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벨기에 왕국.
이웃한 프랑스와 독일 두 나라 모두를 경계하여 1870년 대영제국의 손을 잡은 채 버텨오던 국가.
슐리펜 계획에 두 달도 안 되어 무너져버린 벨기에 왕국은 프랑스 누보 포르도로 내각과 왕실을 이전했다.
14, 15년에는 알베르 1세가 몇 번 연설한 것을 제외하면 존재감 자체가 없었고 그나마 벨기에 전선이 생겨나 연합군의 일부로 벨기에군이 정식으로 편입되었다.
그 이후로 왕실과 내각의 역할은 오직 하나. 벨기에군 조직과 참전에 손을 보태고 주구장창 벨기에 해방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1917년 9월, 드디어 왕실과 잃어버린 국가를 되찾았다.
벨기에 국경에 몰린 독일군을 생각하면 여전히 밀릴 위험성이 있긴 했지만 레오폴드 3세는 즉각 브뤼셀로 복귀를 천명했다.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망한 줄 알았던 나라가 다시 생겨났다,
해방된 수천만 벨기에 국민들은 수도에 입성하는 군주에 환호했다.
알베르 1세가 망국의 군주에서 승전국의 주연으로 받는 순간.
난 오랜만에 브뤼셀로 돌아와 제2의 건국 선포에 가까운 이번 정치 행사에 강제로 참여해야 했다.
본디 대표로는 우리 내각 측에서 사람이 왔지만 벨기에 측에서 나를 콕 집어 지명했다 하니 어째, 내가 가야지.
대신이랄까, 그리 반갑지 않은 행사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포슈 장군님이랑 야전에서 빠지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그분 날개 밑이 진짜 진급 명당인데.”
“내가 그럴 짬인가. 소장 진급 따놨으면 그만 둥지를 떠나야지. 그리고 누가 들으면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하는 줄 알겠군.”
나와 페탱급으로 잘 배합된 베이강-포슈 콤비가 이리 막을 내릴 줄은 나도 몰랐지. 참으로 든든했는데 살짝 아쉽긴 하다.
그럼 혹시나 군단장급으로 들어오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베이강 대령님한테는 조금 작은 전차 사단 쪽으로 가기도 애매했다.
그리하여 우리 베이강의 다음 보직은 역시나 순혈 참모를 달려오신 분답게 벨기에 공세를 책임지는 총사령부 참모차장이었다. 현 총참 권력 순위 탑5 안에 드는 보직이다.
윗분들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몰라도 수많은 장군들을 제치고 차지한 걸 보면 확실히 밀어주는 힘이 있나 보다.
근데 밀어주는 힘이 있는 건 있는 거고.
“거 본인도 이쪽으로 오길 희망하신 것 같던데. 그냥 중앙 전선에 가만히만 있어도 되지 않았습니까?”
“후우… 그랬지. 근데 여기도 한번 와보고 싶었네.”
탁 끊기는 대답이 왜인지 더 긴 스토리가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브뤼셀 수도는 복구조차 못 했거늘 퍼레이드 수준으로 치러지는 행렬은 정말 각박한 현실 속 희망을 표현하는 현대 미술처럼 느껴졌다.
왜 하는지를 모르겠단 의미다.
그런 행진을 사연 깊은 모습으로 바라보는 베이강을 보니 더욱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할말 있음 탁 터놓고 해보십쇼. 내 그간 받은 도움이 있는데 어디 도움 하나 못 줄까.”
“티 나나?”
“엄청. 같은 대령이라 그런가? 막 사람 속이 훤히 보이네요?”
“푸흐흐, 역시 자네는 속이기가 힘들어.”
애초에 내가 자기가 온몸으로 감정을 뿜어내고 있으면서 뭐래. ‘물어봐주세요!’라고 말만 안 했을 뿐 그냥 넘어갔으면 분명 삐졌을 거다.
“저기 앞에서 말 타고 손 흔드는 남자 말이네.”
“누구 말씀이십니까. 알베르 1세요?”
“어, 저 사람이 내 사촌야.”
“예? 그러면 알베르 1세가 레오폴드 2세의 조카니까… 그, 아버지가? ”
잠깐, 잠깐잠깐. 난 그냥 소소한 전쟁 속 회의감 같은 거 털어놓으라 했지, 역사에 감춰진 희대의 진실을 꺼내라 한 적이 없는데?
그러나 물꼬를 튼 베이강은 자꾸만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을 내게 말했다.
“나도 너무 어려서 기억은 희미한데, 나 버려졌거든. 정확히는 입양되었지. 양어머니는 불임이었는데 마침 우연히 날 입양하셨데.”
“그럼 친부를 어떻게 압니까.”
“돌아가시기 전에 알려주시더군.”
“그걸 믿습니까?”
유전자 검사도 없는 세상에서 고작 죽기 전 남긴 말만 믿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그다음 날 키운 게 아버지셨어.”
“그 돈 많은 자본가시라고…”
“금융인. 다비 코헨 드 레옹이라고 신문에도 자주 나왔지. 근데 그거 아나? 우리 아버지가 레오폴드 2세 친구였어.”
쓰읍, 약간 의심은 할 만하네. 갑자기 옆나라 왕의 친구가 입양을 택하다니. 그것도 하필 그 많은 고아들 중에 막심 베이강을?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버지도 전대 국왕이 죽으니 말씀해주시더군. 내가 왕의 사생아였다고.”
“허허, 그거 증명할 수 있습니까?”
“글쎄, 내게는 왕궁에서 일하던 사람들 이름을 알려주시며 그들은 내 존재를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긴 했는데 딱히 찾아가 보진 않았어.”
“와, 저 방금 소름 돋았습니다.”
예전에 전차 만들 때 내가 베이강한테 이거 여간 비싼 거 아니라고 아빠 돈 믿고 괜히 손대지 말라고 한 적이 있는데…. 설마 그때 믿는다는 아빠가 이 아빠였어?
“혹시 불쌍한 동료를 위해 자선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하하, 난 친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게 단 하나도 없어, 자본가 양반.”
으음, 아니 생각해보면 있는 거 같은데. 레오폴드 2세 업적 중 하나가 콩고 인구수 줄인 건데… 지금이야 정상인처럼 대화하지만, 종종 타락한 베이강의 모습은 확실히 그가 레오폴드 2세의 아들임을 증명한다.
“그래서, 뭐가 그리 불만입니까. 설마 그 나이 먹고 왕놀이라도 하고 싶어졌습니까?”
“설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복잡하네. 본적도 없는 아버지에 대한 뒤늦은 원망. 기억도 없는 내 친모. 진실이란 게 때론 모르는 게 나을 때도 있더군.”
그저 씁쓸한 미소로 답하는 그가 왜인지 거죽만 내가 아는 베이강 대령님 같다.
어느새 행렬은 브뤼셀 궁전 앞까지 도착했다. 우리도 여기서 떠들 게 아니라 가서 자리 채워야 할 시간이란 말씀.
“대령님, 말해봐요. 나한테 깽판 쳐달라고 말만 하면 해주겠습니다.”
“필요 없네.”
“아니요? 딱 봐도 이번 기회 아니면 죽을 때까지 그 상태로 살 거 같거든요. 빨리 말해봐요. 어떻게 해드려? 확 저 자리에서 벨기에는 프랑스 속국 선언 해줘요?”
“그럼 자네 모가지를 총사령관님이 따러 올 텐데?”
“그땐 미국으로 이민 가야지요.”
사실 현실성 있는 계획은 아니고 그냥 기분이나 풀어주려고 뱉은 말이다.
나나 그나 경거망동할 위치도 아니거니와 서로 함부로 행동했다간 다칠 사람이 너무 많거든.
그래도 그간 든든히 내 뒤를 지켜준 게 고마워서라도 무언가 해주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다.
그만큼 순수한 관계를 맺은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럼 말이야. 그저 하는 말인데 난 그냥 내 친부가 역사에 비전가이자 선구자로 기록되는 게 싫네. 콩고인 절반을 넘게 학살한 역겨운 인간이 내 친부라 드러나는 것은 더더욱 싫고.”
“그래서 내가 나서줘라? 좀만 더 정확히.”
“레오폴드 2세. 비록 죽은 인간이지만 적어도 명예로운 죽음으로 남지 않았으면 하네.”
“오케이, 접수 완료.”
나와 베이강은 어느새 도심 건물을 내려와 브뤼셀 왕궁으로 곧게 뻗어 있는 주도로 위를 걷기 시작했다.
본디 스포트라이트는 전부 알베르 1세한테 몰아주고 왕궁 내부에서 치러지는 공식 행사만 참여할 생각이었는데, 방금 바뀌었다.
죽은 사람 명예에 먹 좀 칠해달라, 그 정도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지.
“어? 베르게르 모헬이다!”
“옆에 있는 사람 나 신문에서 봤어! 막심 베이강이야!”
“우와아아!”
“조국을 해방한 악마다!”
지금 난 벨기에 한정으로 언터쳐블, 완전무결한 인기를 구사했거든. 어쩌면 프랑스보다 훨씬 더.
레오폴드 3세가 그러했던 것처럼 난 손을 몇 번 흔들며 왕궁으로 들어갔다.
“모헬! 모헬! 모헬!”
어째서 아까보다 더욱 큰 환호가 내 등을 떠밀어주는 것 같다. 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도 못하던 이들이 누구보다 열렬히 내 이름을 외친다.
베이강과 함께 근위군이 사열해 있는 중앙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간다.
“이거 왕이 언짢아할지도 모르겠군.”
“어쩔 겁니까. 도망친 왕이 살고 싶으면 우리 프랑스 손이라도 꼭 붙잡아야 할 텐데.”
즉위 5년 만에 대전쟁이 터져 모든 기반을 잃은 왕. 정통성은 전대 국왕의 조카라 적고 비록 벨기에군의 지지를 받는다지만 대전쟁 이전이 외교적 스탠스는 모두에게 비난받고 있다.
‘원래 힘없는 회색분자가 가장 먼저 죽는 법이지.’
내부 정치는 고사하고 국가를 다시 기초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국민들의 지지가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그는 모든 원망을 뒤집어쓸지도 모르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계획이 뭔가?”
“레오폴드 3세를 설득할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날 도와주는 것은 고맙지만 이건 사적인 일이야. 지난 과거일 뿐이라는 거지.”
“예예, 지난 과거에 발목 잡힌 바이킹 씨.”
내가 무슨 어려운 거 하겠다는 거 아니다. 그냥 살짝, 아주 살짝 변덕 좀 부려보겠다는 거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해도 된다. 왜냐고?
“베르게르 모헬, 그는 신이야!”
“사랑해요, 모헬!”
내 결정이 곧 벨기에에선 민주주의 그 자체거든.
***
공식 행사에서는 일단은 웃는 얼굴로 사진 몇 장 찍은 뒤 난 레오폴드 2세에 대해서 약간 알아봤다.
아무리 나라도 전쟁 도중에 정확한 정보를 얻긴 어려울 거라 여겼는데.
“이런 새끼들을 내가 해방시켰단 말이지….”
“이딴 놈들 도와주려다 죽은 우리 병사들이 불쌍합니다.”
콩고의 원래 인구는 3천만이 안 된다. 그리고 지금은 약 천만 정도 남았다고 하는데 이 수치가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판단할 근거는 없다.
이번 전쟁에서 죽은 사람이 얼마인데 저 좁은 땅에서 그만큼 죽는 게 물리적으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하다못해 내 전염병으로 다 죽었다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이미 벨기에군 내에서는 다 알음알음 아는 사실이랍니다.”
“근데 침묵하고 있다고.”
“아뇨. 한 번은 이 사실이 드러났는데 묻혔습니다. 조지 윌리엄스라는 아프리카계 미군이 콩고를 방문한 뒤 이를 폭로했는데 철저히 무시당했습니다. 그 뒤로는 뭐.”
“뻔하지. 공공연한 비밀. 그러니까 우리가 이리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고.”
“아마 프랑스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부러 자세히 조사하지 않을 뿐이지요.”
그럴 수밖에. 굳이 가해자 독일, 피해자 벨기에 구도가 정해진 지금 콩고 문제를 터트려서 괜히 이미지 망칠 일이 뭐 있나.
언제나 우리 편이 선, 반대편이 악이라 규정하는 게 유구한 법칙이라지만 제삼자의 시선에서도 벨기에는 피해자이자 무고한 선으로 보인다.
그리고 식민지 없는 나라가 없는 유럽 국가들이니 누구도 이 사실이 공개되길 원하지 않는다. 혹은 그냥 관심 줄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거나.
그러나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사진은 인간이라면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들기 충분해 보인다.
손목이 잘린 콩고인. 그 옆에서 잘린 손목을 다른 손으로 들고 웃으며 총을 든 채 사진 찍는 벨기에 군인.
“딱히 깊게 들어갈 것도 없습니다. 증언 차고 넘치고 너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해온 일들이 있어 정보를 얻기도 쉬웠습니다.”
“미친 새끼들.”
루벵 시에서 벌어진 독일군의 학살을 그렇게 우려먹으며 국제 사회에 호소하던 벨기에 아니었나.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했으니 악이라고? 그렇다면 내 장담한다. 벨기에라는 나라는 악 그 자체다.
“부모에게 자식을 죽인 뒤 인육을 먹게 하고. 정해진 양의 고무를 못 채우면 그 무게와 같은 손가락을 잘랐고. 그냥 살인, 강간은 귀여운 수준이네. 살인을 놀이처럼 즐기고 범죄를 자랑스러워했다, 이리 봐도 되겠어.”
“뒤엎습니까?”
“그럼 내가 놔둘까? 안 이상 어째, 최소한 수면 위로 끌어 올려야지.”
모든 벨기에인이 악하다 보진 않으나 전대 국왕만큼은 쓰레기다. 누가 봐도 관리와 군이 합심하여 이런 일을 벌였다면 왕의 방관 혹은 동조가 있었다는 뜻이니까.
더 볼 것도 없다. 더 조사해봐야 내가 알게 된 것보다 더 그로테스크하고 역겨운 범행들만 드러나게 되겠지.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알베르 1세가 왕궁으로 복귀하고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난 다시 그를 찾게 되었다.
“하하! 어서 오시오!”
“안녕하십니까.”
다시 찾은 그는 날 매우 환대했으나 난 밝게 그를 대할 수가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난 그에게 지난 며칠간 내가 알게 된 일들을 말했다.
“…. 알고는 있었지만 이리 심각할 줄이야. 난 정말 몰랐소.”
“그러셨을 겁니다. 백작님이시던 시절에 국정에 관심을 가져서 좋을 게 없었을 테니까요.”
“국내 시사 정도에 그쳤지.”
거짓말. 지나가는 벨기에 군인 몇 명만 붙잡고 물어봐도 소문이 술술 나온다. 그러나 깊이 추궁하진 않는다. 알베르 1세에게 도의적 책임을 씌우려는 게 목적이 아니니까.
잠시 사진과 내가 건넨 종이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래서 어찌하길 바라는 거요?”
이제 와서 어쩌자는 거냐. 혹은 바라는 게 무엇이냐-라는 뜻이다.
아마 내가 무언가를 바라기에 이걸 압박하는 카드로 가져왔다고 여기는 거겠지. 어쩌면 내가 하는 말이 프랑스를 대표해서 하는 말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난 그 생각을 굳이 정정해줄 만큼 배려심 깊지 않다.
여기서 나의 행동이 문제가 된다면? 나중에 페탱한테 좀 혼나고 말지.
“레오폴드 2세의 행동에 관해 공식적인 인정을 바랍니다. 이제 와서 그 당시 관리와 군병들을 처벌하라고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만.”
“허어…. 난 대령께서 일개 식민지인들에게 이리 관심이 있을 줄 몰랐소만. 그리고 너무 깊게 파고들었다간 양국의 우애만 해치지 않겠소?”
아아, 그 말도 할 줄 알았지. 근데 내가 양국의 우애까지 신경 써야 할 입장은 아닌데.
굳이 적당한 이유 하나 붙여주자면.
“영국, 프랑스, 미국 중 누군가 차지해선 안 되거나 차지하기 애매한 독일 식민지가 과연 누구 입에 들어가겠습니까. 설마 이손초에 박혀서 아무것도 안 하는 이탈리아? 그도 아니면 이번 전쟁의 원흉지였던 발칸 국가들? 분위기 괜찮을 때 밝히는 게 나을 겁니다. 나중 가서 이 부분은 강대국들의 패가 되기 딱 좋은 이야기니까요.”
“…. 미안하오. 아무래도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어 실언했군.”
그래도 한 나라의 수장이라 그런지 계산이 빠르다. 눈치껏 일단 숙이고 보는 게 누가 위인지는 최소한 인지한 거 같다.
“큰 거 필요 없습니다. 인정하고,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면 됩니다. 모든 멍에는 돌아가신 전대 국왕께서 지실 테니까요.”
“허나 그랬다간 자칫 내가…”
“압니다. 근데 어쩔 겁니까?”
전대 국왕의 아들이 아닌 조카라서 함부로 건들고 싶지 않은 거 안다.
근데 살로니카 법이 살아있는 벨기에에서 누가 그의 왕권에 위협이 될 건데? 러시아보다 더한 성전환을 보여주지 않으면 왕위 계승이 가능한 사람은 그의 아들밖에 없다.
“제가 전하의 발언에 힘을 실어드리겠습니다.”
“정말이오?”
“프랑스 공화국 공식 입장은 아니지만 개인을 향한 지지, 정도로 해두지요.”
“베르게르 모헬 대령이란 인간이 때론 국민들에게 프랑스 공식 입장보다 클 수도 있소. 그리해준다면 무엇이 무섭겠소?”
베이강이 레오폴드 2세를 진심으로 싫어하게 된 가장 계기를 들었을 때 난 충격이었다.
대놓고 모두가 있는 대전에서 손이 없으면 지장도 투표도 할 수 없으니 민주주의를 외치지 못할 거라고 했다던가.
그는 한 아버지로도, 국가의 왕으로도 실격이었다.
“이전 시대의 짐을 굳이 짊어지려 하지 마십시오. 지금보다 나은 벨기에 왕국을 왕세자에게 물려주셔야 할 거 아닙니까? 저와 프랑스는 언제나 전하를 지지합니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소?”
“말씀하시지요.”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요? 아무리 봐도 프랑스 내각과 합의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기엔 연관도 없을 터.”
방금 알베르 1세의 발언으로 하나 알게 된 사실. 그는 베이강의 존재를 모른다. 나와 베이강의 관계는 공공연한데 진심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면 알 리가 없지.
잠시 뭐라 설명할까 고민하다 그냥 입에 발린 소리나 뱉었다.
“과거를 깔끔히 정리하고 양국이 나아가기 위해서라고 해두지요.”
“흐음.”
딱히 믿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 베이강 대령님이 먼저 밝히지 않는 이상 내가 말할 일은 없을 거다.
그렇게 난 그와 독대를 끝내고 궁전을 나왔다.
며칠 뒤, 대서특필 될만한 뉴스는 아니었지만 알베르 1세의 복귀 후 첫 업무가 지난 3년간 식민지 운영에 관한 정비라고 신문이 내게 알려줬다.
한 꺼풀씩 조용히 벗기려는 알베르 1세의 의도. 비록 떠들썩하게 명예가 추락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네. 정말 고맙다는 말뿐이지만 진심이네.”
“알베르 1세랑 사진 몇 장 찍고 좋은 말해준 게 전부입니다.”
“이웃 국가 군주를 그리 얕보는 놈은 자네가 유일할 거네.”
베이강은 이 정도로 만족한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페탱이 날 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