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Son of Sunyang RAW novel - Chapter 93
“우선 빠른 결단에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아뇨. 이건 기회니까 제가 놓치면 안 되죠. 기회를 주셨으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
샤슈아 교수는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서 나타났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하룻밤을 참고 넘기기 힘든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늦은 시간이라 밤을 즐기는 투숙객들은 대부분 바에서 한잔 걸치고 있다 보니 로비라운지는 한적하기만 했다.
“제 제안에 대한 대답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샤슈아 교수는 상의 주머니에서 곱게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이게 초기 창업 비용입니다. 그리고 투자에 따른 지분 구조 제안을 간략히 메모했습니다.”
재빨리 종이에 적힌 숫자를 보자 웃음이 터질 뻔했다.
95년에 창업했다는 코그니텐스의 규모가 어떤지 충분히 짐작할 숫자들이다.
우리나라 벤처 기업과 다른 점도 확연히 다가왔다.
우리나라 벤처는 최대한 많은 돈을 끌어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곳곳에 보이지만, 이 한 장의 종이에는 어떻게 하면 돈을 아낄까 고심한 흔적이 묻어있었다.
그만큼 최소한의 비용을 제시했고, 내게는 웃음이 터질 것 같은 적은 돈이었다.
종이를 접어 테이블에 조용히 내려놓았다.
“교수님.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말씀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교수님의 연구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확신하십니까?”
“그렇습니다.”
샤슈아 교수는 머리를 끄덕이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그의 태도에는 조금의 가식도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 꼭 필요한 것을 갖췄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다.
“기술센터 협력은 어떤 형태로 이뤄지죠? 여기 보면 대학 기술센터에 3.7%의 지분을 준다고 돼 있는데…?”
“아, 통상 학교가 제공한 장비와 실험실에 대한 비용 측면이 강하죠. 기타 도서관 서적 같은 잡다한 것도 포함이고요.”
샤슈아 교수는 내가 지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자 학교에 대한 설명을 보탰다.
“우리 대학에서는 창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도 불확실한 연구지만 이미 20만 달러 이상의 기자재를 지원할 정도니까요. 3.7%는 결코 많은 것이 아닙니다.”
“아, 오해 마십시오. 학교를 탓하는 게 아닙니다. 단지 학교의 지원 규모를 알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물론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 때까지 필요한 1차 펀딩은 70만 달러, 상용화가 가능할 때까지 필요한 2차 금액은 150만 달러. 맞습니까?”
“네.”
혹시나 내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조금은 긴장한 샤슈아 교수는 내 입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미라클의 지분은 35%.”
“부족합니까?”
“아닙니다. 합리적이시네요. 진심입니다.”
샤슈아 교수는 긴장을 풀고 환한 미소를 보였다. 딜이 성사되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첫 제안은 거절하는 게 맞다. 그 제안이 합리적이든, 아니든 말이다.
“교수님.”
“네.”
“이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비합리적일 수도 있지만, 끝까지 들어주시겠습니까?”
“아, 네.”
미소가 사라진 교수를 보며 천천히 말했다.
“대학 기술센터에 40만 달러를 주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학교 측이 제공한 기자재도 학교 소유로 그냥 놔두겠습니다. 이로써 학교 측에 빚진 건 없으니 3.7% 지분은 줄 필요가 없겠죠? 더 줘야 합니까?”
머리만 저을 뿐 입은 열지 못한다. 두 번째 제안은 파격적일수록 효과가 크다. 지금 샤슈야 교수가 충격받은 것처럼.
“그리고 1차 펀딩은 700만 달러로 올리겠습니다. 필요한 장비, 가장 어드밴스 된 것으로 부족함 없이 다 마련하시고 인력 역시 필요한 만큼 전부 끌어모아 쓰십시오. 미국 MIT 박사급이라도 괜찮습니다.”
“미, 미스터 진!”
첫 번째 충격이 사라지기 전 두 번째 충격을 받으면 이렇게 말을 더듬는다.
“상용화를 위한 2차 펀딩은 그때 가서 결정하죠. 오해는 마십시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150만 달러를 안 쓰겠다는 게 아니라 1,500만 달러로 할지, 더 필요할지 몰라서 결정을 미루는 것뿐입니다.”
어쩌면 날 미친놈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투자 건이 헛짓으로 끝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필요한 금액의 열 배.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원하는 금액의 열 배, 아니 백배라도 던질 기세를 읽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딱 한 가지다.
이미 시장에서 그 성공 가능성을 인정받았거나, 이미 성공한 사업을 더 크게 키우는 타이밍이거나.
하지만 샤슈아 교수는 소설로 치자면 Chapter 1의 첫 줄을 적었을 뿐이다. 앞으로 이 소설을 완결할지, 잘 팔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난 미친놈이 아니다.
샤슈아 교수가 이 아이템으로 창업하면 곧바로 밝은 혜안을 가진 러시아 투자자가 곧바로 천만 달러를 쏘며 막대한 지분을 확보한다.
내가 미리 손을 써 놓으면 숟가락 들고 와서 밥상에 끼어들 여지도 없을 것이다.
“미스터 진, 솔직히 믿기 힘든 제안입니다. 제가 예산을 좀 타이트하게 잡은 건 사실이지만 무려 10배의 금액을….”
“아직 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당황한 샤슈아 교수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했지만, 그의 입을 막았다.
“대신 미라클의 지분은 60%로 설정하고 싶습니다.”
60%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교수의 얼굴이 구겨졌지만, 아직 내 제안은 끝나지 않았다.
“단지 보유만 할 뿐입니다. 모든 의결권은 교수님께 드릴 것이며 경영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습니다. 그 흔한 감사도 파견하지 않을 테니 투자금을 어떻게 쓰던 별도의 보고서도 필요 없어요. 오직 비즈니스 성공만 생각하십시오.”
내 이야기를 끝내며 깍지를 꼈다. 이제 샤슈아 교수의 마지막 대답을 들을 차례다.
하지만 입을 열지 못한다. 눈만 깜빡거리며 내 얼굴만 보고 있었다.
“교수님?”
“아,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들어본 투자 조건 중 가장 황당한 소리라서…. 이건 거의 도박 아닙니까?”
투자자를 믿지 못하는 저 눈빛, 많이 황당한가 보다.
“첫 카드가 에이스라면 올인 정도는 무리 없을 만큼 칩이 많으니까요.”
신중한 건지, 의심이 많은 것인지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참, 코그니텐스도 투자할 생각입니다만, 100만 달러 정도면 되겠습니까? 지분은 현재의 자본금 비율에 맞추겠습니다.”
구구절절 더 말하는 것은 그만두고 화제를 옮겼다.
“100만 달러면 코그니텐스의 지분 80%입니다. 그건 좀 곤란하군요.”
“그럼 50 아니, 49%로 하죠. 기타 조건은 이미 말씀드린 조건과 똑같이 하고요.”
난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더는 할 이야기가 없다.
“또 생각해보셔야 하겠군요. 제 조건을 받아들이시면 내일 중으로 투자 계약서 만들어서 드리겠습니다. 검토하고 날인 하시면 곧바로 지정 계좌에 투자금 전액 입금하고요.”
이야기가 끝났다는 걸 눈치챈 샤슈아 교수도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일어섰다.
“파격적인 제안은 잘 들었습니다. 이처럼 좋은 조건을 듣고 고민하게 될 줄 상상도 못 했는데 현실이 돼버렸군요.”
“복권에 당첨되면 믿기지 않는 법이죠. 당첨금이 높을수록 말입니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교수님의 연구는 제게 복권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하.”
* * *
벌어놓은 돈이 많아서인지 오세현은 시시콜콜 캐묻지 않았다.
단지 “천만 달러 미만이면 선방했네.”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투자 조건의 큰 줄기만 말해주고 통화를 끝냈다.
미라클에서 계약서를 만들어 메일로 보내면 여기서의 일은 끝이다.
이번 일은 정말 장기적인 투자가 될 것이다. 다만 샤슈아 교수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이용하여 한국에서 아진자동차의 점유율을 높이고 해외에서 첨단 시스템이 부족한, 뒤떨어진 자동차가 안 되는데 기여하기를 바랄 뿐이다.
복권 당첨을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다음날, 샤슈아 교수는 오전 중에 호텔로 달려왔다.
“이런 기적 같은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신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그는 유대인답게 신의 계시를 언급했다. 나는 살짝 웃으며 농담을 건넸다.
“정말 신께서 말씀하셨습니까? 아니면 냉철한 이성의 계산 결과입니까?”
“사실, 과학자답게 정확한 계산이 먼저죠. 하하.”
환하게 웃는 그에게 투자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 초안입니다.”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은 샤슈아 교수는 밝은 얼굴이었다.
“군더더기 없어 좋군요. 하지만 변호사와 다시 한 번 체크하고 싶습니다만.”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리고 사명(社名)은 공란으로 해 놨습니다. 직접 써넣으시라고요.”
“아, 그렇지 않아도 회사 이름을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모빌아이(Mobileye)라고 네이밍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까지는 바뀐 건 없다.
이름이 같다.
“아주 좋군요. 추구하는 바가 뭔지 정확히 알겠습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한껏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100억 달러가 넘는 든든한 보험을 들었다.
만기가 되어 큰돈을 만질지, 그 전에 보험을 깨고 다른 용도로 쓸지는 두고 볼 일이다.
* * *
한국으로 돌아오니 나를 기다리던 사람은 오세현이 아니었다.
그는 대아건설을 HW 그룹과 섞는 작업 하느라 내가 이스라엘까지 가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전혀 관심 없었다.
공항에서 곧바로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할아버지 서재였다.
“이놈아. 그 위험한 곳을 왜 갔어?”
할아버지의 눈에는 걱정과 노기가 한가득이었다.
“요즘은 괜찮습니다. 거기가 늘 전쟁만 하는 곳은 아니에요.”
할아버지는 무사한 나를 보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화하려는 걸 억지로 참았다. 일하는데 괜한 방해만 될까 봐 말이다.”
“전화하셔도 됐을 텐데요. 그냥 바람 좀 쐬고 왔을 뿐입니다.”
“네놈이 바람이나 쐬러 지구 반대편까지? 뭔지 묻지 않을 테니 그런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말은 관둬라.”
피식 웃는 할아버지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가 급하게 널 보려고 한 건 그것 때문은 아니다.”
때마침 서재 문을 열고 고모와 고모부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 도준이도 와 있었네?”
고모는 환히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모두 앉아. 내가 알려줄 게 하나 있으니까.”
할아버지가 우리 모두를 호출했다는 건 곧 있을 지방선거 때문이 분명하다.
“최 서방.”
“네. 장인어른.”
“자네 서울시장 공천은 문제없지?”
“그렇습니다. 우리가 야당으로 전락했고 과거 정부의 인기는 폭락했으니 도전장을 던지는 사람이 없더군요. 순조롭습니다.”
서울시장으로 가는 첫 단추를 끼웠으니 두 사람의 표정이 좋은 것은 당연했다.
“찬물을 끼얹는 것 같지만 알아둬야 할 게 있어. 여당은 서울시장 후보로 고경열이를 낙점한 것 같다.”
이 방에서 멀쩡한 얼굴은 나 혼자였다.
제2회 전국동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당선한 여당 후보 고경열. 아, 물론 전생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는 소속정당이 없는 관료 출신이다. 그것도 신망이 두터운 행정가다. 좌우 정치색에서 자유로운 사람을 영입했으니 야당으로서는 엄청난 강적을 만난 셈이다.
고모부의 안색은 이미 흙빛으로 변했고 고모는 입술을 깨물었다.
“흐흐, 도준아, 넌 헛돈 날린 것 같은데?”
“그보다 할아버지. 아직 뉴스에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알긴. 고경열이가 아침에 문안 인사차 전화 왔더라. 그리고 여당에서 자신을 영입하려는데 어떻게 할까 물어보더라고.”
“네? 그 사람이 왜 할아버지께 허락을 구해요?”
“내 돈으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놈이 내 사위와 한판 붙는데 당연히 허락받아야지. 내가 끼어들지 않겠다는 대답도 듣고 싶었을 테고. 허허.”
저 웃음.
지금 할아버지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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