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57
『천억 원대의 거액을 비자금 저수라 일컬어지는 말레이시아 라부안(Labuan)의 국제 은행에 숨겨 둔 정황을 포착하여 수사하였습니다.
현재까지 조사한 내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비자금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 오너, 다시 말씀드립니다. 자금의 실소유주가 법인이 아닌 개인 오너입니다.』
『……특히 자금 조성 경위는 기존의 횡령과 그 결을 달리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유령 해외 기업을 매입하는 명목으로 거액을 빼돌렸고, 이미 검찰은 관련 증빙 서류를 추적 중입니다.
이 비자금은 IMF 외환 위기 당시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며….』
『이 계좌의 소유자는 곧 소환할 예정이며 피의자로 전환될 확률이 높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TV를 끄고 술병을 들었다.
“머리 아프시겠습니다. 총장님.”
입술을 살짝 깨문 검찰총장이 잔을 들어 술을 받았다.
“오후에 저런 깜짝 쇼를 저질러놓고 잠수 탔답니다. 검찰청 기강이 이 정도까지 개판이니 원…. 평검사가 윗전 몰래 기자회견 할 정도면 방송 타서 얼굴 알리고 개업한다는 소리밖에 돼?”
술은 입도 대지 않고 잔을 내려놓은 검찰총장은 의심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무튼, 지검장이 알아서 처리해야겠지요. 그런데 말이오. 혹시…?”
“왜요? 저 계좌의 주인이 순양그룹 같습니까?”
“저 회견을 미리 감지했기 때문에 날 만나자고 한 것 아니요? 돌아가신 회장님까지 팔아서?”
“방금 들으셨죠? IMF 때 빼돌린 돈입니다. 전 그때 대학 신입생이었고요. 제가 저 정도 큰돈을 만들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내 말은 그게 아니고, 진영기 부회장을 대신해서 나온 거 아니냐는 뜻이지. 아니면 진동기 부회장?”
내가 대답을 않자 그는 이마를 탁 쳤다.
“이런! 돌아가신 진 회장님 계좌였구먼. 그래서 회장님이 남기신 말을 전한다며….”
“아닙니다. 총장님. 전 다른 일 때문에 총장님을 뵙자고 한 겁니다.”
그에게도 법무부 장관과 같은 종류의 메모를 내밀었다.
“부장검사 시절부터 할아버지와 인연을 쌓아오셨더군요.”
검찰총장의 반응도 법무부 장관과 다르지 않았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고 당황했으나 곧 의문을 품고 여러 가지를 물었고 난 법무부 장관에게 했던 말을 고스란히 되풀이했다.
총장은 지금껏 유지했던 비밀스러운 관계가 계속된다는 것에 안심하는 눈치였고 공격적인 큰아버지가 아닌 내가 그 일을 이어받은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이거, 좀 쑥스럽긴 하지만 이 말은 해야겠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앞으로 더 큰 일 하실 분인데 미약하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내게 큰일이 남아 있겠어요? 검사의 끝은 총장인데 그 끝을 봤으니 내려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럴 리가요. 일전에 법무부 장관님을 뵈었는데 내각 개편이 머지않았다고 합니다. 그 개편에 법무부 장관님도 당연히 들어가고요. 그러니 총장님께서 뜻이 있으시다면 내각에 합류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죠.”
“아이고, 언감생심 장관은 무슨….”
관심 없는 척해도 눈빛이 달라지는 걸 놓치지 않았다.
“이미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통과하신 분이니 검증까지 끝냈습니다. 청와대 측에서 보면 단연 1순위죠.”
이만하면 총장의 귀는 즐겁게 해줬다. 이제 요구할 타이밍이다.
“그런데 총장님. 저 천억대 비자금 사건, 당분간 모른 체 내버려 두실 수 없겠습니까?”
“그게 무슨…?”
아주 잠깐 눈을 깜빡거리더니 무릎을 탁 쳤다.
“역시! 이거 순양이 관련된 건이구만!”
“글쎄요? 아직은 모르는 일이죠. 아마도 총장님께 이 수사 덮으라는 부탁을 가장 먼저 하는 자. 그자가 비자금 계좌의 주인이겠죠. 전 덮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이니…. 좀 다르죠?”
한동안 인상을 찌푸린 채 아무 말 없던 총장이 서서히 표정을 풀었다.
“몰라야 할 것을 많이 알게 되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요?”
갑자기 뜬금없는 말, 뭘 말하고 싶은 걸까?
“방금 뉴스에 나온 저런 젊은 검사는 이렇게 생각하지. 자신이 점점 더 중요한 사람이 돼 간다고 말이지.”
“사실은 점점 더 위험해지는 줄도 모르고 말이죠.”
“역시 잘 아는군. 몰라도 되는 것에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 게 오래가는 비결이라오.”
검찰총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모른 척하면 되나?”
“그렇습니다. 담당 검사가 수사하는 걸 총장이라고 막을 수는 없다. 이 정도면 됩니다.”
“그럼 덮어야 할 시점은?”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이거 하나는 알아 두시오. 덮은 사건은 언젠가는 고개를 들고 다시 올라오는 법이요. 그때는 내가 검찰총장 자리에 없을 거요. 못 막을 수도 있어.”
“공소시효가 3년 남았습니다. 푹 묵혔다가 잘 익었을 때 꺼내 쓰십시오. 그때쯤이면 총장님께서 법무부 장관님이 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전 지금 쓰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한입 베어 물고 내게 남겨주는 건가? 허허.”
“천억이라는 거액입니다. 제가 아무리 뜯어 먹어도 줄어든 티는 나지 않을 겁니다.”
“이거 오늘 선물을 잔뜩 받은 것 같은데…. 가만히만 있어도 된다니 미안한 마음마저 드는구려.”
권력을 쥔 자는 늘 돈을 쥔 자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지면 된다. 많이 받고 적게 주는 게 그들의 특권이니까.
“부담 드리지 말라는 게 할아버지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고받는 계산이 끝나고 우리는 잔을 들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거래 아닌가?
* * *
진동기 부회장의 애타는 마음이 부재중 전화 숫자로 드러났다. 끊임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찾아오는 놈이 아래다.
큰아버지가 자존심을 꺾고 내 방으로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똥개도 자기 집 마당일 때는 크게 짖는 법이니까.
느긋하게 회전의자 놀이나 하고 있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며 진동기 부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
“아, 큰아버지. 어쩐 일이세요? 여기까지?”
“왜 전화는 안 받는 게냐?”
“전화하셨어요? 진동으로 해놨나? 못 들었습니다. 짐 싸느라고요.”
“뭐? 짐?”
“네. 다음 주면 쫓겨난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그래서 짐 싸는 중이죠.”
진동기 부회장은 내 방을 쓱 둘러보더니 소리 질렀다.
“지금 감히 날 놀리는 게냐? 짐 싼 흔적은 하나도 없잖아!”
난 내 책상 위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치약과 칫솔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제가 이 사무실을 자주 이용하지 않다 보니 아무리 뒤져도 저게 전부더군요.”
둘째 큰아버지는 우리 집안 사람 중에서 그나마 인격을 갈고닦았다.
새파란 어린 조카가 이 정도 약 올렸으면 뭔가 집어 던지거나 내 멱살이라도 쥐고 흔들어도 그리 이상하지 않건만 꽉 쥔 주먹만 부르르 떠는 게 전부다.
“아, 죄송합니다. 일단 앉으시죠. 하실 말씀이 많아 보이는데….”
둘째 큰아버지는 거친 숨이 잠잠해질 때까지 나를 노려보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뉴스 잘 봤다.”
“보셨군요. 놓쳤으면 큰일 날 뻔한 뉴스 아닙니까?”
“너 바보냐?”
큰아버지는 빙글빙글 웃는 나를 죽일 듯 노려봤지만 이미 목소리는 많이 차분해졌다.
“그렇게 보입니까?”
“이판사판이야? 라부안의 비자금 자료를 검찰에 던져주고 함께 죽을 셈이었어? 그게 날 협박하는 방법이야?”
“정말 절 바보로 보십니까? 그 비자금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검찰이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들이 수사해서 찾아낸 것일까요?”
“네가 준비했겠지. 서류는 아직 네 손에 있나? 아니면… 블러핑일 수도 있고.”
“믿고 싶은 대로 추측하시면 단순한 위안으로 끝난다는 걸 잘 아실 만한 분이 왜 이러십니까? 현실을 보세요.”
“현실? 너야말로 큰 착각을 하는 거다. 설사 서류가 있다 해도 난 모르는 일이라고 하면 돼. 게다가 비자금은 네 손에 있다. 검찰 조사의 첫 대상은 너야. 너부터 시작해서 나까지 올 것으로 생각했던 거라면 넌 아직 어린애다. 수사는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네 무덤을 스스로 판 꼴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불안함이 남아 있었다. 내가 그 정도로 멍청한 바보가 아니라는 걸 안다.
“왜 제가 첫 번째 수사 대상이라고 생각하시죠? 전 천억 원의 비자금은 구경도 못 했는데? 아, 정정할게요. 구경은 했습니다.”
자신만만한 내 표정과 구경만이라는 말 때문인지 큰아버지의 얼굴에 불안함이 더욱 짙어졌다.
“그 돈은 고스란히 그 은행에 잠자고 있습니다. 전 돈을 찾지도, 옮기지도 않았어요. 그 어디에도 제 흔적은 없습니다.”
마침내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물론 입도 떼지 못한다.
“IMF 때 남미의 유령회사 매입 서류도 있고 그 일을 진행했던 두 직원은 외국에서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언제든 증언할 수 있는 상태로 말이죠. 그리고 은행의 카드와 계좌 등도 다 내 손에 있으니 그 돈을 어떻게 지워버릴 수도 없습니다.”
“너… 넌 처음부터…?”
“설마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겠습니까? 딱히 필요한 돈도 아니고 해서 그냥 내버려 둔 겁니다. 그걸 이렇게 써먹을 줄 저도 몰랐어요.”
순진한 척 시치미를 뗐지만 믿는 것 같지 않다. 온갖 자료와 증인까지 미리 숨겨 둔 건 처음부터 작당했다는 증거다.
하지만 큰아버지는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지나간 일이 아니라 닥쳐올 일을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너 때문에 오늘 뉴스에 나온 검사는 인생이 망가질 게다.”
한참 만에 입을 연 큰아버지는 내게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출세욕에 사로잡힌 검사의 섣부른 수사, 그 때문에 국내 유수 기업의 오너 명예를 더럽힌 놈으로 낙인찍혀 변호사 개업도 못 하게 될 테니까.”
이런 번한 수법이 내게도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이것 외에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나?
“큰아버지. 일인시위 하는 공장 근로자 하나를 나쁜 놈으로 만들어 사안의 근본을 감추는 일, 이번에도 통할 것 같습니까? 상대가 다릅니다.”
“검사나 공장 근로자나 내게는 별반 차이 없어!”
“그 검사 뒤에 제가 있습니다. 전 그 검사를 스타로 만들 힘이 있어요. 잊으셨군요. 우리나라 미디어의 절반을 손에 쥐고 흔드는 권력자가 누군지!”
또다시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룹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은 내 아버지이며 자기 동생이라는 존재를 이제야 떠올린 것이다.
“한국의 절대 권력이라는 순양그룹에 맞서는 용기 있는 검사.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기업 비리를 파헤친 정의로운 검사. 비자금 천억을 국고로 환수시킨 명예로운 검사. 딱 일주일 동안 예능프로에 나와 떠들면 국민 영웅이 될 겁니다. 아시겠지만 뉴스보다 예능프로그램의 시청률이 훨씬 높아요.”
큰아버지는 언론과 여론 전쟁에서 단 한 번이라도 밀리면 자신의 주장이 전부 비리 재벌의 변명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다음 주 이사회 때까지 전 그 검사를 스타로 만들 테니까 큰아버지께서는 그자를 천하의 개잡놈으로 만들어보십시오. 누가 이기나 한번 볼까요? 아 참, 하나만 명심하십시오. 아직 이 나라 국민은 재벌의 입보다 검사의 입을 더 신뢰한다는 것을요.”
난 멍하니 앉아 있는 큰아버지를 두고 일어섰다.
“이사회에서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책상 위의 치약과 칫솔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마지막 경고를 던졌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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