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325
저녁부터 새벽까지 진영준의 영장 실질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법원 앞에서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국민의 노후를 위해 모은 피 같은 돈 7조 원을 해먹은 놈을 꼭 구속하라는 요구였다. 물론 그들은 아버지가 준비한 엑스트라 배우들이었지만 꽤 그럴싸했다.
여론과 돈, 이미 구속된 사람들의 진술 등으로 구속을 피할 길이 없었다.
새벽에 진영준이 구속됐다는 속보가 떴고, 이제 시작이다. 아직 법원의 최종 판결은 나오지 않았지만, 전세를 완전히 뒤집으려면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다.
“물산의 합병 무효와 불법으로 취득한 진영준의 물산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이 두 소송을 동시에 진행합니다. 한숨 돌릴 틈을 주면 안 됩니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장도형 부사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누구긴요? 전자와 물산의 임원들이죠. 그들이 진영기 부회장이나 진영준을 배신한다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임시 이사회를 열어 절 대표이사로 추대하는 데 어려움이 없어집니다.”
“그럼 주주총회는 어쩌실 생각입니까?”
자리를 함께한 변호사들은 이사회보다 주주총회를 더 걱정하는 것 같았다. 이사회에서 내가 대표이사로 선임된다 하더라도 주주총회에서 이 사회를 해산해 버리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절 끌어내리기 위한 이사회는 열리지 않도록 해야죠. 그래서 소송이 중요합니다. 아시겠어요?”
“네. 실장님.”
변호사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번 일이 실패로 돌아가면 모두 순양에서 쫓겨난다는 걸 안다. 그리고 성공하기만 하면 지금보다 더 화려한 인생이 펼쳐진다는 것도 안다.
변호사들이 물러나고 우병준 상무가 들어왔다.
“저쪽 상황은 어떻습니까?”
“매일같이 사장들과 임원들을 부릅니다. 진영기 부회장이 단도리 치는 게 분명한데….”
우 상무가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습니까?”
“아직 부회장님이 죽지는 않았습니다. 정부 인사들도 줄줄이 들락거립니다.”
“그래요? 그 사람들 명단은?”
우병준 상무는 리스트 한 장을 내밀었다. 이름을 쭉 훑었고 종이를 찢었다. 확신이 더 굳어졌다.
“전부 떨거지들입니다. 큰아버지의 힘이 미치는 곳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면 더 볼 것도 없습니다.”
일단 한시름 놨다. 하긴, 눈치 하나로 먹고산 공무원들이 대세를 못 읽을 리 없다.
다시 장도형 부사장을 향해 말했다.
“순양전자가 지금 세 파로 나뉘어 있죠?”
“네. 진영준 회장이 구속되고 눈치 싸움이 한창입니다.”
진영기의 수족과 진영준이 임원으로 끌어올린 유학파 신흥 세력. 그리고 휴대폰 사업을 일으켜 전자의 선두에서 달리는 사람들.
이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항상 충돌했다.
“자리 한번 만드세요. 서로 으르렁대는 사람들 한자리에 모이면 그것도 볼만하지 않겠습니까?”
물산은 지분으로 먹고 전자는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차지하면 될 것이다.
* * *
“물산 합병 무효. 진영준의 주식 의결권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제한될 겁니다. 임시 주총을 다시 열면 순양물산은 누구 손에 들어올 것 같습니까?”
찻잔을 앞에 둔 세 사람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임시 주총 없이 이사회 결의로 대표이사에 취임할 생각입니다. 제가 순양물산의 대표이사가 되는 걸 주주들이 싫어한다면 주총을 열어 절 해임하겠죠. 그런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그런 주총이 열릴 것 같습니까?”
그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저도 진영준처럼 물산과 전자의 총괄 CEO가 될 것입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말이죠.”
“말씀대로 될 것 같군요.”
셋 중 가장 늙은 진영기의 사람이 말했다. 이들도 안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언론은 진영준을 국민의 피와 땀인 국민연금 7조 원을 깎아 먹은 천하의 잡놈이며 복잡한 여자 문제로 이혼당한 파렴치한으로 만들었다.
반면에 나는 세계를 누비며 거물들과 어울리는 글로벌 리더의 모습이며 포브스지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부호로 띄워줬다. 나를 반대할 주주는 없으니 순양그룹의 회장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이들도 생각한다.
“그런데 지킬 수는 있습니까?”
아무리 힘이 빠져도 진영준은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그 순간 진영준은 의결권을 되찾고 다시 세력을 규합해서 아주 낮지만 물산을 되찾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곧바로 배신자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들이 걱정하는 점이다.
“제가 물산과 전자의 총괄 CEO가 되면 가장 먼저 두 회사가 보유한 물산, 전자 주식을 전부 매각할 겁니다.”
세 사람은 깜짝 놀랐지만 굴러먹은 짬밥이 다르다. 어디로 팔아넘길지 눈치챘다.
“미라클이야 충분히 소화할 자금력이 있으니 가능하겠군요. 그럼 미라클이 전자와 물산을 지배하고, 전자와 물산이 나머지 계열사를 지배하니 굳건한 지배구조를 갖추는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지금 건설, 중공업, 백화점을 지배하는 구조와 똑같습니다.”
순환출자구조를 수직구조로 바꾼다. 모든 재벌 총수들이 원하는 구조지만 돈이 없어 불가능한 방법이다.
이제 세 사람은 서로 눈치만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 먼저 말 꺼내도록 서로 미루는 것이다. 그 어려운 말은 내가 먼저 꺼냈다.
“이사회 때 만장일치로 날 추대하도록 임원들을 설득하세요. 조건 없이.”
“네?”
“세 분에게 어떤 자리를 줄지, 아니면 아예 해임해버릴지는 제가 전자를 차지하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저와 거래할 생각이라면 포기하세요. 거래는 강자가 제안하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런 자격이 없어요. 누가 더 강자인지는 여러분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부려야 할 사람 중에 진정으로 나를 따르는 사람 외에는 힘으로 눌러야 한다.
거친 정글을 헤치며 높은 자리까지 올라온 이들 같은 능력자들은 타인을 존경하지도 않고 충성심도 없다. 이들에게 통하는 건 단 하나, 두려움이다.
“내가 순양그룹 회장실, 바로 할아버지가 쓰시던 그 방에서 여러분을 다시 만나겠습니다. 그때 거래나 협상이 아닌 부탁을 하십시오. 여러분이 원하는 게 뭔지 들어는 보겠습니다.”
이들의 눈에 서린 불안이 보였다. 많이 봤던 눈빛이다.
바로 할아버지 앞에서 항상 보였던 그 눈빛이기 때문이다.
* * *
진영준은 구속된 지 정확히 3일 만에 연락이 왔다. 그동안 변호사들과 상의하며 기울어진 흐름을 실감했나 보다.
“지금 영준 형은 어디 있는데?”
“네?”
진영준의 변호사는 화들짝 놀라며 더듬거렸다.
“구치소에 없는 거 아니까 괜찮아요. 시멘트 바닥에 등 붙이고 잘 사람이 아냐. 어디요?”
“구치소 근처…. 모텔입니다.”
변호사가 어렵게 털어놓았다.
“사람들 눈이 있으니까 급히 샀겠네. 변호사님 명의요?”
“네.”
“갑시다. 길 잡아요.”
변호사의 차를 뒤따랐다. 김윤석 대리는 불안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실장님, 괜찮겠습니까?”
“왜요? 모텔에서 내게 칼질이라도 할 것 같아서요? 지금 진영준의 목줄은 내가 쥐고 있습니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자고 하는 게 전부니까 염려 말아요.”
김 대리와 수행원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모텔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맨 위층에 계십니다. 그럼.”
변호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주차장의 자동차로 돌아갔다.
모텔방 문을 열자 긴급히 공수한 침대와 소파가 눈에 띄었다. 이 지경이 됐는데도 편안한 잠자리만은 잊어버리지 않았다.
“잘해놓고 사네. 괜찮냐는 인사는 생략할게. 구치소 소장에게 얼마나 줬어?”
“좀 집어 줬다. 앉아.”
이 사실이 들키면 구치소 소장은 파면이다. 하지만 평생 받을 월급과 연금의 수십, 수백 배는 챙겼을 테니 무슨 상관인가?
“복잡하게 하지 말고 1심에서 끝내자.”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네 처갓집, 쎄더라. 판사 새끼 이름이 전부 서씨로 시작해. 담당 검사는 네 동문이고. 구형은 3년 때리고 난 초범이니까 판결은 1년 반, 집행유예면 끝나잖아.”
“장인어른께 부탁하고 동기 놈에게 술 한잔 사줘서 그렇게 끝낸다 쳐. 난 뭘 얻지? 이 상황 만드느라 처바른 돈이 얼만 줄 알아? 본전 찾으려면 까마득해.”
진영준은 꽉 다문 이 사이로 한숨을 한 번 쉬더니 천천히 말했다.
“전자는 그룹의 얼굴이니 네가 갖고, 물산만 계열분리 해서 내가 들고 갈게. 물산 밑에 계열사 대여섯 개만 붙여줘.”
이 자식, 판세를 확실하게 읽었다.
드라마틱한 역전타 같은 건 없으니 큰 결심을 했다.
진영준이 이런 결정을 내리는 데까지 변호사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설득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게 사흘 동안 생각한 최종 결론이야?”
“내가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해? 하나도 남김없이 네가 다 가져가야 속이 시원하겠어?”
“아니,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뭐야?”
“…….”
“큰아버지가 꽁꽁 감춰 뒀던 비자금, 이번에 주식 매입하느라 거의 쓴 걸로 알고 있어. 아닌가?”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맞는 것 같다.
“그럼 형이 쥐고 있는 주식이 전부라는 이야기겠지? 물론 전자와 물산을 차지하면 투자한 비자금 정도야 쉽게 복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고.”
“그냥 말해. 네가 원하는 건 뭐야?”
“형이 쥔 주식 전부 토해 내. 대국민 사과의 뜻으로 기증한다고 하면 법원도 정상참작 할 거야. 물론 기증은 내가 지정하는 재단으로 해야겠지? 그럼 1심 집행유예로 끝낸다. 이 모텔에서 이삼 주만 지내. 부를 여자 많으니까 시간은 금방 갈 거야.”
“이, 이 새끼가 진짜…!”
“형이 가진 순양그룹 주식으로 살 수 있는 건 물산도 아니고 계열사도 아니야. 형량이 전부고 시간은 덤이다. 명심해.”
난 쿠션 좋은 소파에서 일어서며 침대 위에 뒹구는 휴대전화를 가리켰다.
“일주일 뒤에 물산과 전자의 임시 이사회가 열려. 내가 총괄 CEO로 취임할 거야. 내 제안은 딱 1주일 동안만 유효해. 이 사회 끝나면 더는 제안 없어. 그리고…. 이런 건 전화로 말해. 오라 가라 하지 말고.”
온몸을 부르르 떠는 진영준을 보며 모텔방을 빠져나왔다.
* * *
결국 1주일이 지났지만, 진영준은 연락하지 않았다. 그놈도 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다는 걸.
어차피 빠져나오지 못하는 그물에 걸린 놈이다. 진영준은 구치소를 나올 때 다시 처리하면 되고 난 눈앞에 닥친 임시 주주 총회에 전력을 다해야 했다.
순양그룹 대회의실에는 물산과 전자의 등기이사 삼십여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양 사옥 로비와 빌딩 주변에는 백여 명이 넘는 기자들이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진을 쳤고 사원들도 초조하게 기다렸다.
로비 곳곳에 붙은 벽보는 이사들을 압박하는 데 한몫했다.
「우리는 진도준을 지지합니다. 一 순양물산 순양전자 직원 일동.」
이건 내가 시킨 일이 아니다. 직원들의 자발적 행동이었다.
사실 로비로 들어서며 이 벽보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드디어 내가 여기까지 왔다.
입사해서 잔디나 깎던 과거가 떠올라서가 아니다.
내 손을 꼭 쥐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서였다.
“이놈아! 뭘 꾸물대는 거냐? 냉큼 올라가지 않고!”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그리고 내게 이놈 저놈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다.
“작은할아버지!”
주병해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나를 향해 환히 웃으며 서 있었다.
“어찐 일이세요? 여기까지?”
“어쩐 일이긴? 오늘 네놈이 우리 형님 뒤를 이어 회장실에 입성하는 날 아니더냐? 내가 그 순간을 놓칠 리 있느냐? 순양의 공식적인 2대 회장이 나오는 순간인데!”
그렇다.
할아버지 외에 순양그룹 회장을 거쳐 간 사람은 없다.
오늘은 바로 내가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 회장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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