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298
“이름은 어떻게 할 거냐? 순양을 지킬 거냐? 아니면 HW에 합병할 생각이냐?”
“대현그룹에서 인수하는 회사들은 HW와 합병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만, 순양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요. 이 부분은 첫째 큰아버지와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학재 회장께서 담판 지을 겁니다.”
“왜? 네가 미라클과 HW의 주인이라는 걸 숨기고 싶어서 이학재 회장을 내세우는 거냐?”
내 정체를 정확히 아는 그의 눈이 빛났다. 착각에 빠지는 거 같아 웃으며 말했다.
“숨길 이유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건설을 인수하는 주체가 바로 HW 그룹이니까 이 회장이 나서는 것뿐입니다. 첫째 큰아버지께 제가 미라클의 주인이라는 걸 말씀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숨기는 게 나을 텐데? 네게 품은 경계심이….”
“큰아버지. 원하는 걸 말씀하십시오. 충고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끙― 하는 짧은 신음 소리를 내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네 사촌들은 문제없도록 하고 싶다.”
결국, 마지막은 자식 걱정이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큰아버지께서 자회사라도 원하신다면 생각해보겠습니다.”
“더는 날 모욕하지 마라!”
순양 창업주의 둘째 아들로 자식들 중 가장 낫다고 평가받았고, 부회장으로서 그룹의 한 축을 맡았다.
차라리 명예로운 은퇴가 낫지 구멍가게 주인장 처지는 죽음보다 더한 치욕일 것이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그룹 일을 계속하는 걸 원하십니까?”
“가능하겠어?”
“태준이 형이야 평판이 좋으니 문제 될 거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준 형은 아직 그룹 일에 손댄 적 없지 않습니까?”
“유럽 지사에서 일 년 일한 게 전부지만 떠돌이로 지낼 수는 없지 않겠어?”
“알겠습니다. 상의해서 자리 만들겠습니다. 그런데 전 해당 계열사 대표에게 분명히 말할 겁니다. 맡은 자리를 감당한 능력이 없다면 언제든 정리해도 된다고 말입니다.”
냉정한 말이었지만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진동기 부회장의 힘만으로도 조그만 자회사 정도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자식들이 마지막 궁지에 몰렸을 때 밥벌이할 수단이다. 지금 당장은 몸통에 붙어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버지 뒷배가 없으니 당연하겠지. 그 정도면 족하다. 대신….”
“염려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직책을 약속드립니다.”
널널한 한직에 앉아 세월이나 보내는 자리일까 걱정하는 그를 안심시켰다.
“더 필요한 게 있으십니까?”
둘째 큰아버지는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그게 내가 가진 지분이다. 계열사가 쭉 빠져나가 버렸으니 가치 없는 지분이 대부분이지만, 아직 쓸 만한 게 좀 남아 있다.”
난 재빨리 지분 리스트를 훑었다. 쓸 만하다는 건 바로 전자와 물산 지분이지만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싸움에서는 한 주의 주식도 아쉬울 터, 반갑기도 했다. 이 지분을 내게 보여주는 건 거래하자는 뜻이다.
돈을 원할 사람이 아니다. 그 정도로 단순한 분은 아니니까.
“내가 이 지분은 묻어 두마. 네 큰아버지에게도 넘기지 않을 거다. 잊지 마라.”
“제가 가장 필요할 때…. 물론 첫째 큰아버지도 가장 필요할 때겠죠.”
“역시 눈치 빠르구나. 그때 이 지분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그의 얼굴에 미소가 서렸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잘 생각하십시오. 가치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 지분으로 대세가 바뀌지 않을 확률이 높아요.”
“네가 확률만으로 투자하는 건 아니겠지? 나도 내 감을 믿어보마.”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자신이 늙어 간다는 사실은 잊은 듯하다.
세월이 지나면 마음도 바뀌는 법. 변하지 않는다면 자신만 괴로울 뿐이다.
“그러세요. 큰아버지의 예측이 정확할지 궁금해지는군요.”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누구는 쓴웃음이겠지만.
* * *
“우리 이 회장을 보면 말이야, 참 부러워. 든든한 물주…. 아니지, 어마어마한 물주 하나 잡고 있으니 이럴 때 싹쓸이하잖아. 참! IMF 때도 그랬지? 아진, 대아 전부 돈 없어 쩔쩔맬 때 돈질해서 다 먹었잖아. 맞지?”
진영기 부회장은 이학재 회장 앞에서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눈에 이학재는 아버지의 영원한 따까리일 뿐이다.
그런 자가 지금 순양이라는 솥단지를 받치는 세 다리 중 하나를 가져가려 하니 진영기의 마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단지 돈만으로 그렇게 되겠습니까? 기회를 놓치지 않은 거겠죠. 기회를 살리는 게 경영의 기본 아닙니까? 하하.”
기회를 놓친 진영기를 비꼬자 그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지금은 옛 영화를 떠올리며 성질부릴 때가 아니니 순식간에 표정을 풀었다.
“아깝지. 이런 찬스가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니까.”
“지나간 건 잊고 파편 정리나 잘 끝냅시다. 괜히 얽힌 지분 때문에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없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생각도 바로 그래. 동기야 내 형제니까 그렇다 쳐도 HW나 이 회장은 완전히 남남 아닌가? 아니, 완전한 남은 아니구먼. 그래도 한때 이 회장이 우리 집 행랑채의 주인이었으니 말이야.”
이번엔 이학재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행랑채의 주인이라니…!
행랑채는 대문과 담벼락을 따라 만든 하인들이 기거하는 방 아닌가?
자신을 머슴이라고 빗대어 말하는 것이다.
“그때가 참 좋았는데….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나 순양은 화려한 자태를 뽐낸 시절 아닙니까?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겨우 반쪽짜리에 불과하니 내 마음도 편하지 않습니다.”
진영기는 제대로 된 주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두 사람은 서로 날 선 대화만 주고받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약속이나 한 듯 두 사람은 찻잔을 들어 어색한 공기를 발려버렸다.
“서로가 가진 주식 내역은 한 식구였으니 모를 리 없고, 어떻게 정리하면 좋겠나?”
어느새 찻잔을 내려놓은 진영기가 부드럽게 말했다.
“부회장님이야 잘 아시겠지만 나는 모릅니다. 제가 순양…. 아니, 행랑채를 떠난 뒤에 지분 구조가 많이 변했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내용도 모르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야 서로의 주주 명부를 까면 될 일이고, 교환 비율을 말하는 걸세.”
이학재는 진영기 부회장을 노려보며 슬쩍 웃었다.
“완전한 분리를 원하는군요. 그렇다면 이 자리에 꼭 함께해야 할 사람이 한 명 더 있지 않을까요?”
“또? 누구?”
“진도준 말입니다. 순양건설과 중공업이 순양금융 계열사 주식을 조금 쥐고 있더군요. 순양과 HW가 확실하게 선을 그으려면 도준이도 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삼자가 서로 꼬리를 붙잡고 있는 형국이니 세 곳을 한 번에 자르지 않으면 결국 연결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야 HW와 도준이 관계는 두 사람이 알아서 할 문제지. 난 이 회장과 정리하고 도준이와 따로 정리할 생각인데…?”
“그건 안 됩니다. 도준이와 부회장님이 확실하게 선을 자르지 않으면 결국 완전한 분리는 없는 셈이니까요.”
“그러니까 이 회장은 확실한 분리를 원한다는 말이구먼. 이건 순양을 셋으로 쪼개자는 뜻 같은데?”
이학재는 진영기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걸리는 걸 놓치지 않았다.
“싫으시다면 이런 어정쩡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수밖에요. 전 확실한 분리가 아니면 지분 정리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거 원…. 어쩔 수 없이 삼자대면해야겠구먼. 알았네. 다시 자리 한번 만드세나.”
“그 전에, 하나만 알아 두십시오. 전 주식의 거래가로 정리하지 않습니다. 우리 HW에 도움될 만한 조건으로 거래할 겁니다. 말씀하셨다시피 든든한 물주가 있으니 돈은 그리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이학재 회장은 몹시 어려운 숙제 하나를 툭 던지고 일어섰다.
* * *
두 사람이 계열분리를 협상할 때 난 하나로 뭉치는 가능성을 타진하며 돌아다녔다.
“진 실장님. 우리가 순양전자나 순양물산의 주식을 쥐고 있는 건 꾸준하게 수익을 내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고객의 돈을 굴리는 건데 수익과 안전을 버릴 수는 없어요.”
“행장님. 돈 맡긴 고객은 그런 거 안 따집니다. 수익만 내면 돼요. 은행이 어떤 곳에 투자했는지 관심도 없다는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시장에 팔아버리는 건 더 위험합니다. 그 많은 물량이 쏟아지면 주가가 떨어져요. 당장 손실 발생합니다.”
전자와 물산의 주식 5% 이상을 쥐고 있는 은행장은 난처한 표정만 지었다.
주가가 높다 보니 마치 적금 넣듯 주식을 확보한 곳이 많다. 이들은 쉽게 시장에 던지지 않으니 시장에서 거래되는 물량은 전체의 20%도 안 된다.
“그 주식을 사겠다는 투자사가 있습니다. 던지는 대로 족족 사들일 테니 오히려 주가가 올라갈 겁니다.”
“혹시 그 투자사가 미라클입니까?”
“그중 하나가 미라클입니다만….”
은행장은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 실장님. 실장님이 우리 금융권에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잘 압니다. 당장 저부터 실장님의 부탁이라면 뭐든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순양전자는 우리의 오랜 파트너라고 생각하십시오. 아니, 시중 4대 은행은 전부 파트너입니다. 안방마님처럼 거래하는 겁니다. 우리가 주가를 받쳐주고 전자와 물산은 막대한 수수료와 이자로 우리를 받쳐줍니다.”
은행장은 다시 짧은 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미라클이 순양을 노린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 아닙니까? 실장님도 한몫 거들고 계시죠? 그런데 외국 자본이 한국의 상징을 차지하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배신의 보복이 두려운 것이다. 장남인 진영기 부회장이 바로 순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를 주군처럼 여긴다.
이학재 회장이 했던 말이 내 입에서도 나왔다.
세다! 정말 세다.
순양공화국이라고 하더니 순양왕국이다. 장자 계승의 원칙이 뿌리까지 박혀 있다. 이 정도까지 한국을 집어삼킨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울 정도다.
다른 곳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프리미엄을 얹어서 팔겠다고 하는 곳도 있었지만, 그런 곳의 지분은 저울에 모래 한 알 올리는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남김없이 긁어 와야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계열분리는 정말 신중해야 한다.
* * *
“진영기 부회장은 완전한 독립을 원해. 네게 잔뜩 겁먹은 게 틀림없다.”
“우리가 놓친 게 하나 있어요.”
“놓친 거?”
“네. 겁먹고 도망치는 점도 있지만 절대 건너지 못하도록 다리를 불태우는 겁니다.”
이학재 회장은 눈을 크게 떴다.
“그 정도야?”
“네. 이번에 계열분리를 끝내면 완벽한 지배 구조를 짜놓은 게 틀림없어요. 절대 흔들리지 않을 철옹성입니다.”
“어쩐지…. 분리하자는 말에 너무 티 나게 좋아하더라니.”
“걸치고 계속 갑시다. 그래야 빈틈이 있을 테고 언젠가는 그 빈틈이 더 크게 벌어질 겁니다.”
“빈틈 메우려다 실수도 하고?”
“네. 초조하다는 건 판단마저 흐리게 하니까요.”
이학재 회장은 골똘히 생각하다 말했다.
“기관들은 어때? 완고해?”
“네. 제 예상을 뛰어넘습니다. 그들을 내 뒤에 줄 세우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진영기 부회장이 약해 보일 때겠지?”
“그렇습니다. 결국, 하나로 통합니다. 공격하고 또 공격해서 진영기 부회장이 쓰러질 수도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됩니다. 그럼 이 싸움은 단번에 끝납니다.”
“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한 번에 끝난다.”
많이 듣던 말이다.
“할아버지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 보여도 모든 일은 허무하리만치 단번에 정리된다고 말입니다.”
의지를 담아 말했을 때 이학재 회장은 내 등을 툭 치며 웃었다.
“일단은 절반의 성공부터 축하하자. 고생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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