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언제부터였을까. 4년 전? 아니, 한 5년 전인가. 아마 1914년, 당시 프랑스는 혼돈에 휩싸여있던 시기부터였다.
막 터진 전쟁. 대독전 계획은 서류상 있지만 실행은 조금도 준비되어 있지 않던 시기.
민간인들은 피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팡질팡할 때였고 그 누구도 이 전쟁의 방향을 모르던 때였다.
쳐들어온 적도, 막아서던 프랑스군도 모두 전쟁의 한 치 앞도 몰랐다.
어제까지의 국경은 무의미해졌고 내일의 전선은 또 어디까지 밀릴지 알 수 없던 상황.
그때 딱 떠오르던 게 바로 베르게르 모헬. 아마 나이가 스물셋인가 넷인가 했을 거다.
보불전쟁도 안 겪어본 새파랗게 어린놈은 마치 몇 번이고 전쟁을 겪어 본 것처럼 행동했다.
홀로 숲에 기어들어가 잘만 살아오고 전쟁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누구보다 과격한 의견만 낸다.
어찌 보면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때 놈이 뱉은 말들이 하나같이 들어맞았기에 자신은 최대한 귀담아들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마 마른에서 포슈 원수가 적을 반으로 갈라버린 뒤였을 거다.
그놈은 무려 스물하나에 전쟁 양상이 수백km로 펼쳐지리라 믿었다. 그 믿음대로 목숨 걸고 움직인 것은 당연했고.
여전히 무슨 근거로 어린놈이 이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확신에 차 살아가는지 모르겠다만 원래 그런 놈이었다.
스스로의 결정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는 놈. 그런 주제에 남은 기가 막히게 불신하는 놈.
그나마 다행이라면 꼴에 상관의 말은 잘만 따랐던 점이려나.
자신에게 무슨 점을 발견했는지 몰라도 그놈이 특이하게 기겁하던 사람이 몇 있다.
나, 포슈 장군, 베이강 등 전쟁이 터지자 두각을 드러낸 극소수의 몇 명.
전선을 밀고 당기고, 빼앗긴 국토를 되찾고 온갖 공세를 시행하며 어느새 전쟁은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 몇 년 사이 말년 대령은 이 나라의 원수가 되었고 소총 들고 뛰어다니던 중위는 대령이 되었다.
그간 있었던 일들 하나하나 회상하면 죽을 때까지 술값 낼 일 없을 것 같은 사건투성이였고 정말 고생의 연속이었다.
이제 이번 전쟁이 끝나면, 자신은 이 나라의 원수로 지내다 여생을 마무리할 것이고 저 싸가지 없지만 능력 하나만큼은 뛰어난 놈은 아마 차기, 혹은 차차기 이 나라 군을 책임지게 될 거다.
헌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그놈이 군을 떠나겠다고 한 거다.
그간 고생만 해왔고 전후에는 과장을 약간 더 하면 이름 날렸던 군인들의 세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그런데 떠나겠단다.
혹시 독일군한테나 쓰던 블러핑, 그도 아니면 자신에게 원하는 바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에? 저 전쟁 끝나면 전역할 건데요?”
진심이었다. 이 미친놈이 돈 좀 벌었다더니 고작 자본에 눈이 멀어서 그런 건지, 진짜 집으로 가겠단다.
클레망소 총리가 들었다면 욕했겠지만, 차라리 정치하겠다고 나가는 거면 이해라도 하겠다.
그러나 이 무의욕적이고 세상 꼴을 진심으로 멀리서 비웃고 싶어 하는 베르게르는 집에 가려고 하는 것 같다.
‘어, 어째서?’
그저 숨만 쉬고 있으면 그는 이 나라의 군부의 미래다. 지금이야 나이가 어려서, 아직 경험이 적어서, 혹은 현 집권층이 시기하기에 능력만큼 돋보이지 않는 것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림없는 소리.
하루는 슈티른이 한 말이 기억난다.
‘모헬, 그 친구. 어쩌면 조프르 전 총사령관보다 더한 괴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게 걱정되나?’
‘글쎄요, 한 인간에게 프랑스 군권이 쥐어진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긴 한데, 모헬이라면 어떻게든 유럽 최강으로 만들어 놓지 않겠습니까?’
고작 20대다. 앞으로 군에 반세기는 더 몸담을 놈이란 말이다.
그때 슈티른과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독일이란 나라가 이웃으로 있는 한, 모헬의 존재는 필요를 넘어 필수라고.
현 군부 집권 세력과의 나이 차이도 딱 좋다.
지금의 세대가 이번 전쟁을 잘 마무리 짓고 다음 세대.
그러니까 막심 베이강쯤 되는 이들에게 넘겨주고 나면 최종적으로는 저놈의 손에 완벽히 넘어갈 거다.
보불전쟁 이래로 극도로 치닫던 반독 기조는 이번 전쟁을 기점으로 뿌리 뽑을 수 없는 사상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장 자신도 이에 올라탄 사람이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지 않나.
이제 이 나라는 절대 단기간 안에 독일의 체급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이는 포슈도 클레망소도 동의한 바이다.
아마 최소 반세기는 이어질 반독 기조. 세대가 두세 번은 교체되어야 다시 친독, 하다못해 지독파라도 생기지 않을까.
그 속에서 베르게르 모헬의 역할은 하나다.
다시는 이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존재. 즉, 프랑스의 최전선에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하겠다.
그런 놈이.
“파, 파운딩?”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주고 필요하다면 남의 것까지 뺏어서 손에 쥐여 주려고 했었던 놈이.
“저 진짜 죽어요! 아아악! 더 때리면 나 진짜 정치인 출마해서라도 원수딱지 떼버릴 테다!”
하, 하하하.
진짜 어떻게 해야 할까. 이놈을 어떻게 해야 할까.
차라리 자신의 친아들이었다면 더 때려서라도 어떻게든 정신머리를 고쳐놨을 텐데.
전쟁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저런 놈에게 모든 능력을 준 게 원망스러우리라.
“베르게르 모헬.”
“…….”
“대답하게. 기절 안 한 거, 다 아니까.”
“…더 안 때리시는 거죠?”
“후우, 일어나.”
엉망이 되어버린 그가 엉거주춤 일어나자마자 방문 안으로 놈을 집어넣고 함께 들어갔다.
문을 닫고 단둘이 남게 되자 드디어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해진 거 같다.
“자넨 착각하는 게 있어. 내가 화나서 자네 군복이라도 벗길 거라 여긴 것 같은데, 아주 큰 착각이야.”
“언제부터 프랑스군 규율이 이리 무너졌답니까?”
“원수 계급까지 단 내가 그 규율을 신경 쓸 것 같나?”
“…아닌가요?”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당당하게 아니냐고 묻는 답조차 순간 화를 돋우지만 여전히 흐르는 놈의 피를 보며 참았다.
“예전에 내가 선물 하나 준다고 한 것 기억나나?”
“예.”
“자네가 단순히 계급에 만족하는 것 같지 않아서 하나 준비하던 게 있네. 바로 전후 알자스-로렌 지역 사령관었어.”
포슈 장군도 모헬에게 너무 과분한 자리가 아닌가 말할 정도의 위치. 사실상 중앙 국경 및 그 인근 전체를 관할하는 사령관이 되는 거다.
“내년에 종전 협상까지 마무리되면 아마 알자스-로렌, 거기에 몇몇 지역을 더해 우리 손에 들어올 거였네. 난 그 자리에 자네를 앉히기 위해 얼마 전부터 손쓰고 준비하고 있었고.”
전쟁이 끝나고 군축이 일어나고 계급이 정상화 되어도 알자스-로렌 지역 사령관이라는 자리만큼은 절대적인 권력의 길을 걷게 될 거다.
중앙 정부의 통제를 ‘대독일 방어선’이라는 위명이 막아줄 국경이나 잠재적 전선이니까.
“헌데 내 잘못 생각한 듯해, 자넨 참 어려운 곳을 좋아하는 것 같으니.”
“저, 사령관님? 제가 당장 집에 가는 것도 아니고 전쟁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면 간다는 의미였습니다.”
“러시아, 그도 아니면 극동도 괜찮군. 어디든 내가 준비한 사령관직보다는 낫지 않겠나?”
“자, 잠시만요!”
네놈이 군을 떠나겠다고? 좋다. 그럼 차기 권력자로서의 위치도 사라지는 것이니 더 이상의 안배 는 필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현 프랑스 군복을 입은 인간은 그 누구라도 명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나, 필리프 페탱의 손에서 넌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아니면 영원히 내 밑에 있거나.
절대 곱게 집에 보내주지 않으리라.
“이 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프랑스 공화국은 법과 질서를 수호하며 자유를 보장하는…”
“아아, 계속 그렇게 떠들어보게나. 나도 내가 어디까지 막 나갈지 모르겠으니까.”
여전히 이놈에 관한 해결책은 안 떠오른다. 그러나 하나는 확실히 안다.
‘사관학교야 당연히 제외고 전쟁 기간이야 예외의 경우다.’
그렇다면 당장 베르게르 모헬의 의무 복무는 아직 안 끝났다.
***
굳이 자신까지 나서서 사건을 수습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포슈와 페탱이 세운 계획에서 모헬은 완전무결한 상태여야만 한다.
고작 이런 전쟁 범죄에 창창한 청년이 발목 잡혀선 안 되기에 포슈는 재빨리 초기에 사건을 축소, 확실하게 무마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독일 측에서 똑같이 나오지만 않으면 그쪽 항의는 무시하면 그만. 그러나 다른 국가에서 항의가 들어오면 골치 아프다.’
그 결과야 크지 않겠지만 누군가 ‘베르게르 모헬 때문에 손해 봤다!’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모헬 대령은 불완전해진다.
“후우, 내가 이 나이 먹고 어린놈 사고친 것 수습이나 해야 한다니. 어이가 없군.”
“허면 안 하시면 그만 아닙니까?”
“블로크라 했나? 이 친구야, 이 게 조국에 애국하는 거라네.”
“그 정도입니까?”
“자네 부대를 지워버린 독일군. 그 독일군을 매일 아침 과일주스처럼 갈아버린 게 바로 모헬 대령이야. 때론 이리 이상한 짓도 하지만 귀한 인재임은 분명하지.”
“역시, 모헬 대령님은 대단하구나…”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영국군을 총지휘하는 더글러스 헤이그 사령관.
헤이그를 찾아간 포슈는 이번 포로 처형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예상과 다른 대답을 들었다.
“아, 난 또 뭐라고 이리 포슈 의장님께서 나서나 했소. 고작 8명 처형한 것 가지고 뭐 그리 걱정하시오?”
맞다. 어찌 보면 저게 맞는 말이지만 포슈는 약간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그 영국이… 이리 나온다고?’
조금의 구실만 생겨도 어떻게든 자신들의 이권 하나라도 더 받겠다고 날뛰는 놈들인데 무려 휴전 협정 체결 도중 일어난 처형 사건을 이리 가볍게 보다니.
“모헬 그 친구가 죽였다면 그리고 이유가 있겠지. 괜히 일 키워서 독일 제국 편 들어줄 이유가 있겠소?”
“그렇다면 우리 측도 가볍게 징계하는 수준에서 끝내도록 하지요.”
“징계는 무슨. 그냥 올바른 청년이 옳은 일을 한 것인데. 휴전 조약에 적힌 포로 조항이 너무 관대하단 생각은 나도 했으니까. 아, 이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니 괘념친 마시오.”
은근슬쩍 독일에게 가해지는 압박을 풀어주려는 게 현 영국의 분위기 아니었나. 그런 거치고는 쉽게 넘어가려 한다.
‘뭐, 차기 프랑스 군부와 척을 지고 싶은 게 아니라고 보면 이상하진 않아. 독일 압박은 ’
그다음 만난 것은 인권과 포로 문제에 누구보다 진심이던 미합중국이다.
초기에는 포로를 민간인과 동등대우하는 수준이었을 만큼 심각한 놈들. 아마 이번 문제를 계기로 프랑스 포로 문제를 지적하면 할 말이 없다.
“아, 모헬 대령이 포로를? 에이, 그랬다면 진짜 나쁜 놈들 아닌가요? 제가 모헬 대령과와 지내봐서 아는데 우리 미합중국군에게 참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더군요.”
“…사건 조사에 들어가 봐야 알겠지만 아마 100일 공세 당시 범죄자들로 알고 있소.”
“허허, 이거 지뢰였군요. 괜히 딴지 걸었다가 사건 조사 끝나고 밝혀지면 우리 국민들께서 범죄자를 옹호했다고 하려나. 아무튼, 이번 일은 심각한 사안도 아니니 넘어가는 게 좋아 보입니다.”
“그쪽 뜻이 그렇다면야. 이대로 넘어가는 걸로 알고 있겠소, 헌터 리겟 소장.”
“전 되려 모헬 대령의 일에 이리 진심이신 원수님이 놀랍습니까. 역시… 차기 총사령관이라더니.”
“그럼, 이만.”
마치 그게 무슨 문제냐는 식으로 나오는 미국과 영국의 태도에 포슈는 순간 진지하게 의문이 들었다.
‘다들 이 정도는 원래 아무 일도 아니라고 여기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모헬과 연관 있던 저 두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만약 그런 거라면.
“이거, 외교에도 재능이 있는 친구였군.”
그렇다면 베르게르 모헬은 자국과 애국만 부르짖는 꽉 막힌 놈과 확실히 다르다는 증거 아니겠나.
역시 페탱의 말마따나 20년 뒤 프랑스군은 베르게르 모헬에게 맡기는 게 현명한 선택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