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73
“도준아. 네가 아직 어려서 이쪽 일 모르는구나. 선거자금 주면서 계약서 쓰는 사람은 없어.”
“아하, 우리 도준이는 투자사만 거래하니까 그런 생각 했구나. 이 돈은 전부 사라지는 돈이야. 재테크가 아니야.”
이 사람들은 아직 날 돈 많은 어린애로 보는 건가?
“아차차, 제가 자세히 설명해야 하는데 깜빡했어요.”
나는 이마를 치며 어색하게 웃었다.
“잠깐만요. 자세하게 설명할 분이 계세요.”
나는 거실 소파에서 일어나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외쳤다.
“삼촌! 내려오세요.”
고모, 고모부 두 사람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집안의 막내에게는 삼촌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 # #
“땅? 공유지?”
“네. 내년 지방선거 끝나고 순식간에 싹 챙길 생각입니다.”
“네 고모부를 서울시장으로 만든다고?”
“제가 만드나요? 고모부가 싸워야죠.”
오세현은 내키지 않는 심정을 얼굴에 드러냈다.
“정치에 얽히고 오래가는 놈 못 봤다. 정치인 임기 끝나면 구린 거, 냄새나는 거 탈탈 털어서 보복하는 놈들이 정치인 아니냐? 몰라서 그래?”
“정치권력 끼지 않고 성장한 기업도 없습니다. 한국에서 정치권 밖에서 사업하면 대기업으로 못 크죠.”
“그래서? 땅 받아서 뭐하려고?”
“대규모 공사 한번 해야죠. 흐흐.”
“갈수록 태산이로구만. 뭐? 공사?”
“제가 뭐 때문에 건설사에 관심 뒀겠어요? 다 이거 때문이죠.”
할아버지 앞에 펼쳤던 지도를 꺼냈다.
“가장 알짜배기는 바로 여깁니다.”
난 힘차게 지도 한 곳에 빨간 핀을 꽂았다.
“여길 한번 개발해 보겠습니다.”
“여기 어디야?”
노안이 온 오세현은 쓰고 있던 안경을 머리 위로 올리고 지도를 유심히 살폈다.
“마포? 상암동?”
“네. 이미 택지지구 개발에 지정됐잖아요.”
“야, 야. 접어라. 다 끝난 걸 뭐하러?”
올해 여름, 마포구 상암동의 구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과 인근의 저개발 부락촌, 연탄공장, 유휴지를 ‘상암택지개발지구’로 지정하고 개발을 발표했다.
이때 난 건설사 없이 이권 사업에 끼어드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느꼈다.
어차피 지금 상암 택지개발에 참여한 업체는 다들 손 떼기 바쁘다. 나라가 부도 상태나 다름없는데 아파트를 지으면 뭐하나? 입주할 사람이 없는데.
모두 이런 심정이었다.
“택지지구 근처에 아직 공유지 엄청나게 많아요. 그거 개발해야죠.”
“이미 아파트 물량 쳐내는 건 불가능해. 부동산 폭락 안 보여? 이 지경인데 아파트를 또?”
오세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때 난 웃었다.
“위기는 준비된 자와 만났을 때 기회가 됩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위기에서 나만큼 준비된 사람은 없잖아요.”
“하여간, 어디서 주워들은 소리는 많아요. 이번엔 아니다. 아파트는 당분간 끝났어. 이 위기 지나가면 아파트에 손대.”
“누가 아파트라고 했어요?”
“뭐?”
“아파트는 관심 없습니다. 택지 분양은 이미 끝났고 그쪽 건설사들은 한숨만 쉬라고 하세요. 전 다른 컨셉으로 개발할 겁니다.”
오세현은 한숨까지 내쉬며 말했다. 어차피 내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래, 그 새로운 컨셉은 뭔데?”
“DMC.”
“참 내, 이젠 방송국이냐? 왜? 아예 MBC 방송국 그냥 사!“
오세현은 어처구니없어 말하기도 귀찮은 표정이었다.
“방송국이 아니고 DMC라니까요. Digital Media City라는 뜻입니다.”
“그건 또 뭐냐?”
이제야 표정을 펴고 관심을 좀 보인다. 디지털이라는 단어, 그리고 미디어라는 단어는 미래지향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자료 드릴 테니까 한번 보세요. 그리고 상암동에 월드컵 주 경기장을 만들어야죠. 2002년, 얼마 안 남았어요.”
96년, FIFA는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결정했다. 한국 대표팀이 4강까지 진출하리라고는 아무도 모른다. 과거에는 호프집에서 TV를 보며 대한민국을 외쳤지만, 이번엔 VIP석에서 내 눈으로 직접 볼 생각이다.
“City라면 도시잖아. 너무 황당한 거 아냐? 월드컵 경기장은 그럴싸하긴 해.”
“DMC도 그럴듯하게 만들 겁니다.”
# # #
“처음 뵙겠습니다. 진 사장님, 최 의원님. 오세현입니다.”
고모와 고모부는 오세현이 내민 명함과 얼굴을 번갈아 보며 화들짝 놀랐다.
미라클 인베스트먼트 대표.
이것이 명함의 힘이다.
아진그룹을 인수한 투자사. 조 단위의 돈을 움직이는 자 아닌가?
“아, 안녕하세요. 도준아. 네 돈을 운용하는 투자사도 미라클이라더니 그 회사가 바로 여기?”
고모는 명함을 살짝 흔들었다.
“네. 맞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그럼 말씀 나누세요. 전 이 층에 올라가 있을게요.”
내가 자리를 비켜준다고 하자 고모는 이 상황을 이해하기 힘든 표정이었다.
“미래의 서울시장님께 투자하고 비즈니스까지 생각하신 분입니다. 믿을 만하신 분이니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이시기도 하니까요. 그럼 전 이만….”
세 분에게 머리를 숙이고 발걸음을 옮겼다.
오세현은 내 계획을 충분히 알고 있으니 문제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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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해서 좀 그렇긴 한데, 도대체 선거자금은 누구 돈이죠? 도준이 돈인가요? 아니면 미라클? 오 대표 개인 돈?”
날카롭게 눈꼬리가 올라간 진서윤은 조카를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계약서라는 단어가 나왔고 비즈니스라는 말도 나왔다. 돈을 부탁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돈의 출처는 도준이죠. 하지만 전 도준이 돈을 성실하게 운용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라 나서게 되었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하지만 이건 집안일입니다. 좀… 거북하군요.”
“의외네요.”
“네?”
“순양그룹 일가에서 집안일이 있었던가요? 모든 게 다 비즈니스 아닙니까?”
싸늘한 진서윤과 달리 오세현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집안 식탁에 오른 쏘세지 반찬 하나 더 먹겠다고 싸우고, 아버지 어깨 좀 주물러 드리고 용돈 타 쓰면 그건 집안일이죠. 하지만 아침밥 먹으며 반찬 대신 계열사 하나 더 먹겠다고 싸우고, 아버지 어깨 주무르면 지주회사 주식 수천억이 왔다 갔다 하는 집안 아닙니까? 이런 게 비즈니스가 아니면요?”
한껏 비꼬는 말이었지만 진서윤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싸늘한 냉기가 사라졌다.
“어린 조카 눈치 보느라 짜증 났었는데, 차라리 더 좋군요. 비즈니스니까 굽신거릴 이유도 없죠?”
“물론입니다. 진 사장님. 같은 눈높이에서 제안하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족한 부분이 나오면 언제든 지적해 주십시오.”
“시원시원하시군요. 그럼 시작하죠.”
오세현은 수첩을 꺼내 들었다.
“필요한 자금은 얼마로 생각하십니까?”
“400억이에요.”
“그중 직접 충당하실 수 있는 금액은요?”
“없어요.”
다시 나타나는 싸늘함.
이번에는 오세현이 당황했다.
“네? 도준이 이야기로는 진 사장님 개인 자금에서 일부 충당한다고….”
“그건 집안 식구끼리 이야기죠. 비즈니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우리 그이가 서울시장이 돼서 오 대표에게 줄 특혜의 값어치가 400억이 넘을 텐데 굳이 내 돈을 써야 하나요?”
오세현은 잊었던 부자들의 습성을 떠올렸다.
자신을 위해서는 돈의 소중함 따위는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지만, 남의 돈이 눈앞에 보일 때는 지갑을 닫는 지독함이다.
“그렇죠. 이거, 제가 깜빡했습니다.”
오세현은 머리를 슬쩍 긁고 서울시 지도와 두꺼운 제안서를 꺼냈다.
“이미 아시겠지만, 공유지 불하입니다. 지도에 표시한 총 29군데의 공유지 매각 발표를 하시면 됩니다. 풍전등화 신세인 국가 재정을 위해 전부 매각한다면 반대 여론은 없을 겁니다.”
29곳이라고 하자 두 사람의 눈을 동그랗게 떴고 진서윤은 소리 질렀다.
“이봐요! 땅장사만 해도 수천억을 벌겠네. 말이 되는….”
“아, 오해하지 마시고요. 미라클이 전부 매입한다는 게 아닙니다. 우린 마포 상암동, 대치동 그리고 내곡동 일대. 이 세 곳만 받을 겁니다. 전부 다 풀어야 특혜 의혹이 없죠. 나머지는 미래의 서울시장님께서 적당히 선정하시면 됩니다.”
부부는 눈을 마주치며 머리를 끄덕였다.
“자, 그리고 이걸 한번 보십시오.”
오세현은 제안서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라는 큼지막한 표제가 눈에 띄었다.
“이 프로젝트 자체를 선거 공약에 넣으십시오. 꽤 큰 호응을 얻을 겁니다.”
진서윤과 최 의원은 한참 동안 DMC에 대한 설명을 듣자 반신반의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상암동에 방송, 프로덕션 등 미디어 컨텐츠 관련 기업을 유치한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사실 마포가 입지는 좋아요. 광화문, 강남, 여의도까지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라는 게 미래지향적이지 않습니까? 일 년만 지나면 새천년의 시대, 뉴 밀레니엄입니다. 좋은 공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세현은 제안서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아…! 이게 있었네.”
진서윤은 축구 경기장 사진을 발견하자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네. 바로 월드컵 경기장이 화룡점정입니다. 하하.”
오세현은 두 사람의 밝은 표정을 확인하고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공유지 개발 건만 잘 관리하셔도 서울시장 재선 때 선거비용은 문제없을 겁니다.”
재선이라는 말에 최 의원은 입이 찢어질 만큼 헤벌레 웃었다.
“어떠십니까? 제 제안이 흡족하신지요?”
“공유지 세 곳이면 충분하다는 거 사실이죠?”
진서윤이 재차 확인하자 오세현은 기다렸다는 듯 서류 몇 장을 꺼냈다.
“불신과 의심을 한 방에 날려버릴 마법의 종이입니다. 바로 계약서죠. 물론 비밀 계약서입니다.”
서류는 금액과 날짜만 비어 있을 뿐, 지금까지 오세현이 말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오 대표. 그냥 우리를 믿으면 안 될까? 이건 불법 선거자금을 전달했다는 증거잖아요. 이런 걸 어떻게 남겨?”
“진 사장님. 전 이미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고 시작한 일입니다. 바로 부군의 낙선입니다. 400억을 허공에 날릴 위험도 감수하는데 증거라니요?”
진서윤이 여전히 껄끄러운 표정을 지우지 않자 오세현이 쐐기를 박아버렸다.
“솔직히 도준이 가족이라 반대하지 않는 겁니다. 정말 손쉬운 방법도 마다하고요. 내년 6월 서울시장 당선자에게 400억 내밀고 이 전략을 알려주는 게 더 확실한 투자죠.”
오세현이 제안서를 흔들며 말하자 권력욕에 젖은 남편이 펄쩍 뛰었다.
“여보. 받아들이자고. 믿을 만한 분이잖아. 윤기 처남 절친이고 장인어른과 자동차로 연결된 분이잖아. 설마 뒤통수 치겠어?”
“그렇습니다. 제가 이 계약서로 딴 마음 먹는다면 진 회장님께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특수부 검사 수십 명이 절 털기 시작할 겁니다. 저도 순양그룹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아요.”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던 진서윤이 마침내 머리를 끄덕였다.
“좋아요. 서로의 신뢰를 위해 계약서는 필요하겠군요.”
오세현은 금액과 날짜를 서류에 채워 넣었다.
“자, 그럼 다 끝났죠?”
“네. 시원시원한 결정, 감사합니다.”
오세현은 두 사람에게 깍듯이 머리를 숙였다.
“오 대표. 그럼 돈은 내일이라도 가능한가?”
최 의원은 다급한 듯 서둘렀다.
“아뇨. 적어도 사흘은 걸릴 겁니다. 몇 바퀴 돌려서 세탁도 해야 하고 신권이 아니라 구권을 구해야 하니까요.”
철저한 준비에 믿음이 깊어지는 두 사람이었다.
“두 분께서도 사흘 안에 예선 통과는 하셔야겠죠?”
“예선이라니?”
“진 회장님의 허락 말입니다. 그분의 출마 허락이 없는 한, 자금집행은 없습니다. 선거자금 400억을 전화 몇 통으로 휴짓조각으로 만드실 분 아닙니까?”
오세현의 약간은 무시하는 듯한 눈빛.
그 눈빛을 받은 두 사람은 진 회장의 성난 얼굴을 떠올리며 인상을 팍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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