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73
모두 왜 어머니의 명의를 이용하는지 궁금해했지만, 우리 가족 일을 훤히 아는 우병준 상무만 이마를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할지…. 여사님이 아시면 거품 물고 쓰러지실 지도…. 흐흐.”
“그렇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죠.”
내 말 속의 진심을 읽은 우병준 상무는 급히 웃음을 거뒀다.
“죄송합니다. 너무 절묘한 한 수라 제가 그만….”
“사과까지 하실 일은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우리의 대화가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는 사람들은 애써 서류를 들추며 못 본 척, 못 들은척했다.
실내의 무거운 공기를 걷어내기 위해 천상필을 향해 말했다.
“약속한 돈은 지금 처리 중입니다. 완료 즉시 알려드릴 테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내일 일 처리나 잘 해주십시오.”
머리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주식 현황 파일을 펼쳤다.
내일 오전, 할머니는 빈털터리가 될 것이다.
* * *
“네 고모가 쫓겨나지 않으려고 애쓰는구나.”
호텔 레스토랑을 둘러보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진영기 부회장은 의자에 앉으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호텔 말이야. 내가 이곳을 오랜만에 왔는데 예전과 많이 달라. 훨씬 세련됐고 모던해 보여. 직원들 표정도 좋고, 발전했어.”
“백화점 매출도 계속 상승세라고 들었습니다. 고모님은 포텐셜이 대단하신 분인 것 같아요.”
“네 역할은 없었고?”
어느 정도 심증도 있겠지만, 어차피 넘겨짚는 말이다. 진지하게 대답할 필요는 없다.
“저야 미라클에 투자한 돈이 있지만, 한 다리 건너입니다. 제 역할이야 뭐… 자주 이용해서 매상 올려주는 것 정도…?”
“능청도 자연스럽고…. 좋아. 흐흐.”
물 한 잔을 마시자 음식이 나왔다. 한식이라 반찬이 많이 깔렸지만, 큰아버지는 젓가락을 거의 대지 않았다.
짧은 식사를 끝내자 그가 물었다.
“진짜 원하는 게 뭐냐?”
“이미 둘째 큰아버지께 다 말씀드렸습니다. 혹시 못 들으셨습니까?”
“할머니 꼴 보기 싫다는 거?”
사안을 단순화하는 건 발군이다. 한마디로 정리해 버릴 줄이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네요.”
“사실 우리 어머니가 좀 심하긴 했지. 우리 제수씨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는데 너한테까지 그렇게 이어질 줄이야…. 보는 내가 얼굴이 찌푸려질 때도 있었어.”
이렇게 너스레를 떠는 이유가 뭘까? 아직 내가 차명주식에 대해 모른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럼 절 이해하시겠군요.”
“물론이지. 그래서 내가 이 집안의 최고 어른으로서 깔끔하게 정리할 생각이다.”
“말씀하십시오.”
“네가 원하는 대로 어머니는 두 번 다시 한국 땅을 밟지 않게 해주마. 여생을 외국에서 유배생활 하듯 지내실 거다. 물론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쇠약해지시면 우리가 모셔야겠지. 어차피 병원에서만 지내실 것 아니냐?”
“외국에도 좋은 병원 많습니다.”
“뭐?”
부드럽게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놈이 보자 보자 하니까. 이 자식아! 그게 할 말이냐?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객사가 가당키나 해?”
“큰아버지. 원하는 걸 물어보시니까 솔직한 마음을 말씀드린 겁니다. 손자를 트럭으로 밀어버린 할머니 아닙니까? 아무리 손자가 미워도 그렇지, 이건 가당한 일입니까?”
이 집안사람들은 트럭 이야기만 하면 입을 다문다. 그때 할아버지도 계셨기 때문이다.
“큰아버지. 그냥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십시오. 지금 제 생각은 중요한 게 아닌 듯 보입니다만.”
날 노려보며 물 한 잔을 쭉 마신 그가 말했다.
“어머니는 계속 외국에서 지내도록 하마. 그렇다고 진짜 유배생활 하시도록 놔둘 수는 없다. 지내시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충분한 돈은 지원할 생각이다. 이건 네가 막을 수 없는 문제야.”
한국에서 가장 돈 많은 집안에서 아들이 효도한다는데 막을 생각은 없다.
“이게 네가 원하는 거 맞지? 그러니까 네가 야당에 흘린 거 다시 주워 와라. 우리 순양 이름이 세상에 오르내리는 건 좋지 않다는 것쯤 알 거 아니냐?”
“그게 전부입니까?”
“천상필 그자를 네가 데리고 있지? 어머니가 실수한 거 그자가 많이 안다고 들었다. 괜히 그놈 이용할 생각 말고 입단속이나 잘 시켜. 예술재단은 뒤탈 없도록 내가 정리하마.”
차명주식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그걸 모른다고 생각하던지, 아니면 차명주식은 내 관심 밖의 일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내가 아무 말 없자 자신의 생각이 모두에게 득이 되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것을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난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이렇게 떠들어 대며 시간이나 축내는 게 내게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른다.
단 하루 만에 속전속결로 끝내버리는 내 행동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한참을 신나게 떠들어대던 그가 말을 멈추고 상의 안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잠깐만.”
부르르 떠는 휴대폰의 폴더를 열었다.
“무슨 일이야?”
알아듣기 힘든 다급한 상대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뭐?”
얼마나 놀랐는지 의자를 쓰러트리며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큰아버지는 전화를 귀에서 떼지 않은 채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명동에서 주식이 움직이는 걸 눈치 챈 건가?
눈과 귀가 될 사람을 이미 여기저기 뿌려놓은 게 틀림없다.
“너, 이 자식…!”
끊지도 않은 전화를 잡은 손을 부르르 떤다.
“지금 우리 순양의 주식이 대거 움직인다는데, 네놈 짓이냐?”
어른이 서 계시는데 앉아 있는 건 예의가 아니다.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큰아버지께서 천상필 변호사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게 도움을 청하더군요. 그래서 빼 왔는데…. 대뜸 주식을 팔겠다고 하잖습니까? 전 우량주라면 꼭 사두는 습관이 있어서… 시세보다 조금 더 쳐준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노린 게 주식이냐?”
“덤이죠. 제가 원하는 게 뭔지는 입이 닳도록 말씀드렸는데요?”
“야!”
“야당에도 정보는 계속 흘릴 생각입니다.”
“주식도, 어머니도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거다. 네가 아무리 까불어 봤자 내 전화 몇 통이면 잠잠해져. 네놈이 내게 대서려면 백 년도 부족하다.”
“그렇다고 해두죠. 하지만 지금까지의 일은 프롤로그에 불과합니다. 야당이 멈추면 검찰을 움직일 겁니다. 그것도 막으시면 미국에서 터질 겁니다. 한국 총영사관이 밀수에 관여했다면 외교 문제 아닙니까? 큰아버지께서 미국도 막으신다면…. 할머니는 귀국하시겠네요.”
“아주 미쳤구나. 뭐? 미국?”
“주식은 어떻게 가져가실지 사뭇 기대되는군요. 시나리오는 대충 그려지는데….”
쉬운 일이 없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영화가 어디 시나리오대로 개봉하나요? 제작사의 입김, 감독의 수정, 배우의 변덕. 시나리오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상영관에 걸리는 일이 많습니다. 영화는 최종 편집이 끝나야 압니다.”
큰아버지는 피식 웃었다. 여전히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다.
“까불지 말고 내 제안, 받아. 아직 늦지 않았어.”
“죄송합니다. 아침 드신 거 소화는커녕 체할지도 모르는 말씀을 드려서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안 되겠습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쭉 가 볼랍니다.”
아차, 아직 큰아버지는 전화를 끊지 않았다.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 대화를 전부 들었을 것이고 똥줄이 탈것이다.
주식 감시 잘하라고 많은 돈을 받았을 텐데…. 실패로 돌아갔으니 다 게워내야 하니까 말이다.
* * *
“실명전환 끝냈습니다. 전부 실장님 어머니 명의로 돌렸습니다.”
장도형 부사장이 두툼한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난 개운한 표정의 천상필에게 말했다.
“계좌, 확인하셨죠?”
“네. 계약금은 잘 받았습니다.”
1억 달러로 만족하지 않는 모습, 이 양반도 평범하게 살기는 틀렸다.
“잔금도 틀림없이 드릴 겁니다.”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가족도 만나시고 쉬면서 어디에 정착할지 결정하십시오. 마지막까지 살펴드리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진도준 실장님.”
천상필이 내게 머리 숙이자 우병준 상무가 말했다.
“이제 출발할까요? 인천이나 김포 국제공항은 진영기 부회장의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겁니다. 천상필 씨는 부산항에서 배편으로 일본으로 건너가고 거기서 발리행 비행기 타게 될 겁니다.”
“밀항하는 겁니까?”
천상필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리자 우병준 상무가 웃음을 터트렸다.
“영화 많이 보셨군요. 일본으로 가는 여객선 많습니다. 후쿠오카까지 세 시간이면 가요. 여권이나 잘 챙기세요. 하하.”
천상필이 부산으로 출발하는 걸 확인하고 부모님 집으로 향했다.
이 일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아직 남아있다.
오랜만에 고향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저녁 준비하시느라 분주했고 바쁜 아버지도 일찍 돌아오셨다.
“부모 얼굴 보러 온 건 아닐 테고 무슨 일이야?”
“겸사겸사 온 겁니다. 안부 인사도 안 드리는 불효자식으로 생각하십니까?”
“넌 우리 얼굴 보고 싶으면 식당부터 예약하잖아. 네 어머니 부엌에서 일하는 거 보기 싫다고.”
아버지는 부엌에서 부산떠는 어머니를 가리켰다.
“그러니까요. 하지만 오늘은 집에서 밥 먹겠습니다. 밖에서 말씀드리면 식당이 시끄러워질 것 같아서 말입니다.”
“또 뭐야? 무슨 사고를 쳤길래?”
“저녁 먹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머니가 차려준 저녁 식사 뒤, 두 분과 거실에 앉았다.
“그래 할 이야기가 뭐냐?”
일단 할머니의 미술품 거래부터 말씀드렸다. 순양예술재단이 완전히 망가진 것을 안 아버지는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니까 그림 다 팔아서 그룹 주식을 샀다는 말이냐?”
“네. 아주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사들였습니다. 그중에는 비상장 주식도 있고요. 할아버지께서 창업 공신들에게 쪼개준 주식도 몰래 사들여서 가치가 상당합니다.”
차마 내가 함정을 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 주식 전부 차명이겠지?”
“네.”
아버지는 이미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 채신 것 같다.
“그리고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네가 그 주식을 차지했고?”
“맞습니다. 어떻게 아신 겁이니까?”
“그 주식이 네 큰아버지 수중으로 들어갔다면 굳이 우리에게 보고하지는 않을 테니까.”
아버지는 별것 아닌 것처럼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형님들이 내게 소리 지를지도 모르니 대비하라는 뜻이냐?”
“네. 이번엔 어머니도 마음 단단히 잡수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네. 이번 할머니의 차명주식을 전부 어머니 명의로 옮겼습니다. 정확한 지분은 이학재 회장님께 확인해야겠지만 그룹 지배지분의 3% 이상은 될 겁니다.”
“어, 어머님 지분을 내… 내 앞으로 옮겼다고?”
“네.”
숫자보다 그룹 지분을, 게다가 시어머니의 지분이라는 것이 훨씬 충격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비록 더듬었지만 말이라도 했다.
아버지는 너무 놀라 입만 떡 벌렸을 뿐이다.
“가장 고생한 며느리가 물려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어머니는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빠르게 충격을 벗어버렸다. 아무리 봐도 주식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친척들의 공격을 걱정하는 것 같지 않다.
“도준아.”
“네.”
냉정함을 되찾은 어머니는 차분한 음성이었다.
“내가 시집와서 겪었던 수모와 모멸감은 네 아버지 덕분에 견뎠어.”
아버지는 어머니 말씀이 마음 아픈지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오늘, 네 덕분에 그 기억을 싹 지웠다. 지금처럼 개운한 기분은 처음이야. 고맙다, 아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어머니의 말에 나와 아버지는 할 말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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