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85
순양 감사팀은 상의를 벗었다.
“자, 우리가 분류해서 드릴 테니 그것만 보세요.”
이들은 박스를 까고 재빨리 서류를 훑기 시작했다.
“참, 작년 결산 서류부터 찾으시고 확인하세요. 우린 다른 걸 볼 테니까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여의도 회계사들이 다른 박스를 열어 결산서부터 찾기 시작했다.
순양 감사팀은 서류 파일의 제목만 훑으며 빠르게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찾고자 하는 증거가 뭔지 확실히 아는 듯 보였다.
순양그룹 감사팀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룹 내에서는 검찰보다 더 무섭다고 알려진 조직 아닌가? 검찰은 영장이 필요하지만, 감사팀은 영장 없이 모든 조사가 가능하다.
감사 대상자의 계좌 공개까지 요구해도 따를 수밖에 없다. 싫다면 사표를 써야 하니까.
사표 쓴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다. 사표를 쓰는 순간 비리를 저질렀다고 확신하고 곧바로 검찰 수사를 의뢰한다.
차라리 감사팀 수사에 협조하고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는 게 인생을 덜 피곤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다.
나는 오너 일가가 사고 친 것을 뒤처리하는 보직이다 보니 단 한 번도 감사팀을 만난 적이 없었다.
이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니 거대 기업 집단을 지배하려면 온갖 조직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확실하게 내 사람들로만 채워야 하는 조직이다.
이런 생각이 스쳐 갈 때 갑자기 여의도 맨과 순양맨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 확인한 서류와 자료를 대조하기 시작했다.
“오 대표님 이거 한번 보시죠.”
오세현은 안경을 고쳐 쓰고 복잡한 서류를 세세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환치기 같은데요. 게다가 마지막 송금한 돈은 아예 국내로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환율로 장난치고 달러까지 빼돌린 거네?”
“확실하죠?”
순양 감사팀 직원도 거들었다.
“원자재 수입으로 가장해서 돈을 빼돌리고 그걸로 환치기를 시작했습니다. 지금 환율이 출렁거리니까 제대로 해먹은 거죠.”
“원자재 수입 자체가 구라다?”
“네. 여기 송장을 보면 샹들리에 같은 고급 인테리어 자제를 수입했는데… 이 정도 금액이면 컨테이너 6개 이상이 필요해요. 부피가 워낙 커서 그렇거든요. 그런데 달랑 1개만 쓴 걸로 나와 있습니다. 이 새끼들, 세관까지 구워삶은 겁니다.”
“확실해요?”
“인보이스(invoice) 리스트에 나와 있는 품목은 우리가 수백 번도 더 넘게 만져본 상품입니다. 우리 집 밥그릇 숫자나 가격은 몰라도 이 품목들 가격, 크기 등 훤히 알아요. 확실하니까 이걸로 칩시다.”
자신만만한 순양 감사팀의 태도에 오세현은 머리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럼 쇼부 치러 가볼까?”
“그전에 전화부터 하고요.”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법원에서 대기 중인 변호사에게 대아건설 경영진의 업무정지 가처분신청과 횡령, 외국환관리법 위반에 대해 고소 고발을 진행을 지시했고 할아버지께도 이 사실을 알렸다.
“대단하신 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대박 하나 건졌습니다. 이 정도면 칼자루는 제 손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 거 봐라, 그놈들이 진짜 일꾼이야.
“법원에 서류 제출했습니다. 이제….”
– 검사장과 통화하마. 오늘 중으로 압수수색영장 들고 갈게다.
통화를 끝내고 오세현과 함께 사장실로 올라갔다.
* * *
“충분히 검토할 시간은 지나지 않았는데, 눈알 빠지게 서류 보는 게 귀찮아지셨습니까?”
강 씨 형제의 얼굴엔 안도의 빛이 보였다.
말 그대로 뭔가 발견하기에는 짧은 시간이다. 여의도 투자사 나부랭이들이 자신들이 숨겨놓은 것을 두 시간 만에 찾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참 내,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으니 회사 꼴이 이 모양이지. 우리가 두 시간 만에 손 털고 나올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뉘신가? 말버릇 없는 분은?”
강무성 사장이 나를 노려보며 싱긋 웃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제 소개도 안 하고 입을 열었네요. 방금 대아건설 경영진과 오너 일가 전부를 검찰에 고발한 사람입니다. 이 정도면 예의 차리고 대화 나눌 사이는 아니겠죠?”
“뭐!”
“뭐요?”
두 사람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다. 믿기지 않은 표정이었다.
“검찰에 빨대 서너 개쯤은 꽂아 놓으셨을 테니, 못 믿겠으면 확인해 보시면 되겠네요.”
오세현이 넋 놓고 있는 두 사람에게 눈짓을 보내자 동생 강무진 전무가 황급히 휴대전화를 꺼내며 밖으로 나갔다.
“다, 당신들 도대체 뭐하는 짓이야? 불난 집에 기름을 부어? 같이 망하자는 거야? 회사 망하면 당신들 주식도 휴지야!”
강무성 사장은 우리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벌써 저렇게 무너지면 어떡하나?
“커피라도 마시며 차분히 이야기하는 건 다음으로 미뤄야겠군요.”
오세현과 내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강무진 전무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혀, 형님. 서부지검 금융조사부가 영장 쳤답니다. 순식간에 진행되는 거로 봐서는 누가 압력을….”
강 전무는 말을 끊고 우리를 노려봤다.
“아진그룹 인수하고 순양자동차까지 삼키니까 우리에게도 빨대라는 게 생기더군요. 서로 돕겠다고 어찌나 난리 치는지…. 참, 강 사장님. 공무원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우릴 도와주는것도 떡값 줘야 합니까? 경험 있으실 테니 힌트 좀…”
오세현은 두 사람의 속을 긁었다. 나는 꼭 알려줘야 할 사실도 말했다.
“일가족 전부와 경영진 한 명도 빠짐없이 출국금지 상태일 겁니다. 비행기 타고 야반도주할 생각은 접고 순순히 조사에 응하세요.”
사장실 문을 열고 나설 때 오세현은 그들에게 구원의 동아줄을 내려줬다.
“자, 검찰 취조실이 무섭고 힘들어 쇼부 칠 생각 있으면 연락하쇼. 내 번호 알죠? 괜히 검사 앞에서 줄줄 불면 좆됩니다.”
***
진 회장의 서재에 모인 여덟 명 중 셋은 이 서재를 처음 구경하는 중이다.
순양 본관의 회장실이야 직접 보고를 위해 몇 번 들어갔지만 큰 상징성은 없다. 하지만 회장님의 자택 서재에 들어왔다는 것은 1군으로의 승급을 의미한다.
이미 세 명의 얼굴에는 홍조가 가득했다.
“여기 막내가 누구지?”
“네, 회장님. 건설 지원본부 김경식 이사입니다.”
홍송철 건설 사장이 소개하자 김 이사는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언제 이사 달았지?”
“작년 봄 정기인사 때 임원 승진했습니다, 회장님.”
“일 년 만에 또 승진하겠군. 운이 좋아. 허허.”
이사에서 상무로? 그것도 일 년 만에?
홍송철 사장과 이학재 실장을 제외한 서재의 모든 눈길이 김경식 이사에게 향했다.
저놈이 혹시 회장님과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었던 건가? 하는 눈빛이었으나 당사자인 김 이사도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놀란 표정이었다.
모두의 의문은 회장만이 풀어줄 수 있다.
“이 실장. 설명해 주게.”
“네. 회장님.”
이학재 실장은 간략한 조직도 한 장을 꺼냈다.
“여러분들은 곧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길 겁니다. 물론 지금 순양건설보다 더 좋은 대우와 직급 또한 한두 단계 오릅니다.”
직급이 뛰고 월급이 오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회사를 옮기다니? 설상가상, 계열사가 아닌 자회사라면 명백한 좌천 아닌가?
“백재진 전무님께서는 대표이사 사장으로, 정광태 상무는 부사장, 그리고…….”
6명의 이름이 순서대로 나왔고 마지막은 김경식 이사였다.
“김 이사는 경영관리 본부장 상무로 보직 이동될 겁니다.”
모두 이학재의 입만 바라보았다.
과연 어디일까?
순양건설과 비슷한 급의 계열사라면 영전이지만 아니라면?
그런데 좌천에 불과한 인사 명령이라면 굳이 회장님의 서재에서 발표할 필요가 없다.
이 사실에 그들은 희망을 걸었다.
“여러분들의 새 직장은 바로 대아건설입니다.”
대아라는 이름에 실망보다 의문이 몰려들었다.
곧 망할 회사 아닌가? 게다가 순양그룹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 서재에서 절대 나올 이름이 아니다.
“어째서 대아건설인지 궁금하시겠지만….”
“됐어. 내가 설명하지. 그래야 안심할 것 같은 표정이잖아. 허허.”
진 회장은 웃음을 머금으며 당황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아건설은 곧 미라클이 차지할 거다. 미라클 알지?”
“아진그룹을 인수하고, 순양자동차와 합병한….”
“그래 바로 그 투자사지. 지금 작업 중인데 늦어도 두세 달 안에 대아건설 대주주가 될 거야.”
“부도설이 파다한데….”
“부도나기 전에 차지하고 정상으로 끌어올릴 거야. 그런데 다들 많이 불안한 모양이구먼. 내 말을 끊다니 말이야. 하긴, 오죽하면….”
“죄, 죄송합니다. 회장님.”
두어 명이 급히 머리를 숙였고 진 회장은 손을 내저었다.
“괜찮아.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럴 수도 있지. 아무튼, 자네들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해. 최대한 빨리 대아건설을 정상으로 만드는 거야.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 전력을 다해주기 바라네.”
“네. 회장님.”
우렁차게 대답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직 한줄기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를 일으켜 세워야 할 사람들이 불안에 떨면 되겠는가?
진 회장은 그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말을 이어갔다.
“대아건설이 정상화 되면 2년 안에 순양그룹 계열사가 될걸세. 순양건설과 합병하는 게 아냐. 자네들이 열심히 키워 놨는데 합치면 자리도 줄어드니까 말이야. 그룹 내 또 하나의 건설사가 될 게야.”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에 이들의 불안이 사라졌다.
“하나뿐인 사장 자리를 홍송철이가 꽉 물고 안 놓잖아? 이 기회를 잘 살려봐.”
홍 사장이 웃자 다른 이들도 긴장을 풀고 미소 지었다.
“회장님, 외람되지만 미라클과 우리 순양그룹은 어떤 관계입니까? 혹시 미라클은 회장님이 세우신 투자사인 건 아닌지….”
홍 사장은 순양자동차를 아진그룹에 넘겼을 때부터 궁금했지만 참아왔던 질문을 조심스레 던졌다.
자동차는 합병이지만, 이번 건은 아예 사람을 차출해서 지원하는 모양새 아닌가? 보통의 관계가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미라클이 내 거라면 얼마나 좋겠나? 현금이 짱짱하다고 소문났잖아.”
“그럼…?”
이학재도 차마 캐묻지 못하고 참아왔다. 혹시 오늘 그 해답을 들을 수 있을까 기대에 찬 눈빛이었다.
“내가 자네들만큼 믿는 사람이 미라클의 대주주야. 그 사람 자본으로 만들어진 회사라고 생각해도 무방해.”
아주 잠깐이지만, 이학재의 눈썹이 꿈틀했다. 드디어 퍼즐이 맞춰졌고 미라클의 정체를 파악한 것이다.
글로벌 투자사인 파워쉐어즈에서 잘나가던 오세현이 진도준의 분당 목장 매매 대금을 관리한다고 했다.
곧이어 파워세어즈를 그만두고 미라클이라는 투자사를 미국에 설립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아진그룹을 인수하고, 순양에 달러를 지원했으며, 대아건설을 삼킬 만큼 어마어마한 자금을 확보한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이 돈의 주인은 바로 진도준.
이제 겨우 대학생인 이 집안의 막내가 개인 자산으로만 본다면 진 회장보다 더 부자일 가능성도 있다.
진도준의 땅 판 돈, 시드머니로 오세현이 이만큼 불린 것이다.
진 회장이 순양의 핵심 인사만큼 믿고, 미라클이 국내 기업을 사냥하는데 아낌없는 지원까지 할 만한 사람.
진 회장은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측근들을 보내 도와줄 사람이 아니다.
진도준이 틀림없다.
이학재는 그가 받은 충격을 드러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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