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94
“제 방법이 악수(惡手)로 보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꼼수를 상대할 때는 악수가 정공법이 될 때도 있죠. 돈 아까워하는 건 그만합시다. 준비는 차질 없죠?”
“네. 순양건설 채권단의 공식 발표 후 기자회견을 준비 중입니다. 이틀 뒤쯤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죠. 기사 덮으려고 난리 칠 때 제가 불을 붙여버리면 방법이 없을 겁니다.”
장도형 부사장은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불붙이는 정도가 아니죠. 연말 연초의 TV 방송은 실장님 이름으로 도배할 겁니다. 기업 역사상 세금 덜 냈다고 스스로 자백하고 천문학적인 돈을 낸 기업인이 어디 있습니까?”
“절세, 탈세 없이 성실하게 세금 내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정상으로 돌아가는 걸 뉴스가 떠들어대는 게 비정상이죠.”
장도형은 무릎을 탁 쳤다.
“그거 좋은데요?”
“네?”
“방금 그 말씀 기자회견 때 꼭 하십시오. 하하.”
아, 깜빡하고 있었다.
통신사가 아이폰을 팔기 시작했고 이제 본격적인 스마트 폰 시대가 열린다.
스마트 폰은 SNS의 비약적인 성장 동력이다.
누군가는 SNS가 인생의 낭비라고 했지만, SNS는 스타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창구다. 그리고 긍정적인 인식의 스타는 여론을 움직인다.
이번부터 시작해 볼까?
난 아버지께 전화했다.
“아버지. PI 전문가 소개 좀 해 주세요.”
– PI? 갑자기 왜? 설마 네가…?
PI는 President Identity의 약자이며 시작은 단어 뜻대로 정치였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여러 요소 중 특징적인 것을 뽑아 국민에게 어필해서 대통령을 대중이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활동을 말한다.
국가 최고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PI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 공공 기관의 장, 연예인 등으로 그 범위를 넓혀 왔다. 자신의 개성과 특징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소통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만드는 일은 오피니언 리더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다.
이제 PI는 대통령이 아니라 개인을 말하는 Personal Identity, 즉 개인 정체성 활동으로 확대되었다.
우리나라 재계의 존경받는 스타 경영자 정도면 여론을 움직이는데 편리하지 않을까?
놀란 아버지에게 웃으며 말했다.
“네. 왜요? 안됩니까? 흐흐.”
– 도대체 뭔 생각이냐? 연예인 할 거냐?
“연예인은 아니지만, 스타는 돼야겠어요. 괜찮은 사람 있을까요?”
– 알아보마. 업계 최고라야겠지?
“네. 최고인 만큼 대우도 최고로 해주겠습니다.”
– 몇 명 보내줄 테니 직접 만나보고 결정해.
“고맙습니다, 아버지.”
내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영웅으로 혹은 쓰레기로 만들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을 키워야 한다.
그 전에 친척부터 쓰레기로 만들고…….
* * *
아버지의 소개로 온 두 명의 전문가는 내 설명을 듣고는 눈만 껌뻑거렸다.
“왜들 그러십니까? 이미지 구축에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아, 아닙니다. 너무 의외라서요.”
“그, 그렇습니다. 몇 년 전에 끝난 일인데…. 게다가 6천억이라는 돈을 쓰시다니….”
“6천억을 쓰니까 화려하고 우아하게 등장해야겠죠? 누구라도 칭찬을 아낄 수 없도록 말입니다. 자신 없으십니까?”
“그럴 리가요.”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이구동성으로 펄쩍 뛰었다.
“상품 퀄리티…. 아, 죄송합니다. 업계 용어라 습관이 돼서….”
“괜찮으니까 업계 용어로 편히 말씀하세요.”
“아, 네. 아무튼, 진 실장님의 퀄리티가 보통의 사람과 비할 바도 아니고, 6천억이라는 숫자가 주는 위압감. 그리고 안 내도 될 세금을 스스로 내는 도덕성. 이 정도 재료면 굳이 저 같은 업계 사람이 필요 없을 정도예요.”
“그렇습니다. 언론도 크게 떠들어 댈 수밖에 없는 기삿거리고. 팩트만 나열해도 드라마입니다. 덧붙일 일이 없을 정도니까요.”
이들의 칭찬이나 듣자고 부른 게 아니다.
“전 이번 일 하나 때문에 여러분과 만나는 게 아닙니다. 오랜 시간 동안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게 목적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원하시는지…?”
“간단합니다. 제가 1조 원이 넘는 금액을 탈세했거나 회사 자금을 횡령해도 일반 대중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는 무한하고 무조건적인 믿음, 신뢰…. 이것이 내 목표 점입니다.”
지금까지와는 상반된 내용이 흘러나오자 두 전문가는 종잡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내면서 탈세와 횡령을 입에 담으니 그럴 만하다.
“업계 탑이라고 하시던데, 어렵습니까?”
천하에 둘도 없는 악당이 될 수도 있는데 천사 옷을 입혀야 하니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약 빨고, 술버릇 더럽고, 여자관계 복잡한 연예인도 엄친아로 비춰지는 게 여러분의 능력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두 사람 중 한 명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장기적인 이미지 구축에는 꼭 필요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어려워 말고.”
“무조건적인 신뢰가 필요합니다.”
“신뢰라…….”
“네. 불필요해 보이고 괜한 짓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도 전문가의 디렉션에 정확히 따르는 것, 이건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성공한 사람의 경우에는 더 그렇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했기에 주변의 조언이 그리 달갑지 않거든요.”
두 사람의 걱정이 무슨 뜻인지 안다. 스타 연예인보다 더한 재벌 3세의 안하무인. 이들이 가진 내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계약합시다.”
“네?”
“두 분 다 계약하겠습니다. 계약서는 두 분이 상의해서 보내주세요. 무조건 지시대로 따른다는 조항이 들어 있어도 됩니다. 대신, 계약 기간은 1년. 제 잣대로 평가해서 부족하다 싶으면 1년으로 끝내겠습니다.”
또다시 눈만 껌뻑거리는 그들에게 내 명함을 건넸다.
“계약서 사인하는 즉시 기자회견 어떻게 할지 계획서 준비하세요.”
* * *
2010년은 한국을 대표하는 두 거대기업이 쓰러질지도 모른다는 증폭된 위기로 시작했다.
위기의 당사자인 진동기와 주민식이 아주 똘똘한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다.
두 건설사의 부도는 마치 제2의 IMF가 올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언론은 건설사를 위한 기사라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기사 말미에는 항상 정부의 구제금융이 절실하다는 논조가 빠지지 않았다.
부정적인 기사 때문인지 증시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썩어도 준치라더니…. 쎄다. 녹록지 않아.”
이학재 회장은 불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뭡니까? 할아버지와 함께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이런 약한 모습 보여주십니까?”
“회장님과 함께 보낸 시간이 있으니까 불안한 거다. 여론을 여기까지 끌어올렸다면 정권도, 은행도 흔들리거든.”
“두 건설사의 부도를 마치 정부의 책임처럼 몰아간다, 이 말씀이시죠?”
“그래. 한국 건설계의 얼굴이다.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카운터 펀치 날릴 겁니다. 기대하십시오.”
“카운터 펀치?”
“네. 일전에 한 번 말씀드렸죠? 검찰청에 참고인으로 출두하시게 될 거라고요.”
“야!”
소리 지르는 그를 향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주 당당하게 들어가시면서 검찰청으로 몰려든 기자들이 내미는 마이크에 대고 한마디만 하시면 됩니다.”
“……?”
“누구나 알지만 모른척하는 불편한 진실, 그 민낯을 보시게 될 겁니다…. 뭐, 이 정도? 그리고 지검장이랑 커피 한잔 하시고 나오세요.”
“정말 다 드러낼 생각이냐?”
“설마요. 필요한 만큼만 드러내야죠. 일반인이 보기에 우리 큰아버지들이 도둑놈으로 보일 만큼만.”
“충격은 있겠지만 K.O. 시킬 만큼 강력한 카운터는 아닌 것 같은데?”
“연타가 있어요. 그건 세상에 감춰야 할 거라서 검찰에게만 알려줄 겁니다.”
“두 부회장의 비리는 별반 소용없어. 쓰레기 더미를 다시 뒤지지는 않아.”
“아들이라면 달라지죠.”
“뭐? 아들? 누구 말이냐?”
“진태준, 진동기 부회장님의 장남. 순양건설의 재무담당 이사. 그가 사고 친 돈 6백억. 이 정도면 진동기 부회장이 항복할 겁니다.”
“태준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나오자 이학재 회장은 입을 떡 벌렸다.
“지금 회장님이 놀란 것처럼 둘째 큰아버지도 충격받으실 겁니다. 더욱이 검찰의 칼끝이 향하니까 수습할 틈도 없다는 게 더 두렵겠죠.”
“그 6백억, 네가 판 함정이냐?”
“아뇨. 돈에 눈이 먼 거죠. 투자가 아닌 투기는 도박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죠. 흐흐.”
* * *
“분까지 발라야 합니까?”
“지시대로 따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참으세요.”
얼핏 보기에는 수더분한 정장이었지만 떨어지는 실루엣은 감탄이 나올 만큼 잘 빠졌다. 머리를 한 시간이나 만졌고 화장까지 하니 카메라 마사지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틀이 좋으니까 수고가 아깝지 않습니다. 기자회견 영상이 뉴스만이 아니라 연예프로그램에도 나갈 겁니다. 시청률은 뉴스보다 그런 쪽이 훨씬 잘 나오니까요.”
“내용이 부각되어야 합니다. 아주머니들도 화가 치밀어 오를 만큼요.”
“그건 회사 홍보팀과 조율했습니다. 당분간 이 뉴스로 세상이 시끄러울 겁니다.”
김윤석 대리가 긴장한 표정으로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
“실장님, 나가실 시간입니다.”
회견장은 기자들로 꽉 차있었다. 이미 뿌려놓은 떡밥 때문에 언론은 오늘 회견이 엄청난 특종이 될 거라고 예상한 듯 끝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간단히 인사말을 끝내고 준비한 원고를 읽어 내려갔다.
“……지금까지 애써 외면한 제가 부끄럽지만, 언제까지 부끄러움만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엄격하고 정밀한 객관적인 잣대로 평가한 결과, 약 6천억 원 정도의 증여세가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눈을 들어 기자들의 반응을 보니 원했던 모습이었다.
“하지만 증여 당사자인 제가 납세 금액을 결정하는 건 모순입니다. 정확한 금액을 산정하기 위해 이미 모든 자료를 국세청에 넘겼고, 증여과정의 위법, 혹은 불법 사항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검찰 금융조사부에도 동일한 자료를 넘겼습니다. 또한, 이 회견이 끝나는 대로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청에 출두할 생각입니다.”
슬슬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다.
“물론 증여과정에서 불법과 위법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단지 법의 맹점을 이용한 편법은 있었습니다. 이러한 편법이 국민 정서에는 많이 어긋날 것입니다. 이점,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허리를 깊숙이 숙이자 기자들의 질문이 터져 나왔다.
뻔한 질문과 뻔한 답변만 오고 갔고, 기다렸던 질문은 거의 막바지가 돼서야 나왔다.
“현재 순양그룹의 부회장이신 두 분도 진도준 씨와 같은 시기에 물려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편법이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보다 세배 이상 그룹 지분을 받았다는 것만 말씀드리죠. 질문의 답은 부회장님들이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만.”
필요한 말은 했으니 회견도 끝이다.
기자들의 이어지는 질문을 무시하고 회견장을 빠져나왔고 곧바로 서울 중앙지검으로 향했다.
이미 검찰청 앞에도 기자들이 진을 치고 기다렸다. 기자들에게 할 말은 다 했으니 코앞에 들이미는 마이크는 무시하고 검찰청 안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 * *
취조실에 앉아 물 한잔을 마셨을 때 문이 열리며 젊은 검사 한 명이 들어왔다.
그는 손에 든 서류를 책상 위에 툭 던지며 말했다.
“오랜만이네. 졸업하고 처음이지?”
“노안은 장점이 있구나. 하나도 안 변했어. 김지훈 검사님. 흐흐.”
“야! 그 노안이라는 단어, 금기어라고 말했지? 검사 기분 나쁘게 해서 좋을 거 없다. 몰라?”
동창인 김지훈은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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