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66
오세현은 메일을 몇 군데 보냈다. 해외의 단기 투자자들의 동향을 체크하면 환율 상승이 일시적 현상인지 아닌지 예측할 자료가 될 것이다.
“도준아. 환율이 계속 오르면? 달러로 인수대금을 지불할 생각이냐?”
“협상해야죠.”
“무슨 협상?”
“아진 그룹 인수대금을 달러로 지불하는 조건으로 팍 깎으려고요.”
오세현은 이마를 탁 치며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그렇지! 금덩이 쥐고 있으면 뭐해? 빠져 죽게 생겼는데. 금덩이 던지고 구명조끼 받아야지.”
기축통화인 달러는 사람으로 비유하면 피와 같다. 피가 돌지 않으면 사람은 죽기 마련이다.
수혈할 피주머니를 들고 있는 자는 쓰러진 자의 주머니에 든 황금 덩이를 마음껏 빼내 올 수 있다.
돈 만지는 오세현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국내 외환 보유고가 바닥을 길 때쯤이면 도준이 넌 구세주가 될 것 같은데?”
“제가 아니죠. 미라클 인베스트먼트의 대표이신 삼촌이죠.”
놀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잔잔히 웃는다.
“왜? 아직 어린애라서 나서기 싫다는 거냐? 아니면 숨은 뜻이 있어 네 존재를 드러내기 꺼리는 거야?”
이미 많은 것을 짐작한다는 말, 오히려 날 당황하게 만든다.
“내가 조 단위의 돈을 들고 있으면 세상에서 뭐라고 하겠어요? 불법 증여, 편법 상속 등등. 세상이 시끄러워질 겁니다.”
“그리고 널 보는 수많은 경계의 눈을 피할 수도 없을 것이고 말이지.”
“그런 면도 있긴 하죠.”
정확한 말이 오가지 않아도 서로의 뜻은 이미 교환했다.
나는 차분한 눈빛으로 오세현의 대답을 기다렸고 오세현은 빙긋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지금은 네 적토마가 되어주마. 원하는 대로 고삐를 틀고, 채찍을 휘두르렴. 하지만 시간은 많지 않아. 내 나이 쉰이다. 길면 5년이야. 그 뒤는 네가 직접 달리던, 날 대신할 말을 구하던 해야 할 거다.”
“뭡니까? 쉰다섯에 은퇴하신다는 뜻이세요? 한창 나이 아닙니까? 너무 빠른데요?”
“쉰다섯이면 딱 적당해. 은퇴하기에는 좀 이른 감이 있지만… 그렇다고 일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아. 돈 쓸 시간 부족하면 억울하지 않겠어? 하하.”
5년.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은 것을 차지할 수 있을까?
늙은 말은 목장에서 쉬게 하고 새 말을 구해야 하나?
“친조카보다 더 조카 같은 너라서 5년인 거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은퇴하고 한적한 섬으로 떠나고 싶다고.”
아예 대못을 박는다.
적토마 역할의 연장은 없다.
* * *
“사실이냐?”
“네. 도준이가 직접 봤답니다.”
진영기 부회장은 아들이 알려준 정보를 듣자 피가 거꾸로 쏟는 느낌이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어깨까지 두드리며 서재의 의자를 약속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룹 지배구조를 바꾸려 하다니?
장남인 자신에게까지 숨기며 진행하면서 달콤한 말을 귓가에 속삭인 아버지.
진영기 부회장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하지만 아들이 보고 있다. 냉정을 되찾아야 할 이유다.
진영기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뭐, 자동차가 계열 분리되면 한번은 치러야 할 홍역이야. 전체 틀이 흔들리기는 하겠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자동차가 쥐고 있던 지분이 움직이면….”
“어허! 괜찮다지 않느냐. 내가 알아서 하마. 넌 한도제철… 아니 순양제철 정상화에 매진하면 돼.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할아버지께 네 능력을 보여드려야 한다.”
“알겠습니다.”
아들이 머리를 숙이고 나가자 진영기는 급히 전화를 꺼내 들었다.
“기획실 전원, 회의실로 모이라고 해.”
진 회장이 이상한 결론을 내리기 전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 * *
“아이고, 이거. 바쁘신 분을 번거롭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별말씀을요. 이제부터 바빠질 것 같긴 합니다만 사장님과 밥 한 그릇 먹을 짬은 내야죠. 허허.”
진동기 사장은 조대호 사장이 별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 환하게 웃으며 맞이했다.
“그런데 전 아직 헷갈리기만 합니다. 아진과 순양이 합치면 누가 더 이익인지… 물론 아버지께서 어련히 잘하셨겠지만 말입니다.”
“그러게요. 저도 너무 급작스레 진행되는 거라 얼떨떨합니다.”
진동기는 조대호 사장의 표정 하나 말 한마디 놓치지 않으려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
“계열 분리되면 조 사장님은 이제 순양과 인연이 없어지는데 많이 섭섭하시겠습니다.”
조대호 사장은 웃으며 말하는 진동기를 보며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진심이십니까? 아니면 절 떠보려고 하시는 말씀이십니까? 전자라면 실망이 큽니다만.”
역시.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순양이 아진을 삼킨 것이다.
“무슨 말씀이세요? 떠보다니요? 그냥 혹시나 해서 드린 말입니다.”
“진 사장님.”
“네.”
“회장님을 30년 넘게 모셨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제가 회장님께 반기를 든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그게 뭔지 아십니까?”
웃음기가 싹 사라진 조대호 사장의 표정 때문에 진동기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정유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중동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터져 원유 수급이 비상이었죠. 회장님과 전 텍사스로 날아갔습니다. 급한 대로 텍사스 원유를 계약하기 위해서였죠.”
갑자기 옛날 고생담을 꺼내는 건 진심을 드러내는 조짐이다. 이 이야기가 끝날 때쯤 조대호 사장은 진동기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할 것이다.
“끝도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스테이크 하우스에 들어갔는데 날은 덥고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입맛이 없었죠. 회장님은 스테이크 하나만 시켜 나눠 먹자고 하셨습니다. 그곳은 가장 작은 스테이크가 무려 600g이나 됐거든요.”
“미국 남부 스테이크는 양으로 먹는 거죠. 하하.”
“전 반대했습니다. 각자 한 접시씩 먹자고 말입니다.”
“설마 그게 유일한 반기였다는…?”
“네.”
“이런…. 설마 지금 농담하시는… 아!”
조대호 사장이 과거의 추억을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동기는 조 사장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충분히 알아들었다.
나누는 걸 반대한다. 고기 한 덩이도 나눠 먹는걸 싫어하는데 그룹을 쪼개는 건 찬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 사장님께서는 나누는 걸 싫어하시지만 전 버리는 걸 싫어합니다. 너무 많아 먹지도 못하면 결국 버리지 않습니까?”
진동기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설득까지는 아니더라도, 받아들이지는 않을지라도, 이해는 시켜야 한다.
“먹을 만큼만 주문한 아버지가 현명한 것 같은데요?”
“진 사장님.”
“네.”
“결과를 물어보지 않으시네요.”
“무슨…?”
“결국 회장님과 저, 꾸역꾸역 다 먹었습니다. 많아 보였지만 다 먹게 되더군요. 시도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입니다. 600g… 생각보다 많지 않습디다.”
진동기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고리타분한 창업 공신들. 그래 봤자 월급 받는 게 고작인 놈들이 순양그룹을 마치 집안의 가보인 양 애지중지한다.
마차의 주인이 바뀔 때는 마부도 바꾸고 말도 바꾼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마차가 상할까 끝없이 걱정하는, 천성이 마부인 사람들.
그런데 마차를 차지하려면 마부가 절실히 필요하다.
“조 사장님. 먹성이 좋으시군요.”
“이제는 그만큼 못 먹습니다. 나이 먹으니 양도 많이 줄더군요.”
“그렇군요. 전 아직 먹성이 줄지 않은 걸 보면 나이를 덜 먹은 것 같습니다. 스테이크 600g 정도는 남기지 않고 다 먹어지더군요. 레어로.”
나누지 않고 전부를 차지하겠다는 진동기의 뜻을 충분히 알아들은 조대호 사장은 짧은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기야.”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르자 진동기는 등골이 서늘했다.
“네. 형님.”
진동기가 회사 일을 시작하기 전 진 회장의 수족들이 집안을 들락거렸다. 누구는 삼촌이라고 불렀고 누구는 아저씨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조대호 사장은 꼭 형이라고 부르라며 용돈을 듬뿍 쥐여주던 사람이었다.
“진영기 부회장은 네 친형이다. 그리고 장남이야. 네가 가질 수 없어.”
“형님. 영기 형님은 무능합니다. 모르십니까?”
“유능한 네가 곁에서 도와주면 되지 않겠냐?”
“제 곁에서 영기 형님이 도와주는 것은 왜 안 됩니까?”
“무능한 사람이 유능한 사람을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지. 쓸모없거든.”
“형님!”
“그림이 안 나오잖냐. 형이 동생을 수발든다? 불가능해. 쫓겨나겠지.”
“계열사 몇 개 정리해서 영기 형에게 줄 겁니다. 그리고 음으로 양으로 챙겨드리겠습니다.”
이런 이야기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순양자동차의 행방만 점쳐보려고 만든 자리였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서로 속을 드러냈으니 끝을 봐야 한다.
“대진그룹, 청마그룹 그리고 자성그룹. 지금은 흔적도 없다. 그게 다 형제들 싸움으로 찢어지고 갈라져서 그런 거야. 장남이 독식하면 살아남지만, 동생들이 뺏으려고 날뛰기 시작하면 피만 흘리고 사라진다.”
“집안 말아먹은 장남도 많습니다.”
간절함이 묻어나는 음성이었지만 조대호 사장은 쓴웃음만 지었다.
“나야 순양그룹의 소작농에 불과하지만, 순양을 비옥하게 만든 데는 내 공이 적지 않다고 자부한다. 그런 땅이 갈가리 찢어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제가 더 기름진 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거친 땅을 개간해서 더 넓고 광대한 평야로 만들 자신도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형님께서 보고 싶은 모습 아닙니까?”
자신감 넘치는 진동기의 모습을 조대호 사장은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조대호 사장이 다시 입을 열 때 그의 어투는 처음으로 돌아왔다.
“진 사장님. 아버님이신 회장님을 얼마나 아십니까?”
“네?”
“회장님은 후계자를 미리 정해두고 키우실 분이 아닙니다. 꿈도 꾸지 마십시오.”
처음 듣는 소리에 진동기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다.
후계자가 없다?
“아마도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끝없이 점수를 매기며 비교하실 분입니다. 어쩌면 마지막 유언에 순양그룹을 가질 후계자를 발표하실 겁니다.”
“설마요? 승계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천문학적인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걸 잊으실 분이 아닙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자린고비가 바로 아버지라는 걸 진동기는 잘 안다.
“세금보다 순양의 미래를 더 걱정하시니까요.”
조대호 사장의 말을 듣고 있자니 진동기는 화가 치밀었다.
“그럼 조 사장님께서 지금까지 하신 말씀은 뭡니까? 마치 영기 형님이 모든 걸 다 물려받는 것처럼….”
“그건 제 생각이고 마음입니다. 회장님의 의중이 아니라 제 생각을 물으신 것 아닙니까?”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화를 가라앉혀야 했다.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 최종 결정에는 조대호 같은 공신들의 의견이 크게 한몫을 하기 때문이다.
진동기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잔을 들었다.
“아직 경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조대호 사장도 웃으며 잔을 들었다.
평생 소작농을 했고 순양이라는 마차의 마부석에만 앉았다.
마차 내부는 구경도 못 했지만 고삐를 쥔 사람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만 했지만 눈치 빠른 진동기는 알아들었을 것이다.
고삐 쥔 마부의 힘을 무시하지 말라는 경고.
마차의 주인이 바뀐다고 해서 마부를 갈아치울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다.
마차의 주인을 결정할 때 마부들의 단합된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진 회장의 자식들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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