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Place For Fakes RAW novel - Chapter (144)
가짜를 위한 장소는 없다-144화(144/183)
<144화>
필로멜은 와이번을 향해 달려들었다.
“뀨뀨! 네가 있었구나!”
반가운 해결책은 제 발로 걸어서 그들의 앞에 등장했다.
참고로 ‘뀨뀨’는 필로멜이 멋대로 지은 이름이다.
르귄이 지어준 ‘포풀라투스’라는 멋들어진 이름이 있었으나 필로멜은 와이번을 뀨뀨로 명명했다.
“뀨, 뀨뀨.”
왜냐하면 ‘뀨’라고 우니까.
평소에는 대충 ‘끼에에에엑!’이라고 들리는 괴성을 질렀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 앞에선 이런 소리를 냈다.
필로멜이 밥을 몇 번 챙겨주자 와이번은 그녀를 잘 따르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워 보여서 와이번에게 상당히 잘해줬다.
‘쓰다듬어주고 자장가를 불러주고 르귄한테 혼날 땐 옹호해 주기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뀨뀨는 원주인보다 필로멜을 더 따르게 되었다.
필로멜은 뀨뀨의 턱 밑 부분을 문지르며 말했다.
“뀨뀨, 지금부터 우리가 어디 좀 갈 건데 태워줄 수 있어?”
“뀨?”
“오래 안 걸려.”
“뀨?”
“못 알아듣는 척하지 말고. 나랑 나사르 좀 태워줘, 부탁할게.”
“뀨…….”
와이번의 시선이 정처 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아무래도 주인인 르귄과 필로멜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했다.
“왜? 르귄이 나를 잡아 오라고 했어?”
“뀨.”
르귄이 보낸 몬스터는 바실리스크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걱정하지 마. 네가 르귄의 명령을 어겨도 내가 혼나지 않게 해줄게.”
“뀨?”
“르귄과 싸우면 내가 이겨.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이랬어.”
“뀨…….”
와이번의 눈이 불신으로 물들었다. 필로멜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우리를 태워주면 갔다 와서 네 밥은 소고기로만 줄게.”
“뀨뀨……?”
“내가 설마 거짓말을 하겠어? 나 못 믿니?”
와이번이 고개를 젓는다.
“매일매일 소고기만 먹게 해준다니까.”
“뀨, 뀨, 뀨!”
와이번은 기쁨의 춤을 추는 듯 몸을 덩실거리더니 기꺼이 두 사람을 등에 태웠다.
안장에 앉아 상공을 날면서 필로멜은 말을 삼켰다.
‘뀨뀨, 미안하다. 거짓말이야.’
렉시온이 너 비만이라고 당분간 건초만 먹인댔어.
가련한 와이번 한 마리가 농락당하는 와중에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광활했다.
동이 트며 만물이 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이 정도 속도라면 오늘 밤에 휴식을 취한다고 해도 내일이면 도착하겠어.’
필로멜은 들뜬 마음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경치를 구경했다.
“바람 때문에 싸늘하군요.”
그녀의 뒤에 앉아 있던 나사르가 말했다. 그는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필로멜에게 걸쳐줬다.
“고마워요, 나사…….”
“…….”
감사의 말을 하려고 무심코 뒤를 돌아본 필로멜은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눈이 마주친 나사르도 머쓱하게 시선을 돌렸다.
왜냐하면…….
‘너무 가까워!’
돌아보면 그의 얼굴이 바로 코앞인 데다가 몸도 밀착된 채였다.
와이번의 등 뒤에 놓인 안장은 넓지만 일인용이다. 마탑주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니까.
예전에 황제의 탄신 연회에 르귄과 동행했던 골렘은 알아서 등에 잘 매달려 있었으나, 나사르한테도 그러라고 할 순 없었다.
두 사람은 필연적으로 서로 가까이 붙을 수밖에 없었다.
‘엄청 신경 쓰여…….’
포옹은 몇 번 했기에 괜찮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필로멜은 어색함과 창피함 때문에 꼼지락댔다. 조금이라도 서로의 몸을 떨어트려 볼까 싶었다.
그러다 몸이 옆으로 쏠렸다.
“필로멜 님!”
나사르가 넘어가려는 필로멜의 몸을 재빨리 붙잡았다. 그가 그녀를 품 안에 가두며 말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바람이 거셉니다.”
그의 말대로다. 고도가 높고 와이번의 속도가 빠르다 보니 바람의 세기가 강했다.
‘까닥하다간…….’
아득한 땅바닥을 내려다본 필로멜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결국 필로멜은 포기하고 그의 품 안에 안주하기로 했다. 대신 그에게 계속 말을 붙여서 정신을 딴 데로 돌리자.
“나사르는 언제까지 저를 ‘필로멜 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혹여 불쾌하십니까?”
“아니요! 그런 것이 아니라, ‘님’자는 떼어줬으면 해서요.”
정신을 돌리기 위해 꺼낸 화제였지만 진심이었다. 언젠가는 그가 알아서 이름으로만 불러주리라 여기고 기다렸으나 도통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건 좀…….”
나사르는 곤란한 듯 말끝을 흐렸다.
“저도 나사르를 그냥 이름으로만 부르잖아요.”
“그렇지만 필로멜 님은 필로멜 님이신걸요.”
“에이, 그러지 말고요.”
“하오나…….”
“나사르가 저를 ‘필로멜’이라고만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그편이 더 가깝게 들리잖아요. 네?”
필로멜이 마지막 ‘네?’를 애교스럽게 발음하자 붉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옅은 핑크빛을 띤 입술이 움찔거리며 벌어졌다.
“피, 필로멜…….”
필로멜이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님.”
“거기서 왜 또 ‘님’을 붙여요!”
“아직은 힘듭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요.”
“고작 이름 부르는 데 마음의 준비는 무슨!”
이름 문제로 한참을 설왕설래하다가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필로멜은 문득 호기심이 일어서 그에게 물었다.
“나사르의 스승님은 소드 마스터가 아니셨나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마법사 제자를 두셨던 거예요?”
“그 친구가 좀 희한한 사람이라 최고의 마검사가 되고 싶다며 스승님을 찾아왔습니다.”
“마검사요?”
“네. 마법으로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희대의 천재가 동시대 사람이라며 자주 한탄하더군요.”
르귄을 뜻하는 듯했다. 그와의 마지막 대면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졌지만…….
‘어쩐지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은 좋게 들리는걸.’
필로멜의 어깨가 으쓱했다.
“그래서 나사르의 친구는 최고의 마법사 대신 최고의 마검사를 꿈꿨다는 것이군요?”
“정확합니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느 한 분야에선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가치관이었죠.”
“그래서 그분은 검술에도 재능이 출중했어요?”
“스승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영 아니었다고 하네요. 그래도 구박을 받으면서도 꽤 오랫동안 그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근성이 있는 분이군요.”
그러다 필로멜은 헤헤 웃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친구분께 재능이 있었다 해도 최고의 마검사는 무리였을 거예요.”
“무엇 때문이죠?”
“최고의 마검사 자리는 다른 사람이 맡아놨거든요.”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해준 사람. 필로멜은 셋째 오빠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다리는 잘 치료해야 할 텐데.’
그 성질머리에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을지 모르겠다.
아침 식사는 간단히 일전에 시장에서 4벨 주고 산 육포와 필로멜이 가져온 쿠키로 때웠다.
“쿠키가 좀 많이 달죠……?”
“아니요. 딱 적당합니다.”
“솔직히 말해도 괜찮아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입니다.”
나사르는 그리 말하며 행복한 얼굴로 설탕 덩어리 쿠키를 먹어치웠다.
점심때에는 지상에 내려왔다.
뀨뀨가 휴식하는 김에 필로멜도 경직되어 있던 몸을 쭉 폈다.
“으으…….”
몇 시간 내리 와이번 위에 앉아 있으려니 엉덩이가 배겼다. 그래도 르귄의 안장이 푹신한 덕에 장시간의 승마 경험이 없는 그녀도 버티는 것이 가능했다.
두 사람은 점심으로 필로멜이 싸 온 빵을 먹은 후에, 산책 삼아 숲길을 걸었다.
나사르가 필로멜의 손에 쥐어진 물체를 보고 질문했다.
“그게 무엇인가요?”
“아, 이거요?”
필로멜은 빨간색 물체의 손잡이를 꼭 쥐며 대답했다.
“뿅망치요!”
“뿅……망치?”
생전 처음 보는 물건에 나사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무기예요.”
필로멜에게서 뿅망치를 받아 든 나사르가 그것으로 제 손을 내리쳐 봤다.
망치에서 뿅, 소리가 난다.
“별로 안 아픕니다만…….”
“사람한테는 그렇죠.”
몬스터한테는 아니다.
별빛 상점의 상품을 싹쓸이할 때 사 온 상품 중 하나. 대 몬스터용 무기.
이제까지는 몬스터와 대적할 일이 딱히 없어서 뿅망치가 활약을 할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간밤에 갑작스럽게 바실리스크와 맞닥트린 경험에서 배웠다.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바실리스크가 르귄이 아닌 악신의 수하였다면 난 큰일이었어.’
그리하여 가능하면 손에서 무기를 놓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필로멜은 호기롭게 말했다.
“이제부터 저도 몬스터 퇴치에 조력할 테니, 혼자서만 짐을 짊어지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사르는 피식 웃었다.
“말씀은 감사하오나 최대한 제 선에서 끝내보겠습니다.”
“제가 믿음직스럽지 않나요?”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데 왜 웃어요?”
필로멜이 반쯤은 장난으로 계속 추궁하자 나사르가 입을 열었다.
“필로멜 님이 장난감을 들고 좋아하는 어린아이같이 느껴져, 귀여워서 그만…….”
“제가…… 귀엽다고요?”
“실례되는 말이었나요?”
“아니요! 자주 듣는 칭찬이 아니라 그래요!”
필로멜은 어릴 적부터 귀엽다기보다는 조숙한 꼬마였다.
‘가끔가다 누가 나보고 귀엽다고 해도 별로 기쁘지 않았어.’
빨리 후계자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귀여운 아이’보다는 ‘어른스러운 아이’이고 싶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기뻐.’
카딘도 그녀에게 귀엽다고 한 적이 여러 번 있지만 지금처럼 내심 좋거나 설레진 않았다.
나사르니까 기쁜 거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숲길을 나란히 걸었다.
그러던 중, 필로멜이 어느 곳을 가리켰다.
“와, 저것 봐요! 정말 예뻐요!”
줄지어 있는 바위 무더기 중 한 바위의 위에 붉은 꽃 한 송이가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필로멜은 홀린 듯이 그 꽃을 바라보다가 바로 다음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위에서 어떻게 꽃이 피지?’
잠깐, 기이할 정도로 아름다운 꽃과 바위 무더기?
필로멜이 소리쳤다.
“나사르, 물러서요!”
나사르도 마침 그녀와 같은 생각에 이르렀는지 검을 빼 들었다.
하나로 연결된 바위 무더기들이 꿈틀꿈틀 움직였다. 곧이어 몸을 일으킨 거인의 형상이 되었다.
“바위 거인!”
바위 거인은 평소에는 평범한 바위로 위장해 있다가 먹잇감이 접근하면 덮치는 몬스터다.
‘그리고 저것은 꽃이 아니라 바위 거인의 촉수!’
아름답고 향기로운 촉수가 인간과 동물을 유혹한다고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꽃은 온통 바위로 이루어진 바위 거인의 신체 중에서 유일하게 연약한 부분.
“나사르, 저 꽃이 약점이에요!”
마탑에서 읽은 몬스터 대백과에 나와 있던 내용이다.
“꽃을 노리세요!”
꽃은 거인의 머리 위에 달려 있다. 필로멜이 직접 노리기엔 너무 높았다.
“……맡겨주시길.”
나사르가 빠르게 튀어 나갔다. 그의 몸이 거인의 신체를 발판 삼아 위로 솟구쳤다.
“어, 어?”
하지만 이어지는 장면을 보고 필로멜은 제 눈을 의심했다.
거인은 손쉽게 나사르를 잡아채더니 입안에 밀어 넣었다.
‘나사르가 거인에게 먹혔다.’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필로멜은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우와아아아!”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