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82
“음…….”
“뭐야? 넌 쌍수 들고 환영할 거라고 할아버지께서 그러시던데, 너도 모르는 거야?”
아버지는 내 표정을 샅샅이 훑으며 숨은 의미를 파악하려 하셨다.
“아, 아뇨. 그것보다는 뭔가를 싸게 팔겠다고 하신 거요. 뭘 주시려는지 짐작을 못 하겠어요.”
“그럼 아는 거부터 말해주면 안 될까? 난 궁금해 죽을 것 같아.”
“제 생각에는 사람을 주신 것 같아요.”
“사람?”
“네. 순양 병원은 VIP 고객이 많기로 소문났잖아요. 고위 관료, 정치인은 자신의 건강상태가 새 나가는 걸 조심하니까, 비밀 유지가 완벽한 순양 병원을 찾잖아요. 그리고 연예인도 많고요.”
“아…!”
낮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이제 특진을 원하거나 특별 대우를 받고 싶은 사람은 전부 아버지께 연락하겠죠. 자연스럽게 인맥을 쌓을 수 있잖아요. 아버지는 영화 제작할 때 감독이나 주연배우를 순양 병원에서 캐어할 수 있고요.”
“그럼 인력개발원은? 그것도 사람이야?”
“물론이죠. 승진 대상 전부가 개발원 연수원에서 교육받잖아요. 개발원의 교육 평가가 승진을 보장하지는 못해도 승진 탈락에는 막대한 영향을 미치니까요.”
순양그룹의 인력관리가 철저하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른 기업처럼 연수원은 잠깐 쉬어가는, 심지어 어떤 곳은 휴가나 다름없다며 교육받는 동안 예비군의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하지만 순양 연수원은 엄청난 교육시간, 세미나, 토론, 시험, 평가로 이루어진, 마치 사법연수원과 비슷할 정도로 빈틈없는 곳이었다.
“그룹 핵심에 다가가려는 사람 전부가 개발원을 거치니까…”
“개발원 대표이신 아버지에게 잘 봐달라는 전화가 빗발칠 것이고 그게 전부 네트워크가 되겠죠.”
“그러니까 그룹 외부, 내부 인맥을 골고루 쌓겠구나.”
“네. 늦게 시작한 만큼 속성으로 아버지 사람으로 만들라는 배려죠.”
“내가 아니고 네 사람 만들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조용히 말하면서도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아챌 수가 있지? 병원이나 연수원을 인맥과 연결하는 네 할아버지나 그걸 단번에 파악한 넌 또… 정말 할 말이 없다.”
순양그룹에서 월급 받아본 사람은 연수원의 잠재력을 잘 안다. 별것 아닌 대리 진급을 위해 이 층 침대가 두 개 들어간 4인실에서 무려 열흘간 밤잠을 설친다.
나이 지긋한 중년 부장들은 더하다. 2인실에 들어가 이 주간의 악마 같은 스케줄을 소화해야 한다.
체력이 버텨내지 못하면 임원 진급이 물 건너가니 악으로, 깡으로 견디는 것이다. 견딘다고 해서 끝난 건 아니다.
인력개발원의 최종 평가가 C 이하라면 임원은 물 건너가고 정년까지 만년 부장을 할 건지, 사표 내고 떠나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
이럴 때 만약 개발원 이사장이 전화 한 통만 넣어준다면? 하다못해 연수원장의 은밀한 지시만 있다면 임원 자리에 한걸음 성큼 다가설 수 있다.
인력개발원의 가치를 아무리 낮게 잡는다 하더라도 순양그룹의 주요 자리를 차지할 임원 후보들과 술 한잔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요직이다.
이 모든 건 오로지 순양에서 월급 받는 사람만 안다.
급여 통장에 찍힌 숫자에 한숨지어본 적 없는 아버지가 이런 사실을 알 도리는 없는 게 당연하다.
“관심이 없으셔서 그런 거겠죠. 그런데 혹시 인력개발원 지분구조 알 수 있을까요? 보유 자산도요.”
“현황을 좀 알아보라?”
“네. 단지 인맥 네트워크뿐만은 아닌 거 같아서요. 그게 전부였다면 당분간 비밀로 하라는 말씀은 안 하셨을 거예요. 큰아버지들이 알면 반발할지도 모르는 뭔가가 있지 않겠어요?”
“비밀로 하라는 말씀 속에 또 비밀이 있다?”
“할아버지는 비밀이 많으신 분이잖아요. 흐흐.”
아버지는 내 웃음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 넌 어찌 된 게 나보다 할아버지를 더 닮았냐?”
“재능은 가끔 대를 건너뛰기도 하니까요.”
아버지는 또 한 번 한숨 쉬고 일어났다.
“아버지 노릇 제대로 한번 하는 것도 쉽지 않구만.”
* * *
“결혼식은 어땠어?”
“제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요, 뭘. 그보다 어떻게 됐어요?”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대아건설이다.
“재벌들 정략결혼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잖냐.”
“두어 번 얼굴 보고 하는 결혼, 그게 결혼인가요? 계약이지.”
“오, 그럼 넌 정략결혼 안 할 거야? 재벌 3세와 평범하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캔디랑 결혼하는 순정만화 주인공?”
“꼭 필요한 여자와 하겠죠. 그게 뭐가 됐든. 삼촌, 왜 자꾸 딴소리 하세요? 대아건설 주식은요?”
“자식아. 원래 나이 들면 젊은 애들 연애나 결혼이 궁금한 거야. 우린 끝났으니까.”
오세현은 빙긋 웃으며 주식 현황 메모를 꺼냈다.
“이 새끼들 당황했나 봐. 5% 매입하고 대주주 신고 들어가자마자 연락 왔어. 한번 만나자고 말이야.”
증권시장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바닥에 착 붙어 움직이지 않는 장에서 곧 부도날 게 뻔한 회사의 주식을 순식간에 매입하니 회사 측에서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휴지나 다름없는 주식을 매입한 자가 아진그룹을 삼킨 거대한 투자사 미라클이니 잔뜩 겁먹을 것이다. 지은 죄가 많다면 말이다.
“만나야죠?”
“물론이지.”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까요?”
오세현은 눈을 찡긋했다.
“나한테 맡겨둬. 내가 지금까지 투자질 하면서 회삿돈 빼먹고 튀는 새끼 한둘 봤겠냐? 나한테 걸린 그런 놈들, 지금 뭐하는 줄 알아?”
“감방에 모여 있거나, 전과자 신세겠네요?”
“빙고!”
오세현은 손가락을 딱! 튕기며 가방을 들었다.
“자, 가자. 한판 해야지.”
* * *
영등포의 대아건설 본관은 바깥 겨울 날씨보다 더 스산했다.
건물 안의 직원들은 월급도 나오지 않는 회사에 칼 출근해서 자리만 지킨다.
회사가 곧 망한다는 걸 모를 리 없지만, 존재하지도 않는 희망 한 자락에 회사로 출근하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떠서 이 건물이 아니면 갈 곳이 없다.
밀린 월급도 발걸음을 재촉한다.
혹시나 조금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머리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수백 번도 더 이야기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헛된 희망이 이 건물의 직원들을 고문하는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
또 하나의 가족.
20년 뒤에는 이런 개소리를 믿는 사람은 없지만, 지금은 아니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의 끄트머리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들 어떻게 될까요?”
“네가 구세주가 되어야지. 밀린 월급도 주고 힘내라고 특별 보너스도 주고. 안 그래?”
오세현은 내 등을 한번 툭 치고 대아건설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어서 오십시오. 대아건설 전무 강무진입니다.”
“오세현입니다.”
어쭈, 이것들 봐라. 사장실에 주인은 없고 집사가 앉아있다?
수작 부리려고 단단히 준비했나?
“사실 당황했습니다. 갑자기 우리 대아의 주식을 사들이시다니요. 미라클 인베스트먼트 같은 대형 투자사가 관심 가질만한 회사가 아닌 듯한데…. 이유를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투자 회사가 주식을 매입하는 이유는 하나뿐이죠. 돈 되니까요.”
강무진 전무는 바짝 마른 입술을 슬쩍 훔쳤다.
“이거 원, 어떤 면에서 돈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신문 안 보세요? 뉴스는요? 쓰러져가는 대아건설에 발 담그시면 손해 보실지도 모릅니다.”
“요즘 누가 주식에 투자합니까? 깡통 차기 딱 좋은데요. 돈은 은행에 넣어야죠. 이자율이 꽤 높습니다.”
강무진 전무 옆에 앉은 중년 사내가 거들었다.
“당신 직급 전무보다 높아?”
오세현이 인상을 팍 쓰며 대뜸 반말을 내뱉었다.
“네? 뭐… 뭐요?”
“대주주님 말씀 중이시다. 이 자리 대가리 아니면 빠져. 5%가 넘는 주식을 보유한 대주주를 불러놓고 대표이사도 아닌 전무와 말 섞는 것도 짜증 나는데 어디서 감히 끼어들어! 주주가 무슨 말인지 몰라? 이 회사 주인이야. 주인 맞이하는 자세부터 글러 먹었구만.”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였지만 강무진 전무는 화를 내기는커녕 벌떡 일어서서 허리를 굽혔다.
“이해해 주십시오. 사장님께서는 지금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금 구하러 뛰어다니십니다. 일개 상호신용금고 대리까지 만나십니다.”
“제가 무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강 전무의 눈짓에 중년 사내도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알면 다들 자리 좀 비켜주지? 조용히 이야기 좀 하고 싶으니까.”
강 전무가 사장실 소파에 앉아있는 사내들에게 턱짓하자 모두 머리를 숙이고 우르르 빠져나갔다.
“자, 이제 말씀하시죠. 우리 회사 주식을 갑자기 사들이시는지 말입니다.”
강 전무는 미소까지 보이며 여유를 되찾았다.
“그보다 먼저 왜 나를 보자고 했는지부터 말하는 게 순서 같은데…?”
오세현의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항상 예의 바르고 유머를 잃지 않으려 썰렁한 농담을 입에 달고 사는 분인데 무례하고 공격적이다.
짐작건대 대아건설 경영진이 분명 회삿돈을 빼돌린다고 확신하기 때문일 것이다.
약점 있는 놈에게는 강하게 나간다.
내 주변에 이빨, 발톱 숨긴 사람이 수두룩하니 약점 잡힐 일은 꼭 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바로 저 강 전무 꼴이 될 것이다.
“오 대표님을 뵙자고 한 것이 바로 그 이유를 묻고자 함이지요. 분명 원하는 것이 있을 듯합니다.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십시오. 주주가 원하는 일을 경청하는 게 경영진의 본분이니까요.”
기름칠한 혀에서 나오는 청산유수와 같은 말이다.
능글능글한 표정, 쉬지 않고 움직이는 눈동자.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미 말했을 텐데요? 돈 벌려고 합니다. 그게 투자자 아닌가요?”
“그러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주식을 매수가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매도 해야 할 텐데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좋은 가격으로 다시 사 줄 것 같은데… 아닙니까?”
오세현은 빙긋 웃으며 강 전무의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 그렇군요.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강 전무도 오세현의 웃음에 화답하며 한술 더 떴다.
“그럼 우리가 한번 알아봐 드릴까요? 아직 대아건설의 회생을 믿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그분들은 우리 회사 주식을 다량 매집하려 준비 중이시죠.”
“그런 수고까지 해 주신다면 오늘 이곳에 온 보람이 있군요. 혹시 빨리 찾아주실 수 있습니까?”
“최대한 서둘러 보겠습니다.”
결국 이놈들은 자신의 계획을 우리가 망치기 전에 재빨리 다시 거둬갈 것이다. 아니면 차일피일 미루면서 시간을 벌던지.
“할 말은 끝난 것 같으니까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오세현이 소파에서 일어서자 강 전무도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주주님께서 만족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최대한 빨리 적당한 분을 찾아 오 대표님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네. 빠른 조치 부탁합니다. 내일까지요.”
강 전무는 맞잡은 손을 턱 놓아 버렸다.
“오 대표님. 내일까지는 좀 어렵습니다.”
오세현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강 전무는 당황했지만, 그의 변명 따위는 더 듣지도 않았다.
“모레 아침 임시 주주총회를 요구할 겁니다. 주총을 막으시려면 서두르세요. 그럼 이만…….”
오세현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서둘러 대아건설을 빠져나왔다.
빌딩밖에 대기 중이던 승용차에 올라타자마자 오세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확실하네. 이 새끼들.”
“내일 바로 덮치죠. 회계장부 열람권 주장하고 대아건설 자산부터 확인해야겠어요.”
오세현은 나를 보며 혀를 슬쩍 내밀었다.
“역시 빨라. 다 배웠다 이거지?”
“아이고, 하산하기에는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사부님.”
한바탕 웃고 나서 우리 두 사람은 동시에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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