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집에서 날 기다리는 가스파르를 떠올리며 순간적인 충동을 참아내고. 천천히 이 전차 군단을 머릿속에서 해체 분석해봤다.
이전에 내가 이끌던 전차 사단. 편리하게 북부 제1 기갑 사단이라 이름 붙였다만 사실 사단 편제라고 보긴 어려웠다.
여전히 전차가 핵심 편제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나조차도 말이다.
이름으로 정의하자면 참호 돌파용 진지 파괴 지상병기. 어디에도 그들이 전장의 주역이란 이야기는 없다.
너무 느리고.
잘 고장나기에 신뢰성이 떨어지며.
무엇보다 수가 적다.
그렇기에 내가 한 짓은 경보병, 중보병, 전차, 중박격포, 돌격포, 야포. 그리고 그 외 지원 부대들을 한곳에 넣고 마구마구 섞은 다음 ‘아, 이건 전차 사단이다.’라고 정의한 게 전부다.
본디 전차라는 물건이 워낙 손이 많이 가다 보니 영국의 MK 시리즈는 한 대에 편제상 100명이 넘는 인원이 달려든다.
당연히 나처럼 사단 편제를 만들 리가 없지. 그들에게 전차는 참호전 보조 용도니까.
“근데 그건 1915년 초 이야기고.”
그땐 귀염뽀짝 아기자기한 르노, 타면 다시는 부모님을 못 보는 MK 1 ‘Mother‘의 시대였잖아.
일부 전차들의 아무런 장애물도 없는데 스스로 기동을 정지하는 랜덤 기능은 정말 우리 장병들의 생존 능력을 높여줬다. 적진에 아예 다가가질 못했거든.
허나 1916년도 몇 달 안 남은 지금은 다르다.
“전차를 둘로 나눴네. 빠른 기동력을 중시하는 르노. 그리고 좀 더 덩치를 키운 생샤몽. 자네가 쓸데없다 여길지 모르지만 이게 최선이야.”
“아뇨. 좋습니다. 보병도 경보병 중보병 나누는데 전차라고 못 나눌 게 뭡니까.”
25톤의 생샤몽 전차. 앞은 살짝 세워진 체 바닥과 닿는 모든 면을 궤도로 채워 접지력이 생각보다 높다. 이동 속도는 보병 걸어가는 수준으로 영국제 마크 시리즈랑 별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흔히 ’덩치값 한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전차다.
“이거, 혹시 기차 엔진이라도 때려 박은 겁니까?”
“음? 자네 몰랐나? 저거 르노와 다르게 대형 엔진 달았어. 파나르에서 전차용 엔진을 내놓자마자 바로 생샤몽에 달았는데 그게 올해 4월이야.”
“잠깐 4월이요?”
생샤몽, 저거 150대 넘 게 있다며. 그럼 올해에만 저 거대한 놈을 150대 넘게 생산했다고? 내가 아는 프랑스가 이리 생산력이 뛰어났나?
내 의문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슈티른 사령관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네 지금 프랑스가 가장 미쳐있는 게 어떤 건지 아나?”
“전쟁이죠.”
“전쟁이란 테마 안에서.”
“어… 비행기?”
파리에 폭탄 몇 번 떨어지고 나니까 갑자기 우리도 정찰기가 아닌 폭격기 개발에 착수하던데.
솔직히 폭탄 몇 덩이 떨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이게 또 시민들은 다르더라고.
종종 뭐만 하면 파리 함락 어쩌구 하는 기사 뜨는데 딱 파리에 폭탄 떨어진 날이 그랬다니깐.
슈티른 소장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비행기는 갑자기 왜 나오냐고 타박했다.
“전차. 우리 프랑스인들은 전차에 미쳐있다네. 다 자네 덕분이지.”
“제가 왜요?”
“왜냐고? 여태껏 모두가 베이강이 전차를 만든 줄 알았지만 페탱 공세 이후에 확 까버렸잖은가. 전차 자네가 만든 무기라고. 자, 그럼 사람들이 자네의 전공을 무엇과 연결하겠나?”
“아… 그런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이게 한두 푼 들어가는 물건이 아니거든?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갑자기 생산이 많이 되나? 그랬으면 진작 땡깡 부려봤지. 막 전차는 신의 병기다. 이거만 충분히 있으면 베를린 2주가 뭐냐, 1주일 컷이다 떠들어대 봤을 텐데.
“근데 시민들만이 아니라 다 그리 생각한다네. 이 나라 모든 군인들도, 정치인들도.”
“그래봤자 슈티른 소장님과 총사령관님은 현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뭐, 현실은 현실이지. 근데 자네 손에 전차 좀 많이 쥐여 주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
뭐지. 이 무책임함은? 내가 전차라도 쥐여 주면 좋아서 날뛰는 놈인 줄 아나.
정색하며 죽은 눈깔로 쳐다보니 슈티른 소장님이 전에 없던 여유를 선보이며 어깨에 손을 올린다.
“좀 걷지. 자네, 총사령관님한테 가만히만 있으라고 했다며?”
“제가 언제요. 그냥 수비에 치중하자고 했지요.”
“그게 그거지. 우리 프랑스 상황을 뻔히 알면서 그런 말을 하다니. 참, 사람이 변하질 않어.”
불안해. 불안하다. 그 진중한 사람이 혓바닥이 이리 길어지다니, 나의 감이 경종을 울린다.
당장 도망치고 싶은데 슈티른 소장님 전완근에 왜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지.
“생각해보게. 모든 총력을 기울여 무려 500대가 넘는 전차가 자넬 기다리고 있어. 자네의 명령 하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적진을 유린하겠지. 전공? 공세 지점? 지금 고기가 썩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고기 자체를 먹었다는 사실이 우리 프랑스인들에게 포만감을 주는 거라네.”
“썩은 고기 먹으면 탈 납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싫어하는 짓이 의미 없는 공세입니다.”
“좋아. 그럼 오기 전에 자네가 수비적이라고 좋아하는 빅토르 미셸 참모부장님이 내신 의견은 듣고 왔겠군?”
“들었습니다.”
“그래, 나도 들었어. 자네가 오기 전날까지 깽판치다 왔다고.”
슈티른 소장님은 걸음을 멈추고 평소와 달리 길어진 문장들의 종착점을 알렸다.
“자네가 안 움직이면 그 계획이 움직일 거야. 누구도 막을 수 없네. 아니, 안 막겠지. 나도. 자넬 지지하는 그 어느 군관도. 자네가 좋아하는 총사령관님도.”
“이게 양자택일의 문제입니까.”
“아직도 모르겠나? 총사령관이라는 자리 때문에 페탱 중장님이 자네 대신 모든 질타를 받고 있다고. 자네도 수비적이라고 인정한 미셸 장군도 공세 계획을 내왔다네. 이게 정치인가? 아니면 현실 직시인가?”
“그러니까 왜 제가 최악과 차악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겁니까?”
“우리 주제파악 잘 한다는 모헬 대령님이시라면 잘 아리라 믿네. 자네니까 선택지가 있는 거야. 자네나 되니까.”
총사령관이라는 자리에 설령 욕을 먹어도 꿋꿋이 의지를 밀고 나가주길 바라는 마음에 페탱을 누구보다 밀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딱 여기까지가 페탱의 한계인 걸까.
그간 지낸 시간이 있어서인가. 날 너무 잘 안다는 듯 슈티른 소장님은 한마디를 더 붙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배부르면 잠깐은 잠잠해지지 않겠나.”
“이제 정치군인 다 되셨습니다?”
“몰랐나? 군인은 원래 마음대로 못하는 직업이야. 그래도 마음대로 하고 싶으면 정치를 해야지.”
비꼬는 내 말에도 슈티른 소장님은 다시 웃음을 찾으셨다. 아마 내가 움직일 거라는 확신이 선 거겠지.
“하아….”
솔직히, 무슨 평생 살며 지킬 신념 따윈 내 인생에 없다.
다만 뻔히 보이는 미래가 암울하고 답답하니 나서는 것뿐.
“이만 가게. 작전 수립 끝나면 승인받으러 오고.”
우리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이 이상의 이해나 타협이란 단어를 가져다 붙이기엔 주위 환경의 압박이 우리를 가만 놔두질 않나 보다.
슈티른 소장의 단정적이고도 고요한 명령은 참으로 야속하지만 틀린 말 하나 없다.
그와 총사령관님의 선택을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상황을 이해해버렸달까.
“아, 최근 들어 포기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이래서 기대를 하면 안 돼. 기대를.”
그래, 공세. 그거 해야지. 다들 하라니까 해야지.
경제 위기가 코앞인데 저축한 돈 다 쓰라고 하니 어째. 까라면 까는 군인은 연금까지 끌어다 다 써버리는 수밖에.
전차 군단이라. 아마 전에 비하면 사단 세 개 정도 나왔나 보다.
7개월간 모아왔다고? 좋다. 좋아. 사상자가 수백만인데 국가전력을 낭비하는 졸부한테 박수를 쳐줘? 그럼 보여주겠다.
아무짝에도 쓸모도 없고 어차피 나중 가면 다 의미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겠지만 무슨 상관인가.
“헤이그 사령관 아직도 북부에 있나?”
“그럴 겁니다.”
“지금 바로 만나지.”
일단, 같은 졸부 친구부터 만나봐야지. 그래야 낭비하는 돈이 더 클 테니까.
고기를 가져오겠다.
다만 전선의 모든 고기가 썩었으니, 썩은 고기를 가져오겠다.
얼마나 먹고 뒤질지는 모르나 내 책임은 아니다.
***
전쟁 불참 선언으로 대통령이 된 우드로 윌슨. 그럼 미합중국은 절대 참전을 원하지 않느냐 하면 그렇진 않았다.
윌슨과 휴의 투표 차는 고작 3%. 강력한 미합중국,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를 선이라는 개념으로 포장한 휴는 여전히 이 나라의 절반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돈 많은 북부 주들과 공화당은 철저히 휴의 편을 들었다.
고작 물자만 댔는데 돈을 이리 쓸어 담았다면 과연 직접 참전하면 얼마를 벌게 될까.
루시타니아 호가 침몰하고 미국인들이 죽어나가자 강력한 항의를 표했지만 독일제국의 뻔뻔함은 천하의 윌슨조차 숨이 턱하고 막힐 정도였다.
어차피 미합중국이 연합국을 지원하고 있으니 딱히 더 나빠질 게 없다는 태도였다.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행동으로는 여전히 자기 스스로 인정하는 꼴의 연속.
몇 달 전 7월. 뉴저지주의 저지시티에 있던 탄약고가 터지고 7명이 사망했다는 보고들 들었을 때는 혹시나 판세가 뒤집히나 싶었다.
그때도 증거불충분으로 독일제국은 발뺌했지만 호구가 아닌 이상 알 수밖에 없는 일이다. 독일의 사보타주가 본토까지 손을 뻗쳤다는 것을.
블랙 톰 폭발(The Black Tom Explosion). 자유의 여신상까지 파손하고 블랙 톰 섬은 폐허가 되어버렸으며 이 모든 모습을 뉴욕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관람했다.
마치 자유가 불타는 것 같은 광경. 전쟁을 미국인들이 처음으로 실감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뉴욕주의 정치색은 매우 확고하여 다행히 사건의 여파는 미국 전역으로 번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전쟁 기운. 고작 3%.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이 3% 차이로 전쟁을 막고 있다.
컵에 물이 가득 찼지만 3% 더 강한 장력이 흘러넘치는 것을 막고 있는 꼴이다.
그리고 1916년 12월. 미국조차 잠자던 프랑스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신문으로 내보내고 있을 때.
미합중국의 고마운 호ㄱ… 아니 고객이 어느 날 백악관을 방문했다. 손에 암호문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이 편지는 대영제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1년에….]“뭔가 이게.”
“각하, 얼마 전 저희가 입수한 암호문입니다. 이 자리에서 해석해드리겠습니다.”
“무언가 내용이-”
“그러니까 암호입니다.”
해석한 전보 내용은 이러했다.
[극비.12월 1일부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모든 바다에서 개시할 예정….]
재선에 성공한 지 몇 주나 지났다고 독일은 이런 짓을 한 거지. 분명 자신이 불개입 선언을 한 사실을 모르는 건가.
“멕시코를 끌어들여 우리를 막고. 일본은 유럽에서 떨어트리고. 대영제국은 몇 달 안에 평화 협정서에 서명한다?”
“저희는 서명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최고 전쟁 위원회는 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베르게르 모헬 대령이 다시 움직였습니다.”
“내 눈에도 그리 보이더군.”
지금 프랑스가 항복한다라. 아무리 서부 전선에서 떨어진 제3자의 미국이라도 모를 수가 없다.
프랑스는 그 어느 때보다 전쟁 의지가 충만하다. 이제 그들은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온갖 신무기를 쏟아내고 무엇보다 반민주적일지언정 군사적으로 매우 안정된 상태.
완벽히 전쟁을 위한 국가가 되어버렸다.
그런 프랑스와 대영제국이 평화 조약? 미국이 보기에 1년 안에 독일은 끝장이다. 자원 식량은 둘째 치더라도 병력이 없다. 저들은 이중 전선을 넘어서는 삼중 전선을 열어버렸으니까.
아무리 수백만을 징집해도 베르됭 전투에서 완벽히 한계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이 사실은 나 혼자 판단하긴 어렵겠소.”
군과 의회에 알려봐야 시끌벅적해지겠지만 다행이라면, 이미 선거는 끝났다는 것.
그리고 먼저 미합중국을 건드린 것은 독일제국이라는 것.
즉, 자신의 반향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윌슨 대통령은 여전히 참전에 회의적인 입장임은 변함없었다.
‘굳이 우리가 참전할 이유가 있는가. 이미 전례 없는 호황을 맞이했거늘. 여기서 참전해봐야 피로 명예와 국제 지위를 사는 일밖에 안 될 터인데.’
또한 이 전보 자체가 조작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대영제국은 이미 그의 임기 동안 여러 차례 참전을 제안해 왔으니까.
그런 윌슨 대통령의 고뇌를 걱정한 것일까, 처음에는 잡아떼던 독일제국의 외무장관 아르투만 치머만은 윌슨의 고민을 끝내줬다.
코드북으로 암호 해독이 가능함을 영국이 밝히지 않아도 스스로 입을 열어준 치머만.
뒤늦게 ‘이는 미국이 참전할 경우만 해당’ 발언으로 더욱 확실히 인정해준 치머만.
끝내 독일계 미국인들도 독일제국 외무장관의 발언을 인정하며 독일제국에 등을 돌리게 만든 치머만.
그런 치머만 덕에 고민을 덜게 된 윌슨은 기자회견을 열어 입을 열었다.
“정의가 평화보다 소중합니다.”
노력 끝에 타대륙 대통령 입에서 ‘승리 없는 평화’라는 연설까지 꺼내게 만든 치머만.
역사에 둘이 존재하면 안 되는 외교 방법을 만든 치머만.
슐리펜 작전 당시의 리차드 헨츄(Richard Henstch) 중령이 음지의 투사였다면 그는 당당한 양지의 투사였다.
미합중국이 참전을 외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