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81
“왜 이따위 짓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잘 아니까 근본적인 질문은 사양합니다. 여러분은 숫자에 집중하고 금융사의 지불 능력만 정확히 산출하면 됩니다. 아시겠죠?”
회의실에는 각 금융사의 회계 자료와 PC, 노트북에 둘러싸인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들이 눈을 반짝이며 내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몇 년 전, 내게 펀드와 금융 파생상품에 대한 것을 가르쳐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가만히 경청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지만 주어진 미션을 해내야 하는 것, 이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다.
모두 의구심만 잔뜩 드러냈고, 참다못해 입을 여는 사람도 있었다.
“하워드. 이 회사들은 월가의 메인스트림이예요. 우리 미라클보다 수십 배나 많은 돈을 굴리는 곳인데 지불 능력의 한계치를 산정한다는 게 조금 우습지 않습니까?”
이들은 전 세계의 돈을 주무르는 기업 리스트를 흔들며 정말 무의미한 일이 아닌지 확인했다.
이들이 전부 이해하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가능성은 설명해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우리 미라클의 모든 고객들이 일시에 돈을 빼버립니다. 여기까지는 문제없죠?”
“그렇겠죠. 갑작스러운 인출로 고객이 손해 보는 걸 스스로 감수한다면요.”
아주 정상적인 대답이다. 우린 고객의 돈을 굴릴 뿐이지 도박은 하지 않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서 신용부도스왑 계약서를 내밀며 1억 달러를 청구합니다. 이 1억 달러는 고객의 돈이 아니라 우리 미라클의 돈으로 지급해야 해요. 가능합니까?”
전제가 잘못된 질문이다.
모든 고객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시에 돈을 빼가는 일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숫자만 생각해야 할 시간이다.
이들은 이미 알고 있는 대답을 입 밖으로 꺼내는 건 꺼렸다.
“우리 미라클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올해 보너스를 포기해야 하고 몇몇은 짐 싸서 이곳을 떠나야 하죠. 1억 달러의 손실은 누군가 책임져야 할 금액입니다.”
그들의 불편한 표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똑같은 일을 골드만삭스, 도이체방크,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등이 당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단, 청구금액은 100억 달러입니다. 우리처럼 보너스 못 받고 인원 감축으로 버틸 수 있습니까?”
10조 원이 넘는 100억 달러라는 숫자는 자신감을 잃게 만들었는지 그들은 여전히 입을 열지 못했다.
“이게 내가 원하는 겁니다. 대형 금융사들이 고객의 돈이 아니라 회사가 보유한 돈으로 얼마까지 지급할 수 있는가? 지급할 여력은 있지만, 아예 디폴트 선언을 하고 파산이라는 극단적인 선택할 만큼 몰아붙일 금액은 얼마인가…?”
잠자코 듣기만 하던 그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유괴범이 몸값을 계산해야 하는 시간이군요.”
모두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아, 학교에서 진행했던 연구였어요. 자녀를 유괴하고 부모에게 돈을 요구할 때, 부모가 경찰에 알리지 않고 건네줄 적정금액을 산출하는 연구였죠.”
눈길을 받은 그는 조금 당황했지만, 어깨를 으쓱하며 설명했다.
“부모의 자산에 비해 몸값을 너무 낮게 부르면 유괴범이 안고 가야 할 범죄의 리스크에 못 미치고, 지불 능력 이상으로 부르는 것도 멍청한 짓이죠. 또 하나, 부모의 캐릭터도 파악해야 합니다.”
“부모의 캐릭터?”
난 그의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네. 그래서 보통의 유괴는 면식범이죠. 불의를 못 참는 부모의 경우, 지불 능력은 있지만 조금만 과하다고 생각하면 경찰에 알리니까요.”
“그럼 이 경우 부모는 해당 금융사의 CEO들인가?”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들의 경영철학, 명예, 주주들, 사회적 인식 등도 고려해야죠.”
“숫자만 봐서는 절대 최대치의 지급 능력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
“지불 적정치는 숫자만으로 가능하겠지만, 최대치까지 미치지 못할 겁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난 그를 가리켰다.
“당신이 이 TFT의 팀장입니다. 기한은 2주. 적정치가 아닌 최대치의 숫자를 뽑아서 내게 보고하세요.”
내가 가리킨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내 결정을 변하지 않았다.
* * *
한쪽에서 금융사들의 지불 능력을 파악할 때 난 또 다른 전문가들을 어시스턴트로 두고 스왑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주택저당증권은 단일 상품이 아니라 수많은 부채를 뒤죽박죽 섞어놓은 것들이기 때문에 각각의 증권에 대한 기준치 설정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가장 높은 값에 거래되는 상위 50개를 추려 AAA라는 자체 등급을 매겼다. 다른 이들에 AAA는 안전의 상징이지만 내게는 가장 큰 배당금을 제시할 수 있는 로또나 다름없었다.
증권 분석에 한창일 때 레이첼 아리에프는 조용히 나를 불러냈다. 아주 다급한 표정으로.
“무슨 일인데 그래요? 표정이 영….”
“월가를 돌며 정보를 입수했는데…. 하워드, 너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몇몇을 발견했어.”
당연히 존재한다. 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벌었는지 이미 알고 그들과 똑같은 방식을 따르고 있으니까.
하지만 짐짓 놀란척하며 물었다.
“벌써요? 누구죠?”
“그렉 리프먼, 스티브 아이스먼. 존 폴스, 벤 호켓…. 개인도 있고 기관도 있는데….”
“그들은 언제부터 시작했어요?”
“빠른 사람은 이미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돈이 몰린 건 작년이야.”
“그 사람들, 돈 많이 잃었겠네요. 흐흐.”
모기지 채권 상품의 가치가 오를수록 손해 보는 베팅이다. 2년이나 계속 베팅했으니 기관투자라면 고객의 항의가 빗발치거나 많은 투자금이 빠져나갔을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주택담보부증권으로 운용하는 자금만 2천억 달러가 넘어. 반대에 베팅한 그들 중 가장 큰 금액은 7억 달러에 불과해. 단순 비교만으로도 그들은 지금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을 거야. 어쩌면 반 토막 났을 수도 있고.”
2천억 달러라면 200조 원. 2007년 올해 우리나라 예산이 230조 원이니 역시 미국은 미국이다. 일개 금융회사가 한 국가 예산을 주무르다니.
난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반 토막 났으니 불안한 겁니까? 그래서 말리려고 알려주는 거예요?”
“아니. 네 예측이 어쩌면 틀리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어.”
“그럼 저와 함께 베팅?”
웃으며 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딱딱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난 내 소신을 지키고 싶어. 베팅이 아니라 투자, 안정적이고 꾸준한 수익을 내는 투자만 할 거야. 이미 대부분 고객들은 내 방식을 지지했고 주택담보부증권 투자에서 철수하는 것도 찬성했어. 하지만 베팅은 원하지 않더라고. 고객
들의 요구대로 가는 게 내 방식이니까.”
레이첼은 공격수가 아니라 수비수를 원한다.
“그러세요. 저도 레이첼의 경영방식을 지지합니다. 그러니 계속 미라클의 CEO로 남아 주세요.”
이 말은 진심이다.
뉴욕 미라클은 내 돈을 보관하는 금고 역할이 최우선 아닌가? 투자 수익보다는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불려 나가는 게 내가 원하는 것이다.
물론 이번 베팅 때문에 미라클이라는 이름이 월가에서 크게 오르내리겠지만, 그 공로는 고스란히 이곳 사람들이 차지하면 된다.
이들은 명성을, 난 돈을.
그리고 레이첼 아리에프의 불안한 눈빛이 무슨 의미인지도 안다.
위태위태한 미국 금융시장에 내가 거금을 투여하는 순간이 바로 폭락의 시작이라는 걸 그녀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 * *
“명심하세요. 동시에 신용부도스왑 계약을 체결하는 겁니다. 순차적으로 하나씩 계약하면 분명 우리 계약서를 조사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정보가 새기 전 순식간에 해치워야 합니다.”
계약서를 든 사람들이 어이없는 듯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는 게 보였다.
이런 바보 같은 계약은 언제 어디서든 대환영이지, 의심하며 조사할 놈은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뉴욕은 금요일 오전, 런던은 금요일 오후입니다. 런던팀은 거기서 주말을 즐겨도 됩니다.”
런던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소리 없는 웃음이 번졌다.
눈먼 돈 갖다 바치는 계약서 들고 가니 상대는 대환영일 테고, 손쉽게 계약을 체결한 뒤 주말 내내 즐기다 돌아오면 되는 휴가 같은 출장이다.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출발했다.
난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자그마한 바에서 레이첼과 함께 술을 마시며 금요일을 기다렸다.
“전부 얼마지? 총 투자 금액이?”
레이첼이 칵테일로 입술을 축이며 물었다.
“보험요율을 조금 높게 잡았어요. 지금쯤 이 위기를 조금은 감지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그 불안이 눈멀 정도의 돈은 줘야죠.”
“몇 %나?”
“미니멈 4%에서 맥시멈 7%요.”
“기간은?”
“5년.”
“뭐…. 네 생각대로라면 5년이나 10년이나 차이는 없겠지? 어차피 내년이니까.”
레이첼은 자조적인 웃음을 보였다.
“그렇죠. 1년 치 보험금만 내면 되니까요.”
“전체 금액은?”
“평균 보험요율 5%로 잡는다면 35억 달러 정도….”
“넌 이번 베팅으로 35억 달러의 20배를 버는구나. 700억 달러인가?”
술잔을 채우던 바텐더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돌아섰다.
중년 아줌마와 젊은 동양 남자가 헛소리처럼 말하는 숫자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도 헛소리처럼 들렸다.
7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70조.
내게는 동그라미가 잔뜩 붙은 암호나 디지털 신호나 다름없는 현실감 없는 숫자.
“700억 달러는 월가가 지급할 수 있다고 보는 거지?”
“레이첼 생각은요? 너무 낮게 잡았나요?”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면 조금의 문제도 없을 만큼 낮아. 하지만 내년이라면 높게 잡은 금액 아닐까 하며 염려할 것 같은데?”
“런던과 뉴욕으로 분산했으니 안전할 겁니다.”
“내년이면 넌 워렌 버핏을 따라잡거나 누를 거야. 단숨에 세계 1위의 부호 자리에 앉을 걸?”
“제가 드러나지 않았듯이 이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은 부자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내년 포브스지 부호 순위 1위는 여전히 워렌 버핏이고 2위는 빌 게이츠겠죠.”
한국 재벌 회장들도 드러나지 않은 사람들에 속한다. 개인 재산이야 3조, 4조 정도로 발표하지만 수백조의 가치를 지닌 기업들을 금고처럼 사용하고 숨겨놓은 돈은 또 얼마나 많은가?
“평생 숫자에만 파묻혀 살았는데 사고의 경계를 넘어가 버리는 숫자가 현실 앞에 나타나니까 혼란스럽기까지 해.”
레이첼은 또다시 술잔을 비웠다.
“그 돈으로 뭐 할 건지 계획은 있어?”
물론 있다.
이 여인에게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존경하는 제 할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 있어요.”
술잔을 응시하던 레이첼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돈이라는 건 버는 게 목적이다. 그 돈을 어디에 쓸지는 생각하지 마라. 살다 보면 어차피 그 돈을 써야 할 때가 꼭 나타난다. 돈 쓸 고민은 그때 하면 된다.”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역시 거부들은 생각이 달라. 네 할아버지께서도 엄청난 부자셨지?”
“네. 하지만 그분도 살아계셨다면 엄청나게 놀라셨을 겁니다. 1년 만에 700억 달러를 버신 적은 없거든요.”
“자본주의 등장 이후로 네가 처음이지 싶은데?”
그런가? 분명 또 있었을 것 같은데?
“나폴레옹의 워털루 전투 때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 전체를 살만큼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아요?”
레이첼은 머리를 저었다.
“음모론에서 줄기로 뻗어 나온 이야기야. 그냥 국채 투자로 큰돈을 벌었고, 지금 시세로 따져도 10억 달러를 넘지 않았어.”
로스차일드 가문이 번 10억 달러도 결국 국민의 세금이고 내가 벌어들일 돈도 미국 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그나마 한국 국민이 아니라서 마음은 한결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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