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7
“아, 아뇨. 좋아해요.”
햄버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가벼운 점심과 딱 어울릴 만큼만 부담 없이 만나주겠다는 의미 아닐까?
델 컴퓨터가 점점 멀어져 가는 느낌이다.
안락한 호텔 침실에 누웠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다.
거절을 승낙으로 바꾸는 방법을 궁리하다 보니 새벽녘에야 겨우 잠들었다.
오후 1시, 라운드 락 거리의 웬디스 매장에 들어서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근처에 텍사스 주립대학이 있다 보니 매장 안은 대학생들 천지였다.
“젠장. 전부 비슷해 보이니 어떻게 찾는담?”
남부 특유의 분위기로 물든 매장이었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청바지와 체크 남방을 걸쳤고 생김새도 별반 차이 나지 않았기에 도저히 마이클 델을 찾을 수 없었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중년의 동양 남자가 차라리 눈에 더 띄었나 보다.
“Hey, Mr. Oh?”
나는 Mr. Oh라는 소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콜라 잔에 꽂은 빨대를 입에 문 젊은 청년.
만 24세의 마이클 델이었다.
27세에 최연소 세계 500대 부자, 34세에 공식재산 214억 달러를 기록하며 미국 5대 부자의 자리를 차지할 거인의 젊은 모습은 여느 대학생과 다를 바 없었다.
물론 지금도 백만장자 대열에 서 있다.
“Mr. Dell?”
“Yes.”
그는 햄버거가 든 종이봉투를 쓱 내밀더니 눈짓했다.
어디로 따라오라는 걸까?
앞장서서 매장 밖으로 나간 그는 가까운 공원으로 걸어갔다.,
벤치에 털썩 앉아 씩 미소를 보였다.
“여기가 낫죠? 거긴 너무 시끄러워서.”
“그렇군요. 좋네요.”
“그 애는…?”
“아, Mr. Dell. 당신 팬이라고나 할까?”
“네? 팬? 하하.”
마이클은 웃음을 터트리더니 오세현에게 손을 쓱 내밀었다.
“그냥 마이크라고 부르세요.”
“그러죠. 전 제임스입니다.”
마이클 델은 가볍게 악수를 나누고 내 눈을 보며 찡긋했다.
“자, 용건을 말씀하시죠. 전 15분 뒤 회사로 돌아가야 합니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전부다.
오세현의 말이 빨라졌다.
“우리 미러클 인베스트먼트는 당신의 회사에 투자하고 싶습니다. 투자 금액과 조건은…….”
햄버거를 든 델의 손이 올라갔다.
“투자는 필요 없습니다. 자금은 충분합니다.”
그의 눈빛에 살짝 짜증이 보였다.
충분한 회사의 자금, 삼천만 달러. 이미 업계에 파다하게 퍼진 이야기다.
이런 내용도 몰랐다면 투자자의 기본이 없다는 의미기 때문에 지금 델의 눈빛에는 오세현을 얕보는 기색이 분명히 보였다.
투자라면 무조건 쌍수를 벌리고 환영한다면 하수이며 아마추어다.
투자란 창업자의 지분에 물타기 효과를 가져온다.
내 지분이 줄어들거나 빚이 되기도 한다.
딱 필요한 만큼의 투자를 받는 것이 올바른 경영자의 자세다.
“물론 잘 압니다. 하지만 투자 조건이 파격적이라면 재고할 여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제임스. 내 회사는 탐욕스러운 임원이 즐비한 IBM과 다릅니다. 나는 회사 확장을 위한 자금만 필요했고 완벽한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돈은… 이익을 남겨 벌어들일 겁니다. 주식을 왕창 늘여 돈을 충당하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아요.”
탐욕과 멍청이라는 단어까지 썼다.
또 투자를 받는 것은 자신이 탐욕스럽고 멍청하다는 증명일 뿐이니 완벽한 거절방법이었다.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은 했지만, 조건을 들어 보지도, 내세우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할 줄이야!
오세현은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용히 듣고만 있던 나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오세현은 좋은 투자처 하나를 놓치는 정도로 생각하겠지만 나는 다르다.
거대한 계획의 두 번째 단추를 끼우는 일이다.
첫 번째 단추는 분당에 신도시가 들어선다는 걸 알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돈 많은 할아버지에게 갖은 아양을 떠는 것만이 내가 노력한 전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확한 보물 지도가 내 머리에 들어 있지만, 보물섬까지 나를 인도할 배의 선장이 나의 승선을 거부한다.
이제는 미래는 안다는 것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다. 오로지 내 힘으로 뚫어야 한다. 마이클 델이라는 선장을 설득해야 한다.
이미 나는 결심을 굳혔고 입을 열었다.
“Mike. Oh, Can I call You Mike?”
“Sure, Buddy.”
마이클 델은 눈을 찡긋하며 미소 지었지만 오세현은 달랐다.
내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나오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했기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당신의 과거는 현재의 내 모습이며 나의 미래는 바로 당신의 지금 모습입니다.”
“뭐? 꿈이 너무 큰데? 내 어린 시절은 보통과 조금 다른데?”
“물론 조금 다릅니다. 아니, 아주 많이 달라요.”
“어떻게 다르지?”
“12살의 당신 손에는 우표 팔아 벌어들인 이천 달러가 고작이었지만, 지금 12살인 내 손에는 땅을 팔아 벌어들인 천오백만 달러가 있으니까요.”
이젠 마이클 델의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두 사람의 표정은 똑같지만, 이유는 달랐다.
오세현은 내 영어 때문에, 마이클 델은 내 돈 때문에.
“당신이 이천 달러를 어디에 썼는지 나는 모릅니다. 하지만 내 돈 천오백만 달러를 어디에 쓸지 이미 정했습니다. 바로 델 컴퓨터의 대주주가 되는데 쓸 겁니다.”
말을 마쳤지만 반응이 없다.
한참 동안 공원의 소리만 주변을 맴돌았다.
“도, 도준아. 너….”
“삼촌. 나중에요. 지금은 더 중요한 걸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마이클 델은 우리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오세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James. Your son?”
“No. My… boss, maybe…….”
오세현의 대답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마침내 웃음을 터트렸다.
“OK. Fifteen million Dollar boy.”
이름도 묻지 않고 내 돈을 언급했다.
“질문 두 개만 하자.”
“네.”
“내가 우표 팔아 돈 번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어?”
아차차, 낭패다. 이 사람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아직 나오지 않았나? 어쩔 수 없다. 두루뭉술 넘어가는 수밖에.
“무려 천오백만 달러를 투자하는 일입니다. 당신에 대한 조사 없이 움직일까요? 우리 회사는 그리 허술하지 않습니다.”
“탐정까지 고용했어? 대단한데? 좋아 그럼 나머지 질문.”
만연에 미소를 띠고 있지만, 이 미소는 호의가 아니다. 호기심일 뿐이다.
“내가 투자를 받지 않겠다는데 어떻게 대주주가 되지? 아직 우리 회사 이사회 구성은 내가 과반 이상의 의결권을 쥐고 있거든. 내 뜻이 절대적이야.”
“내년쯤 상장하지 않을까요?”
마이클 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아직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다. 생각만 했을 뿐이다. 내년 초, 회사 경영진과 투자자들에게 말할 생각이었고 준비할 계획이었다. 그런 자기 생각을 정확히 읽은 이가 다름 아닌 어린 동양 꼬마라니!
“왜? 그렇게 생각하지?”
“과일이 무르익었으니까 따야죠. 가장 탐스러울 때 말이죠.”
“그러니까 우리 회사가 상장하면…….”
“시장에 나오는 주식을 무차별적으로 쓸어담을 겁니다. 천오백만 달러 정도면 순식간에 대주주가 될 것 같은데, 아닌가요? 아, 하나 더 말씀드려야겠군요. 올해 안으로 천만 달러 정도를 더 준비할 수 있습니다. 아직 엄청난 값어치의 내 땅이 남아 있거든요.”
이천오백만 달러.
내 말이 현실화되는 건 시간문제다. 이 사실을 깨달은 마이클 델의 얼굴이 굳어졌다. 이 모습을 본 오세현은 급히 입을 열었다.
“대주주로서 이사회의 멤버가 될 것이고 경영에 깊숙이 관여할 겁니다. 이건 당연한 요구니까요.”
딱 적절한 타이밍에 끼어들었다.
언제까지 놀라고만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기세를 잡았을 때 함께 공격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아는 사람이다.
놀람과 궁금함은 이미 떨쳐버린 얼굴이다. 다시 뛰어난 비즈니스맨의 표정이었다.
“뭐, 어쩔 수 없죠. 주식시장을 통해 매입하던, 투자하던… 그 정도 자금이면 어차피 대주주가 되니까요. 대주주 자격이 충분하면 당연히 경영진에 합류해야죠.”
어느새 평정을 되찾은 마이클 델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햄버거를 한입 깨물었다.
“이거, 엄청난 부자 친구 때문에 15분을 훌쩍 넘겼네.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말이야.”
공원 벤치에서 일어난 델은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부자 친구,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대주주가 되어 있겠네? 내년이 될지 아닌지는 두고 보자고.”
오세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협상은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카드는 아직 남았다. 선장이 승선을 허락할만한 카드라고 생각하지만, 결과는 아직 모르겠다. 히든은 까봐야 아는 거니까.
“마이크, 주주로서의 의결권을 전부 당신에게 드릴 수도 있는데 그냥 가시게요?”
엉덩이를 툭툭 털던 손이 멈칫했다.
투자를 거부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충분한 자금이 있고 경영권을 확실히 쥐고 있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경영권이다.
가뜩이나 아직 어린 자신을 노리는 주주들이 슬슬 발톱을 드러내지 않는가?
상장 후 대량의 주식 취득자가 등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경영권 방어를 충분히 생각해서 상장하면 그 문제 역시 해결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을 제외한 대주주들의 결속이다. 반대세력이 힘을 합쳐 51%를 만든다면 창업주지만 경영권을 잃는다.
그런데 이천오백만 달러를 쏟아붓겠다는 꼬마가 의결권을 넘긴다니? 이거야말로 경영권에 철벽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
잠깐 동안 나를 바라보던 델은 오세현을 향해 말했다. 미소까지 보이며.
“제임스. 당신 보스의 이름이 뭐요?”
“아…….”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오세현 대신 내가 대답했다.
“Howard, My name is Howard Jean.”
“좋아, 하워드. 넌 방금 내 커피 타임까지 가졌어. 카페로 갈까? 달콤한 케익이 죽여주는 곳이야.”
“카페라면 커피 맛이 더 중요하죠. 커피는 어때요?”
“당연히 죽이지. 그런데 말이다. 넌 나랑 닮지 않았어.”
“네?”
“난 네 나이 때 커피보다 케익을 훨씬 더 좋아했거든. 하하.”
마이클 델이 웃음을 터트리며 앞장섰다.
“도준아.”
“네.”
델의 뒤를 따르던 오세현은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넌 날 아주 놀라게 했는데… 이 모든 걸 설명해 줘야겠지?”
“지금요?”
“아직 저놈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아니지. 나중에 말이다.”
“어차피 설명하기 힘들어요. 그냥 천재적인 사업 감각을 타고났다고 생각하세요.”
“천재라…….”
조용히 중얼거리던 오세현은 다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참, 하워드라는 이름은 언제 생각한 거야? 영어 과외 한다더니 그때 만들었니?”
“아뇨. 훨씬 전에요.”
하워드라는 이름이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나도 조금은 놀랐다.
전생에서는 꿈이나 환상 같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업가이자 비행사이자 공학자, 그리고 영화 제작자.
하워드 로바드 휴즈 2세(Howard Robard Hughes Jr.)
가장 미국적이었던 부자.
평생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은 다 해보거나 시도해본 사람.
부자 아버지와 영국 귀족 혈통인 어머니를 둔, 금수저.
내가 가장 꿈꿔왔던 인물이다.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그 아버지인 하워드 스타크 역시 하워드 휴즈를 기반으로 만들 정도다.
이런 모습이 진취적이고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미국인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억만장자의 삶으로 보였다.
전생의 나는 이런 사람을 꿈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는 이 사람과 다르지 않다.
나는 21세기의 하워드 휴즈가 될 것이다. 바로 ‘하워드 진’이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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