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레몽 드 라 로크(Raymond de La Rocque). 프랑스 공화국 육군 소령으로 벨기에 전선에서 복무하다 포탄 맞고 과다출혈로 사망.
“북부군 소속 대대장인지도 몰랐습니다….”
“아버지께서 알리지 말라고 하셨거든. 스스로도 알리고 싶지 않아했고.”
“그래도 만날 기회가 없진 않았을 터인데.”
비록 내 최근에는 참모 쪽에서 지냈다만 샤를로트의 가족 얼굴 한번 못 볼 정도는 아니다.
그녀의 가족을 결혼식장에 초대도 못 했거늘 이리 인사도 한 번 못 하고 보내니 마음이 불편했다.
“샤를로트도 파리로 올라오고 있다더군. 아버지는… 북해 해안을 비우실 생각이 없다네.”
“전시니까 어쩔 수 없으실 겁니다.”
포슈 장군도 2년의 시간이 흘러서야 장례를 치렀는데 일개 소령의 죽음이라고 다를까.
되려 이 시대는 화려하게 장례를 치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대다.
누구 하나 지인 안 죽은 사람이 없다만 시체라도 건진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니.
보통 시체가 생겨도 후방까지 보내주지 않으니까. 아마 대대를 지휘하던 지휘관이니까 해준 일이겠지.
장례는 이틀 뒤이니 꼭 참석해달라고 말한 프랑수아 형님은 다행히 별다른 징조를 보이지 않으셨다.
아직은 30대의 젊은 나이여서일까, 파시스트적인 면모도 여전히 적었고 반국가적인 사상도 대화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 착각이었나?’
마치 현실에 분노한 민중처럼 처음 대면했던 프랑수아는 어디로 고통을 해소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조금이라도 싹이 노란 모습을 보였다면 난 가차 없이 잘라냈을 거다.
나와 내 가족의 안식을 위협한다면, 그건 설령 프랑수아라도 용납할 수 없다.
내가 왜 지금 전쟁터를 전전하고 다니는 건데.
내가 수없이 목숨 걸고 독일놈들을 대면하는 이유가 뭔데.
다 그 끝에서 나를 기다릴 안식을 맛보기 위함 아닌가. 그러니, 방해받아선 안 된다.
‘과한 걱정이었나.’
장례식 당일까지 프랑수아로부터 별다른 접촉은 없었다. 형의 죽음을 완전히 받아들이진 못했으나 전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군인으로 알아서 이해한 건 아닐까 싶었다.
모두가 그러했듯, 친인척과 몇몇 지인이 전부인 단출한 장례식.
우습게도 난 장례식장에서 내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샤를로트.”
“…. 죽어. 그냥 죽어, 베르게르 씨. 과부의 삶은 익숙하니까.”
“진짜 미안해.”
“이해하는 착한 아내가 되고 싶은데, 아들이 생기니까 그게 안 되더라. 진짜 지금도 한 대 치고 싶어.”
“그렇게 해서 네 기분이 풀릴- 끄억!”
복부의 고통에 독일군 앞에서도 굽혀본 적 없는 허리가 절로 숙여진다.
“우욱…. 방금 뭐야.”
“때리라며.”
“말도 안 끝났잖아.”
아니, 보통 숙녀들은 눈물 뚝뚝 흘리며 해봤자 뺨 한 대 아니야? 도대체 누가 니킥을 남편 복부에 꽂아버리는데.
기세를 보니 더 맞을까 봐 반가운 마음속 두려움이 조금씩 싹 튼다.
짧은 해우를 뒤로하고 우린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엄숙함을 지켰다.
나야 솔직히 막 눈물 흘릴 정도로 슬픈 마음은 전혀 없다만 샤를로트는 아니었나 보다.
늦둥이 동생이어서 그럴까, 내 앞에서는 당당하던 그녀도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파리 외각의 공원 묘지에 레몽 드라로크를 보내준 뒤, 근 1년 만에 다시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나를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드디어 품에 들어왔다.
“내 아들이네.”
“그래서 이름이 뭔데. 확 로크(Rocque) 성을 붙여버릴 뻔했다고.”
“가스파르, 가스파르 리 모헬. 보물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의미야.”
작명소도 없고 이름 오컬트도 없는 프랑스기에 결국 난 대세를 따르기로 했다. 나떵이나, 가스통 같은 이름은 본능적으로 영혼에서부터 거부감이 들더라고.
“어? 미들 네임도 같이 지어주는 거야?”
“리. 아이의 미들 네임은 무조건 리야.”
“…. 특이하네. 근데 무슨 보물을 가지고 태어난 건데?”
“은…”
“은?”
“은총. 은총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진실을 대답하고 있느냐고 묻는 표정이지만 난 당당하다. 난 자식한테 태어날 때부터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다 손에 쥐여 줬다.
“나 한 대만 더 때려도 돼?”
“갑자기 왜!”
“고작 그 이름 듣자고 내가 1년을 기다렸다고 생각하니까 화나서. 딱 한 대만.”
“아이가 보고 있어요, 모헬 부인. 몸과 마음을 조심하시죠.”
“아예 안 나타난 아버지보다 낫지 않나요?”
“……”
할 말이 없다. 그래도 나름 전쟁 영웅인데. 내가 집안에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솔직히, 남편이 이 정도 했으면 아내는 집에서 퇴근 시간 맞춰서 따순 밥이나 해서 입에 넣어줄 것이지! 내가 살던 나라의 20세기라 하면 모름지기 남녀겸상은 천인공노할-
“끄어억….”
“하여간, 또 이상한 생각하고 있었지?”
“…. 억울하다.”
“억울하면 모헬 대령님도 똑같이 하시던가요?”
“에휴, 아닙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됐다. 원래 지는 게 이기는 거지.
그보다 똘망똘망하게 날 바라보는 아이의 눈이 너무나 신비롭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죄책감 비스무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샤를로트의 유전인가.
사람의 가치가 쇳조각 몇 개만도 못한 곳에서 살다가 새로운 생명을 보니 뭐라 못 할 감동과 괴리가 느껴진다.
정말 인간의 가치가 역사 이래 이렇게 땅에 떨어지다 못해 참호 속으로 처박힌 적이 있었나 싶다.
“모헬 부인. 내가 이거 만들었다?”
“또 이상한 소리 하네.”
“아부부.”
“볼 빵빵한데 말하는 거 봐. 나 사실 아이 만드는 데 재능 있나 봐! 이렇게 귀여운 걸 내가 만들었어!”
“부끄럽게 무슨 소리야! 좀 앉아!”
“심지어 천재야! 방금 아빠라고 했어!”
“아 쫌!”
진짠데. 아빠를 처음 보자마자 알아보고 말한다? 누가 봐도 천재 아니야?
아이를 내 품에 안자 아이가 거부하지도 않는 게 친화력도 좋다.
“손도 크네.”
“조심해. 요즘 아무거나 막 쥐어뜯더라.”
막 날 더듬기 시작하는 아기. 이내 한 물건에 관심을 보이더니 막 쥐려고 한다.
“에헤이! 지지에요, 지지. 그거 손대는 거 아니에요!”
“…. 훈장이 나쁜 거야?”
“손대면 안 돼요. 이거 아빠가 사람 많이 죽여서 받은 아주 나쁜-끄아악!”
바로 주먹이 날라오다니. 놀라서 말도 못 하고 샤를로트를 쳐다보니 되려 나한테 화를 낸다.
“이리 내놔!”
이게 진정 남존여비 20세기 맞냐. 아무리 여성이 노동하고 투표하는 시대라지만 무언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아이를 뺏다니…”
“전쟁터 가면 사람이 미친다더니 진짜 왜 이래?”
“난 원래 이랬는데. 나 좋다고 한 건 자기면서….”
결혼하면 달라진다더니 역시 세상에 영원한 건 없고 믿을 건 더더욱 없다.
“아부부, 아부부!”
“아이야, 너희 어머니께서 이산가족을 원하시니 내 어찌할 도리가 없단다.”
내게 오려고 손을 뻗지만 몸은 샤를로트한테 딱 붙어서 오지도 못하는 가스파르.
나도 최후의 수단을 쓰겠다. 바로 동서양 통틀어 오컬트의 끝판왕.
“이거 보세요! 무려 100만 독일인의 피가 묻은 훈장이 무려 아빠 손에!”
“베르게르!”
어머니의 언성이 높아지니 아이가 불안해할 줄 알았으나.
“우아아. 아부아!”
“역시, 내 아들이군.”
아아, 이게 훈장 최면술이라는 거다. 프랑스의 아들이라면 절대 헤어나올 수 없는 술법이지.
끝내 나한테 향하는 가스파르의 손짓에 샤를로트의 표정에서 약간의 배신감이 엿보인다.
“훗.”
나의 승리다.
***
감히 프랑스 최고 전쟁 영웅을 상대로 ‘경쟁’을 하려 한 샤를로트를 가볍게 이겨준 뒤, 난 페탱의 부름에 끌려갔다.
지난 2주간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보낸 시간을 보고하는 순간.
총사령관님이 내게 요구한 바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지만 사실 난 ‘러시아가 망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에 치중해왔다.
왜냐면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거든.
“돌고 돌아 미국이군. 자네 미국 돈이라도 먹었나? 아니지. 미국한테 돈이라도 먹였나?”
다만 아직 1916년 6월. 총사령관님이 보기에 러시아가 망하지도, 미국이 참전하지도 않을 것 같나 보다.
그럴지언정 난 나의 답변을 밀고 나갔다.
“선수 교체. 이게 승전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는 잘만 싸우다가 자발적으로 나가고. 나머지 한 놈은 잘만 살다가 자발적으로 싸우러 오고?”
“맞습니다.”
“자네 이거 의회에서 설명할 수 있겠나?”
“절대 못 하죠?”
“근데 왜 내 앞에선 아주 확신에 가득 차 있을까. 근거를 대라고 보냈더니 주장만 더 강해졌군.”
… 이리 나오면 나도 할 말이 없다. 틀린 말도 아닌 게, 만약 누군가 나한테 이리 말했으면 바로 보직해임 시켜버렸을 것 같거든. 집 가서 푹 쉬고 정신병원이나 가보라 했겠지.
“최근 독일의 탈환 시도가 계속되니 러시아군이 움직였네. 듣기로는 남서집단군 사령관 알렉세이 브루실로프가 꽤 잘하고 있다더군.”
“뛰어난 사람입니다. 다중 전선을 유지할 때 나타나는 허점을 잘 간파하는 사람이니까요.”
“평가가 후하군.”
“근데 그 사람 때문에 더 망할 겁니다. 지금 러시아는 자기가 날린 펀치에 손이 깨지는 수준이니까요.”
“증거는.”
“주제파악 못 하는 러시아입니다.”
망할 징조, 가장 큰 게 무엇이 있을까 하니 내 눈에 딱 하나 드러나는 게 있다.
바로 여전히 시행되고 있는 미친 징집.
유지할 능력도, 질을 키울 능력도 없으면서 무지막지하게 양만 늘리고 있다.
“지금 러시아도 이중 전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초창기 독일을 공포에 떨게 한 병력이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후방 병력 빼고 순수 전선 투입한 병력이 군단 35개였지.”
“미친 수준이지요. 근데 지금은요?”
“음, 마지막으로 내 확인했을 때 군단 편제로 60개였나.”
“정확하십니다.”
자, 생각해보자. 저 거대 허수아비 같은 나라가 군단으로 60개를 유지하고 있단다. 참고로 사상자 제외한 수치다.
“대부분의 병기 생산을 외주로 맡기고 그도 모자라 영국, 프랑스, 미국한테서 모든 물자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그런 저들이, 내년에도 군단 60개를 유지할 능력이 있다고 보십니까?”
“자넨 없다고 생각하나 보군.”
솔직히 말한다. 우리 프랑스 입장에서는 러시아가 자기 살 깎아 먹으며 움직여주면 좋다. 우린 러시아군이 죽든 말든 관심 없으니까. 그냥 독일 병사 한 명이라도 더 붙들고 있어 주길 바랄 뿐이다.
근데 누가 봐도. 심지어 독일제국이 봐도 기이할 정도로 무리하는 러시아 아닌가.
참다, 참다가… 그간 곪아온 모든 문제가 펑 터지는 거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내년이 될지 내 후년이 될지. 그도 아니면 먼 미래가 될지 전 모릅니다. 다만 하나는 확실히 압니다.”
“미국의 참전은 무조건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
“예, 제가 생각하는 현 프랑스 1순위 목표입니다.”
나의 결론이다. 러시아 망하는 건 고사하고 미국을 나카마로 들여야 한다.
“음, 잘 알았네.”
“크흠. 저, 그러시면 약속하신 보상은 언제 가능하신지…”
“아아, 당연히 자네 말이 사실인지 확인될 때 해주겠네. 내 그럴 힘 하나 없겠나.”
“쩝, 알겠습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난 만족한다. 그의 말마따나 페탱의 힘이라면 사람 하나 집에 못 보내줄까. 프랑스 군인이라면 전부 그의 손아귀 안에 있는 수준인데 우리 총사령관님이 아니면 누가 날 집에 보내주겠어.
‘러시아가 언제 망하지? 미국의 참전은?’
동맹이 빨리 망하길 바랄 순 없지만 어떻게든 미국의 참전을 하루라도 당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봐야겠다.
빠르면 내년 초. 늦어도 내년 가을.
난 다시 오를레앙으로 돌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