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316
아침 신문을 펼친 홍소영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벌써 삼 일째다.
순양전자를 언급한 미라클의 레이첼은 별다른 행동 없이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는데 한성일보는 삼 일째 특집 기사를 내는 중이다.
얼핏 보면 주식회사의 주인은 오너 가족이 아니라 주주라는 지극히 평범한 내용이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는 특정인을 겨냥한 것이다. 바로 그녀의 시댁이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아직 아무 말 없지만, 식탁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은 분명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홍소영은 아침 식사 대신 일반인들의 출근길에 합류했다.
누구보다도 일찍 출근하는 홍 회장은 아침부터 회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딸을 보자 걱정이 앞섰고 혹시나 시댁에서 혹독한 질책을 받았나 싶어 마음도 조금 아팠다.
“이른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홍 회장은 짐짓 모른 체하며 말했다.
문을 박차고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홍소영의 목소리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아버지가 말씀해주셔야죠. 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눈치 빠른 딸이니 시치미 뗄 필요도, 돌려 가며 말할 필요도 없었다.
“회사 방침이다.”
“그러니까 그 방침이 뭐냐고요?”
“네 시댁보다 더 큰 광고주를 따르기로 한 게다. 회사를 위하는 일이니 네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야.”
“아버지는 사위까지 버리고 새파란 막내를 선택하신 겁니까?”
“새파란 애가 아니라 가장 큰 광고주다. 누가 보더라도 타당한 선택이야.”
타당하다는 아버지의 말에 홍소영의 억눌렀던 분노가 터져버렸다.
“그 타당한 선택을 할 때, 딸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었나 보죠?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어요!”
“기대는 않는다마는 혹시나 해서 묻는다. 시댁에서 뭐라고 하더냐? 따져보라고 시키던?”
“아빠!”
홍소영은 어릴 때 말버릇이 나올 정도로 흥분했다.
“정말 내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셨죠? 아니, 외손주 생각은 안 나시던가요?”
“진정하고 그 정도로 끝내. 이건 일이다. 너도 시댁보다는 친정인 한성일보 걱정을 먼저 해야 하는 게 맞아.”
부녀는 한동안 서로 노려보기만 했다.
먼저 입은 연 사람은 딸이었다. 그녀는 침착을 되찾았고 아주 현실적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계속 이렇게 나가시면 전 그 집에서 못 살아요. 그건 생각해보셨어요?”
“더 심한 생각도 했다.”
“네?”
“네 시댁이 그나마 남은 전자와 물산마저 뺏기면 과연 네가 그 집 맏며느리 노릇을 계속할까? 아니, 계속해야 하나…? 이런 생각 말이다.”
홍 회장은 흔들리는 딸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얼굴 한번 보고 결혼한 너다. 네가 십여 년을 진 서방과 살 맞대고 살면서 애를 둘이나 낳았지만, 너희 두 사람이 따뜻한 눈길 한 번 주고받는 걸 이 애비는 본 적이 없다. 내가 잘못 본 게냐?”
그녀가 원했고 지금도 원하는 건 순양그룹의 안주인 자리다. 진영준이 매일 밤 여자 분 냄새 풍기며 들어왔지만, 그것 때문에 화가 나지는 않았다.
분통 터지는 걸 참지 못할 때도 있었다. 고모가 백화점을 날려 먹었을 때, 건설과 중공업을 HW 그룹이 차지했을 때만큼은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시아버지의 무능을 퍼부었다.
“이미 저울은 기울었어. 진도준 그놈은 돌아가신 진 회장이 낙점한 만큼 대단한 놈이다. 사돈은 진동기 부회장처럼 그룹에서 손을 뗄 게다. 네 남편도 마찬가지고.”
나지막이 말하는 홍 회장은 딸의 모습을 살폈다. 버럭 하며 소리 지르지 않는 걸 보니 그녀도 위기는 느끼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내가 의리를 지킨답시고 난파선 돛대를 붙들고 있다가는 넌 시댁과 친정이 한꺼번에 가라앉는 모습만 보게 되겠지. 그걸 바라는 게냐?”
연신 한숨만 내쉬며 앉아 있던 홍소영은 홍 회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틀렸다면 어쩌실 거예요?”
“뭐?”
“전자와 물산을 뺏기지 않고 잘 지켜내고, 대현자동차그룹처럼 두 회사를 바탕으로 계열사를 더욱 늘려서 예전의 기세를 되찾으면 어쩌실 거냐고요?”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어.”
홍소영은 백을 챙기며 일어섰다.
“부디 아버지가 옳은 판단 했기를 바래요. 아니라면 아버지는 딸자식 인생까지 망쳐버리게 한 셈이니까요. 그런데 아버지….”
홍 회장은 딸의 굳어버린 표정에 심장이 덜컹했다.
“난파선 선장인 시아버지, 기관장인 내 남편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하고 평안해요. 이건 왜일까? 한번 알아보세요.”
힘없이 돌아서서 나가는 딸의 뒷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홍 회장은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사돈댁은 평안할 리가 없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
“도대체 넌 한성일보를 어떻게 구워삶았어? 거긴 영원한 적군 아니었나?”
이학재 회장은 신문을 툭 던지며 말했다.
“세상에 영원한 적이 어디 있습니까? 주고받을 거 있으면 둘도 없는 친구인 척하는 거죠.”
“넌 뭘 줬는데?”
“언론사에 줄 거라고는 광고 말고 또 있습니까? 참, HW 그룹 광고, 이제는 적당히 나눠 줘도 됩니다.”
“네가 받은 건 뭔데?’’
“뻔하죠, 뭐. 이제 용비어천가를 부를 겁니다. 주인공은 제가 될 거고요. 흐흐.”
“그 집도 이제 회오리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겠구먼.”
“아시면서 뭘 그러세요? 무늬만 부부였는데. 어? 그러고 보니 영준이 형 좋아하겠는데요? 이제 돌싱 되면 세상 여자 다 가지려고 방방 뛰어다닐 테니….”
“영준이는 아직도 그러고 다니냐?”
이 회장은 한심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요즘은 걸그룹 애들에게 빠져서 정신 못 차린다고 하더군요. 상준 형이 그러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삼촌 팬이라고 기획사들이 극진히 대접한다더군요.”
“설마 요즘 광고 모델로 얼굴 내미는 애들, 영준이 손을 거쳐 간 거야?”
“아뇨. 요즘은 그렇게 노골적으로는 안 한다네요. 행사 뛰느라 몸 축나니까 보약값이나 하라고 기획사 사장에게 몇천만 원 툭 던져주고 싱글 음원 비용이나 뮤비 찍으라고 몇억 던져준답니다.”
“사장에게? 여자애 아니고?”
“네. 기획사 사장은 세금 한 푼 안 내는 캐시 들어오니까 좋아 죽는 거죠. 그러니까 신인 키우는 기획사는 영준 형에게 얼굴 비치려고 줄 선답니다. 물론 걸그룹 애들에게는 용돈 주고 차를 사 주기도 하고요.”
이 회장은 날 흘겨보기 시작했다.
“너 설마 그런 자료 모으냐?”
“아주 결정적인 거 두어 개는 쥐고 있습니 다. 필요할 때 한성일보가 터트리면 형수가 좋아하겠네. 이혼 사유로 이 보다 더 적당한 게 어디 있습니까?”
“친형을 그런 뒷조사하는 데 써먹다니. 너도 참 못돼 처먹었어.”
“그 업계에 있으니까 저절로 아는 거지 딱히 조사 같은 건 하지도 않았어요.”
절반만 사실이다.
보통은 소문만 듣게 되지만 상준 형은 꽤 치명적인 소문일 경우에는 꼭 사실 확인까지 했다. 내가 부탁한 건 아니었지만 내게 도움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리한 것이다.
우리 집안에서 형제끼리 돕고 사는 건 나와 상준 형이 전부다.
“그보다도 논의드릴 게 좀 있습니다.”
“말해.”
“이번 저축은행 사태로 일곱 곳 정도가 문을 닫습니다.”
저축은행은 1972년에 탄생한 상호신용금고의 다른 이름이다.
대기업 중심의 시중은행을 대신해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서’ 탄생했지만, 돈이 서민과 중소 기업을 위해 움직일 리가 없다.
2000년 중반부터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 로 떠오르며 저축은행은 전성기를 맞았다.
2010년 말 PF 대출은 17조 4000억 원에 달할 만큼 모든 돈은 부산에 집중됐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PF 대출은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자 속절없이 무너졌다. 온갖 부실과 부정한 비리가 판을 치던 저축은행은 정부의 한참 늦어버린 조치로 최악의 상태를 맞이한 것이다.
가장 썩은 내가 나는 부분은 영업정지 하루 전, 거액을 예치한 큰손들은 예치한 돈을 전부 인출해서 유유히 사라졌고, 이자 좀 더 받으려 알토란 같은 돈을 예금한 일반 서민들만 그 돈을 몽땅 날린 점이었다.
“우리와 상관없잖아. 혹시 순양금융이 거기 발 담갔어?”
“아뇨. 제가 푼돈 먹자고 손대겠습니까? 그게 아니라 순양생명과 증권에서 저축은행 부실 정리가 마무리될 때쯤 적당 한 거 하나 인수하는 게 어떠냐고 하더군요.”
이 회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저축은행은 아무래도 급전 땡겨 쓰기 좋으니까 자동차나 건설, 중공업에서 필요할 것 같긴 합니다. 회장님께서 필요하다고 판단하시면 진행하려고요.”
“너 이제 네 돈 안 쓰려고? 미라클이 우리 HW 그룹의 저축은행이잖아. 흐흐.”
“기회 있을 때 하나라도 더 챙겨놓는 게 나쁘지는 않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면….”
“진행하자. 언제까지 대주주 주머니만 믿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네. 그럼 인수 자금 절반은 HW 그룹에서 내는 걸로 하겠습니다.”
“뭐?”
이 회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장 빈번하게 은행 돈 가져다 쓰실 분이 왜 그러세요? 투자도 좀 하세요.”
“이야, 너도 이제 완전히 재벌 다 됐구나. 자기 돈 안 쓰고 회사 돈으로 불려 나가겠다, 이거지? 하하.”
우리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음을 터트릴 때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一 실장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여의도 미라클에서 온 전화였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一 임시주주총회가 열린답니다. 여의도가 발칵 뒤집혔어요.
“진정하고 자세히 말해봐요. 어디 말입니까?”
一 순양물산입니다.
“뭐? 순양물산?”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순양물산이라는 말에 이 회장도 놀랐는지 눈을 깜박거렸다.
一 네. 안건은 합병이 분명하답니다.
“합병이라니? 순양물산이 어디와 합병한다는 거요?”
一 그게…. 순양애드미디어와….
순양애드미디어라면 광고 회사 아닌가?
번개를 한 방 맞은 것 같았다.
진영준은 이 회사의 지분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
전화를 끊고 이 회장에게 말했다.
“순양물산과 순양애드미디어를 합병한답니다. 곧 임시 주총이 열릴 거라고요.”
“뭐? 애드미디어? 그게 말이 돼?”
말이 되는 방법은 딱 하나다.
순양물산 주식 한 주와 순양애드미디어 주식 천 주 정도의 비율로 합병하면 된다.
보통은 이런 복잡한 방법을 쓰지 않고 순양물산이 순양애드미디어의 주식 51% 이상을 매입해서 인수하는 게 정석이다. 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순양애드미디어 지분 구조 빨리 파악해서 알려줘요.
이 회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아, 난데…. 무슨 일 있어? 소문 돌던데? 물산이 어디 조그만 회사와 합병한다고 말이야. 뭐? 몰라? 야! 네가 그걸 모를 리가 없잖아! 이제 내 얼굴 안 볼 참이야?”
수화기에 대고 몇 번 소리를 지르더니 힘없이 끊었다.
“사실이란다. 순양물산 기획실 임원인데…. 자기도 조금 전 주주총회 준비 공문 받았다고….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철저히 비밀로 진행한 거 같다고 하는구나.”
“이 건으로 주총까지 여는 거 보면…….”
“합병 비율로 장난치는 거다.”
“설마 1:1 비율로…?”
“그러기야 하겠어? 그랬다가는 주가 폭락인데 주주들이 가만있지는 않을 거야. 높게 잡아도 1:10이야.”
위안하는 말일 뿐이다.
이건 순양물산의 지배력을 확실하게 하는 방법이니 분명히 1:1 비율로 합병한다.
다시 전화가 울렸다.
一 78%가 진영준, 10%는 진영기 부회장 소유입니다. 나머지는 순양애드미디어의 임원들이고요.
이런 젠장, 예상한 대로 100% 진영준 회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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