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43
「한도제철의 경쟁력과 중장기 경영전망에 관한 연구」
1. 재무구조 극히 취약.
2. 지나친 외부 차입에 따른 과다한 금융비용.
3. 대규모 적자 확실.
4. 국민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모한 투자
5. 한도제철의 생존 및 발전을 위해서는 포항제철의 협력이 불가피.
6. 결론.
한도제철은 물론 그룹 전체적으로 취약한 재무구조와 그룹 전체 매출 1조3억 원(내부거래 제외 시 5천9백억 원) 규모로 4조3천억 원이라는 막대한 투자자금을 감당하기에는 규모 면에서 무리이고, 부동산 매각에 따른 자기 자금 조달은 부동산의 규모 및 현재 시장 상황을 고려해보면 현실감이 없는 것으로 판단되며, 금융기관 차입도 정책적인 배려 없이는 어려움이 뒤따를 것으로 사료됨.
두꺼운 보고서를 정리하면 이런 내용이었다.
95년 기준으로 계열사 13개, 재계서열 18위임에도 실질적인 그룹 매출이 고작 4천억에 불과하다.
한도그룹, 특히 한도제철은 그야말로 빚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이었다. 이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은 한 달 남짓 남았다.
순양그룹에서 이런 보고서가 나왔다는 것은 한도제철의 부도는 이미 재계에서 예견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한도제철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진 회장이 내게 이 보고서를 던져준 이유는 뭘까?
한도제철의 부도 이후를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부도난 한도제철을 인수하려는 것일까?
후자일 가능성이 분명하다. 순양중공업, 순양기계 그리고 순양자동차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욕심낼만하다. 단, 헐값에 인수한다면.
순양그룹의 사내유보금을 생각한다면 부도난 회사 하나를 인수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
더욱이 순양의 로비 능력이라면 인수 조건에 수조 원의 부채탕감을 집어넣는 것쯤은 큰일도 아니다. 핵심 관계자 열 명, 그들에게 각 10억. 100억이면 수조 원의 손실을 국민의 혈세로 땜질하는 일, 어디 한두 번이던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한도제철의 외부 차입금 중 1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쪽 핫머니다. 환율 800원인 지금이야 이자 지급이나 원금 상환에 큰 무리가 없지만 1년 뒤에는 지불 불가다.
한도제철은 독개구리다.
삼키는 순간 서서히 독이 퍼질 것이고 해독제를 구하지 못하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해독제는 바로 달러, 거액의 달러다.
해독제는 내 손에 있으니 누가 삼키던 구해줄 수 있다. 결정해야 할 문제는 누가 삼키게 할건지, 치료비는 얼마나 청구할지만 남았다.
쉬운 결정이다. 나는 순양그룹의 계열사 몇 개를 치료비로 청구하고 싶으니까 할아버지가 독개구리를 삼키고 싶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 * *
“생산규모 연간 800,000M/T, 회장 및 그 일족이 34.65%의 주식을 소유,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1989년부터 건설 부문의 손실로 부채비율 300% 초과, 차입금 의존도 50% 초과한 상태. 채권단은 회생불능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채권회수 시작했지?”
“네. 사실 일 년 전에 시작했어야 할 일인데… 뇌물을 얼마나 처먹였는지 채권단은 꼼짝도 안 했습니다.”
금요일 오전 7시부터 시작된 회의의 주제는 한도제철이 전부였다.
“총부채는 얼마야?”
“3조6,870억입니다. 미국 쪽 10억 달러를 제외하고요.”
진 회장은 이학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실장.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이야, 이건 말이 안 돼. 그깟 제철소 하나 올리는데 뭔 돈을 그렇게 많이 땡겨 쓸 수가 있어?”
“미국 뉴코어사를 기준으로 본다면 1조6천억이면 뒤집어씁니다. 물론 값싼 부지, 철강경기의 불황을 이용한 낮은 설비 도입가, 턴키 베이스가 아닌 자체 엔지니어링에 의한 적정설비의 최저가 구입 등으로 우리와 환경이 다르다 해도 최소 1조 원 이상은 어디론가 새어나갔다고 봐야죠.”
비용을 부풀리고 그 돈을 내부자거래로 빼먹는 거야 재벌집단의 주특기지만 한도그룹은 해먹어도 너무 해먹었다.
그룹 전체매출의 절반 이상이 내부거래라니!
이건 편법이 아니라 무식한 강도질이나 다름없다.
저절로 찌푸려진 표정을 바로 한 진 회장은 질문을 이어갔다.
“부채 탕감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
“일단 금융기관의 부채를 자산관리공사가 매입하도록 만들고, 이때 2조 정도 탕감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린 자산관리공사의 채권을 절반 가격에 매입하고요. 8천억이면 될 겁니다.”
“달러는 안 되겠지?”
“네. 대신 상환연장은 가능합니다. 정부가 지불보증을 서줄 테니까요.”
“YS… 깐깐한데 될까?”
“한도제철은 한도그룹 주력사입니다. 어차피 한도그룹이 공중분해 되는데 그 파장은 최소화해야죠. 승인할 겁니다.”
진 회장의 머리가 계산을 시작했다.
10억 달러면 8천억, 전체금액은 1조 6천억이다. 피 같은 돈 1조6천억을 지불하고 인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인수할 때 순양의 자금을 일시적으로 쓸 수는 있으나 곧바로 회수해야 한다.
“한도그룹 찢어질 때 우리가 챙겨야 하는 건 뭐가 있어? 돈 될만한 거 말이야.”
“한도제철의 부산 철근공장 부지 10만 평 중 물류기지를 제외한 8만 평입니다. 채권단이 손을 못 대도록 하고 그 부지에 아파트를 올려 분양하면 웬만큼은 확보할 수 있습니다.”
“또?”
“장지동 토지 4만 평, 개포동 토지 1만 평입니다. 하지만 이 땅은 한도제철의 소유가 아니라 한도건설 소유입니다.”
서재 회의에 참석한 그룹 핵심 인사들의 머리는 부지런히 돌아갔다.
한도제철을 거저먹으려는 회장의 의도를 모두 읽었기 때문이다.
“회장님.”
여태껏 한마디도 하지 않던 순양자동차의 조대호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대현 그룹도 노리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진 회장의 숨 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서재는 적막에 휩싸였다.
어느새 붉어진 안색의 진 회장이 이를 악물었다.
“언제 알았어?”
“아침에 연락받았습니다. 대현자동차의 납품업자가 슬쩍 귀띔했습니다. 룸싸롱에서 접대하는데 횡설수설하더랍니다.”
“이런, 육시럴…….”
이미 대현 그룹은 경쟁자가 아니다. 한도제철을 이미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는 진 회장에게는 자신의 회사를 강탈하려는 비적 떼일 뿐이다.
“대현 놈들 뭐 하는지부터 알아와. 인수 전략은 그 뒤에 다시 짠다.”
회의는 끝났다. 전력을 다해 비적 떼부터 막아야 했다. 모두 일어나서 주섬주섬 서류를 챙길 때 진영기 부회장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도준이 인터뷰 기사 보셨습니까?”
부회장의 말에 계열사 사장들은 깜빡했던 인사를 빠트리지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회장님. 정말 대단하더군요.”
“도준 군이 전국구일 줄 몰랐습니다. 축하합니다.”
굳었던 진 회장의 표정이 확 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나도 그놈이 그 정도 성적을 낼 줄은 몰랐어. 대단하지?”
“그런데 아버지. 도준이는 정말 서울대 법대 지원합니까?”
“왜? 떨어질까 봐?”
“그 성적으로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아끼시니까 당연히 경영학이나 경제학 전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윤기 피를 물려받은 놈이다. 제 놈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걸 어떻게 막아?”
“제가 윤기 만나서 설득 한번 해 볼까요?”
“놔둬라. 집안에서 검찰총장 하나쯤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
계속 눈치를 살피는 진영기에게 진 회장은 대수롭지 않은 일인 것처럼 손을 슬쩍 내저었다.
이로써 이방원의 경계심은 한층 옅어질 것이다.
“참, 영준이 지금 어디 있어?”
“작년부터 런던에서 근무합니다. 파이낸스 실무 익히고 있을 겁니다.”
“들어오라고 해.”
“런던 정리하고 말입니까?”
진영기 부회장은 아들의 유배생활이 끝나는 건가 싶어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 이번 한도제철 인수전에 참여시켜. 그리고 결혼도 해야지. 내년 봄에 식 올리자.”
“네.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
이방원은 이제 방심하게 될 것이다.
***
“숙제가 너무 어려웠느냐?”
“……네.”
풀죽은 듯 대답하니 할아버지는 한층 더 호기심을 드러냈다.
“숙제가 뭔지는 알고?”
“한도제철이 망하면 순양그룹이 인수한다, 아닌가요?”
할아버지의 미소가 호기심을 덮었다.
“왜 그 회사가 망한다고 생각했지?”
“보고서의 내용이 한도제철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이었어요.”
“순양이 인수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인수에 관심 없다면 부도 이후, 철강업계의 변화가 순양그룹에 미치는 영향 등을 더 자세히 다뤘겠죠. 옆집에 불났을 때 중요한 건 우리 집으로 옮겨붙느냐 아니냐지, 왜 불이 났느냐, 불난 집에 값비싼 물건이 있느냐는 따지지 않으니까요.”
“옳지. 바로 그거야.”
진 회장이 무릎을 탁 쳤다.
“그런데 해답은 못 찾겠어요.”
“뭐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했느냐?”
“대현그룹의 무릎을 꿇리는 방법요. 그것만 찾아냈으면 스포츠카 열쇠 하나는 오늘 받았을 텐데 말이죠.”
아쉬운 듯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할아버지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그런데, 표정이 왜 저러지? 너무 앞서 나갔나? 깜짝 놀란 할아버지의 속내가 완전히 드러났다.
“대, 대현이 왜 인수전에 뛰어든다고 생각한 게냐?”
“쇳덩이 만지는 기업이라면 포항제철, 순양, 대현, 아진, 삼미, 동국. 이 중에서 한도제철을 인수할 만큼 덩치 큰 곳은 셋, 하지만 포항제철은 한도에 관심 가질 이유가 없고 남은 건 우리랑 대현뿐이잖아요.“
“덩치 크다고 무조건 덤벼들지는 않아. 명확한 이유가….”
“에이, 할아버지가 관심 가지셨는데 대현 회장님이라고 가만히 있을까…….”
구체적인 데이터를 들이밀며 대현도 한도제철을 원한다고 말해야 해답이 되지만, 지금은 감각적인 대답이 제격이다.
“순양보다 한참 앞서가던 중공업 분야의 1위 자리까지 내줬으니 이 기회를 그냥 보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자존심 때문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회사를 인수하는 경영자는 없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두드려보는 것 정도는 하지 않겠어요?”
할아버지는 끝내 웃음을 터트렸다.
“으허허. 그렇지. 그놈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위험을 무릅쓸 인간이지.”
나는 기분 좋은 웃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슬며시 물었다.
“그런데 이 회사 인수하려면 엄청난 돈이 드는 거 아닌가요? 부채만 해도 몇조 원이던데…?”
내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할아버지는 내 곁으로 다가왔다.
“도준아. ‘다른 사람의 돈‘을 영어로 해봐라.”
“다른 사람의 돈? Other People’s Money?”
“그래. 그것이 바로 사업이다. 내 돈이 아닌 다른 사람의 돈으로 경영하는 것. 그런데 우리나라 재벌은 조금 다르다.“
“어떻게요?”
“영어 단어 뜻대로 People, 바로 국민의 돈을 이용하는 거지.”
국민의 돈, 세금을 말하는 것인가?
“부실기업을 인수할 때 채권단에게 부채 탕감을 요구하고, 그렇게 빵꾸 난 돈은 세금으로 메꾼다. 이것이 그룹의 덩치를 키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리고 늘 통한다.”
수조 원의 공적자금을 쌈짓돈인 양 생각한다.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다. 애초에 부정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재벌의 본질은 알고 있었지만, 할아버지 입을 통해 직접 들으니 소름이 쫙 돋았다.
얼어붙은 내 어깨를 두드리는 할아버지는 승리자의 표정이었다.
“참, 도준아. 당분간 네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은 진심인 걸로 하자. 알았지?”
* * *
96년, 올해의 마지막 날.
할아버지를 비롯하여 모든 가족이 순양호텔에 모였다.
좋은 결과로 한해를 끝낸 나를 축하하는 자리였고 오랜 외국 생활을 접고 귀국한 진영준을 환영하는 자리였다.
“이야, 우리 막내. 사고 단단히 쳤더구나. 인터뷰 봤어. 축하한다.”
“아, 영준이 형. 고마워요. 그리고 저도 축하드려요. 귀국하신 거.”
그가 내미는 손을 잡는 내 손은 가늘게 떨렸다.
“미래의 검찰총장님, 나중에 내 편법 상속은 네게 맡길게. 잘 처리해줘. 흐흐.”
그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일 때 온몸이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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