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is no such thing as a war in France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내가 아는 보나파르트주의자들.
그러니까 중도와 우파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이 집단은 내가 볼 때 프랑스 전역에 퍼져있는 나폴레옹의 팬들이다.
시대가 지날수록 그 힘은 조금씩 깎일지언정 아주 두터운 팬층은 설령 지지자가 아니어도 호의를 갖게 하는 근본을 지녔다.
정치적인 힘이 없는 이들도 아니다. 톡톡 역사의 틈을 타서 한 번씩 프랑스를 휩쓸 때가 있는데 가장 큰 예시가 드레퓌스 사건 당시이다.
워낙 프랑스가 양분되어 갈라지던 시기. 보나파르트주의자들은 빅토르 나폴레옹 왕자를 중심으로 프랑스 정권을 뒤엎으려 했다.
비록 실패했을지언정 저들은 단순히 그 시도만으로 그들의 힘이 건재함을 프랑스 정치계에 각인시켰다.
그럼 지금의 혼란을 틈타 한 번 더 위를 노려보는 걸까.
난 궁금해서라도 대화를 이어갔다.
“그, 크리스토프 씨? 혹시 루이스 왕자님과 사적인 관계가 있나요?”
“그리 크진 않습니다. 클레멘틴 공주님의 의붓동생, 정도로 여겨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커, 커억. 크으윽.”
“여기 티슈입니다.”
손님이면서 자연스레 티슈를 내게 건네주는 그가 더욱 불편해졌다.
‘클레멘틴이면 벨기에 공주잖아. 나폴레옹 가문 전대 가주의 아내의 의붓동생이면 막심 베이강 씨랑 관계가… 에라이.’
가족 관계가 어찌 거미줄만도 못하냐. 진짜 베이강이 본 적도 없는 아버지를 싫어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대령님께서 부정하실수록 전 더욱 확신하고 있습니다. 아마 계획이 있으시겠지요. 분명 젊고 유능하시기에 시간을 들인다면 충분히 가능하실 겁니다. 다만 저희랑 함께하신다면 더욱 그 목적에 빨리 도달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저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러니까,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시겠습니까. 제가 무식한 군바리라.”
“어허, 그리 숨기지 않으셔도 된다고 방금 말씀드렸는데.”
크리스토퍼라는 이 인간, 뭔가 능숙하다. 마치 ‘난 너에 대해 다 알고 있다!’라는 확신에 가득찬 모습이 닭살 돋는다.
“흐음, 그리 내빼신다면야. 얼마 전 루르에서 몇 주 이어지지도 않을 짓을 하셨더군요.”
“책임 소재를 피하려면 언제나 법대로 해야지요.”
“그 결과를 보니까 참으로 특이했습니다. 독일은 총파업으로 자멸하고 내분이 일어남과 동시에, 신기하게도 프랑스 사회도 둘로 분열되더군요. 안 그래도 사이가 나쁘던 좌파와 우파가 이제는 멱살잡고 온갖 파벌과 이념까지 제 몸에 섞으며 싸우고 있습니다.”
“둘로 편 갈라서 싸우는 게 어디 한두 번입니까?”
“본디 극단적이라는 것들은 자신의 순수성을 강조하길 마련입니다. 대의로 포장하든 이상향을 제시하든 간에 말이지요. 허나 지금은? 누구보다 더 진흙탕에서 서로를 헐뜯고 싸웁니다. 아주, 완벽한 혼란이 만들어졌습니다.”
“……”
자신만의 깔끔한 해석이 조금 놀랍긴 하다. 정계의 혼란을 바랐는가? 맞다.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건들면 이런 짓 또 한다?’라는 신호지 절대 좌-우가 서로 리버샷 난타전 벌이라는 건 아니었다고.
그래도 효과는 좋다고 여기며 당분간 육군을 지켰다고 좋아했는데 … 이걸 이리 해석해서 나한테 들고 온다고?
‘뭐, 채점이라도 해달라는 거냐? 아니면 맞췄으니까 상이라도 달라는 거야?’
처음으로 돌아와, 보나파르트주의자들은 과연 나한테 바라는 게 무엇인가?
대답 없이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결론을 내주길 기다리자 크리스토퍼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의심하셔도 좋습니다. 일시적인 동행이라고 생각하셔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확실히 해주십시오. 누군가는, 이 사태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게 원인을 제공하고 악화시킨 사람이라면 아주 제격이겠지요.”
“아니, 이건 억울하군요. 제가 사태를 악화시켰다고요?”
모르는 소리. 여긴 원래 이 나라에 들개는 끓어 넘쳤고 난 판깔아 줬을 뿐이다. 그것들이 싸운 게 내 탓이라고? 아주 불쾌한걸.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거 하나는 아시지 않습니까? 그 어떤 이념과 사상도 프랑스를 구원할 순 없습니다. 이들은 끝없는 싸움을 시작한 겁니다.”
“당신들은 다르다? 모두 그리 말하긴 하죠.”
“대령님께서는 중도파가 존재한다고 보십니까? 권력에 미친 기회주의자들이 아니라 진정 가운데에서 옳은 선택을 하려는 중도파가?”
왠지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드네. 언제나 프랑스를 비웃는 건 내 역할인데 나한테 대뜸 찾아와서 이리 대놓고 까니까 할 말이 없잖아.
이게 페탱 원수님의 심정이었나? 팩트의 묵직함이 느껴진다.
“방관할 것인가, 개입할 것인가. 언젠가 선택하셔야 합니다.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베르게르 모헬 대령? 혹은 이 나라의 경제를 이끌고 안보를 지킬 수 있는 베르게르 모헬 사업가. 이 나라에 대령님이 후퇴할 곳은 더 없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내부에서 긍정적으로 검토 후, 심사숙고하여 답변해드리겠습니다.”
알아내려 했다가 되려 그에게 지적질당한 것 같은 느낌에 난 웃을 수 있을 때 대화를 끝냈다.
크리스토퍼 또한 그 이상 떠들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느 날 뜬금없이 나한테 찾아온 저것들.
‘아니지. 과연 뜬금없이 날 찾아온 걸까? 저 프랑스의 역사와 함께한 인간들이?’
세간에서 내게 새로 붙여준 별명은 익히 들어봤다.
붉은 나폴레옹. 루르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공산화하여 종국에는 소비에트마저 더 짙은 붉은색으로 만들 거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듣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가 날 바라본 것은 절대 공산주의자를 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마치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라는, 그래 마치 페탱 원수가 내게 보인 기대감의 또 다른 버전이었다.
‘왜? 도대체 너희가 얻는 게 뭔데?’
이 근본적인 의문을 풀지 못한 채 말려들었으니 결국 내가 손해 본 건가.
“후우, 조용히 사는 사람한테 찾아와서 지랄이야. 지랄은. 확 엎어버릴….”
그냥 떨쳐내려던 차, 난 이마를 짚었던 손을 떼어냈다.
‘크리스토퍼라면. 아니, 그를 보낸 사람이라면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건가?’
하나를 모르니 그 꼬리를 무는 또 다른 의문조차 풀릴 기미가 없다.
“아, 애미.”
알아서 화가 난 적은 많았는데.
이번처럼 모르겠어서 화가 나는 것은 오랜만이라 적응이 안 된다.
***
자키 파비앵 소령. 만 41세.
뛰어난 전훈과 모든 분야에 통달한 인간으로 평가받는 그의 현재 인생을 보자면 서류 더미에 파묻혀 언제나 야근, 집보다 부대를 더 많이 지키는 열혈 장교였다.
본인은 길로틴의 칼날과도 같은 퇴근을 희망하였지만 언제나 집에 복귀하는 것은 어려운 작전과도 같았다.
“자키, 이거 내일 올릴 보고인데 한번 검토해주게.”
“그거 내일 오전 회의 때 올리는 거 아닙니까? 지금 오후 6시인데요.”
“에헤이, 훑어만 봐줘. 끝에 자네 이름도 슬쩍 올리고.”
“안 올려도 되는데. 나 이름 올라가는 거 되게 싫어하는데.”
“어허. 파비앵 소령!”
“예이…”
차마 베르게르 모헬 대령을 찾아가지 못한 인간들은 모조리 파비앵을 찾아왔으며.
“흠흠, 대령님 아들이 태어났다며? 이런 건 함께 축하해야지! 이건 소소한 선물이라네. 그, 자네가 알아서 적당히 대령님께 전달해주게.”
“카악, 퉤!”
차마 상관에게 말하지 못할 일들도 그에겐 일상처럼 일어났고.
“늦었네.”
“히익! 소, 소피나?”
“그래도 아내 이름은 기억하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결혼기념일?”
“틀렸어. 12시가 지났으니 그건 어제잖아. 오늘은 당신을 추모하는 날이야.”
“소피아? 들어봐. 나 진짜 나라 지키다가- 으아아!”
집이라고 그가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치여 살고, 때론 타인의 삶을 치어야만 하지만 만약 누군가 그에게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지 않냐고 묻는다면.
“에휴, 차라리 몰랐던 시절이면 모를까 이제 와서? 뻔히 다 알면서 모른 척을? 다 내팽개쳐?”
한때 평탄한 부사관의 삶을 추구했으나 현실은 진급 가도 한복판 위에서 간간히 살아가는 장교가 돼버렸다.
때론 자신의 상관을 보면서 ‘왜 저러는 걸까?’ 싶지만 그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때가 많았다.
“에라이, 이번 달에는 어디 박혀서 숨어 있으려 했는데 하필 6사단이 빠져서 빈자리 메꿔야 하네.”
파비앵은 저도 모르게 물들었다. 개같은 현실 속에서도 이상을 꿈꾸며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말이다.
권력의 중추에 있으나 정작 권력은 소소한 동기부여일지언정 목표가 되지 못했다.
그런 그를 주위 사람들은 이리 평가했다.
‘베르게르주의자 놈.’
‘9년을 넘게 붙어 있었다더니 분신이야, 분신.’
‘건들지 말자. 괜히 난동 부릴라.’
정작 그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내가? 난 병사, 부사관, 장교를 모두 이해하는 아주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어찌 사관학교 나온 것들이 날 이해하겠냐마는.’
아무튼 그는 하루하루 관성적으로 열심히 살아갔다.
언제는 신문 안 읽는다던 모헬 대령이 사실 매일 아침 몰래 신문을 스크랩하는 것 역시 파비앵은 알았다.
그는 자신의 상관, 베르게르 모헬의 사회적 위치, 정치적 관계, 그리고 군에서의 역할을 매일같이 체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붉은 나폴레옹. 그는 붉은색을 너무 사랑하여 종국에는 적군마저 붉게 물들여 버린다네~”
“그러다 붉은색이 질려버리면 프랑스를 황금색으로 칠해버릴 것이라네.”
“…….”
길거리에서 막대기와 나무통을 뒤집어쓴 채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어버렸다.
“…. 애들아, 그 노래 어디서 배웠니?”
“윗동네 애들한테서요!”
“맞아요. 요즘 이 노래 모르면 무시당해요!”
“허, 허허.”
신문 스크랩하던 대령님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내용을 해석해보자면 베르게르 모헬 대령님이 프랑스를 공산화 시켜버린 뒤, 자본주의로 물들인다는 소리다.
아이들의 노래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지만 그가 발걸음을 멈춰 세운 이유는 하나였다.
‘이런 미친 정치 망상을 애들이 흥얼거릴 정도라고?’
고작 7, 8살 남짓한 애들이다. 그런데도 베르게르 모헬 대령님과 정치를 자연스레 연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알려줄래? 혹시 그 노래 언제 배웠니?”
“저번 주에요!”
“맞아요!”
비교적 최근이라고 하니 안심해야 할까? 아니다.
왜냐면 이곳은 라인란트, 파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출근하자마자 파비앵은 이 괴상한 광경을 상관에게 말해주려고 그의 집무실을 찾아갔다.
“대령님, 파비앵입니… 저런, 나중에 다시 올까요?”
“야! 이젠 노크도 안 하냐?”
“했는데 못 들으신 겁니다. 그 종이 쪼가리들은 애들 출근하기 전에 치우셔야 할 겁니다.”
“왜 이 시간에 출근하는데! 아직 1시간이나 남았잖아!”
“그럼 대령님은요?”
“…미안.”
“알면 일이나 좀 줄여주십시오.”
여기까지 왔으니 파비앵은 굳이 대령님이 ‘에고 서치’라고 부르는 저 행위를 모른 척해주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제가 오면서 무슨 이야기 들었는 줄 아십니까?”
“무슨 이야기.”
“애들이 대령님 정치 성향을 떠들고 있더군요.”
“내가 뭐, 어째서. 난 정치개입 하지 않는 당당한 군인이야.”
“그러시겠죠. 근데 신기한 것은요, 음, 프랑스를 자본주의로 부흥시킬 강력한 군부 공산주의자? 아무튼 그런 식으로 노래하더랍니다.”
최근 들어 정치 이야기라면 톤부터 진지함을 빼버리는 모헬은 약간의 관심을 보였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파비앵, 거짓말 치지 마라.”
“진짜입니다.”
“응, 구라.”
“농(Non)!”
“이 새끼가?”
모헬이 눈을 부라렸지만 파비앵은 그보다 책상 위에 오려진 사진들에 눈이 갔다.
‘에휴… 차라리 일기를 쓰시든가. 아니면 아예 사진 작가를 하시든가.’
잠시 상관의 눈이 건조해오길 기다린 뒤, 파비앵은 말을 이었다.
“하고자 하는 말은 이겁니다. 온 프랑스가, 지금 대령님의 정치성향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안 하면 그만이잖아.”
“이제 와서요? 그게 될 거라 여기시는 건 아니죠?”
“맞는데?”
“글쎄요, 그럼 지지하시는 정치인 있으십니까?”
“당연히 없지.”
“그럼 싫어하는 정치인은요?”
“난 다 싫어.”
“방금 대령님께선 수많은 프랑스인들과 같은 판단을 하면서 의견을 대표하셨습니다.”
“…….”
파비앵의 발언에 모헬은 순간 멍해졌다.
“이젠 아시지 않습니까? 이 나라 시민들 대다수는, 대령님의 정치사상이 무엇이든 간에 지지할 거란 사실을요. 딱 한 가지를 바라면서 말이죠.”
“……”
여전히 모헬은 답을 하지 못했다.