴출당하던지….”
한마디 더 했다. 좀 더 센 걸로.
“제 할아버지의 죽음이 잊혀질 때쯤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을 겁니다. 2세 경영 체제가 굳건해질 때 여러분의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우리 가족을 잘못 본 겁니다. 우린 그렇게 너그럽지 않아요.”
말을 끝내고 김윤석 대리를 향해 눈짓했다.
김윤석 대리는 서류를 그들에게 나눠 주기 시작했다.
“그건 HW 그룹에서 준비한 계약서입니다. 그 계약서에 사인하고 싶으면 이학재 실장님을 설득하세요. 이사하자고 말입니다. HW 그룹이 여러분의 새 보금자리로 적당하지 않을까요?”
계약서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들을 남겨 두고 일어섰다.
“제 일은 끝났습니다. 여러분들끼리 식사도 하면서 깊은 이야기를 나누세요. 그럼….”
* * *
“꽤 머리를 썼더구나.”
“아쉬우니까 온갖 잔꾀가 다 떠오르더군요.”
“너 혹시 뭐 아는 거라도 있어?”
이학재 실장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비서실 직원들과 만난 후 딱 이틀이 지났을 때 이학재 실장의 전화를 받았다.
시간으로 추측건대 비서실 직원들은 나와 만났던 그날 밤 그들의 보스를 찾아갔고 그는 하루 동안 생각하고 내게 연락한 것이다.
이것은 청신호지 적신호는 아니다.
“많습니다. 가장 정확히 아는 건 실장님께서 제 제안을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다는 거죠.”
“내가? 지금까지 내가 결정을 번복하는 걸 본 적이 없었을 텐데?”
“그거야 지금까지 할아버지가 깔아놓은 꽃길만 걸어서 그런 거죠. 흙탕길을 걷다 보면 후회도 하고 생각을 바꾸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제가 깔아놓은 꽃길로 올라오세요.”
“북한이냐? 대를 이어 충성하게?”
“제게 충성할 생각도 없으시면서 그런 말씀 하십니까?”
이학재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네 큰아버지 두 사람이 날 벼랑 끝으로 밀어 넣는 걸 알고 얘들까지 동원한 거 맞지?”
“네. 제가 생각해도 절묘한 한 수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쁘지 않아. 그런데 넌 갈수록 얼굴이 두꺼워지는구나. 능물스럽기까지 해.”
“웃으며 말씀드리는 게 실장님 마음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런 겁니다. 그냥 귀엽게 봐주십시오.”
마침내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실장님. 지금 큰아버지들과 부딪히지 마십시오. 정치판 상황을 생각하면 그분들은 날개까지 달았습니다.”
이번 총선은 그야말로 목을 내놓고 치르는 진검승부다.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에서 총선을 치르니 여당도 야당도 사활을 걸었다.
당연히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야 하니 돈줄인 순양그룹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니 순양이 찍어내라고 손가락질만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해낼 것이다.
“싸우지 마시고 임시로나마 HW 그룹을 방패로 쓰십시오. 총선 끝나면 곧바로 반격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나도 구렁텅이에서 건져주고 내 새끼들 전부 밥그릇도 챙겨주고…. 넌 뭘 챙기지?”
“제가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합니다. 할아버지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거 아닙니까?”
이학재 실장은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의외의 말을 한다.
“너도 참 잔인하다. 힘든 내 사정을 후벼 파고, 내 새끼들 못 챙겨준 죄책감을 들쑤시고, 회장님을 거론해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게 해?”
“실장님은 의외로 의리 있으시네요. 지금은 실장님만 생각하십시오. 의리는 제가 챙기겠습니다.”
“한마디도 안 져요. 허허.”
“그럼 입 다물고 있을까요?”
“까불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해. 넌 뭘 챙기고 싶은 거냐?”
“첫째는 지주회사 전환을 막아 제 지분을 유지하는 것. 두 번째는 HW 그룹을 최소 재계 3위까지 끌어올리는 것. 순양과 대현을 앞지르는 건 힘들 것 같아 목표를 좀 낮췄습니다.”
이학재는 다시 침묵에 빠졌다.
거의 다 왔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드리워진 동아줄을 거부할 만큼 머리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누구의 그림자가 아니라 당당하게 전면에 서서 기업을 이끌어 나갈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싶은 욕심도 있을 것이다.
이학재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하나 더 하자.”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날 순양의 회장 자리에 올리겠다는 약속, 아직 유효하지?”
“물론입니다. 대신 순양을 차지하는 데 힘을 보태주셔야 합니다.”
이학재는 싱긋 웃었다.
“회장님께 들었다. 넌 깔끔한 거래 관계를 선호한다지?”
“네.”
“계약서는 내가 만드마. 깔끔하게.”
난 이학재 실장이 내미는 손을 덥석 잡았다.
“새집으로 이사 오시는 걸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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