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74
기뻐하는 어머니를 보니 평생 맺힌 응어리의 크기를 알 것 같다.
어머니는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아버지의 눈치를 슬쩍 보며 일어섰다.
“난 들어가서 조금 쉬다 나올게.”
어머니가 거실을 떠나자 아버지가 민감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일부러 자리를 피해주신 것 같다.
“할머니는 지금 어떠시냐?”
“수사 확대를 걱정하셨는지 이미 외국으로 떠나셨어요.”
“그 정도야? 네 큰아버지들이 못 덮을 것 같아?”
어차피 아시게 될 일,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제가 덮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왜지?”
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화난 것 같지는 않다.
“할머니께서 한국에 계시면 제가 힘듭니다.”
“마주치는 게 힘들어서?”
“아뇨. 절 그룹에서 쫓아내고 싶어 자꾸 사람들을 부추깁니다. 지금까지는 큰아버지들만 부추겼는데 범위를 넓힐 겁니다. 대표이사나 임원들까지요. 그들은 할머니의 말씀을 무시하기는 힘들 테니까, 이래저래 저에 대한 안 좋은 말이 나돌 겁니다.”
“그래서? 할머니를 꼭 범죄자로 만들어야겠다?”
“검찰출두도, 법정에 서는 일도, 더욱이… 옥살이할 일도 없습니다. 할아버지 생전에 늘 외국에 계셨지 않습니까? 그 생활의 연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원할 때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건 달라. 그건 유배생활이다.”
“호화로운 유배생활이죠. 제가 원하는 겁니다.”
혹시나 화를 내실까 조마조마했지만, 아버지는 곤혹스러운 표정만 지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낀 아버지.
이런 난처한 상황에 밀어 넣은 꼴이 돼 버렸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됐다. 그만해라.”
아버지는 한동안 말씀이 없으셨다. 물끄러미 나만 바라보던 아버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팔순 넘은 할머니, 감옥 가는 일은 없도록 하자. 그것만 지켜 줘.”
“네. 유럽에서 이 나라, 저 나라 도망 다닐 일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는 어머니가 계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가 아니라 아들인 내 편에 섰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이다.
* * *
“이서현? 이서현이 누구냐?”
“진윤기 사장님 부인입니다. 진도준 모친….”
“뭐? 제수씨라고?”
“네. 관련 거래세금까지 완납하고 실명전환 끝났습니다.”
“이 개놈의 자식. 하필이면….”
진영기 부회장은 분노보다 어이가 없었다. 하필 막내 제수씨라니.
어머니가 아시면 졸도하실지도 모르는 일이다.
“법무팀 전원 집합시켜. 차명주식은 어머니 소유였으니까 증여과정의 위법성을 찾아내서 실명전환 무효로 만들라고 해.”
“네. 부회장님.”
백준혁 비서실장이 머리를 숙이고 나갔다.
진도준이 말한 목적은 거짓이 아니었다. 차명주식은 덤이었고, 할머니에게 그동안 당했던 수모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그놈이 원했던 것이 맞다.
가장 미워하는 며느리가 당신의 유산을 몽땅 가져가 버리는 것만큼 분통 터지는 일이 어디 있을까?
어떻게 생겨먹은 놈이길래 사람 속을 이렇듯 잔인하게 후벼 팔 생각을 했는지, 진영기는 이놈의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 부회장님. 야당 대표님 전화입니다.
진영기는 인터폰을 통해 들리는 비서 목소리 때문에 진도준의 생각을 떨쳤다.
“대표님. 바쁘실 텐데 결례를 무릅쓰고 연락드렸습니다.”
–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부회장님께 확인할 일이 하나 있어서 연락 해보려던 참이었습니다.
“네.”
– 순양그룹에서 소스가 하나 들어왔는데 이거 괜찮은 거요?
“철없는 어린 조카 놈이 어디서 잘못된 이야기를 주워들었나 봅니다. 제 딴에는 야당에 도움이 될까 해서 전해드린 것 같은데, 죄송….
– 응? 아닌데? 아, 문화재 밀반출은 아니고 고가의 미술품이더군요. 우리가 뉴욕총영사관에 확인했어요. 관계자 몇 놈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그런데 말입니다. 의외의 이름이 나와서 확인해야겠다 싶더군요. 부회장님 모친 존함이….
진영기는 뱃속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급하다.
“대표님. 전화로 이럴 게 아니라 식사라도 하면서 말씀 나누시죠. 잘못된 정보는 바로잡아야 하고 오해도 풀어야죠.”
– 그럴까요, 그럼? 제가 스케줄 확인해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진영기를 수화기를 던져버렸다.
“거머리 같은 새끼들!”
약점을, 그것도 아주 큰 약점을 손에 든 여의도 놈들이 이걸 빌미로 얼마나 뜯어갈지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 # #
통화를 끝낸 야당 대표의 표정을 살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니 만족한 듯 보인다.
“뭐라고 합니까? 대표님?”
원내수석부대표도 궁금함을 참지 못했다.
“우리 진 실장님 제보가 정확한 듯하네. 진영기 부회장이 당장 만나자는군.”
당 대표는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진 실장은 이미 이 여사가 연루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데, 아닙니까?”
“아주 작은 가능성 정도만 짐작했을 뿐입니다.”
“에이, 아닌 것 같은데?”
당 대표는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이거 아무래도 순양그룹 집안일에 말려든 것 같은데, 어떡하나?”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십시오. 지금 야당이 누구 사정 봐줘 가며 있을 때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가 웃음을 거뒀다.
“원하는 게 없다?”
“제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실 리는 없고, 어차피 서로의 방향이 같아야 앞으로 가는 법 아닙니까? 제 생각에는 야당의 유리한 쪽이 제가 원하는 것과 일치할 듯합니다.”
“작고하신 진 회장님께서 가장 아끼던 핏줄이라더니, 보통이 아니군요. 허허.”
“과찬이십니다.”
“이거 원, 어려운 선택인데…. 존경하는 회장님의 장남이냐, 아니면 회장님이 가장 아끼신 막내 손자냐….”
이미 결정을 내려놓고 고민하는 척한다. 노회한 정치인의 뻔한 수법이지만 모른 척 넘어가 줘야 한다.
“참, 일전에 자제분 수술하셨죠? 병원에서는 잘 됐다고 하던데, 어떻습니까?”
“아, 부친이신 진윤기 이사장님 배려로 건강하게 회복 중입니다. 내가 선거 때문에 경황이 없어 인사도 못 드렸어요. 부친께 내가 고마워하더라는 말은 꼭 좀 전해주세요.”
“당연히 병원에서 할 일 아닙니까? 아무튼, 아버지께 전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필요하시면 말씀하십시오. 순양 의료원 VIP 병실 비워놓겠습니다.”
이만하면 생색도 냈고, 남은 건 저 영감이 원하는 말을 해 주는 것이다.
“정치와 경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건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정치인과 기업인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연인 같은 사이죠. 가끔씩 투정도 부리고 삐진 척도 하면서 밀고 당기는 맛이 있어야 상대가 방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진짜 헤어지면?”
당 대표는 진영기 부회장과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는 걸 염려했다.
“매력 있는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인연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혹시 압니까? 더 젊고 능력 있는 상대가 나타날지.”
당 대표는 웃으며 술을 들이켰다.
“난 양다리도 좋아하네만….”
욕심 많은 영감탱이. 하나라도 포기하는 법을 모른다.
“그건 능력의 문제죠.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능력이 있으면 둘 다 잡을 수 있는지 혹시 아오? 젊고 잘생겼으니 연애 잘할 것 같은데, 좀 알려주시오. 흐흐.”
“너무 뻗대면 안 되겠죠. 그러다 보면 둘 다 놓치는 낭패를 당하니까요.”
난 물 한잔으로 마시고 티슈로 입을 훔쳤다. 식사는 끝났고 할 이야기도 다 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한 가지 정보를 더 드리겠습니다. 미국에서 움직일지도 모릅니다. 그럼 도저히 숨길 방법이 없어질 테고, 저나 진영기 부회장님도 손 쓸 수 없어집니다. 순양그룹의 힘은 ‘국내용’이니까요.”
어차피 터질 일, 잘 이용하라는 충고를 던졌다.
“죽 쒀서 개 주는 일은 막아야지. 잘 먹었습니다. 진도준 실장님.”
야당 대표는 잘 알아들었다는 듯 가볍게 머리를 숙였다.
* * *
주인 없는 집에 아들들이 모였으니 일하는 사람들만 분주했다. 그들은 아들 중 누군가는 이 집에서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혹시라도 집을 팔아버리면 모두 쫓겨날 수도 있다. 그들은 회장님 살아계실 때보다 더 지극 정성으로 식탁을 차렸다.
“야당 놈들이 내 전화를 안 받는다. 만나기로 한 당 대표는 지역구에 내려갔다는 구라까지 쳐.”
“그놈들, 이 기회를 버리지 않겠다는 뜻이구먼.”
진윤기는 자신을 노려보는 두 형님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도준이 막아. 너도 어머니가 타향살이하는 걸 원하지는 않겠지?”
“어머니 주식도 돌려놔. 그건 어머니 뜻대로 하시도록 해야지.”
두 형의 명령 같은 소리에 진윤기가 말했다.
“도준이가 내 말 들을 놈이야? 그리고 애 엄마도 내 말 안 들어. 형수들이 형님들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것과 똑같다고. 우리는 마누라 눈치 보며 사는 나이잖아.”
“지금 네 농담 받아줄 생각 없다. 말 들어!”
진동기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진윤기를 향해 소리 질렀다.
“농담 아냐. 그리고 어머니 휴대전화나 어떻게 좀 해봐. 연락은 할 수 있도록 해 놔야 할 거 아냐.”
진윤기의 불만에 진영기가 움찔했다. 주식을 차지하려고 어머니 주변을 완전히 차단한 것인데 혹시 눈치라도 챈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너나 제수씨, 이제 욕심 많아졌구나. 손에 들어온 주식 아까운가 보지?”
“도준이 꺼 보관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함부로 못 하는 거지. 이런 이야기나 하려고 나 불렀어? 시간 낭비야. 주식은 도준이하고 쇼부 쳐.”
진윤기는 두 형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하나만 물어보자. 도준이가 어머니는 절대 귀국 못 하는 조건으로 주식 다 내놓는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진윤기의 말에 진영기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게 도준이가 원하는 거 확실히 맞아?”
큰 형의 반응에 진윤기는 코웃음을 쳤다.
“어머니보다 주식을 더 원하는 이상 형님들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없어. 안 그래? 차라리 가져간 주식 포기할 테니 어머니만이라도 집으로 돌아오시도록 하자고 했으면, 시끄러운 일 벌어지지 않도록 내가 도준이를 설득했을 거야.”
머쓱해진 진영기가 입을 다물었다.
“어머니 끌어들이지 마. 어차피 유산 싸움 아냐? 승자가 전리품 챙기는 싸움. 내가 보기엔 도준이가 이긴 것 같은데?”
진윤기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진동기가 말했다.
“아직 끝난 거 아니다. 기나긴 법정 싸움이 기다리고 있어. 법적으로 누가 옳으냐의 싸움이 아닌 건 알지? 변호사 잘 쓰고 판사 잘 고르는 쪽이 이겨. 그 둘 다 도준이보다는 우리가 더 낫다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
“착각하지 마. 도준이 꺼 보관하는 사람이 내 마누라야. 내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것 같아? 법정으로 끌고 가면 이건 내 싸움이야.”
동생의 태도에 두 형님의 얼굴이 굳어졌지만, 아직 그들이 꺼내지 않은 카드 한 장이 있었다.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했고 진동기가 카드를 꺼냈다.
“이 집, 도준이에게 주마.”
“뭐?”
“도준이에게는 이 집의 의미가 특별하지 않아? 특히 이 서재는 그 애에게 시나이 산이나 다름없잖아. 아버지의 선택을 받은 곳이니까. 안 그래?”
“이 집과 주식을 바꾸자고? 어이가 없네. 형님이 이 집 주인이야?”
진윤기의 목소리는 힘이 빠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이 집은 어머니의 소유다. 주식을 준다면 어머니는 집을 내놓을 것이 틀림없다.
“주식 달라고는 안 했다. 이 집 받으면 도준이도 뭔가를 내놓아야겠지? 그건 도준이가 결정할 테니까 말이나 전해.”
진윤기도 안다. 자기 아들이 이 집을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진 회장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성껏 차린 음식은 결국 그들이 먹었다.
주인집 아들들 모두 성난 표정으로 돌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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