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0
010화
아라스로 복귀하는 기차 안.
휴가라지만 사실상 또 다른 일의 연장선이었던 지난 며칠을 되돌려봤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얻은 것은 많았다.
가장 먼저라면 당연히 전역자들.
“윌리암 병장. 아, 이젠 병장 아니지. 아무튼, 행복해 보였어.”
약혼자도 있다더니 결국 전역하고 가정까지 꾸렸다.
‘날 비웃고 전역하던 놈답다.’
세상 행복은 다 가진 표정으로 내게 인사하던 놈을 보자마자 승자의 비꼼이 담긴 전역 신고식이 떠올랐었다.
“그때 뭐라 했더라. 아, 다시 뵙는 그날 어쩌구 저쩌구 떠들어댔지.”
분명 알고 그런 거다. 다시 만나는 그땐 자기는 민간인. 여전히 군인인 내가 건들기 힘든 신분일 테니까.
“두고 봐라. 다른 놈은 몰라도 너는 전쟁 터지면 꼭 부르고 만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둬라, 윌리암 페르. 얼마 뒤부턴 4년을 못 웃을 테니.
그렇게 만난 윌리암, 제스퍼, 니콜라… 모두 내가 오를레앙 창고에 와인을 저장한다고 생각하지만 반대다. 난 전역자들을 하나둘씩 오를레앙에 저장하고 있었다.
두 번째로는 내 휘하 병사들에게 쥐여줄 무기였다.
당연히 돈 좀 있다고 바로 무기를 생산할 순 없기에 개념 및 개발만 착수했다.
사실 처음에는 자동소총을 생각했다. 구조 간단하기로 소문난 미래 AK소총이나 이미 각국에서 상용화된 기관총을 생각하면 쉬울 거라 생각했다.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
가장 내가 먼저 돈을 풀어서 프랑스 최대 군수업체인 호치키스에 문의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이거였다.
‘소총탄을 버틸 수 있는 소형 기관총은 제작 불가’
호치키스 외에도 여러 업체들에게서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들에게 나의 요구는 ‘기관총을 5분의 1 사이즈로 만들어주세요. 아, 연사력은 그대로요!’로 들린 거다.
작년에 이 답변을 듣는 데에만 3개월이 걸렸었고, 전쟁이 점점 가까워지자 어쩔 수 없이 소총을 포기해야 했다.
그럼 남은 화력 무기는 하나.
바로 기관단총.
사거리, 포기.
정확도, 포기.
탄 효율, 포기.
그 외 안정성이나 탄 위력 등 전부 포기했다.
대신 딱 하나를 선택했는데 바로 압도적인 연사력에서 나오는 화력이다.
“소총탄이 아니라 권총탄이니 무기에 무리도 안 가지.”
그럼 된 거다.
원 역사에서도 프랑스는 1차대전 도중에 기관단총을 개발한다. 다만 전선 보급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난 그들에게 시제품 제작 및 소량 생산을 요구했다.
돈이 무지막지하게 들지만 뭐 그 정도는 충분히 예상한 바다.
내가 되려 놀란 점은 이런 혁신적인 무기가 개발되는 와중에도 조용하단 거다.
하다못해 신무기 소식이 퍼진다거나, 아니면 누군가 나를 불러서 뭐라 한다든가. 아무튼 소문이라도 퍼질 줄 알았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
“뭐, 나야 좋지.”
괜히 소문 퍼져서 이상한 이 이상 주위 사람들한테 눈총받긴 싫다고.
페탱 믿고 나대는 것도 한두 번이지, 부대 주력 무기까지 마음대로 바꾸려는 중위? 바로 군사재판감이다.
지금도 나를 향한 눈초리는 좋게 말해도 호의적이지 않다. 아마 다들 ‘대령님 은퇴만 하면!이라며 날 잡고 있겠지만 미안한데 연대장님도 집 못 가.
무엇보다 휴가로 얻어낸, 가장 중요한 마지막은… 프레드릭의 도움으로 세운 회사다.
거창하게 회사라고 하지만 사실상 나의 전후 포근한 여생을 위한 소소한 투자사랄까.
“괜히 공장 같은 거 이 시대에 세워봐. 파업이니 관리니 어후 끔찍하다.”
포근한 여생과는 좀 동떨어진 단어들 아닌가.
심지어 몇 년 뒤엔 마더 러시아가 오랜 고뇌 끝에 성전환 수술을 거쳐 파더 소비에트로 거듭날 시기.
돈 좀 가진 자본가로서 평안히 은퇴하려면 더더욱 멀리해야 하는 게 생산 시설이나 노동자와 같은 단어들이다.
그저 전생의 내가 그랬듯이 하면 된다.
“베르게르 모헬은 개미야. 개미 주주는 아무것도 몰라. 그냥 주식만 들고 있을래. 아무 책임도 없이 그냥 배당만 받을래.”
그렇게 모헬 가문의 이름을 딴 모헬 회사(Morel compagnie)를 세웠다. 당연히 아직 회사만 세워놨다.
이리저리 지난 며칠을 머릿속에서 정리해보니 어느새 파리가 가까워졌다.
“뭐야 벌써?”
왠지는 모르겠는데, 꼭 휴가 복귀는 얼마 안 걸리는 거 같다.
역시 곧 발표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맞긴 하나 보다.
시간은 확실히 다르게 흐른다.
적어도 내 경험상 그렇다.
***
내가 그토록 씹어대는 제17 계획. 이 계획은 실시간으로 완성되고 있는 중이다.
현 육군 중추 조제프 조르프 장군이 필두로 제17 계획이 완성되고 있지만 여전히 이에 의문을 품는 이는 많았다.
당장 조프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페르디낭 포슈 소장도 이미 벨기에 침공을 예상하고 있다.
샤를 란레작 소장은 대놓고 여러 차례 제17 계획의 필요성을 부정하며 항의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현 프랑스 육군이 세우는 계획의 결정권자는 조제프 조르프 참모본부장.
이 양반의 의지는 프랑스 콧대마냥 너무나 확고하였고 차마 이를 위에서 찍어눌러서 아래로 틀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조제프 조프르 장군은 전두엽 주름에 ‘알자스-로렌’이라도 적혀 있는 건지 처음부터 다른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런 그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화나 잘되게 씹어대는 것뿐이다.
“계획이 다 세워져야만 알 수 있겠습니까? 그냥 처음부터 잘못된 목표를 설정했으면 더 볼 것도 없지요.”
“하하, 이 친구 휴가 갔다 오더니 말하는 게 뒤가 없구먼.”
“이전의 14계획, 16계획에 마냥 찬성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전략적으로 아무런 의미 없는 공격지상주의가 싫을 뿐입니다. ”
“그렇지. 나 또한 화력을 우선시하지만 그게 마냥 보병의 공격으로 이어진단 소리는 아니니까.”
양손에 보이지 않는 딸랑이 들고 열심히 흔들며 페탱 맞춤용 까꿍을 하고 있는 나.
때론 이래야 하나 싶긴 하지만 놀랍게도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연대장님께 잘 통한다.
그러니까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면, 전말은 이렇다.
나는 여태껏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마음껏 활개 쳐왔다. 그것이 훈련이 되었든, 부대 통솔이나 교육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다행히 프랑스는 특이하게도 중대장이 휘하 지휘관들에게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기에 더욱 내 뜻대로 되었고.
그럼 반대로 페탱은 왜 나를 돕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지금의 이 상황 때문이다.
“그렇군. 그리 말하는 걸 보니 포슈 장군의 전쟁의 원칙(Des Principes de la Guerre:1903)도 읽어 봤겠지?”
“내용은 알고 있습니다.”
“그 책을 보면서 난 포슈 장군님의 제17 계획이 공세만이 유일한 방법이라 말하는 것과는 조금 궤를 달리한다 생각했네.”
“그렇지요. 공세유일주의와는 다르겠으나 결과만 보자면, 다를 게 뭐겠습니까. 병사가 어디에 총을 맞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살았느냐 죽었느냐. 그래야 부상자인지 사망자인지 구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가. 흐음…”
연대장이 일개 소위에게 보인 관심은 그 속이 뭐였든 간에 근본적으로 내가 보인 군사적 식견 때문이다.
흥미에서 호의로. 호의에서 호감으로. 차근차근 그와 나 사이의 새끼줄을 꼬아가고 있지만 대놓고 말해 난 지금 페탱에게 아무런 이득을 가져다줄 수 없다.
적어도 내가 뇌물이라도 받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
“거 참. 자네는 특이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
바로 내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서 그가 가려워하는 부분을 살살 긁어주는 것.
“내가 아무 위관급 장교를 붙잡고 공세에 관한 질문은 하면 백이면 백 다 답은 같네. 모두 공격이 최고다, 공세가 해결책이다 뭐다 하면서 용기를 뽐내지. 마치 용기, 애국, 능력이 하나로 묶인 것처럼”
“그렇습니까.”
“아니, 직설적으로 말하겠네. 과연 이 현 프랑스 육군에서 공격하면 안 된다고 당당히 말하는 자가 자네 말고 누가 있겠나?”
“연대장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허허, 나도 자네만큼은 아냐.”
그래, 솔직히 까고 말한다.
지금 페탱 얼굴에 금칠하면서 하하호호 염병 떠는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절대 주위에 좋게 보일 상황은 아님은 알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뭐든 못 할까.
“크흠, 대령님 제가 이번에 그 부대에…”
“아, 에르튀르 부관이 이미 말했네. 그 뭐냐. 부대에 몇 가지 물품을 반입하고 싶다고.”
“그렇습니다.”
“또 병사들이 쓰는 건가?”
“아닙니다! 그냥 몇 명 병사들이 조금 쓴 것일 뿐입니다.”
“쯧,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적당히 하게 적당히.”
“감사합니다.”
그리하여 또 한 번의 약진 앞으로를 성공하였다. 이렇게 한 발짝씩 나가는 거지.
‘언제까지 이럴 순 없지만.’
이리 하나둘씩 얻는 것도 한두 번이지, 슬슬 밑천 털릴까 봐 무섭다.
언제나 페탱은 나에게 근거에 기반한 설명을 요구하는데 이 시대의 사상과 사건이 마냥 논리적이지 않아서 말이지.
페탱과 나의 대화가 한창 이어지고 있을 즈음, 우리의 대화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함께 겨우 휴식할 수 있었다.
똑. 똑.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게.”
에르튀르 중위는 정중하게 문을 열며 옆의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몸을 비켰다.
들어온 이는 순해 보이는 인상과 정갈한 수염이 눈에 띄었다. 일 잘하는 누렁이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딱 저럴 것 같은 느낌이다.
“아, 왔구먼. 어서 오게.”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우리도 이제 막 대화에 열을 올리던 참이야.”
이건 뭔 소리야. 오늘 분량 다 채웠으니 슬슬 일어나려던 참인데.
그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마치 회포를 나누듯 했다.
“58 보병대대 시찰은 어땠나.”
“벨기에 국경이 뭐 그렇지만 역시 조용하더군요.”
“국경인데도 평화로운 곳이지.”
그리 말하는 페탱의 말은 씁쓸함이 묻어 있었다. 이에 새로운 중년인은 더는 말하지 않았지만, 동의나 다름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비슷한 분위기가 흐르길 잠시.
페탱은 다시 활기찬 목소리로 나를 소개했다.
“이 친구가 자네가 한번 만나보고 싶다던 사람이네.”
“아, 그렇군요.”
누구지. 마흔 살은 넘긴 거 같고 타부대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나를 찾는다는 소리라면 딱히 좋은 소식으로 찾아왔을 린 없을 텐데.
‘나에 관한 소문이라면… 어디 보자.’
군 기강 문란.
보고 체계 위반.
불순한 사상.
패배주의적 사고.
그리고 아첨하는 인간.
음, 그만 생각해보자.
“자자, 시간이 많이 없으니 어서 이야기하게. 자네도 복귀하는 길에 들린 거 아닌가?”
“아, 그렇습니다.”
상황 파악에 들어가려 하지만 페탱은 시간이 없다며 그럴 틈을 안 줬다.
“베르게르 중위님이 쓰신 보고서를 읽어 봤습니다.”
“예?”
“아, 말을 안 해줬구먼. 자네가 쓴 내용들 내가 몇 가지 종합해서 에콜 밀리테크니크에 보냈었어.”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에콜 폴리테크니크 안 간다고 말한 지가 언젠데. 아니 그리고 밀리테크니크?
“에콜 밀리테크니크라면… 파리에 있는 지휘참모학교 아닙니까?”
“내 생시르 동기가 학교장으로 있는 곳이지. 아무래도 거기가 교육장인과 동시에 연구장 아닌가.”
그러니까 쉽게 이해하자면. 페탱을 향한 내 구애의 코사크 댄스를 영상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단 소리 아닌가.
그럼 눈앞의 이 양반은 그걸 보고 복귀하다가 들린 거고.
“하, 하하.”
“음? 혹시 무슨 문제 있나 베르게르 중위?”
“하하, 아닙니다! 있을 리가 있습니까.”
“그렇지? 난 또 혹시나 했네. 허허.”
웃는 목소리는 둘이나 진심은 하나로구나. 암, 그러나 계급 앞에선 웃어야지.
그간 봐온 페탱은 그리 눈치 없을 린 없고. 마지막 계급까지 붙여서 말하는 걸로 보아선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방금의 대화를 짧게 두 줄로 해석하면 이렇다.
‘중위, 손님 앞이니 웃어라.’
‘옙.’
젠장, 서러워서 살겠나. 아무리 계급이 깡패라지만 존중 따윈 없는 거냐고.
그러나 건너편에 앉은 페탱의 입가에 맺힌 희미한 미소를 보아서 그런 걸 기대하긴 글렀음을 느꼈다.
이 양반은 별 여러 개 단 장군들도 피한다는 장포대. 군대에서 가장 뒤가 없는 양반이다. 그런 이에게 아랫사람에 대한 존중? 오늘 아침과 함께 소화되어 저 하수구로 흘려보냈겠지.
“혹시 이 만남이 불편하신 건지…”
옆에서 듣고 있던 손님은 조용히 의견을 피력했다.
“그럴 리가. 그건 그렇고 베르게르 중위, 자네가 몇 달 전 기병대에 대해서 했던 말 기억나나?”
“그렇습니다. 지는 해라고 했지요.”
“그랬지. 한 기병의 가치는 기관총 탄띠 한 뼘도 안 된다고 했지.”
“아니 뭐 그렇게까지….”
“허례허식에 가득 차 편제와 예산만 잡아먹으면서 쓸모도 없다고.”
“그, 그렇게까지 말했었습니까?”
그랬나? 그냥 전장에 적합하지 않은 병과라 한 게 전부 아니었나.
“연대장님, 죄송합니다만 잠시 이분 소개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미안하네.”
이대로 있다간 페탱에게 자꾸 휩쓸릴 거 같아서 난 급히 손님에게로 관심을 돌렸다.
“소개하지. 이분은 참모본부 쪽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막심 베이강(Maxime Waygand) 중령님이시네.”
“다시 한번 인사드립니다. 부디 계급을 넘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아?
누구라고요?
상대의 신상정보를 기억 속에서 뒤지기 전에, 난 중령이란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중위 베르게르 모헬입니다!”
“하하, 편히 앉으시길 바랍니다.”
막심? 맥심? 발음이 거의 비슷한데.
맥심 기관총.
맥심 커피.
‘그’ 잡지.
또 뭐가 있…
‘아-’
기억났다.
난 그에 대해 떠올리자마자 절로 페탱을 굳은 표정으로 진지하게 쳐다봤다.
그러나 페탱의 얼굴은 전과 같은 희미한 미소가 아닌 참을 수 없는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마치 톡 건드리면 폭소가 터져 나올 거 같은 표정이었다.
그제서야 몇 분 전부터 이상한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막심 베이강 중령.
그는 골격부터 말뼈로 이뤄진 근본 기병 출신.
그런 그가, 편집자 페탱에 의해 부분 절취 및 각색된 내용을 내 의견이라 받아들이고 찾아온 거다. 심한 모욕감과 함께.
이건 대화가 아니다. 토론은 더더욱 아니다.
여기는 페탱이 주최하는 결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