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Place For Fakes RAW novel - Chapter (10)
가짜를 위한 장소는 없다-10화(10/183)
<10화>
“뚝.”
그런데 그 순간.
유스티스가 몸을 수그려 필로멜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는 작은 뺨에 흐르는 눈물을 손으로 훔쳤다.
“넌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
“네가 거짓말쟁이면 나 또한 거짓말쟁이지. 나도 들었거든.”
“폐, 폐하!”
순식간에 후작 부인의 예쁘장한 얼굴이 더없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나마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로건이 납작 엎드렸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철없는 동생이 걱정되어 그만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혀, 형?”
리암이 뒷걸음질 쳤다.
“왜 그래? 모두 그랬잖아. 폐하께서도 형을 후계자로 점찍어 놓으셨다고…….”
“시끄럽다!”
퍽! 로건이 동생의 머리를 후려쳤다.
“형이 뭔데 날 때려! 흑, 흐으…….”
리암이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폐하, 동생이 한 말은 거짓입니다. 저와 부모님은 동생에게 그런 말을 한 적 없습니다.”
“그, 그래요! 제 아들이 상상력이 너무 풍부해서 그만 상상을 실제로 착각한 모양이에요.”
필로멜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던 두 사람이 이제는 리암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리암은 믿었던 가족들이 저를 배신하자 크게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그만.”
얼음장 같은 음성에 간신히 소란이 멎었다.
“내가 너무 신경을 못 썼군. 바로 눈앞에서 역모를 모의하고 있었을 줄이야.”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 듯했다. 자신도 이렇게 무서운데 저들은 어떨까.
“그, 그게, 그러니까…….”
엘로스 후작 부인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떨었다.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던 로건은 희게 질려서 입술이 붙기라도 한 듯 침묵했다.
“실비아, 내가 그간 너를 건드리지 않은 이유는 굳이 내 손을 더럽힐 만한 가치가 없어서다.”
“유, 유스티스…….”
엘로스 후작 부인이 털썩 주저앉았다. 배다른 동생을 부르는 실비아 전 황녀의 처지가 처량했다.
“이 자리에서 목이 떨어지고 싶지 않거든 네 자식들을 데리고 꺼져라. 나도 오늘은 피를 보고 싶지 않군.”
그렇게 세 사람은 사라졌다.
나중에 듣길, 엘로스 후작의 작위와 재산은 몰수당했고, 실비아와 두 아들은 황적에서 이름이 지워졌다고 한다.
황적에서 이름이 지워진 자들은 신성력을 봉인당한 채, 평생 감시당하며 평민처럼 살아야 했다.
역모 죄를 쓴 것 치고는 가벼운 벌이었으나 누구나 다 엘로스 일가가 진짜 역모를 꾸민 건 아니고 단지 아들 입단속을 못 해서 그리된 것을 알았다.
훗날 필로멜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들은 거기에서도 귀족이랍시고 거드름을 피우다가 이웃들에게 배척당해 스프 한 그릇 못 얻어먹는다고 했다.
뭐, 그건 어디까지나 후일의 얘기였고. 현재 필로멜에겐 저벅저벅 걸어가 벌써 저만치 멀어진 남자의 심사가 더 중요했다.
‘……무서워.’
진짜 혈육한테도 저리 냉정하니 가짜 딸을 어찌 대할지 안 봐도 뻔했다.
그때 황제가 귀신같이 뒤를 돌아봤다.
“안 걸을 테냐?”
“……네, 네?”
“산책. 하자며?”
맞다. 산책!
세 모자로 인해 깜빡 잊고 말았다.
필로멜은 황제의 뒤를 졸졸 따르며 자신이 얼마나 모범적인 학생이고, 선생들이 칭찬을 늘어놓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스티스는 ‘그렇군’, ‘그래’, ‘나쁘지 않군’ 등 짧은 대답만 했지만 필로멜은 꼬박꼬박 답해주는 것이 어디냐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필로멜은 산책이 끝나갈 때 즈음 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폐하, 혹시 산책 싫어하세요?”
“딱히 좋아하진 않아. 하지만 주제도 모르고 꼬이는 벌레를 쫓아냈으니 가끔 나올 필요가 있겠군.”
‘벌레라면 후작 부인과 그 아들들 이야기겠지?’
필로멜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앞으로도 가끔 함께 산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나와?”
“네!”
“재미없을 텐데.”
“그래도 좋아요.”
설마 ‘재미없다’라는 게 신상에 해로운 일이 있을 거란 의미의 ‘재미없다’는 아니겠지……?
필로멜의 고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황제가 조용히 답했다.
“알았다.”
“와!”
잠깐, 이게 아니지.
필로멜이 정신을 차리고 공손하게 몸을 숙였다.
“청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대로 해도 돼.”
“예? 죄송하지만 제가 못 들었는데 한 번만 더 말씀해 주시면…….”
“아니다. 좋을 대로 해라.”
유스티스는 그 이상 말을 얹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필로멜도 얌전히 따르며 아름다운 정원을 구경했다.
* * *
그날 이후로 황제가 과음한 다음 날 아침엔 ‘특급 산살초 차’를 가지고 황제의 침실로 쳐들어가는 게 필로멜의 일상이 되었다.
황제의 음주 습관을 고치고 싶어 하는 폴란 백작은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정보를 제공했다.
유스티스는 백작을 노려보면서도 매번 산살초 차를 다 마셨다.
그다음 두 사람은 정원에서 가벼운 산책을 했다.
“작문 선생님이 제가 가르친 학생 중에 제일 영특하대요!”
“잘됐군.”
“제가 황녀니까 해주는 칭찬일까요?”
“그자는 내 선생이기도 했는데 아부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전 그렇게까지는…… 우왓!”
종종걸음으로 걷던 필로멜이 발이 꼬인 탓에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으으…….”
무릎이 까진 것 같았다. 살가죽이 벗겨졌는지 따끔따끔해서 저절로 눈물이 났다.
‘이러고 있으면 안 돼. 얼른 일어나야 하는데…….’
아니면 황제가 자신을 버리고 갈 게 분명했다. 혹은 이런 것에 운다고 한심해하는 눈빛으로 바라볼지도 몰랐다.
“괜찮나.”
그런데 유스티스가 돌아왔다. 심지어 괜찮으냐고 묻기까지 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필로멜이 서둘러 일어나서 약간 절뚝거리며 걷자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
잠시 후 필로멜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유스티스가 양팔로 필로멜의 허리를 잡고 들어 올린 것이다!
“폐, 폐하!”
당황한 필로멜이 버둥거렸다.
“가만있어라.”
“그, 그렇지만……!”
“이곳엔 황족만이 출입 가능하니 널 옮겨줄 수 있는 사람이 달리 없지 않은가.”
“하지만…… 폐하께서 힘드시잖아요.”
“내가? 나를 다 죽어가는 시체로 보는군.”
유스티스가 필로멜을 이리저리 고쳐 안더니 제일 편한 자세를 찾고는 산책을 계속했다.
필로멜은 이 상황이 숨 막히도록 어색해서 연신 꼼지락거렸다.
“불편해도 참아.”
‘이걸 어떻게 참아!’
품이 딱딱해서 물리적으로 불편한 건 둘째 치더라도 심적으로 괴로웠다.
“정 싫으면 잠이라도 자라.”
태평하게 잠이 올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필로멜은 일단 눈을 감았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말 자버렸다.
잠든 황녀를 품에 안은 황제를 발견하고 델레스 백작 부인이 놀라서 뛰어왔다.
“저런, 피곤하셨나 보네요. 하기야 오늘같이 폐하를 찾아뵙는 날엔 늘 일찍 일어나시죠.”
“…….”
“폐하가 기침하실 때 차를 가져다드리고 싶으신가 봐요.”
“……그렇군.”
델레스 백작 부인은 침을 삼켰다.
그녀는 평소에 필로멜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작은 몸으로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뭐라도 해주고 싶어지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제 딸을 안고 있는 황제의 표정을 보아하니 왠지 괜찮을 것 같았다.
백작 부인이 용기를 내어 감히 아뢨다.
“이사벨라 황후 폐하께서도 정원 산책을 좋아하셨다고 들었어요.”
“……꽃구경을 좋아했지.”
대답이 돌아오자 백작 부인이 기뻐하며 말했다.
“황녀 전하께서 황후 폐하를 닮으신 모양입니다. 폐하와 산책하기 위해 매번 일찍 일어나시는 걸 보면요.”
과거를 회상하는 푸른색 눈이 추억에 잠겨 들었다.
“이사벨라는 함께 산책할 때면 주로 주변 풍경을 바라봤어.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본 건 나였지.”
유스티스가 가만히 딸을 내려다봤다.
“그러니 이 아이는 이사벨라가 아니라 나를 더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군.”
그 순간 근처 나뭇가지에 앉은 꾀꼬리가 지저귀었다.
델레스 백작 부인은 새소리 때문에 황제가 황후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자세히 못 들었다. 그러나 황녀가 자신과 닮았다는 마지막 말은 확실히 들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몇 개월간 황녀를 옆에서 지켜본 그녀로서는 황녀가 황제를 닮았다는 말이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그러나 부녀 관계에 있어 그것이 긍정적인 신호란 사실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