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306
“아마 할아버지 생신 때였을 거야. 그때 장난감 말을 내게 주셨는데 강준이 형이 그걸 뺏어 타고 내게 줄 생각을 안 하는 거야.”
“아…. 기억난다. 그때 강준이 다쳤지?”
“응. 내가 강준이 형이 타고 있는 말을 밀어버렸거든. 다리 부러졌지.”
“밀었다고?”
“그래. 아무튼 그때 할아버지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물었을 때 내가 그랬어. 사실은 강준 형이 미워서 그랬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더 혼날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둘러댄 말이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부숴버리겠다?”
“응. 좋아하시던데? 하하.”
어린 시절 추억 이야기가 아님을 진경준도 잘 안다.
나는 변명한 것이었지만, 그는 다르게 써먹어야 한다.
“아버지께 협박이라…. 후레자식 다 됐군. 결혼 뒤에는 아버지 속을 썩인 적이 없었는데….”
내가 모르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의 눈치를 보며 슬쩍 물었다.
“근데… 협박할 만한 거리는 있어?”
“한 지붕 아래에서 산 가족이다. 서로 묻어주고 덮어주며 살았어.”
“내게는 말해주지 않을 거지?”
“강도한테 칼을 쥐여주랴? 누구 좋으라고?”
진경준은 피식 웃었다. 한층 여유 있어 보인다.
“그리고 너, 착각하지 마. 난 네 편이 아냐. 앞으로 내가 우리 형이랑 대립각을 세우고 물어뜯을지는 몰라도 너한테 이로운 일은 안 해. 영준이 형이랑 손잡고 네 목을 조르면 몰라도….”
“역시 한 다리가 무섭네. 한배에서 난 형제라 이거지?”
“그만할까? 생산성 있는 대화는 끝난 것 같고, 더 이야기하다가는 지난번 전화 통화할 때처럼 험한 소리만 나오겠다.”
차남이 계산 빠르다고 했던가? 진영준보다는 훨씬 차분하고 냉정하다.
“그런데 형님.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말해.”
“꼭 형제 편을 들어야 할까? 더 이득 되는 쪽으로 붙는 게 낫지 않아?”
“무슨 소리야? 그건?”
“잘 생각해봐. 영준 형이 전자와 물산을 차지하면 형은 자회사 몇 개 받아서 하청 공장 사장되는 게 전부라고. 그룹에 손가락 하나 담그도록 해줄 것 같아? 그 욕심 많은 우리 집안 장남께서?”
“욕심 많은 우리 집안 막내는 뭐가 다른데?”
“태준 형을 봐. 여전히 건설, 중공업 계열의 재무총괄이사야. 바다 건너 호주에서 폰팔이 하는 형보다 낫지 않아?”
“이 자식이 또…!”
그는 눈을 부라렸지만 비웃지는 못했다. 형제만 아니었다면 내 줄을 잡는 게 더 낫다는 건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피의 농도가 다르다.
“적어도 난 내 손을 잡은 집안 식구는 계열사 사장 자리까지는 생각하고 있어.”
“입에 발린 소리 그만해라.”
“사실이야. 내가 영준 형과 다른 점이 뭔 줄 알아?”
“…….”
그는 말없이 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조금은 흔들렸으려나?
“경준 형이든 태준 형이든 능력만 된다면 순양전자 회장 자리도 줄 수 있어. 내게는 사장이든 회장이든 수많은 그룹 자리 중의 하나일 뿐이야.”
“이젠 아예 순양그룹 주인 행세냐? 기가 차서….”
혀를 차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방이 넓어도 주인이 앉는 의자는 하나야. 나머지는 모두 소파에 앉아야 해. 의자는 내 것이고 소파는 나눠 줄 거야. 난 영준 형처럼 방 밖으로 내쫓지는 않아.”
“그건 인정이 많아서냐?”
“아니. 자신감이지. 난 의자를 지킬 자신이 있으니까.”
진경준은 입술을 깨물며 일어섰다.
“잘난 척하는 거 잘 들었어. 그 의자, 언제 차지하는지 두고 보지.”
“이왕 잘난 척한 거, 하나만 더 해도 될까?”
진경준은 날 한 번 노려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싸울 때는 두 가지만 기억해. 상대의 욕망과 두려움, 이걸 파악하고 정확히 그곳에 당근과 칼을 찔러 넣어. 칼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니까.”
곰곰이 내 말을 곱씹던 진경준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충고는 고맙지만 그렇다고 네 편에 서지는 않아.”
* * *
오랜만에 모인 가족이지만, 저녁 식사 자리는 어색한 기운이 사라지지 않았다.
진영기 부회장은 두 아들을 바라보며 흐뭇해했지만, 진영준은 갑자기 나타난 동생의 속셈을 몰라 불편한 표정이었고 그의 아내 홍소영은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난 동서가 너무 부러운 거 있죠? 뉴욕, 파리, 런던… 이젠 시드니…. 답답한 서울을 벗어나 그림 같은 도시에서만 생활하니 얼마나 좋아요?”
웃으며 말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진경준은 그런 형수를 보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부러우면 뭘 망설이세요? 원하는 곳으로 가면 되잖아요. 전 세계 어디든 현지 법인이 있고, 없다면 만들 수도 있어요. 하와이에 순양 지사 하나 만들까요? 형수님 원하신다면 형님도 가시겠죠, 뭐.”
진영준은 입으로 가져가던 젓가락을 식탁에 탁 놓았다.
“야! 너 지금 형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내가 뭘? 외국 가서 살고 싶으시다잖아. 뭐 어려울 게 있다고?”
“그 말이 아니잖아! 말투 말이야, 말투! 실실 웃으며 비꼬는 거 아냐?”
“그만해라. 밥상머리에서 버르장머리 없이 뭐 하는 게냐?”
진영기 부회장이 버럭 하자 두 아들은 입을 닫았다.
“연락도 없이 갑자기 귀국한 걸 보면 경준이도 할 말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오랜만에 식구가 모였으니 즐겁게 먹자. 네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진경준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고 말했다.
“그런데 어머니는요? 전화도 안 받으시던데…?”
모두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진경준은 단박에 무슨 일인지 짐작했다.
또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오래됐구나.
사람을 붙여 놨으니, 어디서 뭘 하는지는 아버지만 아실 것이다.
진경준은 괜한 말을 꺼냈나 싶어 잠깐 후회했지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딱히 대화 나누고 싶지 않은 형님 내외도 입을 닫았고 아버지도 말없이 수저만 들었다 놨다 했다.
화목한 저녁 식탁을 원했던 아버지께는 미안한 일이지만 자신에게는 불편했던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 버렸다.
저녁을 끝내고 진경준은 아버지와 서재에서 독대했다. 형인 진영준이 끼어들고 싶어 안달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와 단둘이 대화하고 싶다는 말이 힘을 얻었다.
“그래, 무슨 바람이 분 게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저도 본사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이미 아들의 생각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 진영기 부회장은 별말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너도 외국에서만 5년 이상 지냈는데 들어올 때가 됐어. 내가 곧 자리 마련해서 불러올리마.”
“아버지.”
“그래.”
“그 곧이 언제인지 말씀해주십시오.”
“원, 녀석도. 뭐가 그리 급해? 우리 순양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이 이제 막 시작했잖니. 자리 잡을 때까지 딱 1년만 더 고생하거라. 아무리 늦어도 1년은 넘지 않을 게다.”
1년이라는 말에 진경준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룹 승계작업을 전부 끝내고 자신을 부르겠다는 뜻 아닌가? 아버지에게 배신감마저 들었다.
“전 한 달 안에 귀국하고 싶은데요?”
“경준아.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마라. 그게 그리 쉽게….”
“아버지. 저도 이젠 어린애 아닙니다. 왜 1년이라고 하시는지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영준 형에게 모두 물려주는 데 1년 걸린다는 뜻 아닙니까?”
“경준아!”
“왜요? 겨우 두 개 남은 회사, 쪼개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서 형에게 전부 주시는 겁니까?”
“이놈아. 전부라니! 전자와 물산을 제외하고도 스무 개가 넘는 계열사가 있어. 뭘 전부 준다는 말이냐?”
“그 스무 개가 넘는 계열사를 물산과 전자가 지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하―!”
진경준은 아버지의 말이 기가 차는지 한숨을 쉬었다.
“두 주력이 80%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다 합쳐봤자 전자의 반도 안 돼요.”
그 나머지를 다 준다는 뜻도 아니다. 진도준의 말처럼 자신은 하청 공장 몇 개 받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순양전자는 단일 기업으로 재계 순위 10위 안에 든다. 고만고만한 재벌 그룹 몇 개를 합쳐도 순양전자 하나를 못 따라온다.
진짜 원하는 거야 순양전자지만,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는 이미 스스로 타협하고 있었다.
“영준 형이 전자, 제가 물산…. 이게 그리도 과한 욕심입니까?”
진영기 부회장은 예상했던 아들의 말을 직접 듣게 되자 떠올리고 싶지 않은 생각 때문에 울화가 치밀었다.
“네 할아버지가 이리 쪼개고 저리 나눠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다. 화살 한 다발은 부러트리지 못해도 하나씩 부러뜨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는 동화도 있어. 애들도 아는 그 간단한 교훈 하나 못 지킨 네 할아버지 때문에 순양그룹이 어떻게 됐지?”
진경준은 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순양의 모든 것이 당신 것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았는데 반 토막 난 그룹을 손에 들고 있으니 분통 터질 만하다.
하지만 그 책임을 할아버지로 돌리면 안 된다. 싸움에서 진 본인의 책임이다. 이젠 전쟁을 포기하고 도망치려는 나약한 마음 때문이다.
“넌 네 형과 힘을 모아 지금의 순양을 지키고 키워야 해. 전자의 자본과 물산의 힘으로 지금보다 두 배 이상 키워. 그러면 네 몫도 커지는 게야.”
아버지의 구구절절한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진경준의 눈이 커졌다.
힘을 모아?
고만고만한 계열사 몇 개를 떼 주는 것도 아니다. 아예 형 밑에서 일하라는 소리로 들렸다.
“아, 아버지. 설마…?”
“또 뭐?”
“모든 계열사를 전부 형에게 주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죠?”
진영기 부회장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미 본심이 나와 버렸고 아들은 자신의 본심을 읽어버렸다.
“경준아. 이 애비의 말 잘 들어.”
듣고 싶지 않았다. 현실성 있는 말이든 논리적인 말이든 자신은 순양의 오너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만 각인될 뿐이었다.
“난 대현자동차를 모델로 보고 있다. 우린 10년이면 재계 1위의 자리를 다시 차지할 수 있어. 그때면 물산 하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기업에 네 손에 들어갈 거다.”
진경준은 귀를 막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 다시 생각해주십시오. 할아버지께서 아버지께 순양 전부를 물려주셨다면 그걸 삼촌들과 나누셨겠습니까? 고모에게 백화점을 줬겠어요?”
“경준아.”
“그래서 할아버지가 나눈 겁니다. 자식들 다 잘 먹고 잘살라고요. 영준 형이 아버지보다 욕심이 적을 것 같습니까? 키운 다음에 나눠요?”
진경준을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버지께서 형에게 다 준다면 전 평범한 부자 소리 들으며 인생 끝나게 될 겁니다. 제 자식들은 더 평범한 중산층으로 전락하겠죠.”
“이놈아,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널 그렇게 되도록 놔 둘성싶으냐?”
“아버지.”
진경준은 아버지의 눈을 노려보며 말했다.
“할아버지께 형님이 계셨죠? 그분의 후손들이 어떻게 사는지 아십니까?”
진영기는 아들의 질문을 피하고 싶었다.
아들은 자신의 미래를 가족사를 통해 점친 것이다.
“전 그렇게 사라지고 싶지 않습니다.”
진경준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돌아섰다.
“경준아!”
“오랜만에 제 방에서 자고 싶었는데 힘들겠습니다. 내일 회사로 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하시고 대답해주세요.”
서재를 나가자 발걸음을 잡는 진영준이 서 있었다. 이미 큰소리가 오갔으니 다 들었음이 분명하다.
그의 입가에 서린 미소가 바로 그 증거다.
아버지의 입에서 모든 걸 장남에게 준다는 말이 나왔으니 웃음을 참기 힘들 것이다.
진경준은 형의 미소를 보자 진도준의 말이 떠올랐다.
가지지 못할 것 같으면 부숴버려라.
그게 어떤 심정에서 나온 말인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