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52
“수사 종결하라는 장관님과 총장님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혹여 마음 상하셨다면 넓은 마음으로 잊어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으셨고요.”
이학재는 여유롭게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래? 여기 HW 그룹도 꽤 하는군. 순양의 요청도 쌩깔 정도의 위상은 되나 보지?”
“자칫하면 기업들의 정당한 경쟁에 정부가 개입한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니까요.”
“단지 그게 다야?”
“HW 그룹의 위상과 미라클 인베스트먼트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이라서요.”
감찰국장이 조심스레 말했을 때 이학재는 이마를 찌푸렸다.
“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 돼? 안 돼?”
“되, 됩니다. 앞으로 회장님께 찝쩍댈 곳은 없을 겁니다.”
“검찰도, 법무부도 여기 돈 많이 받아 처먹었구먼. 빨대 무지하게 꽂아 뒀어.”
이학재의 노골적이고 천박한 표현이 거슬리는지, 감찰국장은 입술을 깨물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 모습을 놓치지 않은 이학재 회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담뱃재를 재떨이가 아닌 물 잔에 터는 실수까지 범했다.
“메모는 잘 받았다고 전해. 그리고 내가 예전보다 더 신경 써서 챙겨줄 테니 자네도 그리 알고 가.”
불편한 자리에서 해방된다는 것 때문인지, 아니면 돈을 더 챙겨준다는 말 때문인지는 몰라도 감찰국장의 표정이 다시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럼….”
그가 벌떡 일어나 머리를 숙였을 때 이학재 회장이 말했다.
“그래도 한번 뱉은 말은 지켜야지?”
“네?”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잔을 받겠다고 하지 않았나?”
이학재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담뱃재가 떨어진 물 잔이 놓여 있었다.
“왜? 이 집은 마음에 안 들어? 꼭 순양이라야만 돼?”
“아, 아닙니다.”
감찰국장은 재빨리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학재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래서 자네를 미워할 수 없다니까. 심부름하느라 수고했어. 자네 차에 박스 하나 실어 뒀으니까 애들 과자값이나 해.”
감찰국장은 공손히 허리를 숙인 뒤 나갔다.
혼자 남은 이학재는 이제 뒤를 쫓는 늑대가 없어졌다는 안도감을 즐길 여유도 없었다.
“회장님. 진도준 실장님이 오셨습니다.”
* * *
회장실에 가득 찬 축하 난을 보자 이학재 실장의 거미줄 같은 인맥을 엿보는 듯했다.
“축하합니다. 이학재 회장님.”
“됐다. 안전한 곳으로 숨은 꼴인데 축하는 무슨.”
이학재는 나의 축하 인사가 거북한 듯 손을 내저었다.
“그 자리 싫으시면 사표 쓰시던가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쏘아붙이자 움찔했지만,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건 순식간이었다
“지방으로 좌천당한 공무원 심정인 거 잘 압니다. 하지만 자리로 보면 엄청난 승진 아닙니까? 누가 보더라도 영전입니다.”
마지못해 회장 자리를 수락한 건 아닐 테지만 두 번 다시 이런 말은 나오지 않아야 한다. 그가 이끌어야 할 사장과 임원들도 바보는 아니다.
도살장에 끌려온 소 같은 모습의 회장이라면 기존 경영진의 집단 반발은 뻔하다.
“순양그룹 같은 대형차를 운전했으니 HW 정도야 한 손으로 핸들링할 것 같죠? 만만해 보이죠? 어림없습니다. HW 그룹이 순양보다는 작더라도 경차 수준도 아니고 동네 구멍가게도 아닙니다.”
이학재 회장은 다시 손을 내저었다. 이번에는 다른 의미였다.
“핀잔은 그만해. 오늘 하루 축하한다는 소리를 워낙 많이 들어 쑥스러워서 그랬다. 만만하게 생각한 적 없고 좌천당했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 잘해낼 수 있을까 두렵고 무섭기까지 하다. 요즘 잠도 안 와.”
“하다 하다 이젠 엄살이십니까?”
“진심이다.”
간절한 눈빛이라고는 쥐꼬리만큼도 없는 무심한 표정. 감정을 드러내는 분이 아니니까 단언하는 그의 말투에서 진심을 읽어야 한다.
“믿겠습니다.”
“기회다 싶으면 사람 갈구는 건 딱 네 할아버지 판박이다.”
입가에 걸린 작은 미소를 보며 나도 슬쩍 웃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는 아주 잠시 보였던 미소를 지우고 말했다.
“조금 전 법무부 친구 하나 다녀갔다. 더는 날 괴롭히지 않겠다고 하면서 사과하더라.”
“오세현 대표가 좀 뛰어다녔습니다.”
“고맙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 양반은 통 안 보이시네.”
“주주가 전문경영인 자주 보면 부담이라고 하시면서… 지금쯤 짐 싸실 겁니다.”
“짐? 또?”
오늘 나와 함께한 시간 중에 가장 놀란 표정이다.
“네. 코타키나발루로 돌아가신답니다. 이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부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군요.”
“그래? 대리인은 가고 진짜 주주… 아니, 주인은 남아 있구먼.”
그는 슬쩍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전 오세현 대표와 다르거든요. 감시의 눈길을 절대 거두지 않습니다. 흐흐.”
“이거 어째 소문과 다르다? 너 순양금융그룹에서는 주요 인사 문제 빼고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거긴 할아버지가 물려주셔서 공짜로 받은 거고, 여긴 내 피 같은 돈으로 하나하나 사들인 회사거든요. 차원이 다르죠.”
“그래. 네 피 같은 돈 날리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마.”
“그게 전부는 아니죠. 여기서 회장님의 경영능력을 검증하지 못하시면 약속했던 순양그룹 회장 자리는 못 드립니다.”
“그 약속 지키려면 네가 순양을 차지하는 게 먼저다. 큰소리는 그 뒤에 해.”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신뢰보다 투지가 넘쳤다.
“비서실 직원들은 다 데려오셨습니까?”
“그래. 지금 짐 정리 중일 거다. 나중에 꼬투리 잡히는 일이 없어야 하니까 지울 건 지우고 챙길 건 챙기라고 해 뒀다.”
“순양에 남겠다는 직원은 없었습니까?”
“꽤 있었지. 하지만 설득했다. 남겠다는 놈들은 내가 연락했을 때 외면했던 전력이 있어. 그러니까 미안해서 그런 거거든. 하지만 다 떠난 자리에 남아 있어 봤자 눈칫밥만 먹을 게 뻔하잖아? 챙겨줘야지.”
“그 사람들의 충성심이 더 깊어지겠네요. 사면받았으니.”
“이놈아. 그런 계산 없다. 이건 의리야.”
이학재 회장은 흘깃 노려보더니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참, 이번 총선은 어쩔 생각이냐?”
“하나 마나 한 선거 아닙니까?”
“왜?”
정세를 읽는 눈을 확인하려는 듯 알면서도 꼬치꼬치 캐묻는다. 이미 아는 거 말해주는 건 어렵지 않다.
“대통령 탄핵의 후폭풍이 저리도 거센데 여당의 압승이겠죠.”
“압승? 어느 정도?”
“과반수 이상.”
이번엔 조금 놀란 듯하다.
“너무 많이 잡은 거 아냐? 지금 여당은 미니 정당이야. 겨우 47석의 제3당인데 과반수 이상?”
“거대 야당이 멀쩡한 당사를 버려 두고 여의도에 천막 치고 동정표 끌어모으는 중입니다. 그들은 피부로 위기를 느끼니까 그런 쇼를 하는 겁니다만, 이미 늦었죠. 대통령 탄핵이 미니 여당 최고의 선거 마케팅 수단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을 겁니다.”
총선을 코앞에 둔 야당은 ‘국민께 석고대죄하는 심정’이라며 허허벌판에 천막을 쳤다. 이른바 천막 당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차떼기당’이란 오명이 너무나 두터웠고 대통령을 탄핵한 후폭풍이 거셌다.
천막 당사는 총선에서 50석도 못 건질 것이란 예상이 일반적일 만큼 수세에 몰려 시도한 극약처방이었다.
‘당이 부패 정당, 기득권 정당이란 오명에서 완전히 새롭게 출발한다’는 의미로 중소기업종합전시장이 있던 여의도의 공터에 천막 당사가 마련됐고, 야당 의원들은 천막으로 출근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천막 당사를 차린 구 중소기업전시관 터의 자리를 50일 빌려 전체 임대료로 4,200만 원을 주었는데, 당시 여당의 당사 건물 임대료는 월 2,500만 원이었다.
국민에게 동정표를 구하느라 엉뚱한 곳에 세금을 쓴 것이다.
이학재는 과반수 이상이라는 내 예측은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빛이었지만 그도 하나는 인정한다.
“정세 예측은 너 따라갈 사람 없으니 그 판단을 믿고 움직이는 수밖에. 그럼 여당에 몰빵해?”
“아뇨. 성의를 안 보였다고 불이익을 받지 않을 만큼만 던지죠. 어차피 다 이긴 선거고, 지금 여당은 우리 같은 대기업에 큰 특혜를 줄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그래? 그럼 쓸데없는 돈은 안 나가겠군.”
“아뇨. 대신 지금 천막 치고 길에 나앉은 야당 있지 않습니까? 컵라면이라도 몇 박스 보내죠.”
“질 게 뻔한 놈에게 베팅하자고?”
“알면서 왜 그러십니까? 지금 천막 치고 쇼하는 야당은 항상, 늘 친재벌 정당 아닙니다. 그들이야 우리가 준 만큼 꼭 보답하니까 나쁠 건 없어요.”
이학재 회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도 이미 잘 아는 걸 내게 확답받기 위해 물어본 것은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적당히 뿌릴 테니까 그리 알아. 혹시 이런 것도 다 승인받아야 하나?”
“그럴 리가요. 불법적인 일에는 발을 담그지 않고 모른 척하는 게 낫죠. 나중에 잡혀가더라도 오너는 쏙 빠져야 하니까 말입니다.”
“뻔뻔한 놈. 미안한 기색이라도 좀 하고 말해. 흐흐.”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을 때 비서가 문을 두드렸다.
“회장님. 사장단 회의 시간 다 됐습니다. 어떡할까요? 좀 연기할까요?”
조심스럽게 말하는 비서를 향해 가볍게 손을 저으며 일어섰다.
“아닙니다. 제 볼일은 끝났습니다. 신임 회장님이 주재하는 첫 사장단 회의인데 늦으면 안 되죠. 사장님들 욕합니다. 회장이랍시고 폼 잡느라 늦게 나타난다고요.”
이학재 회장도 회의 참석을 위해 일어서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너무 자주 오지 마. 은근히 신경 쓰여.”
난 그이 손을 잡으며 말했다.
“회장님.”
“뭐냐? 아직 잔소리가 남았냐?”
“자동차 프로젝트 중에 알파로메오 인수 건이 있을 겁니다. 막바지에 달했으니 면밀히 검토해주십사 부탁드립니다. 하하.”
* * *
보고서를 검토하던 두 형제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졌다.
결국, 참을성이 부족한 진영기 부회장이 먼저 보고서를 휙 던져 버렸다.
“이 새끼들이 깽판까지 치고 튀어?”
진영기의 고함에 진동기도 보고서에서 눈을 뗐다.
“교묘하게 중간 고리를 지웠네. 이거 골치 아파지겠는데?”
지배지분의 계열사 간 연결 고리 일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내용과 지주 회사 설립은 내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것이 보고서의 결론이었다.
“이학재 그 새끼랑 밑에 일하던 비서실 새끼들 전부 고발해야겠어. 사표 쓰고 나가는 놈들이 감히 똥을 싸질러?”
“진정해. 이건 우리가 해결해야 해. 그놈들 수사하려면 지배지분 이동부터 차근차근 밟아야 하는데, 편법 증여라는 걸 세상에 광고라도 할 참이야?”
차분한 동생의 말에 진영기는 더욱 얼굴을 구겼다.
“그래서? 이대로 보고만 있자고?”
“일단 총선 끝나고, 대통령 탄핵 여부 결정이 나면 그때 다시 대책을 세우자고.”
“야! 그놈들이랑 우리가 뭔 상관인데?”
“생각 좀 하자. 검찰은 손 털었어. 우리가 무기로 쓸 수 있는 건 결국 정치권이야. 그놈들 움직여서 HW 그룹을 흔들자고. 국세청도 있고 금융감독원, 공정거래위원회도 있잖아. 사람이 안 되면 회사를 쳐야지.”
“젠장. 허구한 날 기다리고, 헛발질이나 계속하고.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야!”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말 한마디, 지시 한 번으로 모든 것이 착착 해결되던 모습을 봐온 진영기는 그때처럼 술술 풀리는 일이 없자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만큼 우리 입지가 굳건하지 못하다는 뜻이겠지. 어쩔 수 없어. 다들 그랬잖아. 청일그룹, 화순그룹…. 모두 2세 체제에서 얼마나 고생했어? 대현그룹 봐봐. 아직 시끄럽잖아.”
“빨리 회장 선출해서 확 휘어잡아야 해. 그래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진동기는 형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대화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회장 선출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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