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퀼른 바로 아래의 도시 본(Bonn).
그곳에서는 위원회 의장으로 그간 후방에 빠져있던 페르디낭 포슈가 있었다.
고문관들, 내각 인사을 비롯한 각종 전문가들이 한 둘씩 본으로 몰려와 종전의 밑거름을 하나씩 준비한다.
휴전협정.
종전도 아닌 휴전이기에 최소한의 조건만 충족되면 전쟁은 잠시 멈추게 될 거다.
그리고 대치가 이어지는 와중에 이후 종전 협상이 계속되겠지.
중간에 서로 파탄 날 가능성도 있기에 이곳은 어찌 보면 외교와 전쟁 두 가지의 동시에 이뤄지는 최전선이리라.
도시 본의 시청 건물 2층. 작은 나무 책상 위에 같은 서류 두 장이 놓여 있고 서로 사인을 위한 펜이 옆에 가지런히 있다.
그간 이어져온 거대한 전쟁에 비하면 초라한 모습. 그러나 종이에 담긴 내용 하나하나의 무게는 일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단어들로 가득 차 있었다.
협상국 대표로 나온 이가 페르디낭 포슈 의장이었다면 독일 측 대표로 나온 이는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Matthias Erzberger), 취임한 지 1년도 안 된 재무장관이었다.
“제국 영토 외부에서 전면 철수라. 여기까지는 우리도 인정하는 바이나 무기에 관해서는 조금 애매하군요.”
“본국은 침공국의 항복을 받아주는 입장이오. 조건을 계속 추가할 순 없지.”
“허나 모든 야포, 항공기, 기관총을 즉각 연합국에게 양호한 상태로 양도하라니. 당장 제국 내에 있는 군용기가 몇천 대인지는 알고 말씀하십니까?”
“전부, 즉각. 아주 양호한 상태로 양도해주길 바라오.”
5년간 서로 비약적으로 발전한 이 전쟁물자들은 참전국들의 마땅한 전리품이라고 포슈는 주장했다.
“철수한 지역의 지뢰를 협정 체결 후 48시간 안에 전부 제거하라는 조건은 불가능합니다. 저희도 어디에 매설했는지 다 알지 못합니다.”
“찾아내시오. 난 우리 병력이 당신네들 지뢰를 밟고 터진다면 용납 못 할 것이니.”
“좋습니다. 최소한 거점지역 혹은 이용될만한 시설은 전부 제거하지요. 그러나 기간은 1주. 그리고 그 외 지역은 나중에 문제가 터져도 책임은 지지 않는 걸로 해주시지요.”
“흐음, 그 정도야.”
둘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옆의 서기들은 급하게 양측의 언어로 내용을 계속 수정했다.
“서부 전선 군사 조항의 10번 항입니다. 협정 체결 이후에 정해질 상호주의 없이 포로는 즉각 송환. 이대로 하십니까?”
“유죄 판결을 받은 이들, 혹은 재판을 받는 이들 또한 포함이오?”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전쟁은 적대적 행위로 죄악을 구분 지을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모든 이들을 재판에 세우시려 한다면 모두가 마지막까지 저항을 택하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렇겠지. 단, 예외가 없을 순 없지. 적합한 절차나 근거 없이 반인륜적 행위를 했다면 그건 처벌받아 마땅하지 않소?”
“허면 그 기준을 어떻게 하시겠단 겁니까? 승전국의 재판봉이 저희 독일에게 공정하리라고 누구도 믿지 않을 겁니다.”
하나같이 포슈의 골머리를 앓게 하고 후에 문제가 될지도 모르는 것들투성이인 일이다. 그럼에도 포슈는 최선을 다해 최종 목표인 ‘종전’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려 노력했다.
하나하나 토론하고 고민했다가는 올해 안에 협정서에 사인도 못 할 것이다. 때론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결정이 필요하다. 조건들이 크게 나쁘지 않다고 본 포슈는 이대로 사인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
“의장님, 저 드릴 말씀이 일이 있습니다.”
뒤에 서 있던 인원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손등을 가져다 대며 속삭인다. 포슈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경청했다.
“어제 정오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0시간 전 도르트문트에서 베르게르 모헬 대령이…”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실 확인을 위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포슈는 조용히 눈만 잠시 감았다.
그리고 고개만 끄덕인 뒤 입을 열었다.
“방금 조항에서 포로 송환 대신 포로 교환으로 시작하는 게 어떻소. 선별은 어떻게 하든 상관없을 것 같소. 단, 이동이 불가한 병자들은 제외요.”
“한 번에 포로 문제를 끝내기 힘들다는 말씀이시군요. 저희도 그 조건이라면 괜찮을 듯합니다. 헌데 그리되면 잡힌 포로들의 국적 선정이 문제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겠소. 우린 독일제국이 공정하게 해줄 거라 믿소. 어차피 다 송환될 테니 순서의 차이만 있을 뿐 아니겠소?”
“그리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후 더 변경할 내용이 없으니 최종 완성된 종이에 포슈는 곧장 그의 이름을 휘갈겼다.
그리고 일어나 악수를 한 뒤.
“그럼 지금으로부터 실행 시간은 48시간 시작이오. 협상 기간은 30일이고 연장할 의지가 있다면 늦어도 3일 전에는 연락을 주시오. 늦었다가는 다시 개전일 테니.”
“부디 다시 이 자리에서 뵙길 바랍니다.”
덕담 한마디 해주고.
재빨리 시청 건물을 떠났다.
“베르게르는 아직도 도르트문트에 있나.”
“그럴 겁니다.”
“총사령관은.”
“비슷하게 소식이 들어갔을 겁니다.”
이런 소식이 하루나 지나서야 들어온 것부터가 보고 체계에 문제가 있자는 증거. 이 또한 화가 나는 일이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문제는 그 자리에 타국 군관들도 있었다는 점입니다. 물고 늘어지자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특히 모헬 대령과 사이가 안 좋던 미합중국이라면 말입니다.”
“도르트문트는…. 페탱 총사령관이 알아서 할 테니 우린 동맹 지휘관들부터 만나보지. 입은 맞춰야 할 것 같으니.”
솔직히 지금도 포슈는 자신이 아는 그 모헬이 이런 비인간적인 일을 저질렀단 게 안 믿겼다.
그러니 일단은 직접 확인부터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 포슈가 사인한 협정에 잉크가 아직 종이에 제대로 스며들기도 전.
소식을 접한 페탱 또한 눈이 돌아가긴 마찬가지였다.
“그 새끼 어딨나.”
“도르트문트에 있습니다.”
“바로 가지.”
적당한 압박. 적당한 협박. 그리고 적당한 보상.
삼박자가 어우러지면 베르게르 모헬이란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고 믿은 지난날이 배신당한 이 기분. 페탱은 어서 그의 변명을 들어라도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아니면 그간의 약속이고 보상이고 다 내팽겨 치고 모헬 모가지를 따버릴 것 같으니까.
***
포로들의 머리에 직접 구멍을 내어줬지만 영화에서 살인하고 손 발발 떠는 주인공 같은 기분은 솔직히 없다.
전쟁 초기, 그러니까 아르덴 숲 이전이었다면 손에 땀이라도 났을 텐데 그냥 사격 연습 한번 한 느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쓰레기를 죽여서 그런 건가?”
그런 거라면 괜찮은데, 나 스스로도 인지 못 할 만큼 살육에 익숙해져서라면 약간의 위기감은 든다.
여하튼, 일은 벌어졌고 남은 것은 후처리다.
포로를 죽이면서 내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나와 페탱과의 관계였다.
전역한다고 군생활 하면서 맺은 모든 관계를 파탄 내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 또한 덜 적극적일지언정 사회구성원으로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는 존재 아니겠나. 마냥 깽판치고 수습 생각 안 하는 건 아니라고.
나와 페탱의 관계가 상명하복의 일방적 관계에서 벗어난 지는 오래다. 정확히 우리는 서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끈끈하게 묶여 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페탱은 절대 나한테 살인죄를 묻지 못할 거다.
설령 군 규율을 중요시하는 두 원수가 날 처벌하려 한다 한들 이번에는 군 외부의 조력자들이 있다.
독일을 압박하는 카드,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얼굴마담, 동맹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전공 메이커. 어느 위명을 가져와도 하나같이 날 처벌하는 내용과는 멀어질 거다.
“그리고 난 나쁜 경찰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거라고.”
나쁜 경찰이 폭력 좀 쓸 수 있는 거 아니겠나.
어제 파비앵한테 주문한 대로 정오가 되면 다시 포로들이 모여서 올 것이다.
그리고 난 어김없이 몇 명 더 죽이겠지. 사실 피 튀기는 게 싫어서라도 내가 하기 싫다만 또 다른 사람한테 떠넘길 일은 아니다.
“대령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 그래. 벌써 준비되었나?”
“헌데 슈티른 소장님이 사적 처벌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명령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그거. 난 못 들었네.”
“….”
만약에 정말 슈티른 소장이 날 막으려 했다면. 그러니까 저 포로들이 너무 불쌍해서 반독의 정면에 서 있는 나와 대립을 각오했다면 직접 오거나 내 신변을 구속했어야지. 그 또한 내 행동에 반타의적으로 동의하는 것 아니겠나.
물론 막아도 저항했겠지만. 아마 그도 그걸 잘 알기에 위로 더 보고하고 반쯤 방관하는 게 아닐까 싶다.
‘미안하지만 슈티른 소장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해.’
이건 나와 페탱의 문제다. 그 뒤에 누가 더 있든 간에 날 괴롭히는 주범은 한때 내가 가장 지지했던 필리프 페탱 원수다.
“대령님, 명령불복종은 중죄입니다.”
“파비앵, 아까부터 왜 그러나. 자넨 설마 내가 피에 미쳐서 이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십니까?”
“자넨 나와 몇 년을 지냈는데도 모르나?”
이건 좀 서운한데. 요즘 매일 불안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더니 파비앵까지 날 이리보다니.
“난 명령에 불복종하는 게 아니네. 단지 나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명령을 기다리는 거지.”
“그 명령이… 아닙니다. 준비되었으니 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좋아, 가보자고.”
어차피 이 기행은 오래가지 못할 일이다. 어제, 늦어도 오늘이면 소식 접하신 분들이 달려올 거고 아마 내 앞에 짠 하고….
“하하.”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보이는 작은 키의 노인. 모자 때문에 가려졌지만 날 올려다보는 그 눈동자는 조금의 존중도 담겨있지 않다.
“충성, 총사령관님 오셨습니까. 애들이 이걸 왜 보고 안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내가 보고하지 말라고 했거든. 그래서, 베르게르, 모헬, 대령. 날 찾았나?”
이거 나왔다. 계급까지 붙여서 끊어 부르기. 서로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페탱식 화법 중 하나인데 보통 폭풍전야 때 쓰인다.
평소라면 여기까지 오기도 전에 바짝 기었겠지만 이번만큼은 끝까지 대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인간도 충격받고 날 놔주지.
“절 찾아오신 것은 총사령관님 아니십니까? 찾다니요?”
“자네, 지금 전에 말했던 역할극 하는 거라면 그만두게.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어이.”
“허허, 이 아둔한 모헬. 총사령관님의 말씀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여-”
“이 악물어라.”
빠아악.
순간 피할 틈도 없이 날라온 라이트에 얼굴이 돌아가며 난 쓰러졌다.
“크흡.”
스윽 닦아보니 입술과 볼 안쪽이 터져서 흐르는 피치고는 양이 많다.
“어? 코피?”
코에서 흐른 피가 턱끝까지 타고 뚝 뚝 떨어진다.
“혹시 많이 다쳤나?”
“아, 아니. 이리 바로 때리시다니요?”
“말하는 걸 보니 괜찮아 보이는군. 그럼 다시 입 다물게.”
당신 매일 허리 아프다 그러고 야전 뛰기엔 늙어서 이젠 이동하는 것도 힘들다며.
분명 내가 아는 페탱은 56년생 용띠 키169의 맵지만 작은 고추 페탱인데.
그런 총사령관님이 지금은.
“파, 파운딩?”
“다물라고 했잖은가. 자네가 실명이라도 하면 내 모헬 부인을 볼 낯이 없어.”
퍼억.
몇 대 더 맞으니 암전되는 시야. 흐를 피가 눈에 들어가서인지 차마 반격도 못 하고 맞아서인지 모르겠다만 하난 확실하다.
원수님은 집에 보내주시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려 하시는 것 같다.
조금은 다른 방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