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Place For Fakes RAW novel - Chapter (181)
가짜를 위한 장소는 없다-181화(181/183)
<외전 10화>
밑도 끝도 없는 황당한 발언이었다.
“뭘 근거로 그런 소릴 하는 거지?”
“믿든지 말든지. 그런데 난 네가 바꿔준 이 방에서 도청 마도구를 발견했거든.”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유스티스의 곁에서 물러선 남자는 빙글빙글 웃었다.
“처음엔 나를 노린 건가 했는데, 생각해 보니 한평생 선량하게 산 나보다는 황자님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이 많지 않겠어?”
선량하긴 개뿔…….
“더욱이 이 방을 먼저 예약한 건 그쪽이라며? 보나 마나 네 주변인이 정보를 흘린 거야.”
“아니야. 당신은 모르겠지만, 사실 난 예약 같은 것은 하지 않았어. 갑자기 이곳에 오게 된 거니까. 즉, 나를 노리고 미리 이 방에 마도구를 설치하는 건 불가능…….”
이어지던 말이 뚝 그쳤다. 어떤 의문이 그의 마음에 드리운 탓이었다.
‘정말 불가능한가?’
엄밀히 따지자면 유스티스가 귀빈실에 묵기로 정해진 때와 그가 이자와 방을 바꾸기 전까지는 약간의 틈이 있었다.
그사이 귀빈실에 들어와 마도구를 설치할 수 있다면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해.’
황자가 귀빈실에 묵는다는 것을 알고 있던 존재는 호텔 지배인과 황자 일행.
일단 지배인과 같은 호텔 관계자가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단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곳은 갑작스레 묵게 된 호텔이니까.
유스티스의 일행 또한 계속 그와 같이 있었으니 몰래 마도구를 설치하러 갈 여유가 없었다.
‘잠깐…….’
유스티스가 어떤 가능성을 떠올리던 때, 귀빈실의 문이 열렸다.
“전하, 볼일은 마치셨습니까?”
데일이었다.
“다른 준비는 다 끝났으니 이제 전하만 채비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황자가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데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
“……데일.”
“왜 그러시죠?”
유스티스는 오랫동안 자신을 섬겨온 시종을 응시하며 가까스로 다음 말을 꺼냈다.
“소매 좀 걷어 봐.”
“예? 갑자기 무슨……?”
“소매를 걷어 보라니까.”
난데없는 명령에 미간에 주름을 잡으면서도 데일은 순순히 오른쪽 소매를 걷었다.
“반대쪽도 걷어.”
“…….”
그러나 어쩐 일인지 다음 지시는 이행하지 못했다.
“정말 왜 이러십니까? 얼른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신 분은 전하십니다.”
반문하는 데일의 앞에서 유스티스는 느리게 숨을 내쉬었다.
“단검이 사라졌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곤 생각했어.”
손바닥에 파고든 손톱이 주는 고통이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일깨웠다.
“내 방에 침입해서 베개 밑에 있던 물건까지 손에 넣은 암살자가 구태여 한 번 나간 후에 내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온다는 것 말이야.”
당시엔 정신이 없어서 넘겼지만, 사실 계속 마음 한구석에 걸렸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객실 내 다른 방에 묵는 너라면 내가 없을 때 와서 얼마든지 단검을 가져갈 수 있지.”
데일의 표정이 서서히 허물어졌다.
“전하, 설마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제가 전하의 목숨을 노린 암살자라고요?”
충격과 서러움이 뚝뚝 묻어나는 음성이었다. 덮어 놓고 믿고 싶을 정도로.
“제가 전하를 모신 세월이 얼마인데요? 대체 저자에게 무슨 소리를 듣고 이러시는 겁니까?”
격양된 그가 마법사를 삿대질했지만, 정작 마법사는 돌아가는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 아까부터 두 사람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자가 말하길 자신의 방에서 도청 마도구가 나왔다는군.”
유스티스는 데일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내가 묵기로 되어 있던 이 최고급 귀빈실에서.”
“고작 그 말 때문에 저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거짓말일 게 뻔하지 않습니까!”
데일이 소리 높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저희가 이곳에 온 것은 순전히 우연이고 갑작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미래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어찌 미리 손을 써두겠습니까?”
“미래를 볼 필요까진 없어. 그냥 이곳에서 묵기로 정해진 후에 마도구를 설치하면 되니까.”
“그 짧은 틈에요? 말이 안 됩니다. 게다가 저를 포함한 저희 아랫것들은 줄곧 전하의 곁에 있지 않았습니까?”
확실히 데일의 말대로 그들은 유스티스가 이 호텔 안으로 들어와서 저자와 방을 바꿀 때까지 그를 보필하고 있었다.
그사이 유스티스 몰래 귀빈실이 자리한 층까지 올라와 마도구를 설치한 다음 그가 자신의 부재를 눈치채기 전에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한 명 있었잖아. 잠시 떨어졌다가 이 호텔에서 나와 합류한 사람이.”
순간, 데일의 얼굴이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우리보다 한발 먼저 호텔에 도착해서 지배인한테 곧 황자가 올 것이라고 알린 자.”
“전하…….”
“로널드라면 지배인으로부터 내게 최고급 귀빈실을 배정할 거라는 정보를 듣고 내가 오기 전에 마도구를 설치하는 게 가능해.”
“로널드까지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는 바로 저자에게 당해서 지금도 누워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네가 직접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거야, 안 그래? 시킬 사람이 없으니.”
유스티스의 뇌리에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자, 얼른 갑시다. 먼저 보내놓은 심부름꾼이 지배인에게 대충 이야기를 해놓았을 겁니다.”
그렇다. 분명 그때 로널드를 호텔로 보낸 사람은 데일이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어. 내가 마주친 암살자는 아무리 봐도 사람을 죽이는 데 미숙해 보였지.”
숙련된 암살자였다면 인기척을 내서 그를 깨울 일도 없었고, 허무하게 놓치지도 않았을 터.
“하지만 왜인지 문밖을 지키고 있던 호위는 굉장히 깔끔하게 보내 버렸어.”
시신을 대강 살핀 바, 다툼의 흔적이라 할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사 숙련된 암살자라고 하여도 황실의 기사씩이나 된 자가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당했다는 것은 믿기지 않았다.
“아아, 알겠다. 내부인의 소행이구나.”
그때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잠자코 듣기만 하던 은발의 사내가 경쾌하게 말했다.
“수면제려나? 익히 아는 사람이라면 식사나 음료에 약을 타기도 쉬웠을 테고, 잠든 틈에 해치울 수 있었겠네.”
유스티스의 생각도 그러했다.
“데일, 넌 종종 밤새워 나를 지키는 기사들에게 차를 타주곤 했지. 어제저녁에도 그랬나?”
그는 침묵하는 데일을 바라보며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냥 차라리 내 음식에 독이라도 타지 그랬어? 아, 그래. 그러면 범인이 밝혀지지 않더라도 네 목이 날아갔겠군.”
황자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은 시종인 그가 관리하니까.
그나마 데일이 화를 면할 수 있는 길은 외부에서 온 암살자의 소행으로 꾸미는 것이었다.
“누가 시켰지? 황태자? 황후? 아니면 다른 누군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괜히 내가 오를레타 백작을 만나서 일이 귀찮아지기 전에 얼른 처리하고 싶었나 봐?”
“……황태자 전하십니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의외로 대답이 돌아왔다.
“그분은 제 야망을 알아보셨죠. 언제까지 다 썩어빠진 동아줄을 쥐고 있을 거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제가 결단을 내리기만 한다면 제 새로운 동아줄이 되어주신다고도 했지요.”
“넌 우리 어머니를 오랫동안 모셨잖아.”
“모시고 싶어서 모신 게 아닙니다. 아랫것들이 어떻게 윗분을 선택하겠습니까?”
데일은 생각보다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구에게 배정되느냐에 따라 윗분과 운명을 함께해야 한다니. 이 얼마나 서글픈 일입니까?”
그가 돌연 제 왼쪽 소매를 걷자, 치아의 형태대로 선명히 새겨진 상흔이 드러났다. 몇 시간 전, 유스티스의 방에 침입했던 암살자의 정체가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전하와 돌아가신 황비 전하께 개인적인 원한은 없습니다. 두 분 다 불쌍하신 분이지요. 그러나 저도 이만 제 살길을 찾아야겠습니다.”
더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기로 작정했는지 데일은 잘도 술술 나불댔다.
“가져간 단도, 여기 있습니다.”
그의 품 안에서 유스티스의 단도가 나왔다. 그러나 데일은 주인에게 그것을 돌려주는 대신 검집을 벗겨 칼날을 드러냈다.
“이봐! 마법사!”
그러곤 이 자리에 있던 제삼자를 보며 소리쳤다.
“돈! 출세! 명예! 원하는 것이라면 다 말해라! 오늘의 일을 함구하기만 한다면 황태자 전하께서 뭐든지 들어주실 거다!”
유스티스는 주변을 둘러봤다.
방의 문은 데일의 뒤편에 있었으며 유스티스의 근처엔 창문 하나 보이지 않았다.
도망갈 길이 없다.
실은 의지조차 없었다. 마지막 남은 의지는 조금 전, 진상을 알게 되었을 때 바람에 날린 모래처럼 흩어졌다.
어차피 이 위기를 모면해 봤자 비슷하거나 더 큰 위기가 계속해서 닥쳐올 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검을 든 데일이 달려들고 황자가 끝을 바라보려던 그때였다.
“으아아아!”
한순간 데일의 몸이 붉은빛으로 반짝이더니 그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마음에 안 들어.”
누가 행한 일인지는 굳이 생각해 볼 것도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마법사가 경련하는 데일을 발로 툭툭 건드렸으니.
“이 자식, 건방지게 감히 누구한테 명령질이야? 게다가 남이 열심히 그린 걸 밟고 있어.”
남자는 그리 투덜대며 데일의 몸을 굴려서 마법진 밖으로 밀어냈다.
“…….”
유스티스는 잠시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컥컥, 신음을 쏟는 데일에게 다가갔다.
“판단을 잘못했구나. 내가 이미 구슬려 봤는데 그런 것에 넘어올 작자가 아니다.”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와중에 데일은 간신히 욕지기를 뱉어냈다.
“빌어먹을, 몬스터 떼만 아니었어도…….”
그가 실패한 근본적인 원인을 알려주는 유언이었다.
만일 가는 길에 몬스터 떼만 출몰하지 않았다면 유스티스는 예정된 숙소에 묵었을 테고, 데일도 급조한 것이 아닌 전부터 공들인 암살 계획을 실행했을 테니까.
이윽고 그의 눈이 완전히 빛을 잃었다.
죽는 순간까지 참으로 계산적인 남자였다고 생각하며 유스티스는 망자의 눈을 감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