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샤를로트가 이해할 수 없는 내 행동에 당황스러워했다면 난 알고 있기에 충격을 받았다.
나도 수도 없이 봐왔다.
아직 스트레스 장애는커녕 셸 쇼크라는 단어도 없는 시대. 영국 애들이 포탄 충격에 전투 이후 눈을 크게 뜬 뒤 벌벌 떨거나 미묘한 웃음을 지어대는 꼴은 흔하디흔했다.
이에 대한 영국 군부의 대응은 아주 간단했는데.
‘한 3천 명 정도였나. 전부 사형 판결을 받았지.’
그런 시대다.
그저 정신이 약해 빠졌기에 일어나는 현상 정도로 치부하며 군부에서는 원인을 유약한 정신력으로 보며 복무기피로 여겨버린다.
그리고 20세기를 살아가는 프랑스 군바리인 나 또한 어쩔 수 없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내가… 이리 약해빠졌었나.’
분명 방아쇠를 당길 때 아무런 느낌도 없었는데. 너무 무감각해져서 되려 이질감을 느낄 정도였는데.
일단 이 빌어먹을 상황부터 정리해야 한다,
“샤를로트. 이건 아침에 가스파르를 놀라게 해주려고 만든 거야. 그러니까 일단 사용인들 입부터 막아줘.”
“거짓말….”
“나중에 이야기하자. 난 샤워하러 가볼게.”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난 프레드릭이 건네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그러나 샤워 물을 틀고 홀로 남자, 다리에서부터 힘이 풀린다.
“하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이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그러니까 흔히 트라우마라고 부르는 그런 건가.
왜 내가 참호를 팠는가.
그러게, 나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직접 참호를 파본 게 한 5년 전쯤이었을 텐데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총 대신 삽을 들었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하하.”
무엇이, 날 이리 압박했던 거지. 최근에 동반자 관계를 깨버린 내게 족쇄를 채우려는 페탱이? 많고 많았던 죽음의 위기가?
글쎄, 분명 쓰러져도 난 아무렇지 않게 군복에 묻은 먼지를 털고 일어나지 않았던가. 그다음 날도 잘만 잤고, 그 다다음 날도 잘만 먹었다.
헌데 이제 와서. 이제 겨우 집에 와서 내가 이런다고?
벽에 이마를 박은 채 물을 맞으며 난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고민했다.
“일단 외부로 알려져선 안 된다.”
천하의 악귀가 겁쟁이란 소문은 공격당하기 좋은 먹잇감일 뿐이다. 어차피 안 믿을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문제는 만약 내가 다시 이런 짓을 벌인다면…”
나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데 샤를로트한테는 어떻게 설명하지. 전쟁터 느낌 한번 내봤다? 정말로 아침에 가스파르 놀라게 해주려고 그랬다?
거짓말하는 것을 떠나 그녀가 바보도 아니고 믿을 리가 없다.
계속 벽에 머리를 박아봐도 떠오르는 해결책이 없다. 더욱 답답한 것은, 나 스스로가 아니면 이를 해결할 이는 세상에 없다는 거다.
정신의학자? 이 시대 정신의학은 환자한테 담배를 권하고 입에 재갈을 물리며 마약을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들인데 미쳤다고 그것들 도움을 받아.
계속 이대로 있을 순 없기에 난 원인조차 모를 문제를 떠안고 1층 거실로 나왔다.
역시 저택의 곳곳의 불이 커져 있고 샤를로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날 기다린다.
“다들 잠시 나가줘,”
모든 이들을 내보내고 샤를로트와 단둘이 남았다. 새벽 2시가 넘어가는 시간,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까.
내 마음을 알아서인지,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나 너무 무서웠어. 아까의 당신은… 내가 알던 베르게르 모헬이 아니었어. 마치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귀머거리처럼 보였어.”
“미안.”
“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니야. 제발, 베르게르. 말을 해.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매번 느끼지만 그녀가 저 습기 넘치는 눈동자로 쳐다볼 때면 난 알 수 없는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지금은 더한 것 같다. 그녀가 내게 바라는 답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지만 답할 수가 없다.
“나도… 몰라. 그냥 충동적으로 땅을 파야 했던 것 같아. 마치 반드시 해야 하는 일처럼.”
“아까 땅 판 일. 전쟁터에서 하던 일이지?”
“…. 어.”
난 그녀에게 솔직히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모든 것을 말해줄 순 없지만.
그녀와 하는 대화 속에서 혹시나 나 스스로가 답을 찾지 않을까 하며 난 어서 다음 질문을 기다렸다.
그러나 샤를로트의 다음 행동은 내가 예상한 질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건너편에서 조용히 걸어와 나를 껴안았다.
“미안. 당신이 이리 힘들어하는 줄 몰랐어.”
“…군생활이 다 힘들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답해버렸다.
난 잠시 그녀에게 안긴 채로 눈을 감으며 숨을 크게 들이켰다가 내쉬길 반복했다.
그녀의 가슴팍에 얼굴이 닿으니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다.
허나 이내.
‘아… 난 쓰레기인가.’
그냥 아까 그 구덩이에 묻혀서 죽는 게 나았을 것 같다.
***
프랑스 역사에 다시 없을 변종, 베르게르 모헬이 떠나고 어느덧 두 달 가까이 되어가는 시간이 흘렀다.
부대로 돌아와, 자신이 꿈꾸던 생활로 돌아온 파비앵은 원인 모를 허무함에 휩싸여 하루를 지냈다.
“하아… 슬슬 날씨가 서늘해지는구나.”
아직은 가을이지만 곧 코트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곧 11월에는 입법 선거가 있고 내년 초에는 대통령과 총리 자리가 공석이 될 거라고 모두 떠들어댄다.
내각은 군부에 칼을 들이밀어야 하는 입장이기에 부담스러워하며 배제하려 하지만 이를 두고 볼 군부가 아니거니와 시민들의 뜻은 다르기에 양측이 기싸움이 벌써부터 한창이다.
이리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데 정작 중요한 사람은 자리를 비워버렸다.
“이 와중에 장기 휴가? 그냥 돌아올 생각이 없다는 거잖아.”
파비앵 본인도 수많은 제안을 받았지만 전부 거절했다. 어련히 상부에서 잘 챙겨줄 것이기도 했고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다.
그렇다고 모헬 대령님 위명을 등에 업고 뒷짐 진 채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도 이제는 안 든다.
“정치하시겠다던 페탱 원수님도 결국 불출마 선언하시면서 내년에는 본격적으로 부대 편제와 재정비를 시작하신다는데.”
도대체 그가 믿고 따랐던 모헬 대령은 오를레앙에 박혀서 무얼 하신단 말인가.
“에휴, 내 이럴 줄 알았어. 언제는 자기 등만 보고 따라오라더니 결국 도망가버렸네.”
전시에도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몰랐지만 전쟁이 끝나니까 더더욱 모르겠다.
특히 휴가 떠나기 전의 마지막 모습은 약간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기에 파비앵은 괜스레 마음만 복잡했다.
이대로 독자노선을 걸을까. 베이강 소장님의 러브콜은 파비앵에게도 달콤한 제안이었다.
앞으로의 총참모부 운전대는 5년 내로 베이강 소장이 잡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도 아니면 확 아라스 당시 느낌 살려서 북부 최전방 부대로 지원을 할까.
나름 모헬 대령이 흘린 전공 든든하게 주워 먹은 몸으로서 최전방에 한자리 얻는 건 어렵지 않다.
“이게 다 그 인간 탓이야. 괜히 옆에 있었더니 물들어가지고, 그냥 장교 말고 부사관이나 계속할걸.”
적당히 전쟁 치르며 배운 노하우 넘겨주면서 유유자적하게 살면 되는 거였는데 이젠 그럴 수도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답답했던 파비앵은 이젠 타부대 소속이 되어버린 한 사람과 만났다.
“윌리암, 어찌 잘 지냈나?”
“파비앵 중사님, 아 또 이러네. 중사님이 입에 붙어가지고.”
“괜찮네, 나도 그랬어. 종종 모헬 중위님이라고 불렀으니까. 그래서, 전차 쪽은 분위기 어때?”
“저희야 군축과는 거리가 멀죠. 대신 쪼개질까 봐 다들 걱정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전차라는 물건 자체가 여전히 신무기에 속하지 않습니까.”
“그쪽은 전문가가 없긴 하지.”
“오죽하면 저한테 자문을 구하더라니까요? 나도 그냥 모헬 대령님한테 속성으로 배운 게 전부인데 말이죠.”
언뜻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하나같이 더 깊이 파고들면 한 사람이 나올 것 같다.
“팔병신 페리스는? 전역 안 한데?”
“그 친구도 고민하더라고요. 다시 오를레앙으로 돌아가서 와인 유통이나 할까, 아니면 군에 남을까.”
“이거 좋은 인재들 다 떠날까 봐 걱정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똑똑한 놈들은 집에 가버리고, 다시 껍데기 같은 놈들만 군에 남게 생겼어요.”
한탄. 허나 파비앵은 왠지 그 한탄 속에서도 스스로 누군가를 찾는 느낌이 들었다.
“쯧, 아예 옛날이 나았던 것 같네. 아라스 33연대 시절처럼 다 달라도 한곳에 모아놓으면 그게 진정한 강군이었는데.”
“지금이야 괜찮은데 아마 시간이 지나면 개판 나지 않을까요.”
“차라리 모헬 대령님이 나서주면….”
“어우, 그럼 자칭 전문가라는 놈들 입 싹 꿰매버리시겠죠. 그거 아세요? 모헬 대령님이 보병에 딱 붙여놓은 박격포 쪽 난리 난 거?”
“어떻게?”
“분리, 그리고 근접 포병 부대로 재편.”
“미친놈들. 박격포를 소형포랑 동일시하는군.”
전쟁이 끝났지만 여전히 프랑스군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것 같다.
정계도 혼란스럽고, 집으로 돌아간 수많은 징집병들에 사회도 혼란스럽고, 개전 초기 밀물과 또 다른 종전의 썰물에 군대도 혼란스럽다.
펍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하는 두 사람 뒤로 한 사람이 더 나타났다.
“어떻게 매번 지각을 하십니까?”
“그럼, 어디 원수 부관이 시간 내기 쉬운 줄 아나?”
“이제 페탱 원수님 총사령관 아니라서 시간 많지 않나요?”
“모르는 소리군, 윌리암. 군축을 하면서도 베르사유 조약을 시행하는 것은 바로 군대이지 않은가. 여기에 해군 놈들까지 지분 싸움에 끼어드니 더욱 개판이야.”
“그것들은 전쟁 내내 놀았으면서 또 뭘 달라고.”
윌리암 페르, 샤를 드골, 자키 파비앵. 어느 순간부터 정규 모임처럼 시간을 가지게 된 세 사람은 언제나 그래왔듯, 아라스 시절부터 꺼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이어왔다.
그리고 언제나 등장하는 한 인간.
“그 미친놈이 진짜로 파스칼 대대장 찾아가서 휴가 안 보내주면 신고하겠다고 했다니까? 그 뭐라더라…”
“마음의 편지?”
“아, 마음의 편지!”
“저희도 부대 내에서 마음의 편지 쓴 적이 있습니다. 헌데 이뤄지는 건 없던데요.”
“병사들은 무슨 내용을 썼는데?”
“제발 훈련 좀 줄여달라?”
“아주 개판이었구먼.”
“아, 이거 안 겪어보니까 저런 소리 나오지. 파비앵 대위님, 한마디 해주세요.”
“그 미친 체조 겪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십쇼.”
공통된 한 사람에 의해 평범하지 않은 군생활의 연속이었던 세 사람은 어찌 보면 친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모헬 대령 아내 말이야.”
“샤를로트 모헬 부인 말이죠?”
“두 사람이 결혼한 데에는 내 지분이 조금 있다고 말할 수 있다네. 아마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었나? 편지 받고 하루종일 고민하던 그놈을 내가 끄집어내서 데이트하게 만들었거든.”
“또, 또 과장한다. 혹시 아라스 큐피드세요?”
“저런, 혹시 여자가 필요하나?”
“어후, 전 결혼해서 잘만 살고 있습니다. 둘은 감당이 안 돼요.”
아라스, 국경, 마른, 아미앵, 릴….
어느덧 100일 공세와 종전까지 순회한 세 사람의 대화는 끝내 한 가지로 귀결되었다.
탁.
“끄읍, 그래서. 언제 돌아온다던가?”
“기약 없습니다. 휴가이긴 한데, 사실상 휴직이라서.”
“보직은?”
“준비된 것은 여러 개인데. 선택을 안 하시고 떠나셔서 그것도 모릅니다.”
“그럼 아예 손을 뗀 건가? 복기가 늦을수록 베르게르한테 좋을 게 없을 텐데.”
“후우… 그러게 말입니다.”
언제는 안 필요했냐마는 떠나고 나니 그 공백이 너무 크게 다가옴을 세 사람은 느꼈다.
언제나 확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하던 자가 사라지니 자신들까지 길을 잃은 기분이다.
“차라리 전차 쪽으로 오셔서 전차 사단 유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 나한테는 전차가 조금만 발전하면 전차만으로 전투하는 전차전의 시대가 올 거라 했으면서.”
“에헤이, 윌리암! 그건 그냥 자네 꼬시려고 한 소리고. 나한테는 전격전. 그러니까 전차, 보병, 항공대, 공수부대와 포병 지원까지 합쳐진 전투가 일어날 거라 했다고. 그게 미래네.”
“둘 다 모르는 소리군. 앞으로의 전투는 단 세 가지로 구성될 거네. 돌파, 기동, 화력. 이번 전쟁에서 자네들이 직접 해낸 것들 아닌가? 이 셋이 톱니바퀴처럼 어우러져 전장을 채우게 될 거야.”
“다 필요 없고 전차전이라니까요!”
“육군 대통합을 실현하는 전격전이라고!”
“떽! 이게 그리 간단하게 한 가지로 설명할 수가 없다고!”
한껏 성을 내며 토론을 해도 시원하게 결론이 나지 않으니 제발 누군가 결론을 내줬으면 했다.
“에이….”
“에휴….”
“꿀꺽, 꿀꺽.”
이젠 어떠한 주제를 꺼내 토론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
결국 베르게르 모헬이.
지금 세 사람은 베르게르 모헬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