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38
“미국?”
“그렇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본사가 있죠.”
“선생님은 한국 사람이시고요?”
만 36세의 젊은 손정의, 일본 이름 손 마사요시는 영어와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는 중년의 한국 남자 오세현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갸우뚱했다.
“네. 우리 투자사의 자본은 한국입니다만, 주로 미국 기업과 헐리우드 영화에 투자합니다.”
“그럼 만약 투자하신다면 달러를…?”
“그거야 사장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 소프트뱅크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우리 회사도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을 꽤 많이 쥐고 있습니다. 그래서 분기마다 항상 경영보고서를 받죠. 갑자기 일본 실적이 도드라져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
협상할 때 공통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은 꽤 좋은 카드다. 낯선 사람이 아니라 지인과 관계자가 됨으로써 경계심이 묽어지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 미국에서 오시는 길입니까?”
“아뇨. 한국에서 왔습니다.”
“다행이군요.”
살짝 비웃는 듯한 미소.
오세현은 부정적인 반응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가까운 곳에서 오셨으니 제가 덜 미안하군요. 이미 팩스로 알려드렸다시피 지금은 외부 투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직접 왔죠. 손 대표님을 설득하러요.”
“음…. 글로 보셔서 제 생각을 정확히 전달 못 한 것 같아 죄송스럽군요. 어떤 조건이라도 투자는 받지 않습니다. 이 생각은 변하지….”
“열 배 드리죠.”
느닷없이 조건을 던져 버리는 오세현 때문에 손정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게다가 열 배라는 파격적인 제안.
하지만 오세현은 독약을 삼키는 심정으로 말을 뱉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시 주워 담고 싶은 말이었다.
‘애가 뭔 놈의 배포가 이리 큰지… 핏줄은 못 속이나.’
# # #
“도박은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들죠. 아닙니까?”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학교에서 짤짤이라도 하는 거야?”
도박에 이성 잃은 놈을 이 순양그룹에서 수없이 봐왔다. 수백억을 날리고 그 돈을 메꾸려고 회삿돈을 빼돌린다.
횡령으로 검찰 수사망에 걸리면 외국으로 피신해서 다시 카지노를 들락거린다. 순양그룹에서 검찰을 달래고 나면 도박 빚만 잔뜩 진 채 귀국하는 일을 되풀이한다.
이 집안 놈들은 마약은 끊어도 도박은 끊지 못한다. 돈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는 동전 들고 다니는 애 없어요. 만 원짜리 이하도 안 들고 다녀요. 카드는 기본이고요.”
“그래? 역시 있는 집 놈들은 다르구만. 그렇다 치고, 도박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소프트뱅크 사장하고 포커라도 치려고?”
“네. 레이스 한번 해보죠.”
“레이스?”
“소프트뱅크 주식 매입가를 열 배부터 레이스 하는 겁니다.”
“뭐? 아, 아니다. 계속해봐.”
깜짝 놀란 오세현의 얼굴을 오랜만에 본다.
“그다음부터 다섯 배를 계속 더하는 겁니다. 열다섯, 스무 배, 스물다섯 배…. 단, 언제든 멈출 수 있다는 걸 미리 알려줘야죠. 그리고 멈추면 협상은 그 자리에서 끝낸다는 것도요. 되돌릴 수는 없다…. 이게 도박 아닐까요?”
“그 손정의라는 놈, 후달리겠는데? 으하하.”
오세현은 무릎을 탁 치며 크게 웃었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럴듯한데, 목적을 잊어서는 안 돼. 만약 스무 배에 그자가 오케이 한다면 우린 손해 본다. 아니, 열 배만 해도 손해 볼지도 몰라. 우린 투자 이익이 목적이지 소프트뱅크 인수가 목적이 아냐.”
“전 오십 배까지 레이스 할 생각인데요?”
열 배라는 말에는 놀랐지만 오십 배라는 말에는 놀라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표정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 표정 하지 마세요. 델 컴퓨터는 이미 백배가 넘었습니다. 소프트뱅크 주식도 백배가 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 소프트뱅크는 제조사가 아냐. 유통사일 뿐이야. 백배? 돈을 전부 잃을 수도 있어.”
“상대를 도박판에 앉히고 우리만 빠질 수는 없죠. 혼자 치는 포커는 없지 않습니까? 끝은 봐야죠.”
오세현은 별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박 운은 네가 강하니까 이 레이스 한번 해보지. 판돈은 내가 키워보마. 그런데 도준아.”
“네.”
“도박의 끝은 패가망신이다. 명심해라.”
담담한 목소리.
투자사 대표이사가 아니라 아버지의 절친 모습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겁니다.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요.”
오세현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 # #
“지,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열다섯 배 드리겠습니다. 아, 한가지 먼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 의자에서 일어서면 뒤는 돌아보지 않을 겁니다. 또한, 제안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십 배!”
느긋한 오세현과 달리 손정의의 손끝이 떨렸다.
“스물다섯 배.”
“자, 잠깐만요!”
오세현은 판 돈 넉넉한 사람이 레이스를 이끄는 방법 정도는 안다. 상대가 생각할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쉴틈없이 몰아붙여야 패를 덮고 항복한다.
“서른 배.”
“…….”
바로 이때 상대의 떨리는 손이 멈췄다. 게임의 규칙을 깨닫자 평정을 되찾았다. 역시 보통이 아니다.
저 평정의 의미를 알기 힘들었다.
오세현의 판돈을 가늠하고 있는 건지, 진심으로 투자를 원하지 않는 것인지…. 어떤 것일까?
“서른다섯 배.”
역시 침묵이다.
오세현은 의자 곁에 내려놓았던 서류가방을 집어 들었다. 블러핑이었다.
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오세현은 레이스는 계속되었고 손정의는 어디까지 가는지 한번 두고 보자는 마음인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십 배.”
“……콜.”
얼굴에 드러났나? 마지막 베팅 순간을 정확히 알아차렸다.
레이스가 끝나자 손정의의 표정에는 승자의 거만함이 드러났다.
졌다. 쪽팔리지만…….
하지만 오세현에게는 아직 끝난 판이 아니었다.
이제 판돈을 키울 차례다.
“오십 배에 몇 주를 주시겠습니까?”
“그 부분은 내부 회의를 거쳐서….”
“마흔다섯 배.”
“뭐요? 이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눈치 빠른 사람이니 새로운 판이 시작되었고 순식간에 게임의 룰을 알아챘다.
“마흔 배.”
“백만 주. 더 이상은….”
이제 오세현이 상대의 판돈을 읽어내야 한다. 투자 배수가 줄어드니 주식의 양을 늘려야 오십 배의 차익을 건질 수 있다는 걸 모를 사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재빨리 계산을 시작했다. 몇 주를 넘겨야 최대 차익을 남기는가? 하지만 이 판을 이끌어가는 건 오세현이었다.
손정의는 이미 잉여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다시 베팅했다.
“서른다섯 배.”
“오백만.”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가라앉았으니 마지막 베팅이다. 이제 레이스를 멈춰야 했다.
이것은 자존심 싸움이 아니라 협상일 뿐이니까 말이다.
“……콜.”
도박이 끝나자 두 사람 모두 동시에 긴 숨을 내쉬었다.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오세현이 손을 내밀었지만, 마주 잡는 손이 나오지 않았다.
“오백만 주는 지금 당장 무리입니다. 최소 이백만 주는 증자해야 가능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지금에 와서 판을 깨자는 소리는 아닌 듯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해결하자는 의미였다.
“좋습니다. 이백만 주는 증자, 삼백만 주는 인수. 그렇게 결론 내죠.”
그제야 손정의도 손을 내밀며 활짝 웃었다.
액면가 150엔의 주식을 5,250엔에 팔았다. 두 번의 밀고 당김으로 250억 엔을 벌어들인 것이다. 웃음을 참기 힘든 건 당연했다.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만 미라클 인베스트먼트는 제게 생소한데… 자금력이 상당한가 봅니다.”
“그런 편이죠. 지금 당장 현금으로 굴릴 수 있는 돈이 천억엔 이상이니까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손정의를 앞에 두고 오세현은 이미 계약서 초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 * *
“서른다섯 배, 오백만 주로 계약했다. 이제 네 운을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
“염려 마세요. 잘 될 거에요.”
“그런데 진짜 델 주식 다 처분할 거니?”
설득은 포기한 듯 보였고 마지막으로 확인하는 느낌이다.
승승장구하는 주식을 팔고 그 돈의 일부를 황당하기 이를데 없는 가격으로 고작 소프트웨어 유통사의 주식을 매입한다.
누가 보더라도 미친 짓이지만, 이 짓으로 조 단위의 돈을 번 놈이 눈앞에 있다.
“백배 벌었는데 붙잡고 있을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델 주식 처분하고 소프트뱅크 주식 매입 후, 남은 돈은 삼촌이 만지세요. 저도 내년이면 고등학생입니다. 3년간은 공부만 하려고요.”
“학생 입에서 공부한다는 소리가 이렇게 어색한 건 네가 처음이다. 흐흐.”
피식 웃음을 터트리던 오세현은 다시 진지한 표정으로 변했다.
“항상 전교 1등인 네가 서울대 가고 싶어 하는 건 뻔할 테고, 전공은? 아무래도 경영학과나 경제학과겠지?”
“아뇨. 전 법대 갈 건데요?”
“법대?”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오세현은 눈을 깜빡거렸다.
충분히 돈을 벌었으니 판검사나 하며 탱자탱자 살 놈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가인 할아버지와 영국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삼촌이 제 곁에 있는데 대학에서 뭘 배우겠어요?”
“그럼 법대는? 거기서는 뭘 배우려고? 설마 판검사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죠. 그냥 보여주는 거죠.”
“뭘 보여줘?”
“재벌 3세치고는 공부 잘한다는 거요. 아직 재벌 집에서 서울대 간 사람은 있어도 법대 갈만한 성적 낸 사람은 없잖아요.”
법대를 희망하는 진짜 이유를 짐작한 듯 오세현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렸다. 진 회장에게 눈도장 한 번 더 찍으려는 의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특별히 부연설명은 하지 않았다. 굳이 알릴 이유도 없다.
“그렇구나. 자, 그럼 델은? 언제 매각하는 게 좋을까?”
“지금 거래가가 47달러에서 49달러 왔다 갔다 하죠?”
“그래.”
“그럼 그 선에서 다 넘기죠.”
“알았어. 그리고 지금 환율이 달러당 111엔이야. 2억3천만 달러는 소프트뱅크에 넣고 나머지는 네 말대로 내가 관리하마. 됐지?”
이제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다. 미국에서 보내주는 영화 제작 리스트를 보며 투자 여부만 결정하는 게 전부다.
공부에 전념하여 꼭 서울대 법대를 갈 것이다. 한국 고위 관료의 상당수가 여기 출신이다.
이 학교를 나오지 않은 진 회장은 이들을 수족처럼 움직인다. 바로 돈의 힘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끈끈한 줄은 바로 학맥, 그중에서도 대학이다.
나는 한 손에는 돈을, 다른 한 손에는 동문이라는 줄을 쥐고 관료들을 수족처럼 부릴 것이다. 그래야 그들은 스스로를 수족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돕는 동문이라 생각할 것이다.
이 미묘한 차이가 바로 돈으로 사람을 부리는 진영기 부회장보다 내가 조금 더 앞서나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내 계획은 잠시 중단해야 했다.
뜨거운 나날이 계속되던 한여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신문을 펼쳤을 때 모든 헤드라인이 마치 복사라도 한 듯 똑같았다.
[세계 반도체업계 “초비상”]눈이 번쩍 뜨였다.
올해 들어 반도체수출이 상반기 중 단일품목으로 최대인 20억 달러를 넘어서는 등, 단군 이래 최대호황을 누리고 있는데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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