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60
“이야기 좀 해봤습니까? 감상이 어때요?”
뾰로통한 홍소영의 곁으로 진영준이 다가왔다.
“예의는 바르네요.”
“그게 전부?”
“부잣집 도련님 티가 안 나요. 원래 그랬어요?”
“그렇죠. 저놈 어릴 때는 내어 논 집안이었으니까요. 늘 기죽어 지냈으니…….”
“그렇군요. 아무튼, 속을 드러내지 않는 애 같은데….”
“괜찮아요. 도준이는 내가 오른팔로 쓸 생각이니까 경계할 필요 없을 겁니다.”
진영준은 팔을 쓱 내밀었다.
“갑시다. 아직 인사드릴 분이 많이 남았어요.”
내민 팔에 팔짱을 낀 홍소영은 진도준에 대한 경계심을 풀지 않았지만, 약혼자의 말처럼 오른팔이 되어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다.
“참, 내가 넉넉한 용돈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괜찮죠?”
“큰형수가 사촌 막내에게 용돈 주는 거야 자연스럽죠.”
진영준은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홍소영은 생각은 좀 달랐다. 돈을 쓰는 것만큼 그 사람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 없다고 믿었다.
* * *
화장실을 들렀을 때 기다렸다는 듯 곁에 붙는 사람이 있었다.
“도련님.”
“김 대리님. 오늘은 그냥 쉬시라고 했잖습니까? 집안 행산데 나오실 필요 없었어요.”
웃으며 말했지만, 김윤석 대리는 조금 굳어 있었다.
“혹시 시간 되십니까?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의 표정을 보고 딴소리는 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는 조심스러움과 경계심이 보였기 때문이다.
“제 차 아시죠? 차고에 있습니다. 거기 계세요. 저도 바로 가겠습니다.”
김윤석 대리가 조용히 사라지고 영빈관을 한번 둘러본 뒤 차고로 이동했다.
빽빽이 들어선 차 사이에서 내 차에 오르니 운전석에 앉은 김 대리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입니까?”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신 팀장이 설명하실 겁니다.”
“신 팀장?”
“네. 우리 전략팀장이신데… 한번 말씀드렸습니다. 기억 안 나시는지…?”
“아…….”
이때 뒷좌석 문이 열리며 한 사내가 슬쩍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신석호 팀장입니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기억나지 않았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그런데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었던가요?”
“기억 못 하시는군요. 양평 별장에서 한번 뵀습니다. 새벽에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렸지요.”
“아…! 그분이시구나.”
진영준에게 발길질 당했던 그자다. 그때 미끼를 던졌는데 별다른 반응이 없어 기억에서 지워버린 사람이다.
“시간이 없으니 짧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전 소위 말하는 3세들 전담팀입니다.”
팀장이니 전체를 아우르지는 못한다. 아마도 3세들 중에서도 한국에 있는 놈들만 관리할 것이다. 외국 유학 중인 사촌들은 해당 국가의 지사에서 관리한다.
“한 달 전쯤부터 누군가 미행을 시작했습니다.”
“전부요?”
“네. 그놈들은 행적을 전부 파악하는 건 아니고 동선만 파악합니다.”
“혹시 그 속에 영준 형도 포함되어 있습니까?”
“네.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미행하더군요.”
큰아버지가 아들까지 체크하는 건가? 그건 좀 과하다. 큰아버지가 아니라면 누굴까?
“혹시 누구 짓인지 파악하셨습니까?”
“아뇨. 우리 팀 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역추적할 만큼 전문가들도 아니고요.”
하긴, 수행비서 역할이 전부인 팀원들이니 누구를 추적한다는 것은 무리다.
나는 신 팀장을 잠시 바라보다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런데 왜 제게 이런 걸 알려주시는 겁니까? 절차대로라면….”
“절차는 압니다. 전략실 실장님께 보고드리고, 이학재 비서실장님께 보고가 올라가겠죠. 그리고 정보팀이나 순양시큐리티의 요원들이 움직이고요.”
“잘 아시네요. 그런데 왜?”
신석호 팀장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으나 이내 입을 열었다.
“부끄럽지만 줄을 잡고 싶어서입니다.”
“줄? 혹시 내가 생각하는 그 줄 말입니까?”
“네. 우리 전략팀은… 미래도 없고 기댈 곳도 없습니다. 일 년 버티는 애들이 드물 정도니까요.”
“팀장님처럼 몇 년을 버텨도 빛이 보이지 않고….”
신석호의 얼굴에 부끄러움이 번졌다.
“그런데 왜 저죠? 전 회사에 말 한마디 못하는 막내입니다. 그룹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요. 그런 내가 줄이 되겠습니까?”
“제게 손을 내미셨지 않습니까?”
그날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나 보다. 그런데 미끼를 무는데 걸린 시간이 너무 길다. 판단이 느려서일까? 아니면 신중한 것일까? 이 사람의 속을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잡아요? 솔직히, 저 말고 손을 내민 사람이 없죠? 제가 유일한 줄이라 그런 겁니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졌지만 조금도 지체 없이 입을 연다.
“유일한 손이지만 믿음직스럽기 때문에 잡습니다. 신뢰가 가지 않는 손이었다면 콧방귀를 끼며 무시했을 겁니다. 진 회장님 손자 중에 도련님만큼 자기관리 철저하고, 성실하며, 헛짓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략팀 전원 신 팀장님을 따릅니까?”
“아닙니다. 어차피 우리 팀은 물갈이가 잦습니다. 허드렛일이다 보니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서요. 그래서 오랫동안 함께할 사람만 선택했습니다. 김윤석 대리도 그중 하나고요.”
두 사람의 눈빛을 받아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확인할 수 있는데 뿌리칠 이유는 없다.
단지 이들이 지금까지 와는 다르게 꼭 필요한 사람으로 만드는 게 중요했다.
“신 팀장님 그리고 김 대리님. 내 말 잘 들어요.”
내가 입을 열자 두 사람은 침을 꿀꺽 삼키며 눈을 빛냈다.
“내가 먼저 내민 손을 두 사람이 잡은 게 아닙니다. 전략팀이 내게 지붕이 되어 달라고 간청한 것이고 내가 승낙한 겁니다. 아시겠어요?”
같은 결과를 낳는 말이지만 선후가 다르다. 이 차이를 빨리 캐치한 신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물론입니다.”
“쉽게 대답하지 마세요. 내가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은 게 아닙니다. 이 차이는 아주 커요.”
“잘 압니다. 도련님은 언제든 우리를 커버하는 지붕을 걷어버릴 수 있다는 뜻 아닙니까?”
눈칫밥을 오랫동안 먹어서일까? 아니면 머리 회전이 빠른 것일까?
“도련님의 기대치만큼, 정한 선만큼 따라가겠습니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줄은 끊으셔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너무나 간절한 눈이었기에 이들의 기대를 무너뜨릴 필요가 있었다. 좀 더 현실적인 마음가짐이 일하는데 더 효과적이다.
“오해하지 마세요. 충성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건 거래일 뿐입니다. 전략팀은 내게 필요한 것을 대신하고 난 그 대가를 지불합니다. 밝은 미래가 그 대가일 수도 있고 돈일 수도 있어요.”
“그 이유가 아직 순양그룹의 일원이 아니기 때문입니까?”
“아뇨. 전 아직 두 분께 큰 기대도 없고 신뢰도 없어요. 그러니까 거래일 뿐입니다. 내게서 더 이상의 무엇을 원한다면 나를 바꿀만한 뭔가를 보여주세요. 그러면 됩니다.”
나는 지금껏 누군가의 충성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멍청하고 덜떨어진 놈의 충성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건 잘 안다.
두 사람은 내게서 원하는 대답은 못 들었지만, 기회를 잡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듯 표정이 좀 밝아졌다.
이들이 어느 정도인지 당장 테스트할 기회도 있다.
“김 대리.”
이제 ‘님’이라는 존대는 생략했다. 이들은 이제 내가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첫 직원이다.
“네.”
“내일부터 난 택시 타고 다닐 테니까 내 뒤를 따라다니는 놈들 뒤에 붙으세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요. 오래 걸려도 좋습니다.”
“네.”
“그리고 신 팀장.”
“네.”
“앞으로 전략팀 보고자료 내게 먼저 보내세요. 내가 빨간 줄 치는 건 윗선으로 보고하면 안 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야기를 끝내기 전 나는 작은 보상을 하나 안겨주었다.
“돈 걱정 말고 활동비 아끼지 말고 쓰세요. 개인적으로 돈이 필요할 때도 주저 없이 말씀하시고요. 돈 때문에 고민하는 일은 없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역시 사람의 모든 근심·걱정은 돈에서 출발한다. 두 사람의 표정이 더할 수 없이 밝다.
가끔은 사촌 약혼식이 도움된다. 오늘 꽤 많은 것을 건졌다. 경계해야 할 여자를 발견했고 아쉬운 대로 나를 대신할 눈과 손도 생겼다.
* * *
아진자동차 매각이 결정되는 순간에도 대기업은 무너지고 있었다.
소주의 대명사 진로 그룹이 화의신청을 했고, 식빵의 얼굴 삼립식품도 부도났다. 국내 4대 대형 백화점 중 하나인 미도파백화점의 모기업인 대농도 쓰러졌고, 김응룡 감독과 선동열의 해태도 부도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 위험신호가 선명하게 번쩍이는 데도 대선 주자들은 청와대에 들어가기 위해 서로를 물어뜯었고 대현 그룹은 덩치를 키우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그들은 반격을 시작했다.
대현은 참고 기다리다 우리가 아진그룹의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자마자 모든 언론을 통해 국부 유출과 외국 투기자본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웠다.
여기까지는 예상한 공세였기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우리가 결정타를 날릴 기회는 단 한 번이다. 꾹 참았다가 단 한 번으로 역전시켜야 한다.
매각 심사가 시작되기 전 여론을 한방에 움직이고 심사단의 마음을 바꿀 회심의 카드는 아직 우리 손에 있다.
하지만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모든 일이 생각대로 풀린다면 인생이 얼마나 편할까?
『아진그룹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미라클 인베스트먼트에 대한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미라클 인베스트먼트의 자금 출처가 바로 일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아진자동차가 일본 자동차 업계의 한국 진출 교두보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첫 꼭지로 나온 TV 뉴스가 나오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네. 저도 봤습니다.”
– 반박 기자회견이라도 해야겠다. 이건 치명타야. 반일 감정 건드리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오세현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드러났다. 국익이니, 국부 유출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게 반일 아닌가?
“저 뉴스 근거는 있답니까? 대 놓고 소설 쓰는 건 아닐 텐데요?”
– 소프트 뱅크야. 소프트 뱅크는 상장기업이고 일본에서도 주목받는 회사니까 우리가 투자했었다는 사실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을 거다.
“정정 보도 요구하는 건 의미 없겠죠?”
– 내년이나 돼야 결과 나올걸?
“후속 보도가 어떻게 될지 하루만 지켜보죠. 반박 기자회견은 그다음 결정하고요.”
– 혹시 진 회장님 힘을….
“어렵습니다. 지금 판을 주도하는 건 대현이니까요.”
이 정도 일에 손을 벌릴 수는 없다. 도움의 손을 내밀 때는 순양 그룹 정도가 판돈으로 깔렸을 때다.
전화 너머 오세현의 실망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삼촌, 후속 보도가 계속 쏟아지면 송 회장과 함께 나서죠. 아진그룹 노조 간부들도 배경으로 깔고요.”
– 야, 그건 마지막 히든인데…
“히든까지 기다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깝시다.”
통화를 끝내자 소름이 끼쳤다.
한국 재벌, 진짜 무섭다.
명색이 공영방송의 뉴스가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재벌 그룹이 써주는 대로 공중파로 쏘아 올릴 줄이야.
더 무서운 건 이런 일이 이틀 동안 쉬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미라클 인베스트먼트는 기자회견을 준비했지만, 대현에게 반격의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 같아 찝찝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런 식의 개싸움에 능숙한 대현 아닌가?
* * *
“일본 자금 유입설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 미라클 인베스트먼트는 일본에 투자한 사실이 있습니다만, 단기 투자였고 수익을 올린 뒤 철수했습니다. 오히려 일본 엔화를 벌어들인 겁니다.”
“하지만 그 벌어들인 엔화는 여전히 미국 자본으로 남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엔화를 지금 아진자동차를 살리는데 쏟아붓는 겁니다.”
부모 죽인 원수도 아닌데 언론 기자들은 오세현을 거칠게 물어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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