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Place For Fakes RAW novel - Chapter (143)
가짜를 위한 장소는 없다-143화(143/183)
<143화>
뱀은 필로멜의 몸을 꽁꽁 싸맨 채 혀를 날름거렸다. 그녀의 존재를 촉각으로 인식한 듯했다.
“렉시온은 이런 말 없었는데!”
바실리스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가 필로멜에게 귀띔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르귄…….”
바실리스크의 주인인 그가 따로 내린 지시일 테다.
필로멜은 팔을 움직이려고 낑낑거렸다. 배낭에 몬스터를 대적할 수 있는 아이템이 들어 있다.
그러나 뱀의 구속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갑갑하진 않았지만, 운신이 자유로울 만큼 느슨하지도 않았다.
자동 보호 마법도 작동하지 않는다. 뱀에게 필로멜을 해하려는 의도는 없기에.
“으잇!”
뱀은 안간힘을 쓰는 필로멜을 천천히 마탑 쪽으로 운반했다.
이대로라면 끌려가고 만다.
‘절대 싫어!’
제레미아가 어떻게 만들어 준 기회인데! 렉시온도 겨우 마음을 바꿔먹었는데!
이렇게 돌아갈 순 없다. 하지만 그녀의 힘으론 역부족이다. 돌연 서러워졌다.
필로멜은 지금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나사르!”
그가 이곳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왜인지 부르고 싶었다.
쾅!
엄청난 충격과 함께 뱀의 몸뚱이가 거세게 요동쳤다. 그 탓에 구속이 풀리고 필로멜의 몸이 낙하했다.
하지만 예상되었던 아픔 대신 따뜻한 품이 그녀를 맞았다. 필로멜은 꼭 감았던 눈을 떴다.
나사르다.
“예, 그대의 나사르가 여기 있습니다.”
그가 필로멜을 안아 든 채 바실리스크의 위에 있었다.
필로멜은 화들짝 놀랐다.
“나사르?”
“예. 나사르입니다.”
“나사르가 어떻게 여기에?”
“필로멜 님께서 저를 부르셨으니까요.”
“그런 것이 아니라……! 왜 이 숲에 있어요?”
그는 엄지로 뒤편을 가리켰다.
“이 근방에서 야영하고 있었습니다.”
“야영?”
그러고 보니 같이 시장에서 노숙할 때 쓸 물건을 골랐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아직도 하고 있었어요?”
“네!”
“경계가 이렇게 삼엄한데…….”
“원래는 마탑 바로 옆에서 했는데 방해된다고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이 숲으로 옮겨왔죠.”
“저랑 연락했을 때는 분명 앙헬리움의 숙소로 돌아갔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때는 그랬지요. 하지만 필로멜 님과 연락도 안 되고 날이 갈수록 속이 타서…….”
“또 노숙했다고요?”
“먼발치에서라도 그대의 얼굴을 볼 수 없을까 하여.”
“정말이지, 나사르도 참.”
필로멜은 그리 말하면서도 나사르를 꼭 껴안았다.
“늘 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나 주네요.”
“필로멜 님…….”
빨개진 그의 귀가 귀여워서 필로멜은 ‘풋’ 하고 웃었다.
“쉬이이익.”
그때, 바실리스크가 소리를 내면서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나사르는 뱀의 몸체 위에서 내려와 필로멜을 바닥에 내려줬다. 그가 검을 빼 들었다.
“처리할까요?”
“가능하다면 죽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예전에 르귄의 소개로 그의 몬스터들과 같이 시간을 보낸 적이 있는데, 그때 정이 들었다.
처음에는 무서웠으나 자신이 먹이를 던져주자 잘 받아먹는 모습이 왠지 평범한 동물 같아서 그만.
‘또 날 해하려던 것도 아니고.’
나사르가 싱긋 웃었다.
“맡겨만 주십시오.”
이윽고 그는 검집에 검을 넣은 채 뱀을 마구 구타했다. 결국 바실리스크의 전의가 꺾였다.
필로멜 때문에 그들을 마음껏 공격할 수 없는 뱀에게는 애초부터 불리한 싸움이었다.
필로멜은 쓰러진 뱀의 의안(義眼)을 마주했다. 예전 같았다면 보기만 해도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을 그 눈은 온순하기만 했다.
“돌아가서 르귄한테 전해.”
머리에 큰 혹이 달린 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요즘 반항기야. 그러니 말리고 싶으면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하라고.”
“쉬이이익.”
“아, 편지 써놓고 왔으니 읽어보라고도 전해줘.”
말이 끝나자 바실리스크는 마탑 쪽으로 몸을 틀었다.
필로멜은 멀어지는 뱀 너머로 마탑을 바라봤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쯤 암흑 공간에 들어가 있을 그가 이쪽을 주시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르귄, 당신은 제가 당신을 이해 못 한다고 속상해했지만, 이해 못 하는 것이 당연해요.’
가족이라고, 피가 섞였다고 자연히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이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주 보고 충분한 대화를 나눌 만한.
“필로멜 님.”
그리고 필로멜이 대화를 나눠야 할 상대는 또 있다. 그녀는 다소 긴장한 채 나사르를 마주했다.
“어딘가로 떠나십니까?”
“나사르, 실은…….”
솔직하게 용사가 되기로 한 결심을 털어놨다. 나사르는 묵묵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사르라면 덮어 놓고 반대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내심 걱정됐다.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은 그도 남들 못지않기에.
이야기를 다 듣고 골똘히 생각하던 나사르가 입을 열었다.
“그 일을 꼭 필로멜 님께서 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만일…… 제가 손 놓고만 있다가 엘렌시아가 죽으면 후회가 될 것 같아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보고 싶다.
“그리고 왠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도 들고요.”
필로멜에겐 플레이어로서의 능력이 일부 있다. 단순히 상점에 입장하는 것 말고도 이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테다.
나사르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필로멜의 배낭을 멨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대신전으로 출발하죠.”
“예?”“급한 일 아닌가요?”
“반대하지 않아요?”
“반대요? 제가요?”
나사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필로멜 님께서 스스로 결정하신 바를 제가 어찌……. 애초에 타인이 반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필로멜은 예상외의 반응에 잠시 멍해졌다. 그라면 함께해 주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이다지도 흔쾌히 따라줄지 몰랐다.
목이 멨다.
“정말…… 괜찮아요?”
“뭐가 말씀입니까?”
“저와 함께 가는 것이요.”
“‘함께’가 아닌 편이 오히려 괜찮지 않습니다.”
“저랑 있다간 악신에게 노려질지도 모르는데요?”
“그럼 더더욱 제가 함께해야겠군요.”
“마탑의 마법사들도 저희를 추적해 올지 몰라요.”
“상관없습니다.”
그의 어투는 확고했다.
“그 어떤 적을 마주한다 하여도, 목적지가 세상의 끝이라 하여도, 저는 그대와 함께할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필로멜은 반사적으로 나사르의 머리 위를 올려다봤다.
‘99%’
한동안 보이지 않던 호감도가 이럴 때 보이는 것은 운명의 장난일까? 거의 꽉 찬 붉은 막대가 황홀한 빛을 내며 깜빡거렸다.
필로멜은 이 사랑스러운 남자를 확 끌어안았다.
“피, 필로멜 님? 얼른 떠나야 하는 것이……?”
“아무 말 말고 잠깐만 이대로 있어요. 아주 잠깐만.”
잠시 후, 경직되어 있던 나사르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어설프게 필로멜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그들은 필로멜의 말대로 아주 잠깐만 그대로 있었다.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감정이 벅차올라서 시간을 지체하고 말았지만, 상황이 급박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언제 르귄이 움직일지 몰라!’
그전에 얼른 이 근방을 떠나는 편이 좋다.
필로멜과 나사르는 서둘러 나사르의 천막이 설치된 곳으로 향했다.
“이것들이 필요할까요?”
나사르가 천막과 더불어 다양한 야영용 도구들을 가리켰다. 필로멜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까 챙기는 편이 좋겠어요. 대신전까지 가는 도중에 노숙할지도 모르고요.”
나사르는 두말하지 않고 빠르게 천막을 접고 도구를 챙겼다. 그것들을 힘들게 전부 이고 갈 필요는 없다.
필로멜은 자신의 배낭을 벌렸다. 상점에서 산 배낭, ‘인벤토리 추가 기능’에는 상품뿐 아니라 일반 물체도 저장이 가능했다.
“이것들이 다 들어가다니 신기하군요.”
배낭에 물건들을 넣으며 나사르가 감탄했다.
정해진 개수만 넘기지 않으면 부피나 질량은 얼마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심지어는 가볍기까지.”
그녀가 들어도 괜찮은데 나사르는 기어코 배낭을 멨다.
필로멜이 말했다.
“일단은 믿을 만한 마법사부터 섭외해야 해요.”
“이동마법 때문이군요.”
“네. 대신전까지 빨리 가려면 이동마법이 필수니까요.”
르귄 때문에 마탑의 마법사들에게는 도움을 얻기 힘들 것이다. 세 형제라면 필로멜에게 협조적일지 몰라도…….
‘제레미아와 렉시온은 서로 싸우느라 힘을 많이 소진한 것 같았고, 카딘은 이동마법에 별로 소질이 없다고 했어.’
필로멜은 턱을 쓸며 고심했다. 그녀가 세운 도주 계획 중에서도 이 부분이 제일 안갯속이었다.
이동마법이란 제 신체를 온전히 남에게 맡기는 것. 신뢰할 수 있는 마법사를 찾아야 했다.
‘목숨이 노려지는 상황에선 더.’
렉시온이 말하기를 이에리스의 강력한 힘이나 종말론에 매료되어 남몰래 악신을 신봉하는 자들이 많다고 한다.
“특히 마법사들 중에 이에리스 신도 비율이 높은 편이죠. 저도 신앙까지는 아니지만 흥미는 꽤 있고요.”
오죽하면 여러 마법사들이 마탑의 규율까지 어겨가며 악신에 대한 연구를 했을까.
필로멜은 나사르를 곁눈질했다.
‘원래는 나사르에게 에이브리든 가문의 마법사 중 한 명을 소개받을까 했는데…….’
말을 꺼내기가 좀 꺼려졌다. 필로멜로 인해 최근 그와 에이브리든 공작의 관계는 소원했다.
그러나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나사르가 먼저 운을 뗐다.
“제가 잘 아는 마법사가 있습니다. 믿을 만하고요.”
“누구요?”
“같은 스승 밑에서 수학한 친우입니다. 게다가 이동마법에 일가견이 있다더군요.”
“딱 좋네요! 그 사람은 어디에 살고 있나요?”
친우의 거주지를 들은 필로멜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 먼데요.”
가장 빠른 교통수단으로 이동해도 4일은 족히 걸린다. 그리고 용사 선발식은 3일 뒤다.
“죄송하지만 그분한테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와달라 부탁해 주실 순 없을까요?”
“통신석도 없이 속세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친구라…….”
난관이다. 4일이나 걸려 그곳에 갈 바에는 렉시온이나 제레미아의 기운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
‘하지만 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르귄의 눈에 띄면…….’
그때였다. 무언가 눈치챘는지 나사르가 검을 들었다.
“몬스터의 기척입니다! 필로멜 님은 제 뒤로…….”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나무들이 부스럭거렸다. 곧이어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에 달린 두 뿔, 커다란 날개, 흉악한 송곳니, 맹금류의 그것과 흡사한 눈동자.
필로멜은 황급히 전투태세를 갖춘 나사르를 만류했다.
“잠깐, 적이 아니라 뀨뀨예요!”
“……뀨뀨?
“르귄이 기르는 와이번이요.”
필로멜을 확인한 와이번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