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Place For Fakes RAW novel - Chapter (121)
가짜를 위한 장소는 없다-121화(121/183)
<121화>
* * *
무도회장 안은 크게 술렁였다.
“세상에, 마탑주라고?”
“마탑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는다며!”
“저 마물들은 마탑주가 데리고 온 건가?”
창밖으로 와이번을 목격하고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은 마탑주의 등장에 더 큰 혼란에 빠졌다.
필로멜도 난처했다.
‘와이번이 저렇게 크다는 말은 없었잖아……!’
게다가 골렘에 관한 이야기는 듣지도 못했다.
쿵!
르귄을 따라 입구까지 따라 들어온 골렘은 꾸러미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밖으로 나갔다.
괴상한 거인의 모습에 긴장하고 있던 사람들은 안도했다.
폴란 백작이 나서서 갑작스러운 방문객을 맞았다.
“마탑주시여, 환영합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마탑주님의 방문을 기뻐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권좌에 앉은 유스티스는 기뻐하기는커녕 죽일 듯이 르귄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전에 와이번의 출입 등에 관하여 허가를 내주었다고는 해도 그게 기껍다는 뜻은 아니었다.
황제에게 일기장을 전해주러 갔을 때, 필로멜은 친아비의 정체도 밝혔다.
르귄의 부탁을 들어주려면 황제의 허가가 필수적이었다.
“그런가……. 그랬군…….”
반응은 예상외였다. 그는 당황한 것 같기도 했고, 짐작하였던 것 같기도 했다.
알고 있었느냐고 필로멜이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극히 희박한 가능성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바꿔 말하자면 막연한 추측은 해봤다는 말이었다. 신의 서를 읽은 것도 그렇고, 친아버지에 관한 일도 그렇고.
이제까지 자신이 주변을 잘 속이고 있다고 여겼는데, 모두 황제가 눈감아 줬기에 가능했었다.
필로멜은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리겠다고 둘러대며 그 자리를 피했다.
마음 같아서는 <황녀 엘렌시아>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지금도 엘렌시아로 인해 생각할 게 많은 사람의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또한 <황녀 엘렌시아>에 대해 말하려면 그가 자신을 처형하는 장면도 털어놔야 했다.
……그건 아직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부우욱, 르귄이 나이프로 꾸러미를 찢는 소리에 필로멜의 의식이 현재로 돌아왔다.
색색의 포장지를 두른 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르귄은 그중에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자를 들었다. 제일 작고, 포장도 초라했다.
그는 폴란 백작을 향해 작은 선물상자를 던졌다.
“황제 폐하께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드려. 자, 내가 주는 선물.”
“책임지고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것들은…….”
상자를 받아 든 폴란 백작이 꾸러미를 흘끗거렸다.
당연히 전부 황제에게 바치는 선물일 줄 알았는데, 그중 하나만 건네니 의아한 듯했다.
“아, 이거?”
르귄은 태연히 꾸러미를 턱턱 두드리며 웃었다.
“내 딸에게 줄 선물이지.”
필로멜은 깜짝 놀랐다.
‘아니, 오늘이 생일인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걸 왜 나한테 줘?’
놀란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딸이라니?”
“마탑주에게 자식이 있었나?”
“아들이 있다는 소문은 얼핏 들은 것 같은데.”
“그런데 딸에게 줄 선물을 왜 여기에 가져왔지?”
“혹시 딸이 이 자리에……?”
참석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회장 안을 두리번거렸다.
르귄은 남들의 반응은 무시하며 뚜벅뚜벅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걸어오며 고의인 듯 아닌 듯 아직 필로멜의 곁에 서 있던 가짜 아비의 어깨를 쳤다.
“으헉!”
남자가 힘없이 나동그라졌다.
르귄은 필로멜의 어깨에 정답게 한 손을 올리고는 권좌가 있는 방향을 돌아봤다.
“그동안 내 딸을 키워줘서 고마웠어. 앞으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쪽은 신경 꺼도 돼.”
그가 딸에게 바랐던 소원.
그것은 바로 필로멜이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밝히는 것이었다.
많은 이목이 집중되었을 때,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최대한 멋지게, 최대한 화려하게.
단, 마탑주가 생각하는 멋짐과 화려함은 세간의 상식과는 좀 달랐다.
원래는 마법사 군단과 애완 몬스터들을 대동한 채 축포까지 터트리며 오겠다는 걸 필로멜이 겨우 만류했다.
‘전쟁 날 일 있나.’
그래서 와이번 한 마리로 타협했는데…….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만족을 못 하겠는지 골렘까지 꼽사리 껴서 온 듯했다.
충격적인 발언에 멍하니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 말은 즉, 레이디 필로멜이 마탑주의 딸이란 말이야?”
“아까는 저 남자의 딸이라며!”
“어느 쪽이 진짜야?”
딸 하나에 두 아버지. 웃기지도 않는 촌극이었다.
르귄의 살벌한 눈빛이 바닥에 엎어진 남자를 향했다.
“흐응, 그쪽이 내 딸의 아버지라고?”
“그, 그게…….”
남자는 마탑주의 기세에 압도당했는지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유창한 언변을 자랑하던 아까와는 영 딴판이었다.
르귄이 소매를 걷어붙였다.
“누가 진짜 필의 아빠인지 결투로 정할까? 황궁 내에선 마법을 못 쓰니까 주먹으로.”
꾸에에에엑!
어떻게 알았는지 주인의 호승심에 반응해서 와이번이 거친 울음을 토했다. 밖에서 들리는데도 실내를 뒤흔드는 괴성이었다.
두 팔로 자신의 머리를 싸맨 남자가 빌었다.
“죄송합니다! 제 착각이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필로멜은 한참 만에 입을 뗐다.
“아까는 틀림없다면서요.”
남자가 거세게 도리질했다.
“아닙니다! 제 말은…….”
르귄이 위압감을 뿜으며 서늘하게 말했다.
“내 딸이 그렇다는데, 감히 아니라고 해?”
“그게, 그…….”
남자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입만 뻐끔거리다 곧 이실직고했다.
“사실은 돈을 줄 테니 레이디 필로멜의 아버지인 척하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필로멜은 도망치려는 듯 슬금슬금 물러나는 여자를 불렀다.
“무리엘 영애.”
그녀는 일찍이 에밀리의 보고 덕에 엘렌시아가 샤샤 무리엘을 데리고 무언가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알았다.
제레미아가 샤샤의 동태를 정찰해서 그녀가 웬 남자와 접선한다는 것도 알아냈다. 하지만 사전에 그들의 음모를 저지해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남자는 평범한 술주정뱅이에 불과했다. 암살자도 아니고, 대단한 기술을 지니지도 않은.
샤샤가 그를 집안의 시종으로 변장시켜서 데려와 봤자 별다른 위협은 될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궁금했다. 대체 무슨 꿍꿍이를 지니고 있는지.
그렇지만 결과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마침 오늘이 르귄이 나타나기로 한 날이 아니었어도, 그들의 음모가 필로멜에게 타격을 입힐 가능성은 없었다.
‘여차하면 그냥 친아빠가 누군지 밝히면 되니까.’
지금까지 그러지 않았던 이유는 그저 자신의 마음 문제였다. 르귄과 형제들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울상을 짓는 샤샤를 향해 필로멜은 상냥히 일렀다.
“영애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말하는 편이 신상에 이로울걸요. 그러면 최대한 영애와 영애의 가문이 다치지 않는 선에서…….”
어?
회장 안을 둘러보던 필로멜은 작게 소리 냈다. 어쩌면 샤샤의 자백은 필요 없을지도 몰랐다.
권좌가 비어 있었다.
필로멜은 어떠한 예감에 휩싸여 르귄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가 맡겨둔 배낭, 지금 꺼내줄 수 있어요?”
인벤토리 확장 기능. 그러한 이름의 배낭을 그에게 맡겨뒀었다.
르귄은 곧 자신의 로브에서 배낭을 꺼내줬다. 그와 형제들이 연구한 다음에 돌려준 상품들이 이 안에 들어 있다.
필로멜은 배낭을 든 채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입구로 향했다.
르귄과 나사르, 그리고 회장 안에 있던 형제들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 * *
한편, 엘렌시아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른 채 수풀을 헤치며 뛰었다. 입구 근처에만 있었지만 회장 안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마탑주가 필로멜을 자신의 딸로 인정하다니! 말도 안 돼!’
머릿속이 온통 헝클어져서 생각이 뚜렷이 정리되지 않았다.
빨리 무도회장 근처를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만이 그녀를 움직였다. 계속 거기에 있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
‘샤샤가 전부 실토해 버린다면 어쩌지?’
어쩌긴, 자신은 잡아떼야지. 이번 일은 모두 샤샤 무리엘이 혼자 꾸민 짓으로…….
“앗!”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억세게 잡아서 돌려세웠다.
엘렌시아는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렇게 황급히 어딜 가지?”
황제였다.
“분명 근신하라고 했는데 네가 왜 여기에 있나?”
딸을 내려다보는 그의 눈에는 단 한 점의 온기도 없었다.
“내 말을 이다지도 우습게 여길 줄이야. 하긴 처음부터 그랬지.”
“그게 아니에요! 어떻게든 아빠의 생신을 축하드리고 싶은 마음에 그만…….”
유스티스는 짓씹듯이 내뱉었다.
“그놈의 아빠 소리 좀 그만해.”
“……아빠?”
“내 딸도 아니면서.”
그 말에 엘렌시아의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무슨 소리세요! 제가 아니면 누가 아빠 딸인데요! 필로멜이 그래요? 제가 가짜라고?”
“왜 필로멜이 그 말을 했을 거라 여기지.”
엘렌시아는 입을 다물었다.
너무 흥분해서 안 해도 되는 말까지 해버렸다.
“……그야, 그 애는 저를 싫어하니까요.”
“필로멜은 싫어하는 것은 너겠지. 그리고 네가 내 딸이 아니라는 소리는 네 입에서 나왔다.”
“제가 언제요!”
“……어차피 황제는 진짜 엘렌시아를 모르는데.”
뜻 모를 소리에 엘렌시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황제는 차분한 어조로 계속해서 말했다.
“황제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몸 안에는 내가 들어와 있었지.”
그녀는 숨 쉬는 것도 잊을 정도로 경악했다.
자신이 한 말이었다. 확실히 필로멜을 찾아갔을 때 저런 말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