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57
“서, 설마 진 회장이 증여한 돈이야? 그 어린놈에게?”
진 회장은 손자, 손녀들이 성인이 되면 주식이나 현금을 조금씩 증여한다는 건 일반인도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핏줄마저 돈으로 조종한다며 욕하는 이도 있고, 능력이 보이지 않으면 증여를 중단하니 현명하다고 칭송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런 진 회장이 이미 수백억 이상을 증여했다고 하니 모두 놀랄 수밖에.
“증여는 맞는데 보통과 다릅니다. 10년 전, 진도준을 위해 목장 하나를 선물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 목장의 위치가 지금의 분당 신도시였습니다.”
“아….”
“운이 좋았죠. 몇천만 원 땅이 백억 원대로 뛰었으니까요.”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 회장 정도면 손자를 위한 몇천만 원 정도의 선물은 특별한 애정의 증거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돈을 맡긴 곳이 바로 미라클 인베스트먼트였습니다. 이 투자사의 대표 오세현은 진도준의 아버지와 유학 동기입니다.”
“또 다른 게 있나? 지금까지 보고한 내용만으로는 단지 운 좋은 아이라는 게 전부야.”
“특이한 점은 손주들 중 유일하게 서재를 들락거린다는 점입니다. 방학 때는 아예 진 회장의 집에서 지냈고요. 애정이 특별하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한 애정이라…….”
“그렇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첫째, 아들인 진윤기를 오랫동안 버린 자식 취급을 했으니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그것이 손자인 진도준에게 쏠렸다. 둘째는 엄청난 운이 따르는 아이라는 것. 진 회장은 인터뷰에서 가끔 말했습니다. 금전운을 양손에 쥔 사람은 못 이긴다고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막내를 특별하게 보는 건 흔한 일 아닌가?”
홍 회장이 애써 의미를 희석하려 했을 때 홍소영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니에요. 할아버지.”
“어째서냐?”
“서재는 영준 씨도 함부로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고 들었어요. 거긴 보통 서재가 아닙니다. 바로 순양그룹의 컨트롤 타워에요. 다른 손자들은 그냥 거실에서 만나요. 그런데 서재에서 독대? 이건 순양그룹 회장실에서 독대한다는 말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진영기 부회장도 독대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항상 이학재 비서실장과 함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 회장과 언제라도 독대 가능한 인물은 이학재 실장이 유일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누구 하나 입 여는 사람이 없었다.
최소한으로 보더라도 진도준을 향한 진 회장의 애정 각별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처음 침묵을 깬 사람은 홍소영의 부친인 홍 사장이었다.
“그 진도준이라는 애, 여자나 유흥은 어때? 한창때니까 흥청망청할 만도 한데….”
아직 사고 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이제 성인이니 재벌 집안 젊은 놈들이 빼먹지 않고 거치는 술, 여자에 취한다면 진 회장의 애정도 사그라질 것이다.
“아직은 모범생 그 자체입니다. 사실 유흥 쪽으로 빠지기는 쉽지 않다고 봅니다. 그쪽으로 끌고 들어갈 만한 친구가 없어요. 3세들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사립고에서 진도준은 공부만 하는 바람에 친구가 없습니다.”
“그놈이 흥청망청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잠자코 있던 홍 회장이 불편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여의도 투자사를 들락거린다는 건 어리지만 돈 불리는 재미를 안다는 거야. 돈 버는 것 이상으로 재미있는 건 없어. 적당히 즐길지는 몰라도 푹 빠지지는 않을 거야.”
홍 회장은 회의실을 쓱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특이하긴 하나 너무 정신 팔지 말아. 진 회장 나이를 생각하면 손자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다. 차남인 진동기와 딸내미 진서윤만 잘 체크해. 이것들은 늑대다. 호랑이가 죽으면 곧바로 이빨을 드러낼 거야.”
홍 회장은 방금 브리핑한 남자를 향해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진도준인가 하는 꼬맹이도 지켜봐. 어쩌면 진 회장의 고급 정보를 이용해서 주식 놀이를 할지도 모르니까.”
“네. 회장님.”
“그리고 소영아.”
“네, 할아버지.”
“네 신랑 될 그놈에게 슬쩍 한번 확인해봐. 집안에서 진도준이라는 놈이 어떤 위치인지.”
“알겠어요.”
홍소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홍 회장은 모두를 보며 말했다.
“이런 기회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진 회장의 모든 것이 진영준의 손에 들어올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마.”
* * *
자유로를 지나 통일전망대까지 달렸다. 김윤석 대리와 전망대 휴게실로 들어가 꼬리 붙은 차량을 살펴보며 커피를 마셨다.
“어떻습니까? 따라왔어요?”
“네. 역시나 차에서 내리지는 않는군요.”
“미행 확실합니까?”
“회장님댁에서 봤던 그 차량입니다. 확실해요.”
사람을 풀어 집안을 감시할 정도라면 큰아버지가 제일 유력하다. 슬슬 그룹 장악을 위한 시동을 건 것일까?
“혹시 큰아버지 댁 사람들, 그러니까 영준이 형이나 경준이 형도 미행 붙었습니까?”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확인해 볼까요?”
“그래요. 부탁 좀 합시다.”
저쪽에서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도 준비를 해야 한다. 아직 염두에 두지 않았던 일, 바로 궂은일을 해줄 수족 같은 사람을 마련하는 것이다.
눈앞의 김윤석이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김 대리는 내가 힐끔거리는 것을 눈치챘는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도련님.”
“거, 도련님은 무슨…….”
“그럼 뭐라고 불러야…?”
젠장, 마땅한 호칭이 없다. 그냥 도준 씨라고 부르기도 좀 그렇고 도준아라고 부르면 말을 놓는 게 정상이다.
반말은 피해야 한다. 말은 상하 관계를 규정하는 가장 확실한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네요. 일단은 도련님이라고 합시다.”
“네. 도련님. 다른 게 아니고 필요하신 일이 있으면 절 시키십시오. 제가 하는 일이라고는 여의도 가는 게 전분데, 이러다가 저 짤릴 것 같습니다.”
짤릴 리야 있겠는가만은 불안하기는 할 것이다. 전략팀의 다른 직원들은 온갖 궂은일은 물론이고 담배심부름까지 하느라 24시간 대기한다.
그에 비하면 김윤석은 꿀 보직이나 다름없다. 하루 한 시간이 일 하는 시간의 전부니까 말이다.
“제가 짜르라고 하지 않는 이상 그럴 일 없습니다. 저, 잠시만. 화장실 좀.”
화장실을 들른 후에 휴게실 입구의 ATM에서 돈을 좀 찾았다. 천만 원 정도면 되려나?
돈 봉투를 테이블에 올려놓자 김윤석 대리의 눈을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필요할 때 쓰세요. 자, 갑시다.”
“도, 도련님!”
당황한 김 대리를 남겨두고 휴게실을 나오자 그는 봉투를 챙겨 들고 허겁지겁 내 뒤를 따랐다.
핸들을 잡고 시동까지 걸었지만 김 대리는 출발하지 못했다.
“도련님. 이 돈으로 제가 뭘 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셔야죠?”
잘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손이 아쉽다. 괜찮은 손을 구하기보다 있는 손이라도 키워야겠다.
“김 대리님.”
“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 얼마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학력 좋고 머리 좋은 사람들, 순양에 입사하려고 줄 서 있어요.”
핸들을 잡은 그의 손이 움찔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선택하는 사람이고 줄 서 있는 그들은 선택받으려 아등바등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대학 나온 머리 좋은 사람들을 이겨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이거, 괜히 돌려 말하려다 엉뚱한 소리만 하게 생겼다. 직설적으로 가야겠다.
“순양에 입사한 뒤로 뭘 할지 한 번이라도 스스로 결정한 적 있습니까?”
“…….”
“김 대리님도 자신의 결정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 첫 번째가 바로 무슨 일을 할지 선택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할 일을 선택하고 그 일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선택하세요. 제가 드린 돈은 필요한 사람의 환심을 얻기 위한 도구입니다.”
김 대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참, 영수증은 필요 없습니다.”
그는 백미러로 나를 힐끔 보더니 악셀을 밟았다. 질문이 없는 걸 보니 알아들었나 보다.
* * *
예상대로 부도유예 기간이 끝나자 아진그룹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송현창 회장은 그 와중에 회사를 뺏기지 않으려는 마지막 희망을 버리지 않았는지 화의 신청까지 했지만 기울어진 대세를 바로 세우지 못했다.
“아진 특수강만큼은 꼭 살려야 합니다.”
“무슨 소립니까? 가장 적자 폭이 큰 곳이 바로 특수강입니다. 이걸 어떻게 살려요?”
“아진 특수강은 자동차 독자플랫폼과 엔진의 개발을 위해 설립한 겁니다. 국내 철강사들은 수요가 적다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요. 이거 정리하면 여전히 수입에 의존해야 합니다.”
14개의 계열사를 정리했고, 아진그룹 계열사 전 노조가 무분규, 임금동결 선언했다. 뼈를 깎는 자구책을 보여줬지만, 채권단은 무자비한 칼질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 보세요, 송 회장님. 지금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합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미래? 그런 건 대현자동차에 맡기세요. 빚더미에 앉은 아진특수강의 분리 매각은 아진자동차를 살리기 위한 핵심 자구책이란 말이오!”
법정관리가 경영권을 뺏긴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한 송현창 회장은 미라클이 인수하기만을 빌 뿐이었다.
“송 회장님. 본격적인 인수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확실한 이미지를 구축해야 합니다. 회장님은 자동차 전문가입니다. 다만 다른 재벌 대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무리수를 좀 두는 바람에 이 사달이 났다. 자동차만 맡는다면 문제없다. 이걸로 언론 방향을 바꿀 겁니다.”
오세현은 남은 시간 동안 송현창 회장이 나가야 할 길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그전에, 오 대표. 이미 쫓겨난 우리 식구들 챙겨주는 건 어떻게 됐나? 비자금은 이미 미라클 인베스트먼트로 들어간 걸로 알고 있는데?”
오세현은 한심하기도 했고 일견 이해하기도 했다. 함께 어깨를 감싸고 여기까지 온 동지들이 쫓겨났으니 그들을 돌봐 주고 싶은 맏형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선순위가 틀렸다.
“송 회장님.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전리품을 나눠 갖는 건 승리한 후에 생각할 문제죠.”
“그들은 이미 전쟁에 끼어들 여지도 없어. 후방으로 이송된 부상자란 말일세.”
“다리 잘린 부상병은 상처를 보여주며 적에 대한 적개심을 더 키워야죠. 그들에게 전하십시오. 전리품을 얻고 싶으면 성과를 보이라고 하십시오.”
송 회장은 당혹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오 대표. 인수전에서 패한다면 비자금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내가 잘못 이해한 건가?”
“아뇨.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미라클이 아진자동차를 인수하지 못한다면 비자금 이천칠백억은 전쟁 비용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단호한 오세현의 결론에 송현창은 할 말을 잃었다.
다급한 상황이다 보니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5년간 아진자동차의 대표이사로서 얻는 이익과 비교하기 어려운 돈, 그 돈이 지금 사라지려 하고 있다.
“이보게, 오 대표.”
오세현은 손을 들어 송현창의 입을 막았다.
“돈 잔치를 원하세요? 그럼 제가 아니, 우리 미라클이 아진자동차의 지배주주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세요. 그리고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데…. 돈세탁은 완벽합니다. 혹시라도 쫓겨난 노친네들이 딴생각을 못 하게 단도리 잘하십시오.”
오세현은 마지막 경고를 남기고 일어섰다.
“길어봤자 두 달입니다. 지금 채권단은 하루라도 빨리 대현으로 넘기려고 온갖 수단을 다 다 써요. 회장님 개인 재산을 털어서라도 자동차 전문가라는 이미지 구축을 서두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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