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ejong in my Joseon RAW novel - Chapter (466)
내 조선에 세종은 없다-467화(467/468)
467화 외전 – 내 조선에 세종은 없다
‘젠장, 20년 전 드라마도 아니고.’
액셀을 열심히 밟아대는 동생을 보면서 나는 황당하게 중얼거렸다.
어떻게 쉽게 가는 게 하나도 없냐.
만약 정말 오늘 만나기로 한 상대가 주소화라면.
바뀐 이 세상을 증명하는 듯한 내 동상 앞에서, 두 사람의 사랑의 히스토리가 이어지는 완벽한 그림.
뜬금없이 거기서 다 끝날 줄 알았더니 이젠 공항까지 직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골 때리기는 하군.
옛날에도 이 정도 수준의 방해 공작이 들어오진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영락제 그 양반이 처음엔 날 좀 고깝게 보긴 했지만.’
지금 오국공이라는 인간도 비슷한 수준으로 여동생을 과보호하는 건가.
그때는 남매간 나이 차가 부녀지간을 넘어서 조손지간 쪽에 가까웠으니 이해는 갔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은근히 화나는데.
그나마 그때는 국혼에 골인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지.
‘홍희제 조카님, 보고 있다면 내게 힘을 줘.’
내가 그래도 당신 손자들은 다 살려줬다고.
걔네 환이를 따라 아메리카 원주민들 풍속과 언어를 기록한 걸로 역사책에 이름까지 남겼다고 들었다.
나도 이 시대에 떨어져서 찾아본 거긴 하지만.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더욱 급해졌다.
‘이럴 거면 공항철도 타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러나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생각은 동생의 운전과 함께 까맣게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차는 복잡한 도심을 총알 같은 속도로 빠르게 돌파했다.
오죽하면 내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운전 좀 살살해. 대체 이런 운전은 누가 가르쳐줬냐?”
내가 양손으로 천장 손잡이를 꽉 틀어쥐면서 묻자 동생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할아버지.”
“……좋은 거 가르치셨군.”
나는 혀를 찼다.
그러나 이런 터프운전 덕분에 다행히 목적지에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 멈춰줘!”
“차? 잠깐만, 이쪽은…….”
나는 동생의 나머지 말을 귀담아들을 틈도 없이 잽싸게 부평국제공항으로 들어갔다.
‘공항 한번 더럽게 크군.’
이 안에서 사람 찾으려면 골치 꽤나 썩겠다 싶다.
원래 세계의 인천공항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큰 공항이었지만, 부평공항은 조선의 더욱 강대해진 국력 때문인지 규모가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진 않은 것 같았다.
‘그런 것치곤 위치는 거기랑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긴 한데.’
내가 우리 외가인 민씨 일문을 은광과 염전 개발로 내몬 게 요상한 나비효과로 날아온 탓이다.
한번 돈과 사람이 몰리기 시작한데다, 썩어도 준치라고 임금의 외척이 근거지로 터 잡은 곳이다 보니 한성과 가까운 입지가 더해져 거침없이 덩치를 불린 모양이었다.
하기야, 원래도 한성, 계룡과 함께 조선의 천도 후보지로 꼽힐 정도로 입지 자체가 좋은 곳이었으니.
지금은 숫제 원래 세계의 인천 일대를 죄다 잡아먹어버리고, 그 위상을 대체해버린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 동네에 박힌 공항 이름에 부평이 붙은 것이다.
내가 입국할 때 이용했던 교하공항, 남쪽의 동래공항과 함께 직례에서 규모가 가장 큰 공항이라던가.
어쨌든 이런 나비효과는 내 입장에선 신기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한 일이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사람 미치고 팔짝 뛰게 할 노릇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웬 이상한 이벤트까지 겹쳐버린 것 같았다.
국제선 입구를 가득 메운 인파를 보고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웬 유명 정치인이 하필이면 지금 출국 기자회견이라도 하는 모양인지 입구 앞이 북적북적했다.
정확히는 본인은 배려 아닌 배려한답시고 좀 떨어진 곳에서 읊어대고 있었지만, 그 근처에 진을 친 기자와 지지자들이 길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 나라를 맑게, 정치를 선명하게, 청국당이 앞장섭니다!
젠장, 당명 기억했다. 앞으로 청국당인지 청국장인지는 절대 안 찍어야지.
나는 지지자들이 올려 든 피켓을 보고 이를 갈았다.
“저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 이번 총선에서 국민 여러분이 내려주신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책임을 통감하는 의미에서 정치 문제는 잠시 다른 동지들에게 맡겨두고, 당분간 마자파힛에서 공부에 전념하겠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심에 있는 아저씨는 아랑곳 않고 침통한 얼굴로 종이를 계속 읽어내려갔다.
“청국당의 참패 원인이 백련교와 연관된 물의 때문이라는 분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거 기간 상대 후보가 벌인 저열한 흑색선전에 큰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저는 확고한 유학자이고, 연립내각 시절에 백련교에 그 어떠한 특혜를 준 적이 없습니다.”
“이번 마자파힛행도 백련교와 관련 없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백련교가 마자파힛의 국교기는 하나, 제 출국과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마자파힛은 천조질서를 지탱하는 남방의 주요 우방국인 만큼, 이번 출국은 어디까지나 공부와 연구 목적에서 결심한 것입니다…….”
“와아아! 누르하치! 누르하치!”
기자들의 질문이 끝도 없이 계속될 기미를 보이자 지지자들이 우렁찬 호령으로 그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앞사람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어이 아저씨, 좀 비켜봐요. 사람 좀 지나가야 하는데.”
“어, 미안합니다.”
발을 동동 구르는 내 모습이 어지간히 급해 보였는지 열성적으로 피켓을 들고 소리 지르던 아저씨도 의외로 사과의 말부터 건넸다.
그러던 그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어디 가시는데요?”
“남경!”
“거긴 국내선인데?”
아차.
이 세계에선 남경으로 가는 노선이 당연히 국내선이구나.
15세기 조선과 21세기 대한민국이 머릿속에서 교묘하게 섞여있던 탓에 까먹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국제선 터미널에서 뛰쳐나와 다시 동생 차에 올라탔다.
다행히 동생은 아직 차를 빼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을 끝까지 들으라니까.”
“미안. 형이 좀 급하거든.”
“왜 그렇게 눈이 돌아갔는진 모르겠는데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동생은 그 말만 남긴 채 액셀을 꾹 밟았다.
‘그래도 다행이군.’
국내선은 출국심사가 없으니 시간 잡아먹을 일은 덜었다.
수속은 했더라도 비행기만 안 떴으면 쫓아 들어갈 수 있겠지.
그러나 급하게 아무거나 끊은 티켓으로 출발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방송이 울려 퍼졌다.
– 탑승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12시 15분에 남경으로 가는, 청해진항공 1588편, 1588편은, 지금 8번 탑승구에서 탑승을 시작합니다. 탑승 마감시간은 출발 5분 전입니다.
“8번!”
이미 방송을 통해 탑승을 시작했지만, 공항 자체가 더럽게 큰 탓에 8번 게이트는 아직 한참 남아있었다.
승객들이 전부 들어가는데는 시간이 꽤 걸리기야 하겠지만, 내가 찾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딱 한 명뿐이다.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면 도저히 따라잡을 도리가 없다.
‘어쩔 수 없나.’
망나니니 뭐니 원본을 실컷 욕하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점은 하나 있다.
나담 금메달리스트라는 스펙이 영 허명은 아닌 모양인지, 체력 하나는 마음에 들었다.
전생의 나와 비교하면 약간 우위에 있는 수준이라고나 할까.
‘아니 밥 먹고 운동만 했을 테니 좀 더 나을지도.’
즉위하고 나선 국사에 바빠서 신체 단련에 조금 게을러졌던 나보다는 당연히 나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지만.
지금은 그런게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타임 리미트에 맞춰서 열심히 뛰는 것뿐이지.
* * *
여자는 발끝으로 대기실 바닥을 톡톡 두들겼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건장한 사내 하나가 곤란한 기색으로 말했다.
“아가씨, 어서 탑승하시죠. 제일 먼저 탑승하실 수 있도록 조치해두었습니다.”
“싫은데? 마지막으로 탈 건데?”
그 맹랑한 말투에 주위에 있던 경호원들이 당황했지만, 그들의 손에 강제로 공항에 끌려온 그녀로서는 구태여 배려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을 위해 지난 1년 동안 한성을 돌아다닌 그녀였다.
‘별로 소득은 없었지만.’
지금 시대의 ‘오빠’를 졸라 기간 한정으로 겨우 얻어낸 한성 유학이었지만, 그 녀석의 흔적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한성이라는 거대한 도시는 그녀가 살던 시대와는 하늘과 땅 차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말이다.
사막에서 바늘 찾아내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라고나 할까.
애초에 한성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이 남경에서 눈을 떴으니 그 녀석도 으레 한성에서 깨어났으리라 짐작할 뿐.
그 와중에 그녀의 이목을 잡아끌던 집안이 하나 있기는 했지만…….
‘정작 큰아들이 사고뭉치라고 들어버렸으니까.’
슬쩍 들어봐도 술과 여자를 비롯한 온갖 추문이 끊이지 않았기에 그쪽으로는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다.
자신의 남편은 사고가 많긴 했지만 그런 종류의 사고를 치고 다니진 않았으니까.
‘이런 세상에 떨어졌다고 변해버릴 녀석도 아니고.’
남편이 다스리던 조선은, 아들이 이어받은 조선은, 그야말로 그녀가 죽기 직전까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그 발전이 축적되고 또 가속화된 이 세계는 그녀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별천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가 보는 것은 이전보다 빛바랜 세상이었다.
이 세상에 다시 난 게 나 혼자뿐이라면.
그 녀석은 영영 역사 속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면.
그래서 한성이나 남경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면.
그런 불안감을 누르기 위해 여자는 그 녀석이 찾을 법한 장소를 더욱 열심히 돌아다니고,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어떤 식으로라도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그것도 이제 끝이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미약한 희망이 보였을 때쯤에.
오국공인 오빠가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그 집안의 초청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신을 즉각 남경으로 데려오라고 하지 않았는가.
방금도 통화했지만 동생이 그 집 아들에게 못된 짓이라도 당할까 봐 걱정이 태산인 모양이었다.
남경으로 돌아가면 그런 놈이 들러붙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호언장담까지 늘어놓았으니.
지금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거기에 대한 미약한 반항이었다.
이 시대에 떨어져서도 여전히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들은 존재했다.
‘함께 있을 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바닥만 긁고 있을 때, 별안간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특별 전시에 초청 드렸는데 급하게 취소하셨다고 해서 말이죠.”
“네, 영공 각하의 급한 부름이 있었습니다. 귀측에도 연락드렸다고 들었는데요.”
“아, 나중에라도 참석하시라고 초청장 전해드리려고요. 그러니까 조금만 비켜줘요.”
경호원이 강남 억양이 강하게 배인 조선어로 막아섰지만, 상대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목소리에 여자는 문득 고개를 치켜들었다.
분명 이건…….
“이 새끼, 왜 이렇게 질척대?”
경호원이 상대의 몸을 거칠게 밀친 순간.
“스터너!”
육중해 보이던 경호원의 몸이 한순간 우당탕 내리꽂혔다.
그리고 그 너머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 * *
“오랜만이네.”
가슴이 울렁거린다.
간신히 내뱉은 말이라는 게 고작 이런 거라니.
하지만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달려들려던 경호원들을 손 하나로 제지시킨 그녀는, 어쩐지 가라앉은 목소리로 짤막히 대답했다.
“그러게.”
나는 한 발짝 그녀에게 다가섰다.
모자도 안 쓰고 온 탓에 사진이라도 찍히면 온갖 스캔들이 나돌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여기, 우리 집에서 특별전시한다는데. 언제든 참석할 수 있도록 시간대를 바꿨으니까.”
나는 초청장을 내밀었다.
“나중에라도 와줄 수 있어?”
주소화는 얌전히 그것을 집어 들더니.
이내 초청장을 쫙쫙 찢어버렸다.
“…….”
“나중 말고 지금.”
이 폭거를 보고 할 말을 잊은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네가 나를 직접 찾아와.”
이미 너 찾느라 얼마나 고생 많이 했는데, 라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리고 말했다.
“안 그래도 표 끊었어.”
시간대는 다르긴 하지만, 역시 남경으로 가는 티켓이다.
한번은 그녀가 남경에서 한성으로 왔으니.
이번엔 내가 찾아가는 게 순리겠지.
꼴을 보니 앞으로도 그리 순탄하진 않을 것 같지만, 언제 내가 그렇다고 포기한 적이 있었나.
나는 더 이상 만기를 친람하는 천자가 아니다.
그러나 임금이든 필부든, 그 삶의 무게에는 변함이 없겠지.
그저 다시 한번 주어진 삶을 우당탕탕 살아갈 뿐이다.
세종이 아니라 인간 이제로서.
후기
내일 주인공의 후대 평가를 담은 외전 마지막화가 올라갈 예정입니다.
마지막까지 함께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