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96
“아무튼, 동기가 어떻게 대응하는지 잘 지켜봐. 저쪽이 시끄러울 때 우리는 계열사를 확실히 다져놔야 해.”
“아버지. 그룹 쪼개면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반 토막 내서 회장 하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새로운 지시를 끝내고, 부자 두 사람만 남았을 때 진영준은 참았던 불만을 터트렸다.
“한발 물러날 때도 있는 법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야.”
진영기 부회장은 아들의 볼멘소리에 화를 내지도 않았고 호통치지도 않았다.
“HW는 미라클의 엄청난 자금을 업고 순양건설의 최대 채권자가 됐어. 내 생각에는 미라클, HW 그룹 그리고 도준이까지 합세해서 건설을 압박하는 거야. 건설은 못 지킨다.”
마흔 살 넘은 진영준도 건설을 지키지 못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건설이 쥐고 있는 중공업의 지분이 넘어간다는 말이며 중공업이 쥐고 있는 정밀기계와 화학의 지분도 넘어간다.
그룹을 지배하기 좋은 구조인 계열사 간의 순환출자구조는 누구에게라도 마찬가지다.
건설과 중공업을 쥐면 고구마 넝쿨처럼 다른 계열사도 줄줄이 엮여 손에 들어오는 것이다.
“내가 확인한 사실인데, HW는 순양건설과 대현건설을 먹기 위해 무려 10조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었어.”
“시, 십조나요?”
“그것뿐만이 아니다. 은행을 제 편으로…. 아니, 말 잘 듣는 충견으로 만들려고 100억 달러를 긴급 외환으로 국내에 들여왔어. 그것 때문에 은행도 고개 숙였고 정권도 그놈들 편을 드는 거야.”
말하지 않아도 안다. HW 그룹의 돈이 아니라 바로 미라클의 돈이라는 걸.
“또 있다. 도준이 그놈이 순양금융 계열사의 돈을 잔뜩 은행에 예치했어. 투자가 아니라 단지 예금만 한 거다.”
“돈을 한꺼번에 인출해버리면…?”
“그래. 은행이 난리 나겠지? 바로 미라클과 손잡은 거야.”
진영준은 아버지가 왜 진도준의 이름을 입에 올렸는지 알았다.
진도준은 순양의 얼굴마담이며 HW 그룹은 행동책이다. 그리고 미라클은 자금 담당.
세 곳의 완벽한 동맹으로 순양의 한 축을 차지하는 계획이었으며 미국과 중동의 금융위기를 이용해 성공했다.
“내가 왜 계열분리를 서두르는지 알겠어? 일단 네게 물려줄 회사부터 확실하게 지키려는 이유다. 우리 계열사 중에 하나라도 휘청인다면 건설 꼬라지가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어.”
손에 쥔 계열사부터 자물쇠를 채우겠다는 아버지의 생각에 더는 반발하지 못하는 아들이었다.
“전자와 물산은 지주회사나 다름없다. 이 두 곳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흠집 나면 안 돼. 이참에 확실히 해 둘 거다. 그리고 대현자동차 그룹처럼 다시 확장하면 된다. 딱 10년, 네 나이 쉰이 넘어갈 때쯤 지금의 그룹 규모로 만드는 건 네 몫이다.”
계열사의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주축이 되는 계열사 몇 개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며 부자는 이미 그룹의 코어를 가졌다.
장기판에서 밀고 밀리는 싸움은 빈번한 법, 그들은 최종 승리를 위해 차, 포쯤은 희생할 각오를 다졌다.
* * *
“부회장님! 지금 검찰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들이닥쳤습니다.”
“뭐?”
“경영지원본부가 타깃인 것 같습니다. 곧장 그리로 향하고 있습니다!”
아들과 회생 자구책을 논의하던 진동기 부회장은 자리를 박차고 달려 나갔고 진태준도 급히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경영지원본부 사무실은 이미 검찰청 직원들이 장악했고 서류와 컴퓨터를 쓸어 담고 있었다.
“이놈들이! 모두 그만두지 못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진동기 부회장이 부들부들 떨며 소리 지르자 젊은 사내 하나가 앞으로 쓱 나섰다.
“잘 아실 만한 분이 이러신다는 건 그만큼 초조하다는 뜻이겠죠?”
“누구야? 넌?”
“아, 죄송합니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 검사, 김지훈입니다.”
“지검장이 시켰어? 내가 빨리 두 손 들게 하려고 먼지 터는 거냐?”
“혹시 진동기 부회장님 아니십니까?”
김지훈 검사는 무슨 소린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갸우뚱했다.
“뭐야? 이놈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진동기 부회장님은 수사 대상이 아닙니다. 검찰은 회사 말아먹은 사람은 관심 없으니까요. 우리 소관도 아니고요. 그러니 우리 지검장님께서 부회장님 두 손을 들게 하려는 건 아니겠죠?”
“이, 이놈이…!”
실실 웃는 게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라고 생각한 진동기는 몸이 떨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 저기 계시네요.”
김지훈 검사는 진동기의 뒤에 서 있는 진태준을 가리켰다.
“진태준 씨 맞죠?”
“…네.”
“조사할 게 좀 있는데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임의동행이니까 거절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다음엔 체포영장을 들고 올 겁니다. 그러니 피차 번거로운 일은 피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검사가 아들을 지목하자 진동기 부회장은 고개를 돌렸다. 당황한 듯, 그리고 불안한 듯 떨리는 아들의 눈동자가 보였다. 이때 김지훈 검사의 협박 같은 말소리가 들렸다.
“체포영장 들고 올 때는 기자들도 잔뜩 데리고 올 겁니다. 아시겠지만 체포할 때는 수갑도 찹니다. 굳이 그 모습을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고 싶다면 지금 안 가셔도 되고요. 어떻습니까?”
“이유가 뭐야? 내 아들이 왜?”
다시 돌아선 진동기가 소리쳤다.
“회사 돈 6백억을 파생상품에 투자해서 홀라당 날려 먹었더군요. 아버지는 무리한 사업에 남의 돈 끌어다 꼬라박고, 아들은 제 주머니 채우겠다고 거금을 갖다 쓰니 회사가 멀쩡할 리가 없죠.”
6백억이라는 말이 나오자 진태준의 안색은 흙빛으로 변했다.
그 모습을 본 진동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검사의 말이 사실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바로 아들의 표정이다.
“빨리 결정하시죠. 우리도 퇴근해야죠.”
웃음기가 쏙 빠진 검사의 말에 진동기 부회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변호사들 호출해.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네. 부회장님.”
직원들이 휴대전화를 꺼내자 진동기는 아들을 향해 말했다.
“넌 입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마. 변호사 올 때까지 기다려.”
“…네.”
진태준이 가까스로 대답하자 김지훈 검사는 머리를 흔들었다.
“묵비권 좋죠. 그런데 입 다물고 말하지 않는 건 통상 범죄 사실을 시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걸 모르시나? 뭐, 아무튼….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지훈 검사는 박스를 챙겨 든 검찰 직원들에게 말했다.
“얼른 갖다놓고 퇴근들 합시다.”
박스 든 검찰 직원들이 빠져나갈 때 진태준은 아버지인 진동기 부회장의 귀에 입을 대고 잠시 속삭였다.
진동기 부회장의 표정이 차츰차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 *
“다 쓸어 갔어요?”
“네, 실장님. 진태준 상무도 참고인으로 순순히 따라갔습니다.”
김윤석 대리는 왠지 신이 난 표정이었다.
“순순히?”
“네. 검사가 체포영장 들고 다시 오겠다면서 협박하니까 꼬랑지 내렸다고 하더군요.”
김지훈이가 일은 잘하는 것 같다. 안하무인인 재벌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 아니다.
“수고했습니다. 저쪽 움직임 잘 감시하고 계속 보고해요.”
“네. 실장님.”
“참, 나가면서 차 두 잔 준비하라고 해요.”
“두 잔요?”
“손님 올 겁니다. 막지 말고 놔두라고 전해요.”
차를 준비할 시간도, 미리 손님 온다는 사실을 밖에 알릴 틈도 없었다.
이미 문을 박차고 들어온 손님이 씩씩대며 소리쳤다.
“야이, 새끼야! 네가 감히 내 아들을 건드려?!”
둘째 큰아버지에게는 김윤석 대리가 보이지 않나 보다. 체통 따위는 집어던지고 쌍스러운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었다.
“김 대리는 나가 봐요.”
그에게 고갯짓을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앉으십시오. 차라도 드시면서….”
역시 가족은 건들면 안 된다. 늘 이성적이던 큰아버지가 내 멱살부터 움켜잡았다.
“이 새끼야! 이런다고 해서 내가 순순히 포기할 것 같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난 그의 눈을 바라보며 진정하기만을 기다렸다.
아들의 횡령은 그가 체념하는 계기일 뿐이다. 이미 포기했고 무너졌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건 바로 자신의 힘으로 아들을 구하지 못하는 현실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곳저곳 급히 전화를 돌렸겠지만 모두 피하거나 난색을 드러내니 내 방으로 달려와서 아들을 빼 오라고 난리 치는 것 아니겠는가?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흔들렸고 내 멱살 잡은 손에 힘이 빠져나갔다.
“이제 앉으시죠. 차 드시면서 진정하시고요.”
진동기 부회장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목이 타는지 물부터 들이켰다.
“먼저 오해는 풀어야겠습니다. 전 파생상품 투자, 말렸습니다. 거액을 벌 수도 있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요. 그리고 그 돈 메꾸느라 내 돈 6백억 가져갔습니다. 쓸데없는 짓 말렸고, 돈까지 빌려줬어요. 남 탓을 하고 싶으시겠지만… 큰아버지도, 태준 형도 욕심 때문에 빚어진 일입니다.”
“네놈이 파놓은 함정이지. 순진한 태준이는 덥석 물었을 테고.”
“맞습니다.”
“뭐야?”
멍한 얼굴이었던 진동기 부회장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함정이라고 말했습니다. 빠지면 죽는다고 경고했고요. 그런데도 뛰어들었습니다. 이래도 제 탓입니까?”
“순진한 게 아니라 멍청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아뇨.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욕심이 과했다고.”
둘째 큰아버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의 입에서 내 힘으로 아들을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는 말이 나오면 지루한 버티기가 끝난 것이다.
“순양을 남에게 넘기는 게 그리 좋으냐? 아니, 내가 그리 싫은 게냐? 건설이 지금 흔들린다고 해서 남에게 훌쩍 던져줄 만큼 가벼운 회사가 아니다.”
조금 망설였지만, 마음을 굳혔다.
완전히 체념하고 내게 머리를 숙이게 하려면 좀 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다.
“남에게 왜 줍니까?”
“……?”
“둘째 큰아버지께서 가진 모든 게 제 손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제가 할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했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순양을 남에게 단 하나라도 넘겨줄 것 같습니까?”
“채권단이 건설을 차지하고 계열사 주식을 손에 넣으면 못 찾아온다. 네가 가진 돈으로 그 주식을 다시 사들일 수 있을 것 같으냐? 억만금을 준다 해도 팔지 않으니 지배지분인 거다. 이학재는 절대 그 지분을 내놓지 않아. 미라클은 바로 우리 순양을 노리는 거다.”
아직 눈치채지 못했나?
하긴, 지금처럼 심란한 상태에서 몇 마디 말만 듣고 모든 걸 꿰뚫어 볼 통찰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게 아닙니다. HW 그룹의 최대주주는 바로 접니다. 아니, 미라클이군요. 바로 그 미라클의 최대주주가 바로 접니다. 방금 큰아버지께서 하신 말씀 전부 맞습니다. 지배지분은 절대 남에게 팔지 않을 것이며 순양그룹 전체를 노리는 것도 맞습니다.”
더할 수 없을 만큼 놀란 진동기 부회장은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잊었다.
강력한 한 방이 되었나?
“순양자동차도 뺏긴 게 아니라 바로 제 손으로 더 키운 겁니다. 아진그룹을 인수했고 대아건설도 먹었습니다. 그 회사 모두 순양이라는 이름을 달아도 됩니다. 우리 가족 중에 할아버지처럼 남의 것을 차지한 사람이 있었던가요? 모두 물려받고 보관하는 데만 급급할 때, 전 남의 것을 뺏었습니다.”
“네…. 네가…?”
“할아버지가 절 가장 예뻐하시고 아끼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순양의 회장 자리에 저만큼 적합한 핏줄이 없었기 때문이죠. 두 분 큰아버지께서 순양의 부회장이 되고 회사를 물려받기 위해 하신 일이라고는 할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것뿐입니다.”
여전히 멍한 그에게 중요한 교훈 하나를 말했다.
“쉽게 얻은 건 쉽게 뺏기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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