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Place For Fakes RAW novel - Chapter (160)
가짜를 위한 장소는 없다-160화(160/183)
<160화>
* * *
장소는 다시 대신전.
필로멜과 세 명의 신관들은 간단히 자기소개를 한 다음에 길을 떠났다.
목표는 대신전의 중심부에 위치한 ‘줄기’. 중앙 정원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불과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곳에 있었는데.’
안마를 받으며 한가롭게 보냈던 시간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그때, 신관 엘레인이 외쳤다.
“전방에 몬스터 두 마리가 보입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또 다른 신관, 테오도르의 손에서 빛살이 뻗어져 나갔다.
“끼에에에엑!”
몬스터가 괴로워하며 몸을 뒤틀었다.
“보조할게!”
그리 말하며 추가로 빛살을 내뿜은 이는 신관 카일.
쿵!
몬스터의 육중한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죽이 척척 맞아!’
필로멜은 신기한 눈으로 그들의 연계 공격을 구경했다.
과연 수석 신관들. 한두 번 같이 합을 맞춰본 실력이 아니다.
그들의 실력은 전투 외의 부분에서도 빛을 발했다.
“아으…….”
자신의 다리를 손으로 감싼 어느 남성이 신음을 흘렸다. 중앙으로 향하던 길에 마주친 백성이었다.
엘레인이 나섰다.
“환부를 봐도 되겠습니까?”
남자가 바짓단을 접어 올리고 신발과 양말을 벗었다.
“갑자기 다리가 아파서 확인해 보니까 이 상태였습니다!”
발부터 무릎 아래까지가 검붉게 물들어 있다.
“혹시 저 검붉은 땅을 밟고서 이리로 오셨나요?”
“그, 그랬죠. 몬스터에게 쫓기다가 그만…….”
“돌아가실 땐 절대 검붉은 땅을 밟지 마세요.”
엘레인은 제 신성력을 들이부어 남자의 다리를 정화했다. 곧 다리는 원래의 피부색을 되찾았다.
남자가 환호했다.
“통증도 가셨습니다! 아까는 너무 아프고 다리에 힘도 안 들어갔는데 말입니다!”
“다행입니다.”
“신관님, 발목도 접질렸는데 치료 부탁드립니다.”
그의 요청에 엘레인은 순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필로멜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반창고를 재빨리 꺼냈다.
“이걸 붙이면 나을 거예요!”
“……겨우 반창고로요?”
“속는 셈 치고 붙여보세요. 어서요.”
남자는 반신반의하는 기색으로 반창고를 제 발목에 붙였다. 의심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정말 멀쩡해졌습니다! 더는 아프지 않아요!”
오염된 땅을 정화할 수 있는 신성력은 귀중한 힘. 평범한 부상은 반창고로 치료하는 편이 백배 나았다.
‘수량도 넉넉하고.’
그 뒤로도 필로멜 일행은 다른 백성들을 몇 명 더 만났다. 그들은 몬스터를 피해 창고 건물에 숨어 있었다.
그들은 겁에 질린 채 애원했다.
“설마 탑이 있던 자리로 가시는 건가요?”
“안 돼요! 그곳엔 흉악한 몬스터들이 득시글해요!”
“맞습니다! 저희는 그쪽에서 도망쳐 왔다고요!”
결국 신관 카일이 사람들을 인솔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들로서도 혹을 주렁주렁 달고 전진할 순 없었다.
“다른 신관들을 만나면 이들을 인계하고 다시 합류하겠습니다.”
그렇게 카일은 떠나갔다.
한 자리가 빈 만큼 몬스터와의 전투는 이전보다 더 빡빡해졌다.
“엘레인! 한 마리 놓쳤다!”
전방에서 세 마리의 몬스터들과 교전하던 테오도르가 외쳤다.
몬스터가 빠른 속도로 엘레인에게 가까워졌다. 그녀는 테오도르의 공격을 강화해 주는 신성 마법을 사용하던 차라 몬스터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뿅! 뿅!
“끼에에에엑!”
경쾌한 뿅망치 소리와 몬스터의 비명이 한데 어우러졌다. 이윽고 몬스터는 검은 가루로 변해 바람에 날아갔다.
“……대단하십니다.”
엘레인이 다소 얼이 빠진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힘껏 휘둘러도 아플 것 같지 않은 물건으로 이 정도의 위력을 내시다니…….”
이리로 뛰어오던 테오도르가 끼어들었다.
“아니지! 겉보기는 우스꽝스럽지만 분명 대단한 무기일 거야!”
“그런가?”
“과연 용사님이라 그러신지, 아까 전 반창고도 그렇고 신통방통한 물건을 여럿 가지고 계시군요!”
테오도르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용사님께서 킬리언 후보를 힘으로 꺾는 광경을 지켜봤는데도, 완전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부끄럽네요.”
“괜찮아요.”
그것도 신통방통한 물약의 효과니까.
“그런데 그 물건들은 역시 마탑주님의 작품입니까?”
“뭐, 그렇죠…….”
그것을 계기로 필로멜과 두 사람 사이에 있던 벽이 허물어졌다.
두 사람은 원래도 필로멜에게 친절한 편이었으나 이제는 허물없이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테오도르가 필로멜의 팔을 힐끔거리며 물었다.
“실례지만 용사님껜 근육이 거의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그런 힘을 내실 수 있으시죠?”
“……사실 제 근육은 내장형이어서 겉으로는 안 보여요.”
“그렇군요! 내장형이라니,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지식이 또 하나 늘었습니다.”
테오도르는 필로멜의 헛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는 제 팔 근육을 만지작거렸다.
“……나도 근육을 키울 수 있을까나?”
중얼거리는 것을 들어선 엘레인도 관심이 있는 듯했다.
필로멜은 두 사람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특이한 사람들이야.’
그래도 다행이다. 이들이 이렇게 분위기를 풀어주었기에 필로멜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아니었다면 오다가 본 죽은 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을 거다.
시신들은 몬스터에게 당한 자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검붉은 기운이 전신에 퍼져 죽음에 이른 자도 간혹 보였다.
이에리스는 이곳을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고 있다.
“한 시 방향! 몬스터 무리가 접근 중!”
그때, 테오도르가 소리쳤다.
“이번에는…… 열 마리입니다.”
많다. 그것도 크기는 중형급 이상으로만.
“엘레인, 제 곁에 바짝 붙어요!”
필로멜은 엘레인의 팔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특기는 후방 지원이다.
“이놈들!”
테오도르가 몬스터 열 마리 중 세 마리는 붙들었으나, 나머지는 두 사람을 향해 진격해 왔다.
뿅! 뿅! 뿅! 뿅! 뿅!
필로멜은 되는대로 마구 뿅망치를 휘둘렀다.
몇 방은 적중하여 대여섯 마리의 몬스터들이 나가떨어졌다.
“크르르르르!”
허나 다른 놈들은 빗맞고 말았다. 그것들은 필로멜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파지지지직!
예상대로 자동 보호 마법이 발동되었다.
“켕!”
뿅! 뿅! 뿅!
몬스터들이 스파크에 휩쓸린 틈을 놓치지 않고 필로멜은 빠르게 뿅망치를 휘둘러 댔다.
일곱 마리 모두 뿅망치의 밥이 되어 사라져 갔다.
‘휴. 르귄이 자동 보호 마법에 마력을 보충해 줘서 천만다행이다.’
필로멜은 어깨를 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와!”
테오도르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다가왔다.
“그게 뭡니까? 되게 멋졌는데!”
엘레인은 정답을 알고 있었다.
“자동 보호 마법이죠? 실용성 없는 마법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와! 그런 마법도 있었습니까? 저한테도 누가 걸어줬으면 좋겠네요.”
“그게 얼마나 비싼 마법인지는 아니?”
“얼만데?”
“2만 벨! 게다가 용사님은 마탑주께서 직접 걸어주셨을 테니, 열 배인 20만 벨은 될걸!”
헉, 하고 입을 떡 벌린 테오도르가 제 손가락을 꼽았다.
“내 봉급을 40년쯤 모으면 얼추 되겠다.”
“바보야. 봉급 인상률을 감안해도 그 정도로 못 모으거든. 그리고 평생 저축만 할 거야?”
그러나 지금은 잡담을 나눌 때가 아니었다.
“두 사람 다 뒤를 봐요!”
사람 키의 세 배 정도 되어 보이는 거인이 나타났다.
그들로부터 다소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거인은 바닥에 굴러다니던 바위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선 힘껏 던졌다.
“우왁!”
테오도르는 가까스로 날아오는 바위를 피했다.
거인이 이번에는 탑의 파편을 집어 들었다. 그다음은 배달 마차에서 떨어진 우유 통을.
“그렇구나!”
필로멜은 거인의 행동 이유를 파악했다.
“우리에게 접근하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거예요!”
“그래서 물건들을 마구 던진다고요?”
“아마 우리가 조금 전 다른 몬스터들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고 파악했겠죠. 어쩌면 열 마리는 미끼였을지도…….”
“덩치는 산만해서 보기보다 똑똑한 놈이네요!”
세 사람은 이리저리 날아오는 물체들을 피하기에 바빴다. 필로멜의 목 뒤에서 식은땀이 났다.
자동 보호 마법엔 한 가지 허점이 존재했다.
‘무생물은 걸려들지 않아!’
자동 보호 마법은 타인의 악의를 감지하여 발동된다. 즉, 악의를 가지지 않으면 얼마든지 필로멜을 해할 수 있단 뜻이다.
무생물은 스스로 의지를 지니지 않는다. 상대방이 직접 무기를 들고 달려들면 모를까, 원거리에서 투척한다면 방도가 없었다.
거인이 거기까지 계산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위기였다.
필로멜은 날아오는 물체들을 요리조리 피해 나갔다. 열 마리의 몬스터를 상대하기 전에 먹어둔 속력의 비약이 힘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피하기에 급급하여 거인에게 접근하지는 못했다.
테오도르가 노성을 터트렸다.
“고놈 엄청나게 던져대네요!”
상황은 그나 엘레인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때, 필로멜의 정면으로 나무 몸통이 날아왔다.
이것은 피할 수 없다.
‘위험해!’
필로멜은 반사적으로 양팔로 얼굴을 방어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충격은 없었다.
텅!
누군가 필로멜에게 날아오던 물체를 발로 차냈다.
“나사르!”
나사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