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82
미국의 투자은행이자 전 세계 금융시장의 최대기업인 골드만 삭스 그룹 주식회사(The Goldman Sachs Group, Inc.)는 독일계 유대인 마르쿠스 골드만이 세운 어음 거래 회사로 출발해서 21세기에는 금융시장을 장악했다.
23개국 50개 사무소에 총 3만 명이 넘는 임직원이 국경과 화폐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돈을 쓸어 담는다.
또한, 빌 클린턴과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에는 이곳 출신이 재무장관을 역임하며 미국 재무장관 사관학교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고, 그들은 온갖 규제를 풀어버리며 골드만 삭스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했다.
이들은 그리스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있도록 금융장부를 조작했고 그 결과, 그리스의 파산과 이어진 유럽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회사는 그 과정에서 엄청난 수익을 남겼기에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의 폐해를 상징한다.
마침내 D-day인 금요일 아침, 골드만 삭스의 본사 앞에 서니 이 회사의 미래가 떠올랐다.
미국의 금융 몰락으로 천만 명에 가까운 미국 시민이 직장을 잃어도, 육백 만에 가까운 국민이 집을 잃어도, 이들은 수천억 원씩 배당금을 챙기고 보너스를 챙기며 샴페인을 터트린다.
무너져 가는 회사는 어차피 국민의 혈세로 다시 세워줄 것이고 또다시 사기나 다름없는 파생상품을 만들어내며 돈을 쓸어담을 것이다.
침이라도 한번 뱉어줄까 하다가 관뒀다.
나 역시 이들과 방식만 다를 뿐 똑같이 돈을 챙기는 놈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기 때문이다.
“갑시다.”
나를 따라온 TFT 팀장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나를 따랐다. 10억 달러짜리 계약은 그를 긴장시켰다.
“이런 미친 새끼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엉겁결에 한국 욕이 튀어나왔다.
골드만 삭스의 로비는 논현동 명품 가구점보다 더 비싼 것들로 가득했다.
바닥과 벽의 대리석은 참을 만했지만 안내 데스크까지 대리석으로 만들 생각은 누가 했을까?
아주 잠깐 로비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의자도 하나에 기백만 원이 넘는 명품이다. 그런 의자 수십 개가 지하철역처럼 쭉 놓여있다.
돈 지랄도 이런 돈 지랄은 처음이었다. 다시 한 번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 할 때, 함께 온 팀장이 손을 번쩍 들며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가니 이미 세 사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의 임원, 두 명의 매니저. 이들은 눈을 번뜩이며 내 돈을 삼키려 혀를 날름거렸다.
* * *
“꼭 하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도의상 알려드릴 것이 있습니다.”
가장 젊어 보이지만 이미 임원 자리까지 올라간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말씀하세요.”
“이미 이와 비슷한 스왑이 있습니다. 2년 전에 계약한 건데….”
레이첼이 말한 뛰어난 안목을 가진 사람들 중 한 명일 것이다.
“차이라고는 2년 전 계약한 건 매월 프리미엄 보험료를 냅니다. 처음엔 낮은 보험료였지만 주택저당증권의 가격이 오를수록 보험료가 올라갔죠. 지금은 9%대의 보험료를 낼 정도죠.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건도 년 단위가 아니라 월 단위로 하고 싶다는 겁니까?”
“아뇨. 단지 알려드리는 겁니다. 모기지론이 부실 덩어리라는 루머를 믿으시면 큰 손해를 보실 겁니다.”
“올해부터 주택담보대출에 변동 금리가 적용되는 건 아시죠? 이미 연체율이 증가하고 있는데 부실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참으로 안전하다고 믿는 것인지, 아니면 부실을 감추려는 건지 궁금하다.
“미스터 진, 증권은 대출이 아닙니다. AAA 등급이 기본이며 부실한 대출도 조금 섞여 있어요. 그래서 좋은 상품이라는 겁니다. AAA 등급이 B등급의 손해를 충분히 메워주니까요. 완벽한 스테이크에 질긴 힘줄이 한 가닥 박혀 있다고 해서 스테이크를 버리지는 않겠죠?”
“지금은 주택 가격이 너무 올라서 약간의 조정기를 거치는 중입니다. 폭락은 없어요.”
매니저 한 명도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골드만 삭스의 생각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생각을 철회할 정도는 아닙니다. 아, 물론 정보를 주신 건 감사드립니다.”
젊은 임원은 어깨를 으쓱한 뒤 손바닥을 짝 쳤다.
“그럼 미라클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한번 들여다볼까요?”
세 사람은 우리가 준비한 요약본을 펼쳐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상품 분석이 아주 탁월합니다. 역시 미라클이군요.”
“두 가지 사항만 원만히 합의한다면 계약은 문제없겠습니다.”
그들의 만족한 얼굴을 확인하고 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보험금은 매월 지급한다고 해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또한, 이미 프리미엄 조건을 체결한 전례도 있으니 그 방식을 따르겠습니다.”
함께 온 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 눈치를 살폈다.
프리미엄이라면 증권의 가치가 오를 때 지불해야 할 보험료가 급격히 올라간다. 보험료는 순식간에 감당하기 힘들어질지도 모르는 수준까지 치솟을 수도 있다.
난 그를 향해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안심하라는 신호였지만 그의 얼굴에서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은 대신해 주시니 술술 풀리는 느낌인데요? 하하.”
젊은 임원의 웃음이 끝나기 전에 다른 조건을 말했다.
“마찬가지로 전례가 있으니 보험은 4.8%로 하죠.”
웃음을 거둔 그가 난색을 드러냈다.
“이런, 2년 전과 같은 조건을? 그건 좀 힘들겠는데요?”
“왜 힘들죠? 주택보증증권의 가치가 떨어졌다면 리스크가 오른 것이니 보험금도 올라야겠지만 2년 전보다 증권의 가치는 꾸준히 상승하지 않습니까? 이 말은 리스크가 줄었다는 의미 아닙니까? 같은 조건이라고 해도 문제없어 보입니다만…?”
혀를 날름거리던 세 사람은 양해를 구한 뒤 자기들끼리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잠시 후, 헛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다.
“스왑 금액은 어느 정도 생각하십니까?”
“금액에 따라 제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그렇습니다. 1억 달러를 넘기신다면 4.8%로 체결하겠습니다.”
됐다!
5% 아니, 6%라고 해도 받아들였을 것이다. 골드만 삭스처럼 한 번에 큰 금액을 소화해 주는 곳은 드물다.
“이런, 한 번에 남은 문제가 싹 해결되는군요.”
환하게 웃는 내 모습에 세 사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10억 달러니까 전체 금액도, 보험률도 단번에 정리한 거 아닐까요?”
이들의 표정은 참으로 볼만했다.
엄청난 금액에 놀라기도 했고, 10억 달러의 4.8%니 4천8백만 달러라는 거액의 공돈이 굴러들어온다는 기쁨도 보였다.
그리고 아주 조금, 마치 포커판에서 에이스 포카드를 쥐고서 뻥카에 흔들리는 약한 모습도 보였다.
“아무 말씀 없으시다는 걸 좋게 해석해도 될까요?”
“아, 실례했습니다. 물론 좋게 해석해도 됩니다. 아니, 우리가 부탁해야 하나요? 하하.”
나와 함께 온 팀장은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 다른 금융사를 방문한 직원들의 상황을 실시간 점검하는 중이다.
난 두꺼운 계약서 공란에 숫자를 적었다.
4.8% 그리고 10억 달러.
계약서에 사인을 끝내는 순간 나도, 저들도 함박웃음을 지었다.
양쪽 모두 이처럼 만족하는 계약이 어디 흔한가?
의자를 밀고 일어나 한 명씩 악수했다.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때 함께 온 팀장이 귓속말로 속삭였다.
“런던까지 포함해서 26곳 모두 계약 체결했답니다.”
한층 더 환해진 내 미소를 보며 골드만 삭스의 젊은 임원이 말했다.
“좋은 소식이라도 온 것 같군요.”
“네. 아주 괜찮은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입니다.”
“아, 축하합니다. 혹시 어떤 내용인지 귀띔이라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곧 아시게 될 겁니다. 어차피 이런 건 숨기기 힘드니까요. 월가는 비밀을 감추는 벽(Wall)이 없지 않습니까?”
금방 입소문 퍼지는 것은 두 가지다. 누군가 대박을 쳤거나, 아니면 쪽박 찼거나.
“귀를 활짝 열어둬야겠군요. 미라클이라면 성공적인 투자로 소문났지 않습니까?”
자기가 한 말이 얼마나 큰 모순인지 깨닫지 못한다.
계약서에 사인까지 했으니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 약간의 힌트를 던졌다.
“성공적인 투자로 유명한 우리 미라클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체결한 이것도 성공적인 계약 아닐까요?”
난 두꺼운 계약서를 가볍게 흔들었다.
우리의 성공은 저들의 실패를 의미한다. 양측 모두 만족하는 성공적인 계약은… 아주 드물다.
그제야 저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인간은 나쁜 일에 대해서 생각하는 걸 꺼려한다. 그래서 가능성도 축소해버린다.
저들은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여기며 최소한으로 줄여버린 가능성, 즉 미국 주택시장이 붕괴된다는 최악의 악몽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걸 느끼고 있을 것이다.
“뭐, 이 계약이 누구에게 성공적인지는 시간이 알려주겠죠. 그럼….”
얼어붙은 그들을 뒤로하고 회의실을 나왔다.
화창한 뉴욕 하늘이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다.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요? 맛있는 핫도그와 뜨거운 커피, 어떻습니까?”
여전히 불안한 표정의 팀장을 데리고 모퉁이에 보이는 푸드 트럭으로 걸어갔다.
* * *
그날 오후, 미라클의 전 직원에게 두둑한 보너스를 안기고 일찍 퇴근시켰다.
나의 즐거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고, 그 방법은 생각지도 못했던 돈과 그 돈을 쓸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이 최고라는 걸 안다.
혼자 자축이라도 하고 싶어 레이첼과 함께 갔던 바에 갔다.
맥주를 홀짝이며 실없이 웃고 있을 때, 바 곳곳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미라클이 오늘 하루 동안 미친 짓을 하고 돌아다녔다는 거… 들었어?”
“물론이야. 그 소식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도대체 얼마를 뿌린 거야?”
“정확한 금액은 모르지만 미라클 덕분에 전부 돈 잔치하게 됐을 걸? 우리 도이체 방크만 해도 1천2백만 달러라고 들었어.”
“젠장, 임원들은 또 보너스 챙겼겠네.”
“불안하지 않을까? 미라클의 미친 짓이 성공하면 2억4천만 달러를 줘야 해. 그 계약 체결한 부서는 전부 모가지야.”
“미친 짓이 성공하는 거 봤어? 앞으로 어마어마한 보험금을 내야 하는데…. 미라클도 문 닫게 생겼어.”
하지만 그들은 나의 미친 짓에 웃지 못했다.
한 곳만 생각하면 미라클이 미친 짓 한 게 맞다. 그러나 월가에 뿌린 돈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다들 짐작한다. 전화 몇 군데만 돌려도 몇 십 억이라는 걸 알게 될 테고 미친 짓도 정도를 넘으면 모두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 때문에 바 곳곳에서 걱정스러운 속삭임은 있어도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런던에도 같은 짓 했다는 거 알아?”
“런던? 더 시티?”
“그래. 잉글랜드 뱅크에 6억 달러짜리 신용부도스왑을 계약서를 던졌다고 들었어. 진짜 수백억 달러 스왑을 진행한 거 아닐까?”
“만약, 진짜 만에 말이야. 미라클의 베팅이 맞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월가 전부 좆되는 거지.”
금요일 저녁이다. 지금부터 월요일까지 이틀.
경고등을 빨리 읽어낸 놈들은 정모를 모으고 긴급회의를 가지며 바쁘게 일할 것이고, 여전히 날 미친놈으로 생각하는 놈들은 큰 건 하나 걸렸다고 흥청망청할 것이다.
“Hey, Son.”
흰머리가 성성한 중년의 바텐더가 내 앞에 맥주병을 놓으며 말했다.
“지난번에 레이첼과 함께 여기서 7백억 달러니 뭐니 하지 않았나?”
“그랬었죠. 레이첼을 아세요?”
“물론. 그녀는 여기 단골이야. 좋아하는 칵테일 두어 잔 마시고 퇴근하는 게 일과라고.”
“그렇군요.”
“레이첼이 미라클의 보스인 것도 알아. 그러니까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미라클의 미친 짓이 그 7백억 달러와 관련 있는 거야?”
바텐더도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편히 한잔하고 싶었는데 흥이 깨져 버렸다.
난 지갑에서 백 달러짜리 한 장을 꺼내 올렸다.
“혹시 대출받아 집 산 거 있어요?”
“아니. 난 빚 없어.”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럼 더 늦기 전에 이 바 팔아버려요.”
“뭐?”
화들짝 놀란 바텐더는 백 달러짜리를 챙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백수들만 득실거릴 월스트리트에서 술장사하다가는 망합니다.”
멍한 표정의 바텐더를 향해 살짝 웃어주고 뉴욕 밤거리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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