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318
집안의 막내가 재산을 차지하는 게 그 정도까지 국민 정서에 어긋나는 걸까? 그런 잡음이 나지 않도록 PI 전문가까지 고용해서 이미지를 만들지 않았던가.
순양가의 가장 뛰어난 천재적인 경영자.
이 이미지가 얼마나 먹혔는지 여론 조사까지 수차례 했다.
순양그룹의 경영자로 가장 적합한 인물은 누구인가?
이 질문의 대답으로 내 이름이 압도적이었다. 고령층은 누가 누군지도 모르니 장남이라고 대답했지만 말이다.
영문을 몰라 눈만 휘둥그레진 나를 보며 이 회장은 짧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가 레이첼을 통해 툭 던진 그 말, 그걸 이용하는 거다.”
무슨 뜻인지 알겠다.
“설마 애국심이니 국부 유출이니 하는 것 말입니까? 그게 먹히겠어요?”
“일부는 먹히겠지. 하지만 순양전자 주식은 예금의 성격이 강해.”
예금은 안전이 일 순위다. 순양물산의 합병은 순양전자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일이니 순양전자도 변함이 없다.
“전횡을 일삼는 오너 가족보다는 전문 경영인이 전자를 맡으면 주가가 두 배는 뛸 텐데….”
“일반인들이 그런 걸 알면 순양그룹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못했다. 각각 독립적인 회사만 존재했을 거야.”
누굴 탓하겠는가? 이런 국민 정서 때문에 순양가, 대현가 같은 말이 나오고 내가 순양그룹을 차지하더라도 모두 머리를 끄덕일 것 아닌가?
“그럼 개인 주주는 다 날리고… 기관 세 곳은….”
서류를 보자 저절로 이마에 깊은 주름이 됐다.
은행 한 곳은 순양전자의 주거래 은행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나머지 두 곳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산업은행, 그리고 국민연금공단이라….”
“이제 알겠냐? 저들이 합병에 자신감을 내보이는 이유를?”
“하나는 확실하게 알겠군요. 누가 승인했는지.”
이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승인이 아니라 묵인이다. 세종로나 여의도는 가타부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뿐이야.”
“책임질 일 만들지 않겠다는 거군요.”
“그래. 국민연금공단이 소유한 순양물산 주식은 국민의 것인데 그 가치를 확 떨어트리는 일에 손을 들어주는 거야. 누군가 나서서 문제 삼고 따지고 들면 곤란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
다시 서류를 확인했다.
물산과 애드미디어의 합병을 전제로 한 지분구조를 꼼꼼히 들여다보니 한숨이 나왔다.
진영준은 물산을 확실하게 장악한다. 그 말은 물산과 연계된 계열사를 장악한다는 뜻이며 순양전자 역시 손아귀에 넣는다는 말이다.
물론 전자와 연계된 다른 계열사 전체도 그놈의 주머니에 들어간다.
두 주력 회사를 손에 넣고 그놈 지분 100%의 자회사를 잔뜩 늘려서 전자와 물산의 주식을 흩어버리면? 과연 되찾아 올 기회가 남아 있을까?
어두워진 내 표정을 본 이학재 회장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주주총회… 개판 쳐버릴까?”
전문 총회꾼 불러다가 주주총회를 무산시켜버리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시간을 좀 더 끄는 수단일 뿐이다.
“소용없다는 걸 잘 아시면서….”
“시간도 벌고 합병을 묵인하는 놈들에게 압박을 주는 거지. 시끄러운 일이 벌어지는 걸 가장 꺼리는 게 정치하는 놈들 아니냐? 합병이 그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고….”
이 회장은 다시 한 번 내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가 가진 걸 써서 원점으로 돌리게 만드는 거야.”
“내가 가진 거…? 아…!’’
할아버지가 남기신 그 장부를 말하는 것이다. 그 장부에 이름 올린 사람들을 협박한다면 합병은커녕 주총도 열리지 못 한다.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사실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이 바로 그 장부였다.
하지만 유혹을 뿌리쳤다.
“그건 영원히 쓰면 안 됩니다. 그냥 기록으로 존재해야 하는 겁니다.”
“이 정도 다급할 때라면 회장님도 쓰셨을 거다.”
“아뇨. 할아버지도 저와 같은 생각이실 겁니다. 그 장부를 사용하는 순간 순양은 더 이상 순양이 아니게 됩니다.”
“순양이 아니게 된다…?”
“우리만큼 다른 재벌들도 돈 뿌립니다. 하지만 언론에, 검찰에 그리고 국회에서 그들의 이름은 늘 오르내리지만, 우리 순양의 이름은 꽤 오래전부터 자취를 감췄어요.”
“그게 기록으로만 존재해야 하는 이유냐? 절대 써먹지도 못하고?”
“네. 다른 재벌의 돈을 챙긴 사람들은 받은 돈만큼만 도와줍니다. 하지만 순양은 다르죠. 절대 탈 나지 않는다는 믿음, 해준 것 이상으로 챙겨준다는 기대. 이것 때문에 자진해서 우리를 도와줍니다. 마치 미녀의 손길을 한 번이라도 더 받기 위해 꽃다발을 안기는 사내들처럼 말입니다.”
이 회장은 머리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는 안다만 전자와 물산을 잃어버리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 장부에 이름 올린 놈들은 너와 진영준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남에게 뺏기는 게 아니라 회장님의 핏줄이 나눠 가지는 모양새니까 말이다.”
“제가 그룹을 전부 차지하는 게 끝이라면 장부를 썼을 겁니다. 하지만 그 뒤도 생각해야죠. 이 나라에서 영원히 순양으로 남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계속 미모의 여인으로 존재해야죠.”
그제야 이 회장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회장님이 네게 장부를 물려준 건 참으로 현명하신 선택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구나. 진영기 부회장이나 영준이 놈이었다면 그 장부를 흔들고 다니며 온갖 무리한 요구를 다 했을 거다.”
이 회장의 칭찬이 용기를 북돋웠지만, 여전히 답답했다.
이럴 때 먼저 해야 할 일은 부닥쳐보는 것이다.
“그럼 한번 만나 볼까요?”
“누굴? 진영기 부회장?”
“아뇨. 영준이 형요. 두 주력사를 손에 넣고 뭘 하려는지 확인해야겠습니다. 도망치려는 건지 아니면 그걸 밑천으로 다시 판을 벌일지 말입니다.”
“그거 확인해서 뭐하게?”
“도망치지 않고 다시 판 깔도록 도발이라도 해야죠. 밑져야 본전 아닙니까?”
이 회장은 웃으며 일어서는 날 보며 말했다.
“아예 숨어버리는 건 아닌지 그게 더 걱정이다. 살살해.”
* * *
“네가 직접 날 찾은 걸 보니 초조한가 보지?”
진영준은 날 보자마자 피식 웃었다.
팍 쪼그라들고 거기에 만족하는 주제에 승자 같은 표정이다.
“그렇게 발 빠른지 몰랐어. 이럴 줄 알았다면 발부터 묶어 뒀어야 하는 건데.”
“헛소리나 하려면 돌아가고. 용건만 말해.”
“정말 물산과 전자만 있으면 돼? 이런 식으로 나오면 국경에 담쌓는 꼴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내 걱정은 접어 둬. 난 만족하니까. 특히 네가 직접 찾아와서 날 긁는 걸 보니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게 확실하다. 네가 다른 사람 열 받게 할 때는 늘 이유가 있었지. 흐흐.”
이번은 아니다.
얕은꾀를 부린 이놈을 그냥 열 받게 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밥값 좀 했다고 들었는데, 직접 관계된 사람들 다 만나서 설득했다면서?”
“쉬운 일이지. 네가 금융 그룹, 백화점 그룹, 건설 중공업 그룹을 가졌고 내가 전자 물산 그룹을 갖겠다고 하니 모두 머리를 끄덕이더라. 누가 보더라도 내가 밀려난 장남으로 보이거든. 뭐…. 사실이기도 하고.”
많이 달라졌다. 한결 여유가 있어 보인다.
“힘들게 뛰어다니며 뒤집으려 하지 마. 그 사람들, 이구동성으로 말할 거다. 그 정도면 네가 충분히 가졌으니 욕심 그만 부리라고 말이야.”
“나야 그렇다 치고, 전자와 물산만으로 만족하는 걸 보니 형은 마음 비웠나 보네. 내가 가진 거 탐나지 않아?”
“그다지. 흐흐.”
도발에 넘어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씁쓸한 웃음이 아니라 약간의 아쉬움만 감도는 표정이었다.
“자동차는 조금 탐나지만, 나머지는 금방 채울 수 있거든. 건설, 중공업, 증권, 백화점, 호텔…. 고만고만한 거 널렸어. 인수해서 키우면 돼. 하지만 넌? 순양전자와 순양물산만 한 건 이 나라에 없어. 맨땅에 머리 박고 시작해야 하는데…. 가능하겠어?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 돈만 날릴 거야.”
이젠 충고까지?
이놈과 난 바라보는 곳이 다르다.
난 이놈이 가진 걸 다 뺏고 시궁창에 처박는 게 목적이지만 이놈은 자신이 가진 걸 지키고 더 키우는 게 전부다. 진영준은 나 혼자 남겨 두고 링을 내려갔고 체급과 종목을 바꿔 버렸다. 두 번 다시 판을 벌이지 않을 것이다.
“충고는 고마운데 주총부터 잘 끝내야 하지 않겠어?”
“왜? 막아보려고?”
“이대로 구경만 하고 있기에는 내 손에 쥔 무기가 좀 많아서.”
“자신 있으면 해보든지. 아버지와 내가 주주들에게 공들인 게 어느 정돈지 알면 그런 소리 못 할 텐데…. 말리지는 않으마. 뭐라도 해야 마음 편하다면 그렇게 해야겠지.”
갑자기 진영준은 상대하기 어려운 놈으로 변해버렸다.
마음 비우고 싸울 마음 없는 놈의 멱살을 쥐고 흔들어봤자 기운만 빠진다. 싸워야 할 상대는 이놈이 아니다.
* * *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아닙니다. 순양금융그룹의 실세이신 분이 뵙자고 하는데 냉큼 달려와야죠. 허허.”
현완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장도형 부사장의 깍듯한 인사를 받으며 자리에 앉았다.
공손한 듯 들리는 말투지만 표정과 태도는 정반대다. 돈이 벼슬인 세상이다.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이며 무려 600조 원에 가까운 국민연금을 굴리는 자리의 수장이다. 오죽하면 ‘자본시장의 대통령’ 이라고 부르겠는가?
국내 주식 보유 금액만 100조 원이 넘고 해외 주식도 마찬가지다. 채권이 300조, 기타 투자도 100조 원에 달한다.
현완주 본부장이 외국을 방문하면 최소한 장관급이 영접하며 원한다면 그 나라의 국가원수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런 그가 아무리 순양이라 해도 부사장인 장도형에게 머리 숙일 이유는 없었다.
술 한잔 나누며 식사하면서 가볍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장도형 부사장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증권가가 떠들썩합니다. 이유는 잘 아시겠죠?”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순양그룹 사람들에게는 큰일이겠지만 민간 기업이 합치고 찢어지는 일이야 다반사 아닙니까?”
“너무 기이한 합병이니 그런 게지요. 항공모함과 나룻배 아니, 뗏목 하나와 합치는 꼴 아닙니까? 순양물산 15% 지분의 국민연금이 찬성한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요.”
“찬성이라니? 누가 그럽니까?”
“아닙니까?”
“아직 결정한 바 없어요. 우리 의견은 주총에서 밝힐 겁니다.”
시치미 떼는 현완주 본부장의 얼굴이 굳어졌다.
“선수끼리 왜 이러십니까? 국민연금이 반대하면 해보나 마나한 안건인데 진영기 부회장이 밀어붙이는 건 그만큼 자신 있다는 소리 아니겠어요?”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의 투자를 책임지기에 금융권 출신이다. 두 사람은 이 바닥에서 함께 뒹굴었던 과거를 공유한다.
“부사장님이야말로 왜 이러십니까? 뻔한 이야기 아니겠어요? 움직이는 사람이 있고 난 그 사람 장단에 맞춘다는 걸 모르시고 묻는 겁니까?”
본부장의 언성이 높아진 건 그도 이 말이 안 되는 합병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까라면 까야 하는 공무원이라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 장단에 맞춰 주시는지 속 시원하게 말씀해주십시오.”
한동안 침묵만 흘렀다.
참다못한 장도형 부사장이 말했다.
“청와대 지시입니까?”
“VIP가 이런 걸 지시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복심(腹心)이 움직이는 거죠.”
“복심?”
VIP의 복심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딱 한 명이다. VP의 친형인 국회의원.
“그분이 지휘하는 겁니다.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는 손발이 돼서 움직이고요.”
대통령의 복심과 주요 부처의 수장이 나섰다면 더 물어볼 것도 없다. 합병은 성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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