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Place For Fakes RAW novel - Chapter (135)
가짜를 위한 장소는 없다-135화(135/183)
<135화>
“…….”
“…….”
한 번 조용해지니 미칠 듯한 어색함이 몰려온다.
필로멜은 이상해진 분위기를 털어버리기 위해 일부러 더욱 명랑하게 말했다.
“와, 여기에서부터 시장이 시작되네요! 얼른 가요!”
필로멜과 나사르는 앙헬리움의 시장을 거닐며 장을 봤다.
“총 10벨 되겠습니다.”
“10벨이면…….”
“잠깐만요.”
필로멜이 지갑을 주섬주섬 꺼내는 나사르를 제지했다.
“겨우 육포 한 묶음에 왜 이렇게 비싸죠?”
식료품점 주인장이 어물거렸다.
“이 양이면 값이 10벨은 족히 나가지요. 그 아래로는 팔아봤자 남는 게 없습니다요.”
육포가 든 주머니를 열어본 필로멜이 양 눈썹을 모았다.
“너무 비싸군요.”
“아니, 아가씨께서 잘 모르시나 본데 10벨이면 딱 적당한…….”
“가죠, 나사르. 다른 가게에 가서 사요.”
필로멜은 그에게만 속닥거리는 척하며 다 들리게 말했다.
“이제부터는 여기 오지 마세요. 바가지가 아주…….”
“자, 잠깐!”
다급한 주인장의 목소리에 필로멜이 뒤를 돌아보며 건조한 투로 물었다.
“무슨 일이죠?”
“9벨에 드릴 테니…….”
“4벨에 주세요.”
“4벨이라니요!”
터무니없는 할인 폭에 주인장이 울상을 지었다.
“그건 좀 아니고 8벨은 어떻습니까?”
“4벨 아니면 안 사요.”
“그럼 6벨! 많이 깎았다!”
“4벨.”
“에잇! 졌어요, 졌어! 5벨!”
“4벨.”
“정말 5벨 아래는 안 돼요.”
“4벨.”
필로멜을 태산처럼 버티고 서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주인장은 이내 패배를 인정했다.
4벨짜리 육포를 손에 넣은 후, 두 사람은 식료품점에서 나왔다.
“딱 보아하니 4벨이 적당한데 엄살은.”
혼잣말을 내뱉던 필로멜은 문득 자신을 보는 시선을 의식했다.
‘이런, 너무 억척스러워 보였나?’
그러나 나사르의 눈에는 존경심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4벨이 적당한 값어치인지 아셨습니까?”
“사실 저도 예전에 사본 적 있어서 알게 되었어요.”
“필로멜 님이요?”
“바로 얼마 전, 황궁에서 도망쳤을 때요.”
당시 필로멜이 선택한 이동 수단은 여러 명을 태우고 다니는 공용 마차였는데, 이동 시간이 길어서 이동 중에 끼니를 때워야 했다.
“식사 거리로 육포만 한 게 없었거든요.”
마차 안에서 먹기 간편하고 보관 또한 용이하고.
그런데 그때 지금의 나사르처럼 부르는 값대로 육포를 사려던 그녀를 말려준 이가 있었다. 마차 안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아낙이었다.
“그 사람이 덤터기를 쓸 뻔한 저를 구해줬죠. 이 정도 양의 육포는 6벨이면 충분하다는 사실도 알려줬어요.”
덤으로 흥정하는 법도.
혼자 다니게 된 이후에 그녀의 가르침을 실전에서 조금씩 써먹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그게 몇 년 전도 아니고, 몇 달 전의 이야기인데 그동안 시세에 큰 변동이 있기도 힘들었다.
필로멜의 말을 경청하던 나사르가 고개를 기울였다.
“어? 그런데 조금 전에는 4벨이 제값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나머지 2벨은 괘씸한 값이요.”
“괘씸하다 하심은?”
“나사르에게 그동안 제값보다 훨씬 올려 받았잖아요.”
나사르가 그곳에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 듯했다. 그가 가게에 들어서자 주인장은 입가가 귀에 걸린 채 알은체했다.
뻔히 눈앞에 그려진다.
‘세상 물정 모르는 나사르를 옳다구나 털어먹었겠지.’
주인장이 필로멜의 흥정을 받아들인 이유도 나사르라는 대어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사르에게는 잔돈도 안 되는 금액이겠지만.’
자연히 심사가 뒤틀리는 것이다. 이 사람이 남에게 호구로 취급당했다고 생각하니.
그러나 정작 실컷 뜯겨 먹힌 나사르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저는 아직 한참 멀었군요. 정말이지 바보입니다.”
“에이, 그렇게까지는…….”
소공작이 식료품점에서 육포를 흥정할 필요가 얼마나 있다고.
“아닙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바보일 겁니다.”
“……?”
“그러니 필로멜 님께서 제 옆에서 쭉 가르쳐 주세요.”
필로멜도 곧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짐짓 새침하게 말했다.
“나사르 하는 것 봐서요.”
“그렇다면 쭉 제 곁에 있어 주시겠군요.”
두 사람은 그 후로도 앙헬리움의 시내를 돌아다녔다. 손을 마주 잡고서.
“이것도 제값이 맞을까요?”
조리도구 세트를 들고 고민하던 나사르가 살며시 물었다.
필로멜은 “으음.” 하고 숙고의 시간을 가지다 대답했다.
“……미안해요. 잘 모르겠어요.”
전에 사봤던 물건이라면 모를까 아닌 것까지 알 턱이 없었다.
이처럼 사실상 둘 다 장을 보는 데 익숙한 이들은 아니다 보니, 중간에 많이도 헤맸다.
“나사르, 이게 진짜 필요해요?”
“이런 것도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머리를 맞대고 이러쿵저러쿵 의논하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초보 두 명이 대뜸 실전에 부딪히며 깨져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래도 즐거웠다.
필요한 물품들을 대강 구매한 다음 그의 숙소에 가져다 놓자 어느덧 노을이 졌다.
필로멜과 나사르는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이대로 헤어지기엔 아쉬워.’
어차피 별일 없으면 내일도 만날 테지만. 나사르도 자신과 같은 마음인 듯했다.
그러다 어떤 대화가 필로멜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담벼락을 도배하듯 붙여진 벽보를 보던 백성들이 수군댔다.
“아직도 사라진 황녀 전하를 못 찾았다지?”
“예전처럼 곧 찾겠지.”
“글쎄올시다. 왠지 모르게 그때와는 다른 느낌이 드네만.”
“뭐가 다른데?”
“뭐라고 할까, 요즘 분위기도 뒤숭숭한 것이…….”
“뒤숭숭하긴. 황녀님께서 사라지신 것만 빼고 똑같구먼, 뭘.”
“3거리 헥터도 최근 들어 유독 세상이 망한다고 설치지 않나?”
“그놈이야 회까닥 돌아버려서 십 년 전부터 그랬고!”
“그런가?”
“그 가족들만 안타깝지. 가장이 갑자기 웬 사이비에 빠져서.”
대화는 치안대의 등장으로 끊겼다. 치안대원들이 눈을 부라리자 그들은 헛기침하며 흩어졌다.
필로멜은 반사적으로 몸을 경직시켰다.
‘앙헬리움의 치안대.’
자연스레 좋지 않은 기억이 연상된다. 그녀는 이곳 치안서의 유치장에 갇혔던 적이 있다.
당시는 말할 수 없이 비참했다.
죄수들은 필로멜에게 질 낮은 욕설을 퍼부었고, 치안대원들은 그런 상황을 방치하며 그녀를 겁박하기까지 했다.
그때의 막막함은 지금도 종종 악몽이 되어 되살아났다.
“목이 좀 타는군요.”
나사르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는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레스토랑을 가리켰다.
“저곳에서 파는 과일 주스가 맛있던데 제가 한턱 내겠습니다.”
필로멜은 그의 의도를 금방 파악했다.
치안대를 꺼리는 필로멜의 심중을 알아채고 자연스럽게 걸음을 다른 방향으로 돌린 것이다.
르귄이 걸어준 마법의 효과로 치안대원을 비롯한 일반인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는데도.
‘그러고 보니 그때도 나를 구해준 사람은 나사르였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무사하셨군요! 정말, 정말…… 걱정했습니다.”
막무가내로 유치장의 창살을 잘라내고 들어온 사람.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남자.
필로멜은 그 남자의 팔과 자신의 팔을 칭칭 얽어맸다. 필로멜이 팔짱을 끼자 나사르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갑자기 왜……?”
“그냥 좋아서요.”
그러나 설렘 가득한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절박한 외침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대장님! 제발 이안 좀 찾아주세요!”
웬 여인이 한 치안대장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치안대장은 난처해하며 여인을 떼어내려고 했다.
“이러지 마시오, 솔브릿 부인. 부군의 행방은 수색 중이니…….”
“정말 찾고 있는 게 맞긴 한가요? 그이가 사라진 지도 벌써 몇 달짼데 감감무소식이잖아요!”
“나 참, 아무 단서도 안 나오는 걸 난들 어떡하오!”
“토마스 씨가 일러줬어요. 다들 수색하는 시늉만 한다고!”
치안대장은 옆에 있던 치안대원을 째려봤다. 그 모습으로 보건대 저 남자가 토마스인 듯했다.
여인이 절규했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이안의 동료이셨으면서!”
필로멜은 레스토랑에 들어가려다 말고 멈춰 섰다. 무언가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느낌이다.
“이안 솔브릿…….”
저 여인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이름을 입안에서 굴려 본다.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다.
앙헬리움의 치안대원인 이안 솔브릿, 이안…….
‘잠깐, 이안?’
기억났다.
조금 전에 떠올렸던 유치장에서의 기억 중 한 부분.
“죄인의 팔다리 하나쯤 성치 않아도 신경 쓸 사람 없으니까.”
치안대원들 중에서 특히나 필로멜을 위협했던 대원이 있었다. 다른 대원들은 그자를 이안이라고 불렀다.
소도시 앙헬리움의 치안대에 동명이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여인의 남편은 그 남자일 테다.
필로멜은 돌아서서 치안대원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폈다.
‘어라?’
익숙한 얼굴이 없다. 당시, 험상궂은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봤던 대원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필로멜의 기억이 부정확하다고 해도 한 명쯤은 있을 법한데.
‘물갈이됐구나.’
방금 깨달은 사실이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오해였다지만 그들은 후에 황실의 귀빈이 될 필로멜을 박대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실종되었다는 것은 뭐지? 게다가 수색을 안 한다고?’
무언가 자신이 모르는 진실이 숨어 있다. 그리 판단한 필로멜은 여인의 곁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필로멜 님.”
그런데 나사르가 그녀를 잡았다. 필로멜은 그를 돌아봤다.
어딘가 난처한 그 표정을 보고 필로멜은 눈치챘다.
나사르는 알고 있다. 그리고 필로멜이 모르기를 바랐다.
‘어떻게 할까.’
나사르가 진실을 숨긴다면 분명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은 쉬웠다.
묻혀 있어야만 편한 진실이 있는 법이다.
하지만.
“나사르.”
필로멜은 불편함을 이유로 진실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성격이었다면 애당초 <황녀 엘렌시아>의 진실을 찾기 위해 황궁에 남지도 않았을 터다.
“당신이 지금 제게 숨기고 있는 것이 뭔지 알려주세요.”
그녀의 결연한 눈빛을 마주한 나사르가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