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31
절반 이상의 국내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는 부동의 절대 강자인 대현자동차.
만년 4위였던 아진 자동차가 야무지고 단단한 소형차 프라우드를 출시해 단번에 2위의 자리를 차지했다.
미세한 차이로 2위에서 3위로 내려앉은 우성자동차는 파트너사인 미국의 GM 자동차를 등에 업고 호시탐탐 2위의 재탈환을 노리고 있다.
가까스로 3위를 유지하던 순양자동차는 업계 꼴찌가 되었다.
자존심 강한 진양철 회장이 사장 하나만 날린 것으로 이 수모를 정리한 건 많이 참은 것이다.
성질 대로라면 임원 열댓 명도 함께 날려야 했지만, 새해 벽두부터 해고 칼춤 추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임직원들의 사기도 고려해야 하는 법이니까.
장남 진영기가 머뭇머뭇하자 진 회장은 놀리듯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골랐어? 스무 개와 한 개, 어느 거 할래?”
“자동차도! 맡겠습니다.”
유난히 ‘도’ 자에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회장님, 현실적으로 2년은 불가능합니다. 개발 중인 신차가 나오는 시점이 내년 연말입니다. 제가 신차 개발에 전력을 다한다 해도… 그리고 신차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해도 그 결과는 내후년에나 나옵니다.”
“부회장아.”
“…네.”
“자네는 지금 자동차 공장으로 빨리 가봐.”
“…?”
“그 공장에는 말이야, 매일 수백 대의 자동차가 쏟아져. 그거 싹 팔아치우면 2위 되는 거 아냐?”
누가 모르는가? 그게 말처럼 쉽다면 이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겠는가? 하지만 입은 다물어야 한다. 절대자의 말 아닌가?
“지금 나오는 자동차 팔 생각은 안 하고 신차만 팔려고? 그게 자네 생각이야?”
“아, 그건 아니고….”
진영기 부회장은 조금이라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 몇 마디 보태려고 했지만 진 회장은 이미 손을 들어 서재 문을 가리켰다.
“빨리 가. 직접 봐야 어떻게 할 건지 생각나겠지. 어서.”
야단치기 위해 나오는 대로 지껄이는 사람이 아니다. 가라면 가야 한다.
토 달면?
포장 공장으로 쫓겨난 사장의 운명을 회장의 아들이라고 해서 피하지는 못한다.
진영기 부회장은 벌떡 일어나 머리를 조금 숙이고 빠른 걸음으로 서재를 빠져나갔다.
문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진 회장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그만하지. 정초부터 잔소리 듣느라 고생했다. 모두 나가서 일봐.”
모두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서재를 줄줄이 빠져나갔다.
하루살이나 다를 바 없는 계열사 사장 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은 안도감이 묻어나는 표정이었다.
“소련은 어떻게 돼가? 가망 없어?”
모두 사라진 서재에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학재에게 진 회장이 물었다.
“그렇습니다. 에너지를 특정 기업에 몰아주기는 힘들다며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물태우네, 보통 사람이네 하지만 보통이 아니야, 그렇지?“
“이 정권의 최대 업적을 북방 외교로 정해서 가능하면 잡음 나지 않게 진행한다고…. 이해해 달랍니다.”
“그래서? 가스 대신 뭘 줄 수 있다는 거야?”
“말씀하신 동독 지원 말입니다. 그 지원 창구를 민간에게 맡긴다 했습니다.”
“민간이라면…?”
“우리 순양이죠. 가전, 식품 지원책입니다.”
“식품? 그걸 어디에다가 써?”
“그래서 가전 100%로 설득 중입니다. 지원 예산 전부 우리 순양 전자 현지공장 건설비용으로 돌릴 겁니다.”
“그 비용은 베를린 장벽이 완전히 무너져야 나오겠지?”
“그렇습니다.”
“그 시점은?”
“우리가 파악한 정보와 안기부에서 파악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9월이나 10월입니다.”
“그럼 가을에 착공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준비하도록 하게.”
“이미 건설사 직원들이 베를린 주변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발전 가능성이 높은 곳에 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헝가리 공장 설비를 동독으로 옮길 계획입니다.”
“역시 이학재야. 일타양피구만.”
이미 헝가리에 진출한 가전 공장이 겨우겨우 명맥만 유지한다. 그 공장을 폐쇄하고 독일로 확장 이전하는 셈이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말이다.
“아닙니다. 겨우 시작일 뿐인데요.”
“일본?”
“네. 동구권의 일본 가전에 대한 애정을 넘어야 합니다. 특히 히타치와 소니, 절대적 아닙니까?”
일본이라는 말에 진 회장은 입술을 깨물었다.
저렴한 가격대비 적당한 성능의 한국 제품. 이것이 글로벌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일본의 기술을 따라잡으려 노력하다 보니 이 정도까지 왔다. 하지만 순양의 제품을 갖고 싶어 안달 난 소비자는 없다. 이 차이를 극복하려 무던히도 애를 쓰지만 베를린 장벽보다 더 높은 엄청난 벽이 보인다. 아직까지는!
진 회장은 일본만 생각하면 열등감에 휩싸여 속이 끓어오른다. 그의 기분을 눈치챈 이학재가 슬며시 딴소리를 꺼냈다.
“참, 일전에 말씀드린 땅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땅? 아, 도준이 땅 말이지?”
“네. 파워쉐어즈 오 사장 말로는 도준이가 땅을 팔고 싶다고 말했지만, 오 사장이 해외 투자를 권유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뭐야? 그놈 믿을 만 하다면서?”
“네. 이번에도 재차 확인했습니다. 괜찮은 놈이에요. 아마도 땅값 상승보다 더 낫다고 판단한 듯 싶은데….”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진 회장은 손을 내저었다.
“됐어. 그냥 매입해.”
“괜찮겠습니까?”
“자네가 재차 확인했다면서? 오 머시기라는 놈이 사기꾼은 아니라고?”
“네.”
“땅값 올라봤자 몇 푼이나 한다고. 맡겨보자고. 그래도… 기특하잖아.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이는 모양새가 말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세대로 매입하는 게 좋겠죠?”
“물론이야. 여차하면 편법 상속이네, 뭐네 하며 말 나올 거다. 딱 시세대로 가격 쳐서 줘.”
“알겠습니다.”
“그리고 파워세어즈 실적 검토해봐.”
“네?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시중은행에 흩어놓은 돈, 그걸 한번 맡겨보는 게 어떨까 해서. 그 돈을 도준이가 투자한 곳에 옮겨 놓으면 괜찮지 않겠어?”
“음…….”
시중은행의 돈, 그건 바로 차명 계좌로 숨겨놓은 진 회장의 개인 비자금을 말한다.
“채권까지 정리할까요?”
“실적 확인하고 적당하다 싶으면 전부.”
“네. 곧바로 조처하겠습니다.”
외국으로 옮겨 놓으면 더 안전한 건 사실이고, 도준이 돈을 추적할 수도 있다. 안전과 감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법이다. 나쁘지 않다.
일본 때문에 가라앉은 기분이 조금 나아지자 진 회장은 이학재와 진짜 회의를 시작했다. 둘만의 회의를.
“어떻게 생각해?”
“죄송합니다. 뭘 말씀하시는 건지…?”
“자동차 말이야. 그리고 영기.”
“부회장이야 나름대로 잘 해내고 있지 않습니까?”
“듣기 좋은 소리나 들으려고 널 내 옆에 두는 거 아니다.”
“아닙니다. 솔직히 내년까지 2위로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하죠. 좀… 심하셨습니다.”
“학재야.”
이런 은근한 목소리와 장난기 어른 표정이 나올 때 가장 긴장된다.
진 회장은 농담 속에 진심을 담는 인간이다.
“네.”
“줄 서냐?“
신하가 태자를 대신해 의견을 내놓을 때 임금은 가장 경계한다고 했던가?
이학재는 당황하지 않고 농담처럼 웃어넘겼다.
“하하,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진심? 그만큼 어렵다 이거지? 좋아. 그럼 네가 대답해봐. 2년 안에 자동차업계 2위로 올라설 수 있는 방법, 진짜 없다고 생각해?”
미소까지 보이며 말하는 진양철 회장.
하지만 이학재는 진 회장과 똑같은 미소를 지을 수 없었다.
“여론이 좋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출혈도 클 테고요.”
“가능성은?”
“이 정권이 나서준다면 50%. 아니라면… 30% 이하일 겁니다.”
두 사람 모두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청와대에서 밥 한번 먹고 싶다고 날 잡아 달라고 해.”
“직접 만나시겠습니까?”
“경제인 만찬 정도면 그럴 듯 할거야.”
“네. 준비하겠습니다.”
정말 시작할 모양이지만 이학재는 반대의견을 내지 않았다. 무모한 모험은 창업주의 권리 아닌가?
오늘부터 순양그룹의 브레인 집단을 풀 가동해야 한다.
지배 구조가 가장 취약한 아진자동차를 삼키기 위해 확보해야 할 지분은 몇 퍼센트인지, 주식 확보에 필요한 투입 비용은 얼마인지 백만 원 단위까지 따져야 하며 여론전도 준비해야 한다.
아진자동차를 공격하기 위해 경영진의 뒷조사도 시작해야 하며 최소한 아진자동차 회장과 사장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워야 한다.
비록 무혐의로 풀려나더라도 말이다.
한창 머릿속이 복잡할 때 진 회장이 생각을 끊어버렸다.
“그런데, 영기 저놈은 왜 이런 생각을 못 할까? 물건 파는 거야 사장이 할 일이지. 저놈은 지가 어떤 자리에 있는지 자각을 못 해.”
“그야 아직 회장님께서 건재하시니까 그런 거죠.”
진 회장은 머리를 저었다.
“아냐. 패권을 놓고 다투는 영주라면 전쟁을 시작하고 영토를 넓히고 성을 쌓아야 한다는 걸 몰라. 영토 안의 일꾼들이 농사지을 땅을 넓혀야 영주 자격이 있는데… 저놈은 일꾼들을 다그쳐서 수확량만 늘리려고 하는 게 눈에 보여. 그릇이 작아.”
“이제는 수성의 시대 아닐까요? 부회장도 그렇게 트레이닝 시키셨지 않습니까?”
“전쟁 본능이 꿈틀거려야지! 지키랬다고 앉아만 있으면 되겠어?”
이학재는 이제부터 입 닫아야 할 타이밍이라는 걸 안다. 요즘 들어 부쩍 부회장을 못마땅하게 말하는 게 빈번해졌다.
그 이유가 진도준의 영향이 아닐까?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진 회장은 자식들에 대한 불만을 터트렸다.
이학재는 잔소리하는 마누라 대하듯 가끔 맞장구치는 게 전부였다.
* * *
80년대가 가고 90년대가 왔다.
새로운 10년은 이천 년대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다. 진양철 회장은 정초부터 의욕을 불태웠지만, 한 달도 가지 않아 모든 것을 전면 수정해야 했다.
90년 시작부터 정가가 술렁이더니 같은 달 22일, 민정당의 총재인 노태우 대통령은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와 청와대 회동에서 3당 해체와 보수 연합신당 창당을 전격 합의해버렸다.
이른바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빅딜이었다. 여소야대 국면은 한순간에 거대 여당으로 변해버렸다.
같은 해 1월 30일 오전 9시, 마포 통일민주당사에는 구백 명 가까운 대의원과 당직자들이 모여 발 디딜 틈 없었다.
이날 진행한 전당대회에서 김영삼 총재는 “얼마나 고뇌했는지 모른다”고 심경을 토로하고, “집권당 간판을 내리게 만든 것은 구국의 차원에서 내린 위대한 결단”이라고 운을 뗐다.
35분간 진행된 전당대회는 “이의 있습니다. 반대토론을 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한 의원과 그의 주장을 찬성하는 십여 명의 반대파를 무시하고 순식간에 합당 찬성으로 끝났다.
그리하여 2월 9일,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탄생해버렸다.
이제 경제계는 눈치를 봐야 할 사람이 하나 더 늘어버렸다.
거대 여당을 이끌며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사람.
진양철 회장은 신문을 집어 던졌다.
이런 젠장, 보통 아닌 능구렁이를 달래 놨더니 깡다구로 뭉친 영감이 몽둥이 들고 나타나다니. 이런 심정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났다.
나는 신문을 주워들었다.
“이 사람이죠? 늘 2등만 하는….”
나는 손을 번쩍 든 세 명의 사진 중에 흰머리의 김영삼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 그 2등이 반장과 손잡고 다음 반장 자리 물려받게 생겼어.”
답답한 마음이 드러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눈빛, 조금 부담스럽다.
“자, 똘똘한 우리 도준이의 생각 한번 들어볼까?”
역시, 이제 재미 붙였나?
“네? 무슨 말씀이세요?”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니? 그 머리 하얀 사람은 고집이 여간 아니거든.”
색다른 시선과 독특한 단어 하나를 원하지만, 이번에는 어린애답게 말했다.
“음…. 그냥 친하게 지내는 게 좋지 않아요?”
“그게 다야?”
“네.”
진 회장이 실망한 것은 얼굴에 드러났다.
어쩔 수 없다.
김영삼 대통령만큼 충격을 많이 던진 인물이 있을까?
그의 충격적인 정책은 나 혼자 알아야 한다. 김영삼 씨의 대통령 재임 기간 5년이 끝날 때쯤 순양그룹의 일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아주 알짜배기인 계열사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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