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4
“으헉!”
또 같은 꿈이다.
딱 석 달 전에 있었던 일을 매일 밤 꿈으로 되풀이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두려웠던 죽음의 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잠에서 깨야 하다니.
와신상담도 아니고 이게 무슨 꼴인지…….
이 꿈을 평생 되풀이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6시 10분 전.
6시에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 전 스위치를 끄고 상체를 일으켰다.
침대에서 내려와 잠옷을 벗었다. 내 침실에 딸린 욕실로 들어가 빠르게 샤워를 끝냈다.
교복으로 갈아입고 침실을 나섰다. 맞은편 침실에 처자는 형이라는 놈은 아직 일어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삼십여 개의 계단을 지나 거실에 내려오니 시원한 콩나물 국 냄새가 가득했다.
주방에는 일하는 아주머니가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 중이었다.
콩나물 국은 아침 메뉴에서 빠지지 않는다. 아버지라는 놈이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퍼마시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 새파란 잔디가 초여름의 햇살을 빨아들이며 반짝였다.
정원에 떨어져 있는 신문 세 부를 주워들고 조용히 이 층의 침실로 다시 돌아왔다.
경제지 하나와 종합 일간지 두 부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신문 일 면은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데모 사진이 큼지막이 박혀 있었다.
1987년 6월 26일.
오늘도 데모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29일, 제5 공화국의 대통령이 항복 선언을 할 때까지.
광고까지 전부 읽고 신문을 고이 접었다.
“도준아.”
인기척을 느꼈는지 일하는 아주머니가 우유와 커피 한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내 방문을 두드렸다.
석 달째 듣고 있는 나의 이름.
진도준.
아직 익숙하지 않다.
“안 가져 오셔도 돼요. 내려가서 먹으면 되는데…….”
“이그, 우유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잖아. 커피도 가져왔어. 부모님 보시면 난리 날 테니까 얼른 마셔.”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커피를 홀짝거리는 내 모습을 아주머니는 기특한 듯 지긋한 눈길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는 갑자기 변해버린 날 무척이나 좋아한다.
철딱서니 없는 열 살짜리 꼬마.
툭하면 식탁에서 떼쓰고, 집안일 하는 어른들에게 막 대하는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부잣집 막내가 180도 변했다.
어른에게 항상 존댓말을 하며 늘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반찬 투정은커녕 주는 대로 한 그릇 뚝딱 해치우며 방 청소도 직접하고 틈틈이 집 안 청소도 도와준다.
열 살짜리 꼬마의 의젓함이 어찌 예뻐 보이지 않을까?
“참, 오늘 회장님 생신인 거 알지? 저녁은 회장님댁에서 먹을 테니까 그리 알고 있어.”
“네. 기억해요.”
아주머니는 싹 비운 커피잔과 우유 잔을 든 채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나갔다. 접어놓은 신문까지 챙겨 들고.
드디어 오늘이다.
진도준이라는 10살짜리 어린애가 된 뒤 딱 삼 개월 만에 순양그룹의 창업주 진양철을 만난다.
전생에서는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었지만, 오늘은 숱한 전설을 남긴 그를 직원이 아닌 막내 손자의 신분으로 한 식탁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66세의 할아버지와 10세의 손자.
몰도바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머리에 총알을 박은 채 죽음을 맞이하고 날 죽이라고 지시한 집안의 10살짜리 막내 손자로 환생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신은 내게 복수의 기회를 준 것일까?
아니면 같은 피를 나눈 가족이니 용서하라는 뜻일까?
***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아침 식탁이었다.
끊임없이 조잘대던 12살짜리 나의 형 진상준은 입도 뻥긋하지 않고 밥만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술이 덜 깬 아버지 역시 콩나물국의 국물만 조금씩 떠 먹을 뿐이었다.
그리고…….
오! 어머니.
아름다운 나의 어머니!
부회장의 비서였던 그 아름다운 여인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던 나의 어머니!
공교롭게도 로미오와 줄리엣의 스타 올리비아 핫세와 동갑인 나의 어머니는 한국의 올리비아 핫세로 불리며 혜성같이 등장한 스타였다.
1970년대 초, 단 한 편의 영화로 스타 반열에 오르며 트로이카 여배우 시대의 스타트를 끊었지만, 그녀의 팬이었던 한 남자의 열렬한 구애를 받아들여 결혼에 골인했고 스크린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이 행운의 주인공인 남자는 바로 나의 아버지이자 순양그룹 창업주 진양철 회장의 5남 진윤기였다.
두 사람은 세기의 결혼 주인공이었다.
이 당시 순양그룹은 계열사의 확장을 시작하며 그룹의 초석을 다지는 단계였고 특히, 순양전자가 출범함으로써 본격적인 일본 따라잡기를 시작하는 시기였다.
비록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고 스타였지만 순양그룹의 시선에는 단지 광고모델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닌 평범한 집안의 여자다.
몇 번 데리고 놀기에는 딱이지만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광고모델은 집안이 아니라 호텔로 데리고 가야 한다.
당연히 진양철 회장은 불같이 노했고 족보에서 빼버린다고 길길이 뛰었지만, 배 속에 들어있는 생명의 씨앗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
여기까지는 내가 과거의 언론 기사를 통해 파악한 내용이다. 업무상 회장일가를 속속들이 파악했어야 하니까.
그리고 내 경험으로 아는 것도 있다.
이들 가족은 집안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들 가족의 일 때문에 시간을 쪼갠 적이 없다. 그룹 차원에서는 이들을 관리하지 않았다.
그저 죽은 듯 바짝 엎드려 지냈을 뿐이다.
내가 이들 부부를 대단하게 생각한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창업주인 아버지의 미움을 한몸에 받고 창업주가 죽은 후 장남이 그 자리를 승계할 때 막내 동생인 내 아버지에게는 정말 쥐꼬리만큼 지분을 상속했다.
다른 형제들이 순양그룹의 지분을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똥 밭의 개처럼 싸웠지만, 이들 부부는 그 싸움에서 멀찍이 떨어져 그들만의 삶을 지켜나갔다.
물론 한국 최고의 재벌이니 쥐꼬리라고 해도 일반인은 상상할 수 없는 거액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이 부부는 욕심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도준아.”
“네?”
“왜 그렇게 놀라?”
아직 삼십 대 중반이다. 미모가 여전하다.
그런 아름다운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여전히 쑥스럽다. 언제쯤 익숙해질까?
“아, 아니에요.”
“풋. 이거, 우리 도준이가 너무 어른스러워져서 엄마가 더 놀래.”
석 달 전, 죽음에서 깨어났을 때-이보다 더 나은 표현은 아직 찾지 못했다- 30년 전의 과거로 돌아온 것도 모자라 내가 순양그룹 창업주의 막내 손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시 죽을 것 만큼 놀랐다.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단지 생물학적 부모인 두 사람에게 쉽사리 친근함을 드러내는 건 불가능했다.
아버지의 나이가 지금 서른여덟이다.
전생의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리다.
차마 아빠, 엄마라고 부르기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가까스로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변해버린 아들이다.
깍듯한 호칭과 존댓말이 어색한 열 살짜리 아들이 놀랍기도 할 것이다.
“난 안 갈 거야!”
갑자기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형이라는 놈의 주둥이가 댓발이나 나왔다.
“진짜야. 안 갈 거라고!”
요놈은 또 왜 심통인가 생각하니 대충 짐작이 갔다.
부모님도 표정이 굳어졌지만, 야단치지 못했다.
이놈, 할아버지가 무서운 게 틀림없다.
하긴…. 다른 재벌과 정략결혼을 해야 할 아들이 한낱 여배우와 결혼하겠다고 할 때 마지못해 허락한 원인이 바로 요놈이다.
어찌 고운 눈으로 바라보겠는가?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밥상머리 예절이 이따위라는 건 고운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난 요놈의 부모도 아니며 그 심정을 이해할만한 같은 또래도 아니다.
그리고 요놈의 버릇을 고쳐 놔야 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창업주 할아버지가 요놈 때문에 나까지 괄시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상준아. 아빠가 약속할게. 밥만먹고 빨리 돌아올거야. 괜찮지?”
아버지는 부드러운 말로, 어머니는 미안한 표정으로 큰아들을 달랬지만 요 꼬맹이는 한동안 더 칭얼거렸다.
만약 등교할 시간이 아니었다면 내가 먼저 폭빌했을 것이다.
요 새끼. 학교 다녀와서 보자.
운전기사가 모는 대우 자동차의 고급 세단 뒷좌석에서 나의 철없는 형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침울하게 앉아있었다.
우리 형제가 다닌 국민학교는,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이른바 좀 사는 정도 수준의 부자와 순양그룹 같은 재벌가와 명문가라 불리는 고위관료, 법조인의 자식이 득실대는 명문 사립학교였다.
미래의 회장, 사장들과 미래의 국회의원, 장관들이 동문이며 동창이다. 이들과의 친분 정도가 얼마나 깊냐에 따라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최대한 튀지 않고 사교성을 발휘했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스쿨버스 대신 자가용을 타고 통학하는 아이들은 일부러 교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내려 걸어왔고 ‘잘난 척하지 말라’, ‘튀지 말라’는 의식이 교사와 학생 사이에 공유했다.
하지만 이 학교의 어린 꼬맹이들도 곧 깨달을 것이다.
자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돈과 권력을 물려받을 수 있는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타인 위에서 군림하려 할 것이다.
재수 없는 놈들.
아무튼, 오늘은 학교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순양그룹 창업자와 내가 모시던 놈들의 젊고, 어린 시절의 모습이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할 놈부터 마주했다.
“야! 누가 맘대로 들어오라고 했어? 나가!”
오락실에서나 볼 수 있는 큼지막한 게임기가 세 대나 떡하니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고 침대 위에는 소형 게임기의 전설인 닌텐도의 패미컴이 뒹굴고 있었다.
투덜이 형은 오락실 게임기 앞에서 열심히 단추를 누르며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요놈 자식.
잘 됐다. 기회도 완벽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놈의 뒤로 다가갔다.
그놈이 앉아있는 의자를 걷어차니 바닥에 뒹굴었다.
“야! 너…!”
“아가리 닥쳐, 이 새끼야!.”
그놈의 명치를 지긋이 한번 밟아주니 입도 벙긋하지 못한 채 바둥거렸다.
나는 형의 머리채를 잡고 욕실로 끌고 들어갔다.
***
“도준아! 손이 왜 이래?”
벌겋게 부어버린 내 손을 보고 화들짝 놀란 어머니가 소란을 피웠다.
얼음찜질과 크림을 바르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괜찮습니다. 샤워기 틀면서 실수해서…. 뜨거운 물이 조금 튀었어요.”
“이게 튄 거니? 아휴, 화상 입은 거면 어떡해?”
결국, 주치의까지 급히 달려와 별일 아니라는 진단을 받고서야 한시름 놓은 것 같았다.
내 손이 문제없다면 겁먹은 표정으로 날 보는 형 상준이도 화상을 입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긴 옷을 입은 몸에 뜨거운 샤워기로 겁을 줬으니 나보다 훨씬 경미할 것이다. 끽해봤자 사우나 열탕 수준의 온도니까…….
하지만 곱게 자란 열두 살짜리에는 공포였을 것이다.
지금껏 그 누구도 자신을 이렇게 함부로 대한 적이 없었을 테고 물리적인 폭력을 견뎌낼 만큼 정신이 여물지도 않았다.
물론 두 번, 세 번 갈수록 약발이 약해져서 대들기도 하겠지만, 어린애 하나 굴복시키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 아닌가.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여보, 당신이 직접 운전하게?”
어머니는 운전석 문을 여는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응, 술 안 마실 테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평창동에서 술 마시는 거 봤어?”
평창동.
내가 부모님 집보다 더 자주 들락거린 곳이다.
진양철 창업주가 죽고 장남인 진영기 회장이 차지한 집.
입사 후 첫 업무였던 잡초를 뽑은 곳이기도 하다.
그때는 정말 하찮은 머슴이었는데 지금은 주인의 핏줄이다.
마치 자수성가 후 고향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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