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Place For Fakes RAW novel - Chapter (157)
가짜를 위한 장소는 없다-157화(157/183)
<157화>
‘알아. 알긴 아는데…….’
그래도 너무 무모하다. 인간의 힘만으로 악신에게 맞서다니.
아무리 르귄이 강하고, 악신이 봉인에서 풀려나기 전이라 하여도 매우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필로멜은 이를 사리물었다.
“돌아오기만 해봐. 이번엔 진짜 때려줄 거야.”
렉시온이 볼을 긁적였다.
“악신보다 더한 시련이 르귄 님을 기다리고 있군요.”
그때, 황제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마탑에서 알아낸 놈들의 본거지가 어디지?”
목소리에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듯한 단호함에 배어 있다.
“그곳엔 엘렌시아의 몸도 있을 터. 내가 직접 가야만 한다.”
나사르도 나섰다.
“미력하지만 제 힘도 보태겠습니다. 아버님 혼자 싸우시게 둘 순 없어요.”
제레미아가 황제의 물음에 대답했다.
“위치는 모른다. 우리한테도 철저히 비밀로 하더군.”
카딘이 제 가슴을 두드렸다.
“나도 싸우고 싶은데! 르귄이 우리는 얼씬도 하지 말고 필의 곁에 있으라고 했어!”
“저는 정보를 훔쳐봐서 어디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렉시온에게 쏠렸다.
“하지만 이 일에서 신경 끄라는 르귄 님의 엄명이 있었죠. 이번에 거스르면 말로 혼나는 정도로는 안 넘어갈 것 같고요.”
“렉시온!”
필로멜의 부름에 그는 싱긋 웃어 보였다.
“하지만 원래 부모의 말은 거스르라고 있는 법이죠.”
렉시온에게 장소를 전해 듣자마자 황제는 혀를 찼다.
“꽤 거리가 있군. 나는 가능하지만 웬만한 마법사들은 몇 번에 나눠서 이동해야 할 테다.”
황족의 신성 마법은 일반 마법과는 기본적인 원리가 달랐다.
“나 먼저 가 있겠다.”
황제가 자신의 충복을 불러 상황을 전해두려던 때.
“잠시만요.”
필로멜이 그를 불렀다.
“할 말이라도 있나?”
“저도…….”
데려가 달라.
그리 말하려다가 그녀는 말을 삼켰다.
황제가 그녀를 애석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필로멜……. 너를 얕잡아 보는 것은 아니지만 데려갈 순 없어. 그곳은 지금쯤 전장일 거다.”
“알아요.”
필로멜이 용사가 되었다지만 무력적인 면에서 그녀보다 다른 이가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르귄이 싸우는데 자신만 가만히 있을 순 없다.
“이 중에서 제일 빨리 그곳에 도착할 수 있는 분이 누구죠?”
렉시온이 형제들과 시선 교환을 한 후에 신중하게 대답했다.
“저희가 회복 물약을 마시면서 교대로 이동 마법을 사용한다 해도, 인원이 늘어난 만큼 추가로 마력이 소비되어 휴식을 취할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황제가 다음 말을 받았다.
“그렇다면 나다.”
“폐하, 조금만 나중에 떠나시면 안 될까요?”
“이유는?”
“발바드의 검을 가져가세요.”
일찍이 두 사람은 대신관이 받은 예언이란 악신에 관한 것이고, 발바드의 검이 그자를 무찌를 열쇠라고 추측했었다.
‘이제 내가 용사가 되었으니 발바드의 검을 받을 수 있어.’
유스티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네 뜻은 알겠으나 지금은 한시가 급하다.”
“…….”
어쩌면 황제의 의견이 옳을지 모른다. 전설의 검 따위를 신경 쓸 때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저는 신을 상대하기 위해선 평범한 수단으로는 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필로멜은 유스티스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제 뜻을 피력했다. 자신의 판단을 믿기로 했다.
“단순한 무력이라면 르귄과 마탑의 마법사 군단도 충분히 강력합니다. 저희에겐 그들과 다른 종류의 힘이 필요해요.”
유스티스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떴다.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
“폐하……!”
“네 손에 발바드의 검이 들어오려면 얼마나 걸리지?”
“아마도 용사로 임명받은 후에 검을 받게 되겠죠.”
“너무 늦어. 임명은 선발식 중에서도 제일 성대하고 오래 걸리는 절차다.”
“맞아요. 그러니 지금부터 대신관을 만나볼 생각입니다.”
“대신관을?”
“현재 상황을 잘 설명하고 발바드의 검부터 받으려고요.”
신전도 악신의 부활을 저지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목적일 터.
이해는 일치했다.
“오래 기다릴 수는 없어.”
“네! 제게 20분, 아니 10분만 주신다면 대신관을 반드시 설득해 내겠습니다.”
“알았다. 내 쪽에서도 신전 측에 말해놓겠다.”
유스티스는 충복에게 그에 관한 지시를 내렸다.
“단, 황실은 신전과 관계가 썩 좋지는 않아. 내가 가면 저쪽은 압박하는 것처럼 느낄 거다.”
“저 혼자 만나볼게요.”
용사는 다른 누구도 아닌 필로멜 자신이니.
* * *
얼마 후.
필로멜은 곧바로 대신관의 처소로 가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대신관. 모든 신관의 우두머리이며 교단의 정점에 위치한 자. 필로멜은 그런 대신관의 앞에서 제 의견을 펼쳤다.
“……하여, 저는 용사 발바드의 검을 다소 이르게 받기를 청하는 바입니다.”
반발은 거셌다.
“관례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발바드의 검이 용사에게 주어진다는 정보는 어찌 아셨소?”
“이것은 우리의 극비가 새어 나간 중대한 사항입니다!”
“마탑, 혹은 제국의 황실이 신전을 염탐했다고 받아들여도 무방합니까?”
대신관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원로 신관들이 소리쳤다.
필로멜은 그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대꾸했다.
“정보라면 세계수님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악신 이에리스의 부활이 코앞에 닥쳤는데 관례가 대수입니까?”
“그건…….”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 걸고 싸우다 죽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발바드의 검을 빨리 내주신다면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마음을 다한 호소였다.
그때, 대신관이 손을 들어 올리자 다른 신간들은 일시에 조용해졌다.
“다들 나가보시게.”
“하오나, 대신관님…….”
“나가래도.”
단호한 어조에 그들은 하는 수 없이 방을 떠났다.
대신관이 주름진 손으로 지팡이를 꼭 쥐며 말했다.
“자네가 이번 대의 용사라고? 오래 살고 볼 일이구먼. 꼭두각시가 아니라 저치들에게 할 말 다 하는 용사를 보다니 말이야.”
“대신관님, 말씀은 감사하오나 지금 여유가…….”
“알지, 알아. 발바드의 검을 달라는 이야기였지?”
“그렇습니다.”
“좋아. 당장 주겠네.”
“네? 정말입니까?”
“왜, 싫은가?”
“아니요, 아니요!”
너무 흔쾌히 주겠다고 하여서 놀랐을 뿐이다.
그런 필로멜의 마음을 읽었는지 대신관은 허허 웃었다.
“어차피 주겠다고 한 물건, 일찍 줘서 안 될 것 뭐 있겠나?”
“감사합니다!”
“세계수님께서 그런 정보까지 넘길 정도로 자네를 신뢰한다는데 나 또한 믿어야지.”
대신관은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얼른 발바드의 검이 잠든 곳으로 출발합세.”
“그게 어디인가요?”
“바로 이 옆 건물이야.”
필로멜은 대신관과 함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앞에서 기다리던 나사르에게 눈짓을 보냈다. 이야기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신호였다. 이제 그가 황제에게 가서 이 소식을 전할 터.
대신관은 관례를 운운하며 들러붙는 이들을 호통 한 번으로 정리하고는 나아갔다.
옆 건물인 대신전의 성물 보관소로 들어가 3층에 이르자 대신관이 말했다.
“이곳부터는 대신관과 용사만 통과할 수 있네.”
두 사람은 대신관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복도를 걸었다.
그는 헐떡이면서도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말을 걸어왔다.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서 옛날이야기를 해줄까?”
딱히 그럴 기분은 아니었지만 필로멜은 고개를 주억였다.
“지금부터 자네가 상대할 악신에 대한 이야기네. 들어두면 도움이 될지도 몰라.”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창조신 미와가 세상에 종말을 가져오려던 악신을 봉인하는 데까진 필로멜도 아는 내용이었다.
“봉인이 풀리는 것을 우려한 창조신께선 먼 길을 떠나셨네.”
“예? 잠드신 것이 아니고요?”
봉인에 거의 모든 힘을 소진한 미와는 깊은 잠에 빠졌다. 필로멜이 아는 바로는 그랬다.
대신관은 고개를 저었다.
“세간에는 그리 알려졌지만, 대신관들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는 달라.”
“그렇다면 미와 신은 어디로 가셨죠?”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로 건너가셨지.”
“다른 세계라면 신계요?”
“아니, 신계도 아닌 다른 곳. 신탁에 따르면 그곳에서 꿈을 꾸고 계신다고 하네.”
다른 세계와 꿈.
왠지 마음에 걸리는 단어들이었다.
“어떤 꿈인가요?”
“이 세계에 대한 꿈이네. 그분은 이곳을 정말 사랑하시거든.”
“그런데 왜 그토록 사랑하는 이 세계를 떠나셨죠?”
“그리하지 않으면 악신을 완벽히 봉인할 수 없었어.”
대신관은 이에리스의 봉인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어떤 것이 한 번 창조되었다면 종말 또한 필연적이다.
미와와 이에리스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 미와가 이 세계에 머무는 한 이에리스는 언젠가 기필코 부활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와 신께선 힘의 일부분만 이곳에 남기고 다른 세계로 여행을 가셨네.”
“하지만 그런데도 이에리스는 부활하려고 하잖아요.”
대신관은 잠시 침묵하다가 무거운 목소리를 냈다.
“사실 미와 신의 힘은 돌아오는 중이야.”
“힘이라 하시면……?”
“근래 들어 각지에서 이 세계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힘이 관측되고 있다네.”
대신관의 연륜이 묻어나는 눈빛이 필로멜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자네의 부친께서도 내게 물어보러 왔었지. 그 힘의 정체를 아느냐고.”
부친이라면 르귄이?
“미와 신이 이 세계를 떠났다는 사실이 알려져선 안 되었기에 그때의 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네.”
르귄이 그간 탐구해 오던 정체불명의 현상. 그의 마력, 에스텔리온과 닮은 인위적인 힘.
필로멜과 네 부자는 일찍이 그 힘의 정체를 ‘게임 시스템’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시스템이 사실은 미와 신의 힘이었다고?’
필로멜은 직감했다. 이것은 흘려 넘길 정보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